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오랑제뜨
오랑제뜨를 받았었다. 이와이즈미의 것이었다. 때는 1월 14일이었고, 그는 부활동이 시작하기 전에 부원들에게 하나씩 나눠 줬었다. 이와이즈미는 클래스메이트가 준 거라고 말하면서, 오랑제뜨 여러 개가 들어있는 투명한 포장지를 흔들었다. 창문에서 흘러들어온 햇빛에, 오렌지에 졸여진 설탕입자들이 반짝였다. 쿠니미는 제 손에 들린, 그 손이 많이 가는 디저트를 들고 고민하는 듯 했다. 그는 부실에서 유일하게 오이카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안 먹어? 오렌지 싫어해?”
이와이즈미가 쿠니미를 보며 말했다. 쿠니미는 찝찝하다는 표정을 하고, 초콜릿 발린 부분을 입에 넣었다. 이와이즈미는 아빠라도 된 양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무심함에 감탄했다. 오이카와는 오늘 날짜가 매우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자신 없는 날짜였다. 쿠니미는 아직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누나가 있다고 했던가, 아니면 소금 캬라멜 같은 디저트를 좋아해서 그런가. 오이이카와는 만약 쿠니미가 오랑제뜨를 만드는데 드는 노력을 알고 있다면, 먹는 게 꺼려질 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와가 좀 더 세심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이카와가 장난기를 섞어서 말하자 쿠니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끄덕임에 흔들렸다. 이와이즈미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오이카와에게 다가오는 그 느린 풍경 뒤로, 하나마키가 오랑제뜨를 하나 더 집으려는 걸 막는 쿠니미가 보였다. 오이카와는 제 몫의 디저트를 얼른 입에 넣었다. 오렌지에 씁쓸함이 묻어 있는 게, 오렌지필부터 직접 만든 것 같았다.
오랑제뜨는 오렌지필에 초콜릿을 묻혀 굳힌 디저트이다. 초콜릿 샵이나 쿠킹클래스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본 메뉴이지만, 완성도 있는 제품을 만드는 건 의외로 까다롭다. 특히 주재료인 오렌지필은 직접 제작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다소 비싸더라도 구입할 것을 추천하는 편이다. 이 디저트는 초콜릿이 입에서 너무 빨리 녹아 허전할 때 생각나는 디저트이다.
오이카와는 설탕을 계량했다. 흩어질 가루눈처럼 모여 있던 설탕을 볼에 붓고, 미리 체에 걸러둔 시럽을 부었다. 설탕이 눈물처럼 녹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작은 결정 하나 남지 않도록 녹이려했다. 그의 가벼운 손길에 설탕은 쉽게 풀어졌다. 오이카와는 이제 좀 이 과정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처음 소금으로 오렌지를 씻은 날로부터 정확히 사일 째 되는 날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집은 조용했다. 그의 오렌지필을 보며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던 엄마도, 뭔가 먹을 만한 게 있지 않을까 싶어 기웃거리던 타케루도 없었다. 오이카와는 시럽을 불에 올렸다. 약한 불에 올린 시럽은 이제 사랑처럼, 착실하게 온도를 올릴 것이었다. 그는 괜히 시럽을 저었다. 액체가 찰랑이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함 가운데서 아까 타케루가 그에게 조잘대던 말이 형체를 가지고 다가왔다.
여자 친구도 없으면서 정성이다 토오루. 오이카와는 그 정직한 말이 오렌지의 흰 부분 같다고 생각했다. 꽤나 많은 양의 설탕을 바르고 졸여내도 쓴 맛을 담아내는 그 ‘흰색’처럼, 타케루는 오이카와의 약한 부분을 단번에 찌르고 들어갔다. 쓴 맛이 혀에 올라타는 과정 같았다. 누가 우리 누나 아들래미 아니랄까봐, 오이카와는 괜히 툴툴거렸다.
