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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 나의, 어제에게.

:3c 2015. 4. 25. 18:04



  오이스가 트친오락관에 참여한 글입니다. FHQ로는 처음 써 보는 거라 재미있었어요~












0.

세상의 절반을 준비 해 뒀어,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적막을 먹었다. 히나타는 마왕의 오른팔이 두고 간 딸기향 회복약을 마셨다. 끝 맛이 지나치게 달았다. 카게야마도, 이와이즈미도, 코즈메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왕의 하수에게 당하고, 다시 치료하는 과정이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피로가 가중되고 있었다. 패배의 순환 고리를 언젠간 끊어야만 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내 쉬었다. 그의 침묵은 유달리 무거웠다. 히나타는 그것이 쿠로오가 남긴 마지막 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마왕은 너희를 위해 세상의 절반을 준비 해 뒀어. 히나타는 그 말을 곱씹었다. 모두 같이 이야기 해 볼만한 주제였으나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의 절반, 그 무게가 그들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숨이 텁텁 막혀왔다.


   “저기.”


   먼저 입을 연 건 카게야마였다. 그 답지 않게 망설이는 목소리였다. 이와이즈미는 모닥불이 꺼지지 않게 마른 장작을 불 속에 넣었다. 불꽃이 일렁이며 타올랐다. 매캐한 연기가 났다. 히나타는 그가 ‘세상의 절반’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할 이야기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내 쉬었다. 책임감이 막중했다. 히나타는 이와이즈미의 좁혀진 미간과, 카게야마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을 신중하게 골랐다. 카게야마답지 않은 일이었다. 히나타는 그를 재촉했다. 바보 히나타, 라는 말이 그들의 중간을 가르자, 그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안심하라는 나름의 뜻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짙게 달라붙어 있었다. 코즈메는 다 마신 약 병을 손 안에서 굴리고 있었다. 고양이가 털실을 가지고 노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많은 생각이 날벌레처럼 태어나, 불 속에 뛰어들듯 산화하길 반복하고 있었다.


   “세상의 반절이 뭘까.”

   “바보 카게야마, 당연히 말 그대로 세상의 반절이잖아.”


   히나타는 캬게야마의 말을 물고 늘어졌다. 이와이즈미는 그 점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왕의 전 측근이었다. 코즈메가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오네 또한 말하지 않았지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히나타는 둘 밖에 알지 못하는 추론을 어서 알고 싶었다. 그가 재촉하듯 카게야마의 이름을 부르니 그는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왜 하필 절반일까.”

   “그야 마왕님이 아직 능력이 없어서겠지!”

   “아니, 능력은 차고 넘쳐.”


   히나타의 직관적인 대답을 이와이즈미는 단번에 꺾어버렸다. 그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카게야마 또한 이와이즈미에게 전적으로 동의했다. 마왕의 부하는 마왕의 능력의 최대치를 넘을 수 없다. 마족은 본디 약육강식을 모토로 했다. 그의 하수인인 쿠로오보다 마왕은 몇 배나 더 강할 거라는 그의 추측에, 히나타는 기겁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쿠로오가 딸기향 회복약을 주지 않았더라면, 벌써 용사 파티는 전멸이었다. 세상의 절반이 이미 마왕의 손에 들어 가 있었다. 히나타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력감이 몰려왔다. 이와이즈미는 그것이 퍽 무서운 모양이었다. 카게야마 또한 왜 절반을 쥐고 찾아오라고 하는지, 그의 저의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다시 모닥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무에 불이 붙는 소리는 밤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1.

나는, 어제를 만나러 갈 거야.


   “오늘도 거기에 가요?”


   오이카와는 졸린 눈을 하고 있는 흑발의 마족을 바라보았다. 그가 나름대로 공들여 빚은 피조물이었다. 쿠니미야, 오이카와는 손짓하여 쿠니미를 가까이 불렀다. 그는 그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오이카와는 그 표정을 보면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 까지 갈 생각이에요? 쿠니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글쎄, 라는 예정되지 않은 대답만을 흘렸다. 그럼 언제 까지 쿠로오를 보낼 생각이에요? 쿠니미가 다시 질문했다. 오이카와는 말 대신 웃어 보이는 걸 선택했다. 마계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가장 지엄하신 분은 가끔 이렇게 애매할 때가 있었다. 쿠니미는 확정되지 않은 것을 싫어했음으로, 이런 대답을 하는 오이카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쿠니미야,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게 사랑이란다. 오이카와는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나치게 익숙한 일이었다. 출정하기 이전에 모든 병사와 고위 마족들에게 ‘언제나 믿는다’-고 속삭이는 것 같이, 오이카와는 항상 사랑을 노래하곤 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그가 언젠간 이해하게 될 거라고 말하며 그의 검은색 머리카락을 얌전히 쓰다듬었다.

