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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 꿈?

:3c 2014. 12. 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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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와라는 코트 위에 서서 네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물망 너머에서 오이카와는 웃고 있었다. 스가와라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이 예쁘게 접혔다. 스가와라는 그의 눈가와 입술이 제법 예쁘게 휘어진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웃을 때 마다 여자 팬이 하나 씩 늘어난다는 소문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웃음은 상쾌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벤치에 앉아 있던 카게야마가 재수 없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이 세트가 끝나면 카게야마에게 목소리를 줄이는 법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팀원이 서브를 넣기 전, 이 순간은 언제나 주어진 시간 보다 더 길게 느껴졌기에, 그 긴 시간동안 짧은 상념이 끼워졌다가 사라지곤 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가 입을 움직이는 걸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은 키스하는 것처럼 오, 하고 모아졌다. 그리고 그 모아진 입술은 살짝 우, 하고 내밀어졌다. 두 음절의 말이었다. 스가와라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스가는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하고 입모양으로 똑같이 묻자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네트를 사이에 두고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영문학 시간에 봤던 고전 영화를 떠올렸다. 로미오와 줄리엣. 자신과 오이카와가 서 있는 코트가 네트를 기준으로 ‘발코니 위와 아래’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코우-쨩”


   스가와라가 오이카와에게서 시선을 거두자 오이카와가 말을 걸어왔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가벼웠다. 스가는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코트에 서 있는 게 환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이치가 서브를 넣었고, 오이카와는 칫, 하며 짐짓 토라진 채 수비를 준비했다. 스가와라는 공의 움직임을 보면서 제 위치를 조절했다. 그는 오이카와가 자신을 왜 그런 애칭으로 불렀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할 만한 시간이 있었으면, 하고 고민했다.


   공이 오고가는 사이에는 많은 생각이 끼어들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갑작스럽게 이름을 부른 것 말고는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이카와 옆에 선 이와이즈미가 이따금 그의 명치나 배 부근을 세게 쳤다. 집중 하라는 말이 어렴풋하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이 경기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연습시합이라지만 그는 너무 ‘가벼웠다.’ 스가와라는 그 이유가 카게야마가 가벼운 염좌 때문에 벤치에 앉아있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몇 번의 랠리 끝에 공이 아오바죠사이의 코트에 내리 꽂혔다. 나이스 아사히! 라고 외치며 스가와라는 아즈마네의 곁으로 다가갔다. 칫, 하는 건방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뒤를 돌았다. 오이카와가 그 쪽을 바라보며 입술을 쭉 내밀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결례를 범했는지를 반추했다. 그러나 별 다른 것이 집히진 않았다. 아오바죠사이 고등학교에 올 때 특별한 트러블도 없었으며, 오늘은 히나타도 카게야마도, 노야와 류노스케도 얌전했다. 얌전한 것이 문제일 리는 없었기에 스가와라는 조금 더 깊게 생각했다. 그에게는 ‘타임 ’이 필요했다.


   다시 스가와라는 제 위치에 섰다. 오이카와와 마주보는 위치였다. 그는 다시 한 번 입술을 움직여 스가와라의 이름을 불렀다. 코우쨩, 하는 입모양과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웃음은 ‘상쾌’했다. 그는 예쁘게 웃을 줄 아는 남자였다. 스가와라가 눈을 마주치자 그는 손을 흔들어왔다. 스가는 자신이 잘못 한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그가 자신을 이렇게 갈급하듯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애초에 식이 정의되지 않은 문제에 해답은 없었다.


   “저기 나한테 할 말 있어?”


