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고도를 기다리며』
오이카와 씨와 스가와라 씨가 같은 대학에서 동거하는 CC-라는 리퀘를 받았습니다.
뭔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과거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정도로 두터운 연인을 쓰고 싶었습니다.....
새벽감성 주의해주세욤 :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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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설거지는 외로움이다. 오이카와는 그릇을 들었다. 그는 혼자 한 식사의 흔적을 닦아냈다. 말라붙은 스파게티 소스는 찬 물에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볼에 미지근한 물을 받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멈췄다. 그는 스펀지를 손에 쥐었다- 폈다. 그는 제 손에 가득 찬 스펀지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볼 안에 손을 넣자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그의 손가락 끝에 붙었다. 그는 스펀지에 세제를 묻혔다.
그는 스펀지를 손에 쥔 채로 뒷걸음질을 쳤다. 식탁 위에 매달려 있는 달력에 붉은 선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밤샘’ 이라고 적은 글씨는 단정했다. 스가와라의 것이었다. 그 윗주에는 파란 선으로 ‘외박 확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둥글둥글한 모양은 오이카와의 글씨였다. 그는 입 안에서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는 목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렸다. 굳은 어깨에서 소리가 났다. 오이카와는 다시 설거지감 앞으로 몸을 옮겼다.
오이카와는 손에 든 스펀지를 주물럭거렸다. 하얀 거품이 몽글몽글하게 일어났다. 그는 스가와라가 없던 흔적을 지워 나갔다. 대학생의 기말고사 기간은 언제나 난잡하다. 학기 초에는 달게만 느껴졌던 휴강이 보강의 모습을 해서 구질구질하게 나타났고, 한 과목이 두 요일로 나뉘어져 있는 과목들은 시험을 보는 날이 들쑥날쑥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교양 과목인 경우 사정을 거의 봐주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 쉬었다. 이번 학기는 어째 시험 기간이 이 주 정도 지속되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와 스가와라는 시험에 심하게 구애받는 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과에는 ‘실기’라는 이름의 ‘과제’가 존재했다. 오이카와는 연극 워크숍을 준비해야 했으며, 스가와라는 학교에서 밤을 새가면서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만들어내야 했다. 스케줄을 표시하는 달력에 ‘바쁜 날’을 적어 놓을 때에는 이렇게 외로울 줄 몰랐는데. 오이카와는 자질구레하게 떨어지는 스파게티 양념을 물에 실어 개수대에 흘려보냈다.
외로움도 이렇게 물에 불려 떨어트릴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술 밖으로 삐져나온 공허함이 설거지감이 담겨 있는 수면을 흔들었다. 그는 능숙하게 그릇을 닦았다. 비슷한 그릇들이 짝수로 나와 있었지만 이것은 모두 오이카와만의 그림자였다. 그는 몇 줌의 한숨과, 몇 줌의 울컥임으로 설거지를 마저 했다. 그들의 작은 방에는 물소리만이 눌어붙어 있었다. 실로 부조리극 같은 기다림이었다. 사무엘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나 이오네스코의『코뿔소』의 세계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끊임없는 기다림이 연속적으로 순환하고 있었다.
못 본지 며칠이나 됐더라. 그는 싱크대의 물기를 쏟아내면서 생각했다. 아마도 이 주는 된 것 같았다. 저번 주는 오이카와가 워크숍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연극을 상연하기 이전에 으레 하는 것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켕기는 것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짬’이 아직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핸드폰 또한 만지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이것 때문에 차여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스가와라는 의외로 묵묵하게 기다렸다. 그 또한 순환되는 외로움 속에 있었을까, 오이카와는 그릇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으며 생각했다.
그가 스가와라를 만난 것은 연극 3일차, 마지막 무대의 커튼콜이 끝나고서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였다. 스가와라는 푸른 색조로 꾸며진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다. 고등학교 때도 생각했던 건데, 너한테는 역시 이 색이 어울려. 그는 무대 의상 위에 까만색 과 패딩을 걸친 오이카와를 보면서 말했었다. 오이카와는 그 바스락거리는 꽃다발을 들고서 그에게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그 때 스가와라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그는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고민했다. 기화 된 기억들이 두루뭉술하게 잡혔다.