   사랑이란 마족이 가질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신과 가까운 감정이었다. 혼돈에서부터 마왕의 마력을 먹어 창조된 피조물인 쿠니미는, 오이카와가 ‘사랑’을 노래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가장 타락한 존재의 가장 순수한 마음. 그 성질에서부터 모순적인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쿠니미는 마음속으로 체념했다. 그것을 들었는지, 오이카와는 살포시 웃어보였다.


   “가끔씩, 신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어떤 때요?”

   “바로 지금이란다.”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 그래서 보러가지 않고서는 못 배길 때,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물을 뿌렸다. 그의 마력을 먹은 덩어리들이 움직여 진을 만들었다. 물이 만든 투명한 공간 안에는, 이팝나무와 조팝나무의 새끼손톱만한 하얀 꽃으로 덮인 한 집이 보였다. 끊임없이 어제를 살고 있는 집이었다. 쿠니미는 그에게 그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식의 생각을 아버지가 읽게 되는 것은, 마족에게 일상적인 일이었다. 쿠니미는 눈을 깜빡였다. 오이카와는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의 웃음에서 미미한 서늘함이 밀려왔다. 겨울에 피는 서리꽃 같은 미소였다. 쿠니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곧 정의였다.

   오이카와는 만들어 낸 공간이동 포탈을 타기 전에,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모습이 완벽하게 아름다운지를 확인하고, 인간의 복장으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그의 머리에 달려있는 큰 뿔 두 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뾰족한 꼬리마저 자취를 감췄을 때,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인간 같다는 뜻이었고, 오이카와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그 스스로 마법을 걸었다. 사람의 향과 체온을 만들어 주는 마법이었다. 오이카와는 쿠니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름의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쿠니미는 끊임없이 어제를 사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끊임없이 쉼표를 찍는 마을, 그는 한숨을 내 쉬었다. 마족의 사랑은 인간에게는 버거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쿠니미는 오이카와가 열심히 매만져준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내가 이상하니?”


   포탈에 들어가기 전 오이카와가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마치 부적이라도 되는 양 마왕은 환하게 웃었다. 아름답기에 서늘한 미소였다. 쿠니미는 자신의 왕이 부디 그에게 닿기를 바랐다. 하지만 쿠니미는 어느 구석으로는 오늘도 오이카와가 세상의 절반을 잃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신이 이 땅의 인간에게 주신 유일한 축복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럼 갈게, 란 말고 함께 오이카와는 뒤를 돌았다. 쿠니미는 오이카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안개처럼 사라지는 그는 어느새 이팝나무그늘이 드리워진 통나무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신사적으로 통나무집 대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이카와의 사랑이었다. 쿠니미는 오이카와의 마법진 근처에 다가가, 발로 식을 흐트러트렸다. 깨진 물방울들이 다시 아무것도 아닌 물로 돌아가 스스로 그릇에 담겼다.

    쿠니미는 사랑이 매우 확실하지 않으며, 효율성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세상의 나머지 반절을 포기한다는 것을 쿠니미는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이카와에게 묻는다면 그 대답은, 반드시 ‘네가 아직 사랑을 몰라서 그렇단다.’ 일 것이 분명했기에, 쿠니미는 가볍게 공중을 박차고 날아 자신의 방으로 천천히 밀려갔다.






2.

오늘이 밀려 어제가 되는 건, 새벽의 일인가요?


   스가와라는 분주했다. 그는 오늘 오기로 한 손님을 생각했다. 실로 간만이었다. 그는 테이블 위의 꽃병에 이팝나무를 장식했다. 줄기에 다닥다닥 달려 있는 꽃망울들을 보면서 스가와라는 콧노래를 불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우였다. 같은 토벌대에서 마족을 토벌하기도 했다. 그는 오이카와의 서신을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스가, 오늘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중요한 이야기야. 스가와라는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그가 말하는 ‘중요함’은 무게가 달랐다. 오이카와는 기본적으로 바람 같은 남자였다. 진지할 때는 폭풍 같았고, 가벼울 때는 산들바람과 같았다. 스가와라는 그가 팀을 해산하던 날을 떠올렸다.

