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오이스가] 타인과 타인 0.

:3c 2014. 12. 7. 16:11
 ***

   얼어붙은 컵, 이라고 생각했다. 물기가 서린 채로 얼어붙어서 반짝거리는 유리컵. 오이카와는 그에 대해서 그렇게 정의 내렸다. 그는 센티넬들이 판치는 이 경기장에서, 선수로서 뛰는 유일한 가이드일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교체된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그는 상쾌하게 웃으면서 그의 팀메이트들의 손을 잡았다. 그에게서 눈 향이 났다. 상쾌 군이네, 오이카와가 말하자 이와이즈미가 그에게 되물었다. 그는 스가와라에게서 차가운 향이 난다고 설명했고 이와이즈미는 드물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스포츠 이론서에서는 팀원 중 하나는 신체능력이 뛰어난 가이드로 구성해도 좋다, 는 말에 한 줄 정도를 할애한다. 가이드가 센티넬들의 능력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전체적인 팀의 ‘질’이 향상되고, 장기전으로 갈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서는 이론서일 뿐, 팀은 대부분 센티넬로 구성되곤 했다. 가이드가 효과를 내기 전에 경기를 끝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가이드가 낀 경기에서는 모두들 가이드를 공격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자신에게만 몰려오는 공격을 받아 낼 멘탈의 가이드는 희귀했다.

   그렇기에 대부분 가이드는 매니저나 코치로 사용된다. ‘타임’을 불렀을 때 팀원들에게 스킨쉽을 하며 그들을 안정시켜주는 역할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오이카와는 네트 너머에서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스가와라를 쳐다보았다. 그의 웃음에서는 여전히 상쾌한 향이 났다. 상쾌 군은 상쾌하지만 유쾌하지는 않다. 오이카와는 얼굴을 찌푸렸다. 기분이 나빴다. 가이드 하나가 들어간 걸로 카라스노는 분위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그들이 빠르게 안정되는 것을 느끼며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들의 팀원에게 ‘상쾌 군을 중심으로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스친 그에게서 겨울 눈 향이 났다.



 ***

   오이카와 토오루가 스가와라 코우시를 다시 만난 건 우연이었다. 둘은 월요일, 꽃집 앞에서 만났다. 스가와라는 약속을 끝내고 돌아가던 참이었고, 오이카와는 막 약속에 나온 참이었다. 그에게서는 여전히 눈 향이 나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그를 스치고 지나갈 때 마다 더 차가워지는 느낌이 났다. 그는 품에 안개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꼭 너 같은 걸 안고 있네, 오이카와가 흘리듯 말했다. 스가와라는 흘러내린 목도리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그래? 하고.

   오이카와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교묘하게 주어를 피해서 말했고, 스가와라는 그게 재미있다는 듯 그의 노력을 ‘듣고’있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오이카와가 ‘상쾌 군’이라고 발음 했을 때, 스가와라는 그 이름이 퍽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커피 마시러 갈래? 하고 물었다. 오이카와에겐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센티넬이 가이드에게 끌리는 건 당연한 이유다’라는 문장을 이와이즈미에게 전송했다. 당장에 ‘씨발 새끼야’ 라고 욕을 뱉을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선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스가와라는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오이카와는 차가운 쿠키라떼를 주문했다. 센티넬은 원래 몸이 뜨거운가? 스가와라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애들도 다 차가운 걸 마셔. 경기 다음에 손을 잡으면 완전히 뜨겁고. 스가와라는 그렇게 흘려 말하며 각설탕 두 개를 아메리카노에 녹였다. 오이카와는 카라스노 밖에 있는 스가와라는 ‘처연’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안고 있던 꽃다발을 가만히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상쾌 군에게서는 차가운 향이 나.”
   “그래?”
   “응 진짜 기분 좋아.”

   너 의외로 직설적이구나,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반짝거리는 웃음이었다. 스가와라는 따듯한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오이카와는 그의 손가락을 힐끔거렸다. 굳은살이 가득 박힌 손이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시선이 불편하다는 듯 컵 위을 톡톡 건드렸다. 오이카와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리 어지러워? 스가와라가 물었다. 조금, 하면서 웃자 그는 곧바로 손을 잡아왔다. 따듯한 것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손은 시원했다.