―나도 야작하러 갈 건데 뭐. 신경 쓰지 마, 익숙하잖아? 그것보다 오늘 ‘스탠리’의 해석 말이야,
오이카와는 그가 하던 말을 기억 해 냈다. 스가와라는 며칠 못 본 것과 계속 연락하지 않은 것을 그 한 마디로 ‘퉁쳤다’. 실로 대범한 것이었다. 그는 간이 소파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는 발을 까딱였다. 스가와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꽤나 집중하고 있는지 전화나 카톡 또한 오지 않았다. 그는 저번 주의 스가와라 코우시의 일상을 상상하다가 고개를 시트에 박았다. 오이카와는 외로움에 대한 메소드 연기는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보고 싶다. 그는 익숙한 단어를 입으로 내뱉었다. 입으로 내뱉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되어 사무쳤다. 그는 입술을 잘게 깨물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지금, 너무, 보고, 싶어. 두 글자씩 끊어진 단어가 둘만의 대화방에 간격을 두고 올라갔다. 그의 말 옆에 있는 숫자에는 아직 ‘읽음’표시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다른 단체 대화창에서는 말칸이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하나마키가 종강 기념으로 술을 마시자고 제안했다. 평소라면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오이카와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대화창에 안 돼, 라고 거절하니 마츠카와가 물었다. 왜, 라는 그 한 마디에 오이카와는 롬메이트 기다려야 해, 라고 대답했다. 스가와라가 열쇠를 놓고 간 것도 아니고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저번 주의 그가 해 냈던 과업이었다. 연애 하더니 저 새끼 좀 변했다, 라고 험한 말을 내뱉는 하나마키에게 오이카와는 손가락이 ‘브이’ 모양을 하는 스티커를 붙여 보냈다. 답장은 ‘산을 나타내는 수화’로 왔다.
그는 하품을 했다. 그는 정자세로 누워서 핸드폰을 가슴팍에 올려두었다. 단체방 알람을 꺼둔 바람에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그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스가와라가 와서 키스를 해주면 일어날까, 오이카와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 주일만의 키스가 잠자고 나서의 입 냄새 가득한 입맞춤이라면 기분이 더러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일어났다. 그는 손등을 혀로 핥아서 침 냄새를 맡았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이 매우 설레발임을 알고 있었다. 연락 없는 연인을 기다리는 것은 매 순간이 설렘이었고 그에 반동하는 좌절이었다.
“같이 사는데 같이 안사는 것 같아.”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쉬이 흩어져 사라졌다. 오이카와는 뒷머리를 긁었다. 그는 테이블 위를 바라보았다. 저번에 받은 꽃이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병의 물을 갈아주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다발이 좀 싱싱해진 것 같았다. 그는 여린 꽃잎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창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오이카와는 다시 소파 위에 누웠다. 무료함이 그의 어깨를 건드리고 지루함이 그의 몸 위에 올라타는 것이 느껴졌다.
시계 초침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그의 귓바퀴에 꽂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실기 시험이 다 끝났을 때의 기분이었다. 매일 연습실과 집을 오가다가 맞은 첫 휴식시간에, 그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다. 우리 갈까, 아니, 참 고도를 기다려야지. 그렇지 고도를 기다려야지. 그럼 갈까, 가자 -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오이카와는 그 애매모호한 행간을 떠올렸다. 몇 번이고 학원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줄글이었다.
입시에서 부조리극이 나오는 것은 의외로 흔한 일이었다. 교수들은 예비 학생이 전체적인 글의 흐름을 파악하고 캐릭터를 해석할 줄 아는가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부조리극에 약했다. 그는 서사가 확실한 것을 좋아했다. 기승전결이 뚜렷해서 감정선이 확실하게 읽히는 희곡이 좋았다.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처음에서 다시 끝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부조리극은 뭔가 ‘애매’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었고, 무대에서 현실을 모사하는 연극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 ‘부조리한’ 서사를 체험하고 있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오이카와 토오루 옆에 없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인생을 부조리극으로 만드는 요소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기다림’과 ‘그리움’만을 담은 서사는 부조리극처럼 계속 오이카와를 맴돌고 있었다. 그는 쉬이 오지 않는 ‘고도’ 씨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 공과 같이 스가와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여전히 스가와라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그는 그의 동방에 슬쩍 가볼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기다림은 스가와라 또한 겪어 낸 일이었다.
기다려야지, 하면서도 가지 않는 것은 그가 반드시 옮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와 달리 『스가와라 코우시를 기다리며』에는 기승전결에 따른 결과가 있다. 지금 대단원 쯤 기다렸으니까 이제 하강과 함께 코우시가 오지 않을까. 오이카와는 기지개를 쭉 편 다음 제대로 몸을 추슬러 앉았다. 『스가와라 코우시를 기다리며』가 부조리극이라고 하더라도 연극에는 반드시 커튼콜의 순간이 오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다리는 게 괜찮은 것도 같아 오이카와는 실실 웃었다.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연인의 품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란 이름의 장에 암전이 되기 시작했다.
***
‘고도’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오이카와가 밀린 설거지를 처리하고 있을 때였다. 열쇠로 닫아둔 문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서 다녀왔어-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그림자마냥 따라왔다. 오이카와는 그릇을 들고 어서와, 하고 대답했다. 고도는 곧장 싱크대 쪽으로 달려왔다. 양말 신은 발이 움직이는 소리마저 오이카와의 귀에는 똑똑히 들려왔다.
“잘 했어?”
오이카와의 의례적인 물음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발뒤꿈치를 들어서 오이카와의 어깨에 매달렸다. 약 이주일 만에 느껴보는 온기였다. 스가와라는 쌓인 설거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먹고 제때 치우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오이카와는 물을 더 세게 틀었다. 나름의 ‘저항’이었다. 스가와라는 물소리를 들으며 식탁 앞에 앉았다. 그동안 어디 안 나갔어? 그가 물었다. 어, 전혀. 오이카와가 대답했다.