그는 따로 빼둔 오렌지를 바라보았다. 고작 부엌에 달린 백열등 빛을 흡수했을 뿐인데, 별처럼 반짝였다. 공을 들여 커팅한 보석 같았다. 오이카와는 오렌지필 하나를 집었다. 시럽으로 여러 번 코팅했기 때문에 모양이 가장 못난 것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제법 볼만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입에 넣었다. 다행이도 쓴 맛은 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다 끓지 않은 시럽을 보며 이 디저트가 손이 매우 많이 가는 음식임을 재차 실감했다.
‘그 날’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다시 번져왔다. 이와이즈미가 단순한 ‘클래스메이트’에게 받아 온 오랑제트의 맛이 오이카와의 오렌지필에 번져오는 것 같았다. 서툴지만 신경 쓴 맛이었고, 끝 맛이 썼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완성품도 그녀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괜히 시럽을 저었다. 냄비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켰다. 그는 그에게 사랑의 달달함만 맛보여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괜히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다.
그 날 연습시간에 하나마키는 쿠니미에게 ‘왜 먹는 걸 막았냐’라고 물었다. 그의 어린 투정에 쿠니미는 우리가 모두 남자 고등학생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그게 굉장히 멋들어진 답변임을 알고 있었다. 보통 남고생라면 이 디저트의 이름도, 안에 들어있을 노력도 알아챌 수 없었다. 오랑제뜨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오렌지를 설탕에 여섯 날 동안 조린다는 사실을 어느 고등학생이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겠는가. 쿠니미는 그걸 나눠먹는 생각을 하는 것도 실례라고 단언했다. 맞는 말이었다.
오이카와는 끓어오르기 시작한 시럽을 얼른 들어, 오렌지필이 가득한 볼에 부었다. 부엌의 백열등에서 반짝임을 빼앗은 듯, 스테인리스 볼 안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오랑제뜨를 바라보며 그 사람을 생각했다. 부엌 식탁 위에 달린 백열등마냥 강하게 내리쬐는 배구코트의 조명 아래에서 산뜻하게 빛나던 그를. 스가와라, 오이카와는 그의 이름을 어색하고 서툴게 발음했다.
오랑제뜨를 만드는 기간은 일주일 정도다. 시럽을 만들어 달콤함을 오렌지 안에 가두는 과정은 육일에 걸쳐 진행되고, 오렌지를 식힘망에서 말리는데 또 하루가 든다. 하나님이 세상을 육일에 걸쳐 생성하시고 하루를 쉬셨다는데, 오랑제뜨를 만드는 데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 보다 ‘하루’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을 온전히 담금질 하는 데는 그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법이었다.
오이카와는 시럽이 오렌지 안에 얌전히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는 나무 숟가락으로 오렌지들을 저었다. ‘오렌지를 졸이는 밤’이 하루하루 늘어갈 수록,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얼마나 무심한 남자인지 새삼 깨달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소금으로 오렌지 표면을 벅벅 문지르던 첫 날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라는 말을 꼭꼭 씹어 발음하는 스가와라를 상상하는 게 즐거웠다. 그 목소리에는 오이카와만을 향한 미소가 따라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둘째 날 또한 ‘맑음’이었다. 상쾌한 그에게 오렌지의 상큼함을 선물한다는 게 의외로 센스 있지 않은가, 하는 자아도취도 따라왔다. 그가 제 눈앞에서 토끼마냥 입술을 오물거리는 걸 보는 게 꽤나 즐거울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어제는 ‘구름 많음’과 ‘흐림’이었다. 그는 자신과 스가와라의 심리적 거리에 대해서 고민했다. 시럽에 절여지는 오렌지를 마주하는 시간이 심란했다. 이와이즈미의 클래스메이트도 아마 이런 기분이 들었겠지 싶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오랑제뜨를 부실에서 나눠먹는 카라스노를 생각했다. 어제까지 좋았던 기분은 날개가 꺾여 단번에 추락했다.