   스가와라가 작게 물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였다.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 나 신경쓰여. 그는 제법 단호하게 오이카와에게 질문했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입울 쭉 내밀고 지금이 아니면 말하지 못한다는 듯, 툴툴거렸다. 연습시합이지만 너무 기합이 빠진 거 아니야? 스가와라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목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던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내쉬었고, 오이카와는 무척 의미 있는 말이라서 연습 시합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개똥철학이지, 이와이즈미가 질렸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서브가 들어가고 볼이 오고갔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연습시합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고, 그 어수선함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들어 있었다. 점수가 나고 나이스! 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스가와라는 득점 한 츠키시마를 칭찬하다가 아오바죠사이의 코트를 넓게 훑어봤다. 후위에 있는 세 선수가 모두 다 오이카와의 뒤통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연습시합을 온 것 자체가 꿈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었다. 아픈 것이 꿈은 아니었다.


   로테이션이 돌아 오이카와가 서브를 넣는 차례였다. 오이카와는 손가락으로 스가와라를 지목했다. 코우쨩, 하고 가볍게 부르는 목소리에 스가는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의 자색 눈동자와 똑바로 마주했을 때 오이카와는 다시 웃었다. 청량감 있는 웃음에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 쉬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코우쨩, 하고 크게 발음했다. 스가와라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니와, 그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서브를 던져서 코우시가 받으면, 우리 사귀지 않을래?”


   얼토당토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한 대 맞은 것 처럼 머리가 멍했다. 요즘 아오바죠사이는 이런 심리전도 쓰는 건가? 이런 저급한 심리전을 걸 만큼 내가 만만한가? 스가와라는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게임이 만약 야구였다면, ‘벤치 클리어링’ 정도는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자존심을 대놓고 긁고 있었다. 타나카가 저 녀석, 하면서 얼굴을 구겼다.


   무슨 소리야, 하고 스가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고 공을 던졌다. 높이 띄운 볼을 향해 오이카와가 가볍게 뛰었다. 그가 친 볼은 자연스럽게 스가와라의 쪽을 향해 날아왔다. 스가는 벙쪄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이상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 ‘고백’ 받은 거냐고 누군가에게 물어 보고 싶었다. 오이카와가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왜 저 웃음을 이와이즈미가 ‘패고 싶은 웃음’이라고 규정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코우시, 일부러 내 서브 안 친 거야? 이거 너무한데.”

   “어?”

   “설마 이 오이카와 님의 애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오이카와는 다시 서브를 넣겠다고 선언했다. 스가와라는 자신과 오이카와가 사귀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러나 고백을 받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 답을 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공을 바닥에 튕기면서 이번엔 받아줘 코우쨩, 하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의외의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카라스노의 코트가 술렁거렸다. 저 새끼 미친 거 아냐, 하고 카게야마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지금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혹시 ‘몰래카메라’ 류의 깜짝 파티를 위해 더빙 된 녹음 파일이 아닐까 의심했다.


   서브가 다시 스가와라를 향해 날아왔다. 그는 팔을 움직였다. 공이 높게 떴다. 오늘부터 우리 1일이야, 하고 오이카와가 소리쳤다. 스가는 울고 싶었다. 그는 왜 자신이 이런 부끄러운 상황에 당첨되었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자신과 오이카와의 접점은 없었다. 애초에 사랑이란 이렇게 갑작스럽게 통보받는 게 아니라,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쌓아가는 게 아니던가. 스가와라는 자신이 알았던 ‘사랑’과 ‘연애’와 ‘고백’에 대한 정의가 하루아침에 바뀐 건 아닐까 고민했다. 공은 공격으로 이어져 점수가 되었지만 스가는 유쾌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내가 좋아?” 

   “정말 좋아.”

   “어째서?”


   스가와라가 되물었다. 오이카와는 서툴게 볼을 긁었다. 그건 시합이 끝나고 말해 줄게 자기야, 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자, 벤치에 앉아있던 카게야마가 일어났다. 우리 선배한테 수작 부리지 마! 하고 당당하게 외치는 소리에, 스가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다는 생각 을 했다. 스가는 다시 한 번 볼을 꼬집었다. 세게 꼬집은 볼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 상쾌 군! 이 오이카와 님의 애인이라면 자신의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겨!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그의 얼굴을 서브로 맞히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