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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스가] 어느 맑은 날에

:3c 2015. 6. 13. 00:17


 마츠스가로 스가와라 생일합작에 참여했습니다>ㅅ<)/ 

 스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합작페이지는 >> 이쪽 <<이에요!









01.

나는 매우 무기력하고, 인생이 귀찮은 사람인데 말야


   북유럽신화에서 운명은 세 여신이 만든다고 한다. 과거가 실을 짜서 모양을 만들면, 현재를 다루는 여신이 실을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분배한다. 어떤 인생을 거칠지, 어디서 기복이 있을지, 언제 죽을지 따위가 적혀 있는 실타래는 갓 태어나는 아이들의 손목에 묶인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미래를 알 수 없는 건 이 실이 배달될 때 미래의 여신 스쿨드가 실타래를 흐트러트려, 잔뜩 엉켜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츠카와 잇세이는 영어 책의 지문을 해석하며 연필을 굴렸다. 주말을 연습으로 보내고 나니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 자체가 지겨웠다. 차라리 눈 뜨면 연습하던 게 훨씬 더 나았다. 마츠카와는 어딘가 엉덩이를 진득하게 붙이고 앉아 있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는 늘어지게 하품했다. 6월은 6월인지 창밖에서 내리쬐는 햇볕에는 여름이 잔뜩 묻어 있었다. 마츠카와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졸음이 몰려왔다.

   나름 학교를 대표하는 배구팀의 3학년 레귤러인데, 조금 수업을 빼주면 어디가 덧나나 싶었다. 그 생각은 앞에 앉은 하나마키도 동일한지, 그는 수업시간 내내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마츠카와는 허리를 쭉 펴고 목을 늘려서 그가 쓰고 있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수신인은 확인 할 수 없었지만 명백한 사랑의 메시지였다. 까졌네, 라고 작게 중얼거리자 하나마키가 뒤를 돌았다. 그는 가운데 손가락을 당당하게 내밀어 보이고 엿 먹어, 하고 입으로 속삭였다.

   마츠카와는 고개를 까딱였다. 하나마키를 놀리는 게 재미없었다. 사랑에 빠진 놈을 들쑤셔봤자 얻는 것은 들어 봤자 재미없는 애인 자랑 뿐이었다.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얀 구름이 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넘어가고 있었다. 비를 머금고 있는 놈은 아니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얬다. 그는 턱을 괴고 책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사카모토의 이름이 불렸다.

   지문을 해석하는 목소리 너머에 있는 건 끊임없는 졸음뿐이었다. 마츠카와는 넥타이를 끌렀다. 목이 답답한 것도 같았다. 그는 다시 구름을 보다가 영어 교과서 귀퉁이에 샤프로 낙서를 했다. 구름의 모양을 하던 그것은 연한 회색으로 칠해졌다. 손에 맞지 않는 샤프가 자꾸만 미끄러져서, 그가 원하는 회색 보다는 한 톤 진한 음영을 만들었다. 마츠카와는 그 그림자 같은 무채색들을 보다가 스가와라를 떠올렸다.

   어색한 발음의 이름이 입 안에서 맴돌다 혀를 빠져나왔다. 얼마 전 연습게임을 했던 카라스노 고등학교의 학생이었다. 그가 아는 건 ‘스가’와 ‘스가와라 선배’라는 이름 조각뿐이었다. 성이 여섯 글자인 건 매우 드문 경우니까, 아마 그의 이름은 ‘스가와라 뭐뭐뭐’거나, ‘스가뭐뭐 와라뭐뭐’일 것이었다. 마츠카와는 그의 이름을 공책에 적고 ‘뭐뭐’와 ‘뭐뭐뭐’ 자리를 비워두었다. 그는 그가 아는 이름 중에서 어울릴만한 것들을 끼워 넣기 시작했다.

