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삼키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다녀왔어, 라는 말에 메아리가 달리지 않은 것도 이제 며칠 지난 일이었다. 스가와라는 현관에 서서 불이 모두 켜진 집으로 들어왔다. 집 스위치가 오른쪽 ‘켜짐’에서 왼쪽 ‘꺼짐’으로 돌아눕지 않은 것도 며칠 지난 일이었다. 그는 얼마 후에 날아올 전기 요금 고지서를 떠올렸다. 몇 개의 숫자가 적혀 있을까, 그는 잠시 그것에 대해서 고민했다. 아직 몇 엔이 그의 어깨에 올라설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돈의 무게는 불이 꺼진 집에 들어서는 감각 보다는 가벼울 게 분명했다.
그는 현관 안으로 발을 옮겼다. 그는 뒤를 돌아 닫힌 현관문과 신발을 정리했다. 다녀왔어, 그는 인사했다. 말꼬리를 잡은 공허는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그는 그가 남긴 유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의 그림자는 집 안에 매여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했다. 좋아했었나보다, 그는 그 말을 내뱉었다. 공기에 퍼진 말은 얼마 뒤 배달 될 ‘흔적의 택배’만큼이나 무겁게 그의 발끝에 달라붙었다.
스가와라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한 방이라도 그에게 허락하지 않은 공간이 없었다. 그의 연인이었던 그 사람은 특별한 날에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부엌을 종종 빌렸고, 오븐에서 서툰 타르트 냄새가 풍기는 날 또한 며칠 있었다. 안방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침대에서 속삭였던 언어들은 귀지처럼 여전히 스가와라의 귀에 달라붙어 있었다. 현관도, 신발장도, 베란다도, 작은 방도, 옷 방도 ‘그러 했다’. 그는 언젠가 읽었던 글귀를 떠올렸다.
적어도, 연애를 할 때에는 허락하지 않은 게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해요. 그게 나중에 마지노선이 되거든요, 나의 일생을 그에게 온전히 맡길 게 아니라면 말이에요. 그러다가 헤어진 후에 돌아갈 곳이 없어져요. 돌아갈, 곳이, 없어져요, 돌아갈, 곳이, 없어져요. 스가와라는 메아리처럼 발음했다. 돌아갈, 곳이, 없어져요, 라는 단순한 말은 그에게 있어 과거의 흔적이었다. 그는 집 안을 망령처럼 배회했다. 어느 곳도 쉴 곳이 없었다. 그는 어제 자신이 소파 앞에 쭈그려 잤다는 것을 기억 해 냈다.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았다. 적어도 끝낼 때는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지막 인사는 ‘사랑했어’였다. 그는 그 말끝에 ‘2번 군’ 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스가와라는 ‘2번 군’이라는 말을 발음했다. 지나치도록 어색했다. 토오루와 코우시가 아니라, 2번 군과, 세죠의 주장, 이었다. 그는 그 어색한 발음에 혀가 굳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혀가 뻣뻣한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심해 같았다. 어쩌면 무덤일지도 모른다. 관 안일지도 몰랐다. 그는 집 전체가 죽어버렸음을 느꼈다. 이제 그와 그 사이에는 거대한 네트가 자리잡았다.
몇 번을 점프해도 네트 위의 풍경은 뚫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기념일마다 기억이라는 공이 네트를 넘어서 산발적으로 내려 올 것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남자는 로맨틱한 남자였기에 그 것은 그가 고등학교 시절에 넣었던 점프 서브만큼 날카롭고 화려하게 스가와라를 후벼 팔 게 분명했다. 아무리 높은 벽이라도 그와 겪었던 모든 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넘어와 한동안 스가와라가 스가와라로 있을 수 없게 할 게 분명했다.
그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지금부터 상처받았다. 스가와라는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헤집는 손길 끝에서 오이카와 토오루가 번져왔다.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어주는 것은 ‘토오루’의 몫이었다. 그는 조금 슬프다고 생각했지만 울지 않았다. 그것은 ‘쿨하지 않은 이별’이었다. 마지막으로 건넨 인사에서 오이카와가, 자신이 싫어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던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그것에 맞춰 줘야 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예의였다.
그림자가 짙어졌다. 배는 기계적으로 고파온다. 그는 빈 식탁에 앉았다. 식기가 부스럭거리는 환청이 들렸다. 그는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배가 고파서, 전화했어, 네가, 생각나더라. 이 네 마디를 당장 그에게 쏟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장 난 수도꼭지 같은 이별은 하지 말자, 사랑했었어, 2번 군. 눈을 감자 물처럼 기억이 번져왔다. 스가와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도 먹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저지해 줄 사람이 없음으로 그 행위는 의미 없이 이어졌다. 아픔은 언제나 정직하게 다가오는 법이었다.