   더 이상 마왕을 토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그의 오른손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마기가 가득 찬 탓이었다. 그는 노련한 마법사였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 마법을 쓸 수 없었다. 몸의 기운을 손끝에 모아 마법적 처리가 된 스태프로 발사하는 그 메커니즘을 더 이상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마왕성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마치 어제처럼 선명한 기억이었다.

   스가와라는 동료들을 떠올렸다. 오이카와를 빼고 마왕성에 진군하기로 한 다음 날, 그들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스가와라의 주변에는 하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는 그 아이러니한 기억을 떠올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이카와는 그걸 보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다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을 뿐이었다.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가 상념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소리였다. 그는 반가운 얼굴을 하고 문 쪽으로 다가섰다. 기쁨에 문을 여니 그 곳에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오이카와가 왼팔을 벌렸고, 스가와라는 그를 기꺼이 끌어안았다. 키가 큰 그가 몸을 숙여줬고, 그제야 스가와라는 그의 양 볼에 키스를 할 수 있었다. 쪽, 하는 소리에 오이카와는 간지럽다는 듯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오른손을 전혀 쓰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그의 코트를 받아 걸었다. 오이카와는 그를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같기도 했고, 연민이 가득 섞인 것도 같았다. 그는 오이카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체리색 눈동자가 켜 놓은 향초 빛에 반짝였다.


   “오랜만이야.”

   “몇 년 만이지?”

   “그러게, 잘 모르겠어.”


   오이카와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해 있었다. 테이블에 핀 이팝나무 같았다. 그는 오이카와에게 의자를 꺼내 주었다. 통나무를 잘라 대충 만든 의자는 오이카와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 했다. 스가와라는 마왕성을 토벌하던 예전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노숙을 하며 성에 찾아가는 그 과정 속에서도 오이카와는 언제나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그 때의 기억이 스가와라에게 찾아왔다.

   뭐 하고 있었어? 그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토비오도 마왕성 토벌을 떠났지? 오이카와는 눈을 깜빡였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무 그릇 두 개에 스프를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요즘 들려오는 소문이랑, 날아오는 서신을 보면 곧 성 근처에 갈 건가봐. 스가와라는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피해는 없대?”

   “마왕의 측근이었던 이와이즈미 씨가 있어서 괜찮다고 하더라.”

   “와, 이와가?”

   “아는 사람이야?”


   그럼, 잘 아는 사람이지. 오이카와는 그가 유능한 검사라고 설명했다. 마왕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성의 지리도 잘 알고, 함정에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매우 신나 보였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매우 부드러웠다. 귀 위쪽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고, 오이카와는 왼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오늘 할 말이 있어. 스가와라에게 오이카와가 선언했다. 갑자기 무거워진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프 두 그릇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불안했다. 스가와라는 그의 앞에 바로 앉았다. 오이카와가 한숨을 내 쉬었다. 항상 말하는 거지만, 입으로 낼 때 마다 떨려. 그는 스가와라가 바로 알지 못 하는 말을 꺼냈다.


   “항상 하던 말인데,”

   “항상?”

   “응. 너에게.”

   “나한테?”

   “응.”


   그런데, 왜 떨리는지 모르겠어.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였다. 스가와라는 말의 맥락을 잡지 못했다. 미안해, 나 잘 생각이 안 나서 말야. 스가와라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계속 말했지만 지금의 너는 처음 듣는 말이야, 수수깨끼 같은 소리였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스가와라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카락에 뿔 두 개가 돋고 있었다. 체리색 눈동자는 피 빛처럼 진해져갔다. 스가와라, 하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스가와라가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사랑해.”


   오이카와가 말하는 순간 스가와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게 물들었었던 오이카와의 팔은 매끈한 피부가 되었다. 사랑한다는 목소리를 속삭이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오이카와 토오루였지만 스가와라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두려움에 뒷걸음쳤다.

