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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 새장 안의 작은 새 2.

:3c 2015. 1. 29. 22:57




***

 

   하나마키는 쿠니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비단결 같다’는 말 이상의 찬사를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수국 모양으로 세공된 머리장식을 들었다. 그는 그의 머리카락을 얌전히 고정했다. 파란색은 왕의 색이었다. 그는 일부러 콧노래를 불렀다. 하나마키는 내려온 머리카락을 땋아내기 시작했다.


   카라스노로 혼자 가는 거 무섭지 않아? 하나마키가 물었다. 쿠니미는 별로 무섭지 않다고 대답했다. 마차에 있는 동안 피를 볼 일은 없으니까요, 하고 느긋한 목소리가 울렸다. 하나마키는 삼일 후 국경 지역으로 마중을 나가겠다고 말했다. 왕의 창께서 그렇게 나다녀도 괜찮습니까? 쿠니미는 진심으로 불평했다. 왕의 방패가 타국에 나갔다 들어오는데 나가야 하는 게 마땅하지. 하나마키는 느긋하게 응수했다.


    쿠니미는 그의 무릎에서 내려왔다. 그는 땅에 겨우 끌리는 의복을 갈무리했다. 더 클 생각 없어? 그가 물었고,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직 지금이 좋다면서 방을 나섰다. 한 칸을 지나고 나서야 물려놓았던 시종들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쿠니미는 심호흡을 했다. 단신으로 카라스노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오바죠사이의 기린의 카라스노 행의 대외적인 이유는 국경지역 수비 문제였다. 그는 그것을 담판지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면적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작은 서신과 부채 장식을 전달해야만 했다. 멀리서 종달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쿠니미는 어전으로 걸음했다. 그의 머리 끄트머리에 달린 수국 장식이 흔들렸다. 하나마키 가(家)의 물건이었다.


   오이카와는 웃으며 쿠니미에게 다가왔다. 그 작은 발로 걸어오기 힘들었겠구나, 그는 그렇게 속삭이면서 쿠니미에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는 공들여 올린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매일 모양을 만드는 것도 일이겠어, 그의 한숨에 섞여 나온 말에, 쿠니미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비단 노리개가 움직였다. 정말로 전합니까? 기린이 물었다. 왕은 강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니, 사람을 다 물리길 잘 했구나.”

   “아직도 꺼림직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장식을 전해서 무얼 하시게요, 쿠니미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오이카와는 아무런 일도 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같이 걷지 않겠나? 그가 제안했다. 쿠니미는 별 수 없이 그와 발걸음을 맞췄다. 어린 기린의 머리카락에서 흔들리는 꽃망울을 보던 오이카와가 엷게 웃었다. 그의 머리카락에는 보석으로 만든 잎들이 정갈하게 달려있었다.


   난 요즘 하늘에 기원 하는 게 있단다 쿠니미야, 호젓한 정원을 걸으며 왕이 말했다. 기린은 잠자코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아직 카라스노의 군기반이 잡히지 않은 이 때에 시라토리가 거기를 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원군을 빌려주는 대신 그 하얀 새를 취하는 거지. 그는 담담하게 속삭였다. 실도하실겝니다. 쿠니미는 진심을 담아 충언했다. 오이카와는 단지 생각하는 것뿐이라며 웃었다.


   생각은 언젠가 싹을 틔우기 마련입니다. 그의 기린이 말했다. 오이카와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라며 웃었다. 그들은 정원을 천천히 지났다. 막 움트기 시작한 봄꽃들이 향을 내고 있었다. 쿠니미는 정원을 소박하게 갈아엎으시렵니까, 물었다. 오이카와는 기린님이 이곳에 없으실 때 해치워 버릴 거라면서 웃었다. 네가 그 광경을 보면 또 시름시름 앓아누울 게 아니냐, 오이카와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쿠니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정원의 끄트머리에서 오이카와는 멈춰 섰다. 쿠니미는 두 걸음 더 앞에 서서 그에게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오이카와는 손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그 밖으로 나가면 내가 직접 말을 달려 카라스노로 갈 것 같구나. 그의 목소리는 농을 치는 듯한 어조였지만 쿠니미는 그것을 거짓으로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왕은 모든 것을 가져야 마땅한 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기린이 아니었다면 그 하얀 새를 잡아 진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강녕하시길, 쿠니미가 다시 한 번 인사했다. 네 없는 동안 하나마키 공을 놀리고 있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웃으며 말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애써 묶은 게 풀릴지도 모르니 서둘러 가거라, 오이카와는 그에게 손짓했다. 쿠니미는 뒤를 돌았다. 그의 뒤에 시종들이 따라 붙었다. 그는 며칠이나 말을 달려야 하는지 셈했다. 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