   그의 소일거리는 방해받지 않았다. 마츠카와의 옆에 앉은 사카모토 군이 의외로 영어를 잘했기 때문이고, 하나마키가 결국 핸드폰을 건드리던 걸 들켰기 때문이었다. 고소한 일이었다. 짓궂은 성격의 영어 선생님은 그가 보내려고 하던 문자를 읽었다. 마츠카와는 그걸 가만히 듣다가, ‘스가뭐뭐 와라뭐뭐’나 ‘스가와라 뭐시기 (뭐시기의 범위는 1~4 이내로 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군의 이름에 들어갈 한자 몇 개를 잃어버렸다. 그는 혀를 쯧쯧 찼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그에게 사카모토는 아직도 인생이 무기력하냐고 물었다. 마츠카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마츠카와는 만약 운명의 여신이 있다면 제 손목에는 늘어지고 늘어진 카세트테이프를 감아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는 건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스가뭐뭐 (이하 마츠카와는 편의를 위해 스가뭐뭐 와라뭐뭐 군을 ‘스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군의 이름은 알고 싶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츠카와는 히라가나로밖에 적을 수 없는 그의 이름이 담을 수 있는 의미들을 생각하다가 책상에 엎어졌다. 그 순간 타이밍 좋게 수업 종이 울렸다. 하나마키는 영어 선생님의 뒷꽁무늬를 어미 새를 쫓아다니는 새끼 새 마냥 종종종 따라갔고, 마츠카와는 그 모습을 힐끔 보다가 눈을 감았다. ‘스가 군’의 이름을 알법한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오늘 연습을 빼먹기로 결심했다.

   무기력하고 인생이 귀찮은 사람은, 자신이 짜놓은 사이클에서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쉬는 것조차 일이었다. 비는 시간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마츠카와 잇세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땡땡이 치고 남은 시간에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오랜만이었다.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벌어진 입에 파리가 들어가도 모르겠다면서 사카모토가 웃었다. 시끄러워, 하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 여름 햇볕이 얼굴을 쪼듯 쏟아져 왔다.






02.

스가와라 뭐시기 군, 혹은 스가뭐뭐 와라뭐뭐 군.


   오이카와는 마츠카와가 더위를 먹어도 단단히 먹었다고 생각했다. 5월에서 6월로 오면서 기온이 올라가긴 했지만, 사람이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마츠카와의 기분파적인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난 3년간 했던 튀는 행동보다, 지금 이 순간 내뱉고 있는 말들이 더 이상했다. 갑자기 돌았니? 라고 물어보기도 뭐해 오이카와는 도시락을 깨작였다. 문어모양으로 가른 소시지가 맛있었다.

   마츠카와는 갑자기 점심시간에 갑자기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오이카와를 불러냈다. 여자아이들이 비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오순도순 모이는 것처럼,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와 옥상의 가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이카와가 교복 바지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손수건을 깔고 앉는 것까지 기다려 줬다. 그는 오늘의 마츠카와의 회전축이 약 3도 정도 기울었음을 확신했다.


   “그러니까 맛층, 단순히 그 애의 이름을 알고 싶다구?”

   “응. ‘스가와라’ 뭐시기인지 ‘스가뭐뭐 와라뭐뭐’인지 알고 싶어.”

   “보통은 스가와라가 성 아닐까?”

   “하지만 너 우시와카를 우시와카라고 부르잖아.”

   “그건 그러네.”


   오이카와는 그의 제멋대로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츠카와는 이름이 궁금하다고 말하면서 딸기우우를 마셨다. 야키소바에 딸기우유라는 조합은 제법 어울리지 않아 보였고, 오이카와는 오늘 이와이즈미의 도시락 반찬이 고로케였던 걸 기억하고 한숨을 내 쉬었다. 왜 이런 이상한 상담을 들어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가 투덜거리자, 마츠카와는 입 안에 들어있던 야키소바빵을 다 먹고 입을 열었다.