스가와라는 냄비를 열었다. 어제 만들어놓은 제육볶음이 있었다. 그는 뭔가 더 반찬을 만들까, 하다가 생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의미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먹어 줄 사람도 없었다. 그는 고기를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그는 눈을 깜빡이다가 냉장고에서 고추를 꺼내왔다. 고추장과 1회용 타바스코 소스는 찬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오이카와가 싫어했기 때문에 숨겨놨던 것이었다. 그는 휴일에 냉장고 정리를 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는 짧게 웃었다.
이건, 좋은 일이네.
그의 웃음은 힘없이 흩어졌다. 그는 제육볶음에 양념을 더 했다. 그는 작게 불을 켜서 그것을 볶아냈다. 고기가 더 딱딱해질 것이었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식사에 의미는 없었다. 영양소 균형을 맞춰 밸런스 있게 준비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서 간을 심심하게 하는 것도 이제 질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잘 됐네, 스가와라는 이별 후 첫 번째 장점을 찾았다. 고기 타는 냄새가 흐를 즈음에야 그는 손길을 멈추었다.
그는 그것을 식탁으로 옮길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거창하게 먹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어차피 집 안에는 그 밖에 없었고, 그는 밥그릇에 찬밥을 덜었다. 그는 젓가락을 들고 냄비에서 제육볶음을 집었다. 매운 향이 코끝에 닿았다. 그는 잘 떨어지지 않는 흰 쌀밥에 고기를 얹었다. 입에 넣었고, 씹어냈다. 그것은 매우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혀가 아려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그는 조리대 옆에 있는 싱크대의 윗 선반에서 컵을 꺼냈다. 커플 컵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민트색 컵’일 뿐이었다. 그는 내다버릴 것을 생각하면서 싱크대 옆 정수기에서 물을 받았다. 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눈물 흐르는 자국과도 닮았다. 그는 그 일차원적인 연상 작용에 짧게 웃었다. 작문으로 친다면 F급이었다. 그는 타는것 같은 식도에 물을 부었다. 별로 좋은 식습관은 아니었다.
아름답게 헤어지자, 우리 추억은 정말, 예뻤어.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했던 자신의 혀를 씹어 목 너머로 넘기고 싶었다. 그러나 먹는 것에 익숙한 이는 쉬이 혀를 씹지 않았다. 그는 찬밥을 혀 대신 씹어 넘겼다. 딱딱한 밥에 매운 양념이 들었다. 그는 입 안에 든 모든 후회를 삼켰다. 그는 매운 혀를 입 밖으로 내밀고 부채질을 했다. 너무 매웠는지 코끝이 아렸다. 이 느낌은 눈물이랑 비슷할까, 그는 그런 애매한 생각을 하다가 웃었다. 절대로 ‘쿨한 모습’은 아닐 게 분명했다.
그는 밥그릇을 싱크대 안에 놓았다. 하나의 밥그릇에 양념이 묻은 찬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젓가락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그는 냄비 뚜껑을 닫았다. 그것은 아마 그대로 남아 내일 아침 반찬이 될 것이었다. 기운 없네, 스가와라는 중얼거렸다. 말주머니에서 토해낸 말이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는 흔한 이별은 하고 싶지 않았다. 소중했기 때문에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는 싱크대에 덩그라니 남은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릇엔 그림자가 매여 있었다. 그것은 스가와라에게 매달려 있는 오이카와의 기억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털어내듯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작은 팔에 안긴 작은 품은 조심스럽게 떨렸다. 쿨하지 못한 일이었다. 벌써부터 그들 사이에 놓인 네트에서 추억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에 하나만 넘어오면 좋으련만 그것은 배구의 룰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오이카와는 팔색조처럼 여러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처럼 흘러왔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해, 좋아해, 좋아했어, 사랑했어, 그는 자신의 모든 감정에 ‘었’을 달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는 천천히 거실로 나아갔다. 지금도 소파 위에는 그의 그림자가 누워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것이 다치지 않도록 소파 밑에 쭈그려 앉았다. 좋아해, 라고 속삭이면 나도, 라는 말이 따라오는 환상이 보였다. 그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고민했던 것들도, 끊임없이 삼켜낸 모든 감정이, 위 안에서 소화되어 다시 찾아와 노크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스가와라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은 눈물을 자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것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타의적으로 잘리는 눈물이 위 속에서 소화되는 감정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몇 번쯤 더 코가 찡하고, 그에게로 다가가려고 헤엄치며, 높은 벽처럼 그를 둘러싼 네트에서 찾아오는 공을 안정적으로 리시브 한다면 이런 감정의 방황은 ‘쿨한 느낌’으로 넘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그 순간을 다만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꺼진 휴대전화에서 전화가 오는 상상이 찾아왔다. 그는 상상의 노크 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 다시 눈꺼풀은 그의 눈물을 잘랐고,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픔은 눈물을 동반함으로 그가 우는 것은 쿨한 이별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었어, 사랑-했어, 사랑했어. 그는 주말에는 잃어버린 ‘었’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냉장고 정리를 앞둔 어느 주중, 스가와라는 싱크대 위에 놓인 밥그릇이었다. 밥그릇에는 먹다 남은 찬밥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