   스가와라는 어린 기린께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방금 전 있던 불경한 일이 도를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 오전 남문에서 기이한 보고를 받았다. 온 몸을 파랑색으로 치장한 소년과 히나타가 한 시진동안 말다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카게야마에게 올릴 문건을 사무적으로 보고하고, 남문 수비대장인 타나카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푸른색은 아오바죠사이의 색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문 앞에서 본 것은, 아오바죠사이의 색으로 온몸을 치장한 어린 기린이었다. 기린님은 땅에 친히 발을 디디신 채, 불만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히나타와 야마구치는 기린이 몸에 두른 색을 보고도 ‘미리 방문을 허가받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말과 ‘너 같은 꼬마에게 카게야마는 불러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 모습을 보고서 당장 가마를 불러오라 명하였다. 카라스노의 전통 문양과 색으로 치장된 가마가 도착하고, 스가와라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니 야마구치와 히나타는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귀하신 분이 정문으로 청하지 않으시고 무슨 일이십니까, 그는 감히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물었다. 아오바죠사이의 흑기린 쿠니미는 당황하지 않고, 미리 방문을 일렀기에 말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한 식경 전의 일이었다.


    “결례를 범하여 죄송합니다.”


   히나타가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백 번 째 반복하고 있는 말이었다. 쿠니미는 화려한 주황색의 잔을 들으면서 별 거 아니라 대답했다. 급히 불려온 카게야마가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같은 시기에 태어난 기린인데도 체구 차이가 상당했다. 히나타가 바보 같아서 벌어진 일, 미안하게 생각한다. 카게야마는 건방진 어조로 말했다. 평범한 사람인 스가와라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견디기 힘들었다.


   쿠니미는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카라스노의 문양이 예쁘다는 말을 건넸다. 스가와라는 웃으면서 감사하다 대답했다. 그는 모두를 물릴 수 있느냐 물었다. 카게야마는 아오바죠사이의 목적대로라면 자신이 참관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나왔다. 어린 기린은 그게 매우 불만인 것처럼 보였기에, 스가와라는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라다.”

   “나도 나라다.”

   “너랑 감정싸움 하려고 온 게 아니야 카게야마.”


   잘못 한 것은 너희 쪽이 아니겠느냐, 쿠니미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가 자신의 왕에게서 배운 것은 이런 사소한 행동거지였다. 카게야마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히나타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그는 카라스노의 흑기린이 ‘등신’이니 ‘바보’니 하는 욕지꺼리를 입에 담는 걸 보고 눈을 깜빡였다. 넌 정말 정상이 아니구나, 쿠니미는 최대한 놀람을 담아 말했다.