   네가 그나마 제일 잘 알 법 하잖아. 라는 말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으면서, 카라스노에서는 토비오와 치도리야마의 니시노야 밖에 모른다고 대답했다. 키타가와 제 1중 출신이나, 잘하는 애가 아니면 모른다는 발언에, 마츠카와는 이 땅에 내리 앉은 실력지상주의에 대해서 한탄했다. 마츠카와의 목소리는 땀에 푹 젖은 여름날 불어오는 바람처럼 상쾌했기에, 오이카와는 괜히 찝찝하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친구에게 물어 보는 건?”

   “나 여기로 배구유학.”

   “아 맞다. 너 도쿄 출신이었지.”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매실장아찌를 밥 위에 올렸다. 마츠카와는 어떻게 알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고 물었다. 오이카와는 별 생각 없이 찾아가면 되잖아? 하고 대답했다. 그는 마츠카와가 정말로 찾아가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터하이까지는 며칠 남지 않았고, 카라스노는 여기서 시내버스에서 마을버스로 한 번 환승해서 30분 정도 더 가야 하는 시외권에 있었다.

   그는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며 입에 밥과 장아찌를 넣었다. 마츠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오늘은 흰 우유가 아니라 딸기 우유야? 오이카와가 입 안에 있는 밥알을 반쯤 넘기고서 물었다. 마츠가와는 좀 ‘스가’라는 이름이 단 느낌이 아니냐 되물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사고의 흐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츠카와는 A에서 B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단번에 E나 F로 넘어가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자, 마츠카와는 설탕 생각도 나고, 좀 분홍색 같은 느낌도 들어서 딸기 우유를 사버렸다고 대답했다. 그의 부연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이카와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는 마츠카와가 ‘스가’라는 사람에게 단단히 빠져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온 세상이 달다고 하는 마츠카와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마츠카와는 그런 그가 재수 없다고 대꾸했다.


   “그래서 맛층에게 ‘스가’는 어떤 느낌인 거야? 그냥 달아?”

   “뭔가 설탕같이 폭신폭신한 느낌 아니었나?”

   “나 그 때 늦게 와서 잘 모르겠어.”

   “그, 응원하는 게 의외로 귀여웠던 것 같고?”

   “남자애잖아.”

   “그래도 키도 작고, 좀 귀염상이고.”


   마츠카와는 음,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좀 더 들어맞는 비유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렀다. 그러나 그는 스가가 웃는 모습이나, 충고하고, 팀을 응원하기 위해서 소리 지르는 모습이 굉장히 상쾌했다는 것과, ‘달았다’는 것 밖에 기억해낼 수 없었다. 얼굴마저도 드문드문하게 떠오르는 바람에, 마츠카와는 ‘스가’의 눈동자 색이 지는 노을색인지, 아니면 머리카락과 닮은 겨울 색인지를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 그늘이 넓어졌다. 하얀색 구름이었다. 마츠카와는 그가 이런 느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하고 싶고, 좀 가까이 가고 싶기도 했다. 일단 이름을 물어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츠카와는 멋들어지게 자기소개를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잔뜩 불어버린 채로 빵 안에 가만히 잠자고 있는 야키소바빵의 누들처럼, 그의 생각이 이리저리 불어 엉켜가고 있었다.

   오늘의 맛층은 뭔가 소녀 같네. 오이카와는 도시락 통에 붙어있는 밥풀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때 마침 옥상에 앉을 자리를 찾으러 구석을 두리번거리던 여자애가 오이카와에게 고개를 숙여왔다. 그는 그 웃음에 손을 흔들어줬다. 마츠카와는 그를 바라보다가 늘어지게 하품했다. 우유곽 안에 들어있던 딸기 우유는 이제 미적지근해지고 있었다. 마츠카와는 입안에 가득 든 단 맛에 입을 다셨다. 혀를 움직일수록 단 맛이 더 퍼져왔다.