너 시험 끝나면 하나마키랑 술 먹을 거라면서. 스가와라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하나마키랑 안 놀 거야, 오이카와는 질려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는 그것이 얕은 연기임을 알았는지 소녀처럼 웃었다. 두 사람 분의 웃음소리가 집 안에 머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오이카와는 힘을 주어 그릇을 닦았다. 잘 불려진 스파게티 양념이 쉬이 떨어져 나가 개수대로 들어갔다. 스가와라는 달력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기지개를 폈다.
오이카와의 뒤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우시, 라고 물으며 그는 뒤를 돌았다. 스가와라는 간식 통에 달달한 사탕을 채우고 있었다. 무슨 맛이야? 오이카와가 물었다. 민트,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이카와는 얼굴을 찌푸렸다. 너 나한테 안 준 첫키스 맛이 민트 맛이었다면서, 나 민트 안 먹어. 그가 투정부리듯 말하자 스가와라는 내가 먹을 거라고 대답했다. 오이카와 씨 조금 서운해, 오이카와는 지친 어조로 말했다.
“오이카와 씨는 어린애 같아요, 언제까지 옛날 일을 우려먹을 거예요?”
“스가와라 씨는 어른이라서 내 연락을 모두 무시했나요? 오이카와 씨는 외로워서 힘들었어.”
“오이카와 씨는 햄스터도 아니면서 외로움을 꽤나 많이 타시나봐요.”
“햄스터 외로움 많이 타?”
스가와라는 글쎄, 하고 대답하며 웃었다. 오이카와는 마지막 그릇을 닦으면서 나는 생각도 안했지? 라고 물었다. 역시 의연하게 기다리고,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 건 조금 힘들었다. 참으려고 해도 입안이 근질거렸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찾았다면, 그 또한 이렇게 조잘거리지 않았을까. 오이카와는 멋대로 생각하며 웃었다. 무슨 생각 해? 스가와라가 그렇게 물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오이카와의 입속에 민트맛 사탕을 넣었다.
니 첫키스 맛 알고 싶지 않은데요, 하고 오이카와가 퉁명스럽게 묻자 스가와라는 그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그래도 나 오니까 좋지? 스가와라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오이카와는 마지막 그릇을 선반 위에다 올려놓으며 ‘당연하다’고 말했다. 입 안이 온통 상쾌한 감각으로 물들었다. 스가와라와 같은 맛이었다. 오이카와는 손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냈다.
너 내 생각 하나도 안했지? 오이카와가 질문했다. 그 당돌한 질문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 ‘부정’에 대한 부가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아까 내려놓은 가방에서 스프링 제본 된 책을 꺼낼 뿐이었다. 내 이번 야작 결과물이야. 한 권 더 뽑았지롱, 하는 말이 책갈피처럼 책에 붙어 따라왔다. 오이카와는 책을 열었다. 빼곡한 행간이 눈에 들어왔다. 부조리극 형태를 한 희곡이었다.
네 생각 하면서 썼어. 외로움을 가득 담아. 스가와라는 제법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여기 설거지 하는 장면 있어? 오이카와는 제본 된 대본을 꼭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럼, 스가와라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하나란 말이 떠올라 오이카와의 얼굴이 스파게티 소스처럼 붉어졌다. 화한 민트처럼 사랑이 훅 끼쳐왔다. 그는 스가와라를 꼭 끌어안았다. 아직 그의 머리카락에 붙어있던 겨울이 제법 상쾌했다.
부조리극의 플롯은 대부분 순환구조를 이룬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특별한 갈등 없이 다시 돌아오는 구조. 오이카와는 감동을 갈무리하고 책을 책장에 꽂아 놓았다. 배고프지 않아? 그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냉장고를 열었다. 삼분 인스턴트식품이 가득한 냉장고 안을 빠르게 훑어보다가, 오이카와는 몇 가지의 재료를 들고 싱크대 쪽으로 향했다.
“난 스팸이 좋아.”
“민트가 아니라?”
“민트는 니 색이라 좋아.”
“어?”
너 상쾌하잖아, 스가와라는 그 말에 배고프다는 말을 바로 이어 붙였다. 오이카와는 찬장에서 스팸을 꺼내 열었다. 그는 잘 씻어 말려놓은 도마에 스팸을 꺼내 썰었다. 나 며칠동안 인스턴트만 먹었더니 흰쌀밥이 그립더라, 스가와라는 식탁에 볼을 붙이고 몸을 기대며 말했다. 도마에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그는 며칠동안 잘 쓰이지 않은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렸다.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아. 오이카와가 중얼거렸다. 스가와라는 같이 사니까 그렇지, 라고 대답했다. 우문도 안했는데 현답이 돌아오는 격이었다. 오이카와는 나중에 식탁에 갔을 때, 오늘 날짜에 검은색 볼펜으로 하트를 그려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빈 칸에 채워 넣을 말은 ‘같이 있음’ 정도가 좋을까. 그는 문구를 고민하면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둘렀다. 설거지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어째 외롭지는 않았다.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