   가끔씩 보면 저희 기린님은 사람 같을 때가 있습니다. 스가와라가 말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그의 머리 꼭대기에 달린 꽃 장식들이 햇빛을 담아 반짝였다. 맞은편에 앉아 주시지요, 쿠니미가 청하였고, 스가와라는 기꺼이 그리 행동했다. 둘이 남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기린의 말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쿠니미는 엷게 웃었다. 일부러 남문을 통해 온 보람이 있었다. 경계가 가장 삼엄하면서도 한산한 곳이었다. 그는 둘 만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쿠니미는 뜸을 들였다. 스가와라는 여유로운 척 능청을 떨고 있었다. 이걸 전해달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쿠니미는 품에서 푸른 색 비단 주머니를 꺼내었다. 그는 그것을 스가와라 쪽으로 밀어 넣었다. 부채를 살랑거리던 하얀 재상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눈동자에 들어있는 감정은 명백한 당혹감이었다. 쿠니미는 저의 왕께서 꼭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쿠니미는 왕의 존함을 입에 머금었다. 스가와라는 받아도 되는 지 물었다. 쿠니미는 받지 않으면 혼난다는 말을 내뱉었다.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스가와라는 주머니에 손을 대었다. 손가락이 상아처럼 고왔다. 쿠니미는 햇빛을 받은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성이었지만 선이 가는 사람이었다. 신장은 오이카와보다 작은 편이었고, 눈매가 단정했다. 왜 오이카와가 ‘난이’ 따위라 부르면서 앓아대는 지 알 것도 같았다. 그는 그 햇살 속에서 화사하게 자리하는 스가와라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섬세하게 세공된 보석을 보는 듯도 하였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가 카라스노의 왕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말을 하곤 했다. 확실히 심정이 맑은 사람이었다. 카게야마가 왜 그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모를 정도로 깨끗했다. 그의 호박 같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쿠니미는 스가와라의 소매에 새겨져 있는 주황 색 무늬를 보았다. 왕이 하사하신 겁니까? 그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받기에는 과분한 무늬이지요. 스가와라는 겸손히 대답했다.


   그가 왕의 배필이 된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가와라는 이미 남의 새장에 갇힌 새였다. 주인이 있는 새를 탐하는 것은 ‘정도’(正道)에 어긋난 일이었다. 쿠니미는 애석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찻잔을 매만졌다. 기린님을 기다리게 하여 죄송합니다. 그가 찬찬히 말하였다. 기린은 괜찮다고 화답하였다. 애초에 정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제 탓입니다. 그렇게 말하자 스가와라는 히나타에게 다시 한 번 사과시키겠다고 말하였다.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공은, 결혼 한 적이 있습니까?”


   쿠니미는 문득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연모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쿠니미는 다시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혼사에 대해서 생각 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기린은 재차 질문했다. 스가와라는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쿠니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아오바죠사이에서 태어났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다가, 그는 자신의 왕과 자신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소름끼쳐했다.


   그는 스가와라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머니를 느리게 매만지고 있었다. 혹여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셔도 되돌려 보내신다면 큰일이 납니다. 쿠니미가 말했다. 스가와라는 마음을 들킨 것이 송구스러운지 눈을 깜빡였다. 받지 않으신다면 전쟁이라 하였습니다. 기린은 강경하게 말하였다. 그는 자신의 왕이 말한 대로 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왕의 과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미 약조한 일을 기린은 어길 수 없었다.


   “저의 '나라'와 약조하고 왔습니다.”

   “그럼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도 마음에 든다 하겠습니다.”


   스가와라는 부채로 입을 가렸다. 수수한 남자가 들기에는 의외로 화려한 부채였다. 부챗살마다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얇은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비단 또한 좋은 것을 썼으며 공작새의 꼬리깃털로 장식한 것 같았다. 쿠니미는 그에게 부채가 잘 어울린다 말하였다. 스가와라는 왕께 하사받은 것이라 대답했다. 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찻잔을 매만졌다. 연잎을 우려낸 향이 좋았다.


    왕께서 들라 하십니다. 멀리서 시종장의 소리가 들려왔다. 쿠니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가와라는 얼른 일어나 그의 걸음걸이를 따랐다. 그의 손에는 아오바죠사이의 푸른색을 가득 담은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쿠니미는 천천히 전으로 나아갔다. 스가와라는 앞으로 의논할 문제에 대해서 의견차이가 없길 바랐다. 그의 손에 들린 주머니의 무게가 상당하였다.


   쿠니미가 전으로 들자 다이치는 예를 갖추었다. 기린은 곧 나라였다. 쿠니미는 무릎을 굽혀 화답하였다. 그가 입은 옷자락이 치맛자락처럼 팔락였다. 그러나 경박스럽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의 신장을 훑어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쿠니미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시종들이 그가 앉을 의자를 빼내어 주었다. 남문과 달리 황송하군요, 아오바죠사이의 어린 흑기린이 당돌하게 내뱉은 말에 어전이 빠르게 냉각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