   ‘스가’도 그런 느낌일까, 하고 마츠카와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엉망인 카라스노 안에서, 매니저처럼 져지를 입고 있던 모습이 가만가만히 번져왔다. 맛층? 이제 곧 점심시간 끝나, 하고 부르는 오이카와의 목소리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한 번 일방적으로 본 것만으로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소녀 팬 같은 느낌이 될 수 있을까? 먼저 일어나 손수건을 정리하는 오이카와에게 마츠카와가 물었다.

   굉장히 마법적인 일이지만 불가능한 건 아닐 걸? 오이카와가 웃으며 말했다. 마츠카와는 빵 부스러기와 비운 우유곽을 한 손에 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너머로, 오이카와가 ‘첫사랑 힘내’ 라고 말을 걸어왔다. 첫사랑까지는 아닐 걸? 마츠카와는 유월의 햇살을 잔뜩 맞으면서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어떻게 될 지는 두고 봐야 하는 일이라면서 살랑살랑 웃었다. 입 안에 가득 남은 딸기 우유맛이 그저 달아, 마츠카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역시 너랑은 친구 하기 싫어. 마츠카와의 말에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트렸다.






03.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그쪽에게 다가가고 있지 말입니다.


   “있지 스가와라 군, 혹시 사채라던가 쓴 적 있니?”


   스가와라는 가방을 챙기다가, 같은 반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였다. 있지, 굉장히 일수꾼 같은 사람이 스가와라 군을 찾고 있다는 소식에, 그는 타나카나 아즈마네가 오늘 클러치 백 같은 걸 들고 학교에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꼭 놀려줘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스가와라는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교문 쪽 계단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유월이었고, 스가와라의 생일 전전날이었다. 생일에 따로 모일 만큼 살가운 느낌은 아니었다. 금요일인 오늘 대충 축하해 주겠지, 하고 짐작하고 있던 차였다. 스가와라는 콧노래를 불렀다. 뭔가 서프라이즈 파티가 예정되어 있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간질거렸다. 꼴에 여름인지 아직도 해가 쨍쨍했고, 그는 오늘 제 머리를 덮을 고깔모자가 분홍색일지 주황색일지를 고민했다. 어제 다이치와 히나타가 고민하던 ‘색’은 고깔 아니면 케이크 둘 중 하나였다.

   스가와라는 오늘 아즈마네가 캡사이신 소스나 두반장 등을 선물로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슬슬 집에 소스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따로 사다 놓기에는 큰 식료품점은 너무 멀었다. 그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그늘이 없어 머리 위가 뜨거웠다. 그는 교문께로 걸어가 ‘사채업자’ 같은 사람을 찾으려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좀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아오바죠사이의 교복이었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스가와라는 그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저기 3번 군? 하고 말을 걸자, 그는 찾았다고 말을 걸어왔다. 나를? 하고 의아함에 다시 물어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루퉁하게 나온 입술에는 기다림이 잔뜩 묻어 있었다. 스가와라는 왜 이름도 모르는, 아오바죠사이의 3번 미들블로커 군이 자신을 기다렸는지가 궁금했다.


   “왜?”

   “스가와라 군은 스가와라 군입니까? 아니면 스가뭐뭐 와라뭐뭐 군 입니까?”

   “어?”

   “이름.”


   그는 뜬금없이 그렇게 질문했다. 그의 쳐진 눈은 스가와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고수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스가와라는 그가 뒤에 머쓱하게 감춘 크라프트지 뭉치를 훔쳐보았다. 모든 게 뜬금없고 애매한 이름으로 맞춰져가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오늘 영어 시간에 해석한 지문을 떠올렸다. 운명에 관한 지문이었다. 지금 이 상황은 운명이라기보다는 우연에 가까운, 해프닝이었지만.


   “스가와라 코우시야.”