솔직히 말해서 쿠니미 같은 사람이 카라스노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온전히 스가와라만을 생각하며 졸인 일주일을 타인에게 빼앗기는 게 기분 나빴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오랑제뜨를 주는 일을 없는 걸로 하는 것도 싫었다. 그는 설탕시럽을 마시는 오렌지필을 살펴보았다. 오렌지가 품고 있는 칸마다 그의 감정이 설탕물처럼 달라붙고 있었다. 꾸덕거리며 반짝이는 감정의 편린.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랑제트에 들어가는 오렌지에 설탕을 입히는 데는, 1kg가 넘는 양이 필요하다. 매 회 250g의 설탕을 따로 먹으며 굳어간 오렌지필이 가끔 과하게 쓴 맛을 내는 것은, 만드는 시간이 길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것을 졸이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감정은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후회, 혹은 걱정. 그 부정적인 감정을 먹으면서 오렌지는 제 몸을 불려간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렌지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며칠 후면 초콜릿을 입고 예쁜 무늬의 폴리백에 들어갈, 오이카와의 감정 조각들이었다. 오이카와는 식탁 위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발렌타인데이가 머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의 숫자를 세었다. 발렌타인데이 전날에 주자, 그는 다시 한 번 날짜를 결심했다. 기념일에 맞춰 주고 싶진 않았다. 그에게 초콜릿을 줄 다른 여자애들과 같은 취급을 받기 싫었다. 오이카와는 특별하길 원했다. 그가 스가와라의 세계에 간섭할 수 있길 원했다.
일주일, 그 칠 일 동안 오이카와는 설탕에 졸여지는 오렌지였다. 질투와 애정, 순수한 마음과 후회 등이 그의 몸에 더덕더덕 붙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감정들은 결국 사랑이라는 초콜릿으로 갈무리되어 스가와라의 앞에 전달 될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없었다. 마냥 스가와라가 보고 싶었다. 그의 감정이 향하는 곳은 오로지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스가와라는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그가 아무리 사려깊고 세심하다 해도, 예쁘게 포장된 오랑제뜨 앞에서 그는 분명 일반적인 남자 고등학생처럼 행동할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과 디저트를 공유하고, 나눠먹을게 분명했다. 어떤 감정이 녹아있을지 하나도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초콜릿 입힌 오렌지를 주는 행위가 사랑을 기반으로 한 행동이라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미흡한 마음 한 톨, 그 한 조각이라도 주고 싶었다. 오이카와는 고민했다. 그는 괜히 오렌지가 든 스테인레스 볼을 흔들었다. 그의 손길을 타고 고민이 볼 안에 들어갔다. 오렌지는 여전히 반짝이며, 달콤한 향을 냈다. 사흘 내내 담긴 감정들이 볼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오랑제뜨 안에는 고민마저 녹아 있었다. 사랑에서 파생 된 긍정과 부정 모두 오렌지 칸 안에 숨어 있었다.
오렌지에 달달함을 묻히는 과정 내내 감정은 파랑처럼 요동쳤다. 그렇지만 그것은 ‘애정’이라는 대단원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오이카와는 괜히 볼을 끌어안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냈다. 상쾌 군, 하고 그는 다시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마음에서 다시 사랑이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부디 ‘스가와라의 아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랐다. 그는 자신의 오랑제뜨가 ‘오이카와 토오루가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준’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오고 있었다.
오랑제뜨는 오렌지필에 초콜릿을 묻힌 디저트이다. 초콜릿 가게나 쿠킹 클래스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본 메뉴이지만 완성도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의외로 까다로운 일이다. 특히, 주재료인 오렌지필은 직접 제작하기, 까다로우므로……, 다소 비싸더라도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오랑제뜨의 주재료인 오렌지 필을 만들 때는 번민하는 여섯 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디저트는 외사랑이 입에서 너무 빨리 녹아 허전할 때 생각, 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