   가장 신께 가까운 말을 하는데도 왜 날 받아들이지 않는 거니?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오이카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스가와라에게로 뻗어갔다. 강한 힘이 그를 붙들었다. 스가와라는 선반 위에 있는 활을 바라보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오이카와의 구두굽 소리가 천천히 다가왔다. 뱀이 다가오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사랑해.”


   그가 다시 종언을 선언했다. 그와 함께 스가와라의 시간이 멎었다. 오이카와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바라봤던 모습이었다. 그는 변함없는 오늘이 마냥 웃겼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오늘의 결말은 언제나 두려움과 공포였다. 그는 손을 들어 스가와라의 눈을 가렸다. 그는 작게 벌려진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따듯하고 말랑거리는 입술이었다.

   어째서 내가 바라는 말을 해 주지 않는 거니, 오이카와는 대답 없는 목소리에게 물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굳어버린 스가와라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사랑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표정, 오이카와는 그것을 보며 웃음 지었다. 하나로 묶인 그림자에서부터 마력이 피어올랐다. 그는 다시 시간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력이 아른거리며 스가와라의 오늘을 다시 어제로 만들었다.


   “나의 어제야,”


   그가 속삭였다. 사랑해, 라는 목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오이카와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문을 닫았다. 시간이 다시 뒤를 향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마왕성으로 가는 포탈을 열었다. 온몸이 피곤에 절어 있었다. 사랑의 증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픈 상처였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이 텅텅 비어 있었다. 그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왕좌를 향해 걸었다. 몇 천 년 간이나 굳건히 지켜온 곳이었다.

   미련하네요, 쿠니미가 속삭였다. 오이카와는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너와 쿠로가 없었더라면, 힘들었을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한껏 웃었다. 내일도 가실 거죠? 하고 쿠니미가 물었다. 그의 작은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기쁨을 가득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도 그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미래가 있다면, 그걸 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간을 돌릴 거야. 오이카와의 말에 어린 마족은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오늘은 미래 없이 반복될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절망 속의 달콤함을 보고 있었다. 쿠니미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온 세계를 손아귀에 움켜쥐는 것에 관심이 없는 그의 마왕은 한껏 사랑에 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쿠니미는 반복 되고 있는 어제에 쌓이는 죄를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일이었다.

    미친 것 같니? 오이카와가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오이카와는 그게 마음에 든다는 듯 웃었다. 그가 꺼낸 수정구에 용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와에게 세상의 반절만 준비 해 주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내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그렇지 쿠니미야? 쿠니미는 오이카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은 광기를 동반한다. 오이카와의 감정은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다. 오이카와는 영민했음으로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 둘 생각은 없었다. 그의 애정은 원래부터 그리하였고,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그를 받아들여주지 않는 스가와라의 잘못이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가던 그를 떠올렸다.

여전히 그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3.

태양은 밤에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있을까요?


   카게야마는 멀리서 날아오는 까마귀를 팔에 얹었다. 스가와라가 기르던 것이었다. 카게야마는 까마귀의 발에 묶인 하얀 리본을 바라보았다. 까마귀는 매일 날아오지만 별다른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 그는 하얀 종이를 바라보다가 하품했다. 세상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일들이 많다. 카게야마는 빈 종이를 손에 쥐다가 웃었다.

   마왕을 물리치면 가장 먼저 그는 스가와라에게 찾아 갈 생각이었다. 그에게 받은 활 덕분에 이겼다고 말하면서, 환한 웃음을 짓는 스승을 끌어안고 싶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생각하면서 카게야마는 흰 종이를 품에 넣었다. 마왕이 말하는 ‘세상의 반절’ 또한 빈 종이와 같이 별 의미 없는 말일게 분명했다.

   그는 모닥불을 껐다. 새벽이 발라오고 있었다. 타다 남은 불씨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카게야마는 몸을 뉘였다. 이와이즈미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하세요? 그가 물었고, 이와이즈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는 오이카와의 모든 행동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어딘가 축이 나가버린 것 같은 모습이 불안하다는 말에 카게야마는 별 일이 아닐 거라며 위로했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낮은 모든 불안감을 종식시킬 것이었다. 그는 멀리서 밝아오는 햇빛을 보며 눈을 감았다. 중천에 뜨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음으로, 좀 더 잘 수 있을 것이었다. 카게야마는 약속된 승리를 취하는 자신을 상상하며 잠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날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