   스가와라는 입을 열었다. 마츠카와는 그런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알려고 온 거야? 그가 물었고, 마츠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그게 신경이 쓰였다고 말하는 그는 느릿하게 하품을 했다. 스가와라는 그가 꽤나 제멋대로인 성격을 가졌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마츠카와의 눈은 꽤나 졸려 보였지만, 그를 똑똑히 바라보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용건은 그것뿐이야? 스가와라가 물었다. 그는 무언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츠카와가 손가락을 움직이는지 크라프트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마츠카와는 빈손으로 제 뒷머리를 머쓱하게 쓸었다. 마츠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던 길에 들렀다는 말에 스가와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3번 미들블로커 군은 이름이 뭐야? 하고 스가와라가 물었다.

   그는 입술을 뚱하게 내밀었다. 가르쳐주기 싫어? 하고 묻자, 그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애매한 여름이 그의 볼 위에 내려 있었다. 햇볕에 내내 서 있던 모양이었다. 미들블로커 씨, 하고 운을 떼자, 그의 작은 눈동자는 이리저리 방황하더니, 스가와라의 얼굴을 보고서 제 이름을 말했다. 마츠카와, 잇세이. 소나무 송에 내천, 하고 이어져 오는 이름들은 애매한 설렘을 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제 볼을 긁었다. 그리고 3번 아니고 2번이야. 그는 뚱한 얼굴로 말했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왔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상쾌했다. 마츠카와는 여전히 스가와라를 바라보다가, 이만 가보겠다면서 뒤를 돌았다. 스가와라는 이 우연적인 만남에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잔뜩 엉켜버리고 흐트러져버린 운명의 실타래에도 지금의 사건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츠카와는 너울너울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더위 먹었어? 스가와라가 큰 소리로 물었다.

   마츠카와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 자리에서 멈췄다. 그는 다시 뒤를 돌아 성큼성큼 다가왔다. 멀어지는 건 느렸지만, 다시 다가오는 건 빨랐다. 계속 그가 숨겨놓고 있었던 색이 든 안개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마츠카와는 자기는 멀쩡하며, 더위가 안 먹었음을 설명했다. 그는 매우 횡설수설한 어조로 스가와라에게 많은 걸 알려주려고 했다. 그 아지랑이 같은 말에서 스가와라는 몇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마츠카와 잇세이는 무기력하고 인생이 귀찮은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까지 온 건 이름이 궁금했기 때문이고, 단지 그거 때문에 환승에 환승을 거듭하다가 안개꽃을 봤으며, 그걸 사왔긴 했는데 어떤 핑계로 줘야할진 모르겠지만, 널 보면 딸기우유가 생각났고, 좀 몽글몽글하고 단 느낌인데 이름이 스가와라 코우시라서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라는 것. 스가와라는 그가 쥐어주는 안개꽃을 얌전히 받았다.

   더위를 먹은 게 아니라고 마지막으로 주장하던 마츠카와는, 스가와라의 눈을 빤히 보다가 뒤를 돌아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몇 번을 불러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걸음에 스가와라는 그의 뒷모습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것은 시간의 등을 보는 기분과도 같았다. 마츠카와가 버스 정류장을 지나서까지 달려가, 더 이상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돼서야 스가와라는 뒤를 돌았다. 다시 운동장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배구부실로 가는 걸음이 가벼웠다.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스가와라는 이 안개꽃의 이름을 ‘생일선물’이라고 붙이기로 결심했다. 그게 이름을 알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마츠카와의 순정과 가장 가까운 이름일 것이었다. 그는 다음에 인터하이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그의 번호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부실로 올라갔다. 철제 계단을 올라갈 때 마다 소리가 났고, 그는 배구부실 문을 똑똑, 두드리고 돌려 열었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폭죽 소리에, 스가와라는 활짝 웃었다. 가장 처음 축하해주겠다며 달려온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그의 손에 들린 분홍색 안개꽃 뭉치들을 보고서 눈을 깜빡였다. 여자친구, 있었슴까? 하고 물어보는 그들의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먼저 온, 사채업자 닮은 친구가 하나 있었어. 그는 그 정도로 가볍게 대답하기로 했다. 유월, 생일에 가까워져오는 안개꽃 같은 어느 날의 일이었다.

   이 날은 고민 하나 없이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