   너랑 계약한 가이드가 없어서 다행이야.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오이카와의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 왜, 하고 모르는 척 묻자, 질투 할 사람이 없으니까 라고 대답했다.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에 흐르는 의례적인 농담이었다. 계약한 센티넬과 가이드는 연인과도 같다던데, 오이카와가 말하자 스가와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감각이 궁금하다면서 웃었다. 몇 분 동안 시시한 농담이 오갔다. 오이카와는 코를 킁킁거렸다.

   오이카와 군은 개 같네, 스가와라가 웃었다. 그거 농담이지? 오이카와가 바로 묻자 스가와라는 한 템포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전에 큰 개를 길렀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오이카와는 그의 입술과 눈가를 바라보았다. 그의 상냥한 목소리와, 잘 휘어진 눈과는 대조되는 눈물점이 섹시했다. 그는 그가 의외로 얼어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코트에서는 달랐는데, 오이카와는 자신의 직감이 ‘틀렸음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편해? 스가와라는 손을 놓았다. 오이카와는 좀 더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코치님이 가이드라면서, 취향이 아닌 남자와 손을 잡고 포옹하는 게 싫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고교 배구에 ‘명문’이 없었다면 코치가 예쁜 곳으로 갔을 거라는 오이카와의 실없는 농담에 스가와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남아있는 왼손으로 오이카와의 손을 포갰다. 차가워? 라는 물음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그런데 나는 괜찮아?”

   스가와라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팀에도 가이드 있었으면 좋겠다. 오이카와가 말했다. 스가와라는 별로 좋지 않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오이카와는 그의 눈가를 바라보았다. 고양이 수염처럼 주름 진 눈웃음은 의외로 필사적이었다. 뭔가를 가리고 싶어 하는 마음. 오이카와는 이 감정을 알고 있었다.

   스가와라의 자리였던 곳에는 카게야마가 있다. 그는 센티넬이고, 세터이다. 오이카와는 같은 센티넬 사이의 힘의 차이보다, 가이드와 센티넬의 차이가 큼을 알고 있었다. 재능이 없는 오이카와가 필사적으로 노력해 카게야마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 가능하다면, 스가와라 쪽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은 ‘태생적 한계’였다. 오이카와는 빨대로 차가운 라떼를 휘저었다. 검은 쿠키가루가 라떼 안에 볼품없이 섞였다. 토비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때 오이카와는 그에게서 다시금 서늘함을 느꼈다. 그에게서는 가끔씩 겨울이 비치고 있었다. 얼어버린 컵, 그는 스가와라의 첫 인상을 기억 해 냈다. 물기가 있는 채로 얼어버린 컵. 햇볕이 들 때는 햇살처럼 반짝이다가도, 그늘이 보이면 다시 겨울을 품는 컵. 오이카와는 괜한 걸 물었다면서 사과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오이카와는 그와 손가락을 엮어 손 마디마디에 힘을 줬다. 아파, 그가 말했다. 오이카와는 미안, 하고 짧게 사과했다.

   “역시 센티넬이 더 나은가,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
   “어?”

   스가와라가 입을 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의 목소리와 상이하게 반대되고 있었다. 그는 스가와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표정을 보고 웃었다. 그는 그와 잡은 손을 몇 번 흔들었다. 나랑 손잡고 있으려니까 긴장돼?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가와라는 그의 손을 토닥였다. 마주 잡은 손가락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팀에 들어왔을 때 뭔가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으니까.”
   “응.”
  “그렇지만 나도 쓸모없는 건 아니니까 별 상관없다고도 생각하기도 했고”

   날 때부터 센티넬이었던 사람들은 이런 느낌 모를 걸, 스가와라는 웃으며 말했다. 오이카와는 그가 의외로 굳건하다는 걸 깨달았다. 꽃다발 군은 절대로 이런 느낌 모를 거야. 스가와라는 그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꽃다발? 오이카와가 물었다. 그가 붙인 것 치고는 매우 스윗한 별명이었다. 그는 그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갈색 눈 안에 자신이 가득 담긴 것을 보면서 오이카와는 그에게 부연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스가와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제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원래는 센티넬이랑 이런 이야기 별로 하진 않는데, 스가와라는 후회하듯 중얼거렸다. 오이카와는 그가 자신에게 늘어놓는 감정의 편린들은, 자신이 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언뜻언뜻 보이는 것임을 느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말이 있는 법이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다시 ‘평온하고’ ‘친절한’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스가와라는 그의 얼굴을 보다가 오늘 눈 온대, 라고 속삭였다. 더 있다 갈 거야?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글쎄, 하고 말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