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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 템페스트와 피아노 맨

:3c 2015. 1. 1. 23:48

   피아노 치는 오이카와 씨와 일반 학생인 스가와라 군의 이야기입니다. 요 근래 계속 오이카와 씨가 스가와라를 좋아하는 이야기만 써서 이번엔 반대 쪽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처음과 사랑은 두근거리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 둘이 합쳐진 첫사랑은 대-박- 두근거리는 단어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동경, 혹은 선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음악실 중앙의 스크린에서 비춰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는 정확한 리듬으로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이 건반을 차례대로 누르는 것은 곧 스가와라의 심장을 노크하는 것이었다. 그는 연미복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동경’이 그의 마음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얼굴에 열기가 몰려왔다.

 

   스가와라는 나름대로 클래식을 좋아했다. 그는 라벨의 현악4중주 2악장을 좋아했고, 드뷔시의 달빛을 사랑했다. 그렇지만 그 곡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지 연주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명한 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어도 그게 그건 것 같았다. 지휘자가 바뀐 다음의 ‘느낌 차이’도 잘 알질 못했다. 전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함부로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약간의 수줍음과 약간의 부끄러움이 섞인 결과였다.

 

   하지만 미술과 음악 중 이수할 과목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그는 당당히 음악을 선택했다. 그는 제 옆에서 반쯤은 졸고 있는 아즈마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음악 선생님이 구두 굽 소리를 내면서 돌아다니고 있는 책상과 책상 사이의 길 너머.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은 예술반 아이들이었다. 미술, 음악, 체육 등 특기생을 모아 놓은 반이었다. 스가와라는 음악 선생님의 발자취 너머를 곁눈질 했다. 대부분이 초롱초롱한 얼굴을 하고 ‘듣고’있었다. 별난 일이었다.

 

   일반반의 스가와라에게 예술반은 ‘별종’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종종 그들의 예술가적인 면모가 발휘되었다며 당당하게 수업을 재끼거나, 복도를 질주하거나, 역대 교장선생님의 얼굴을 본 딴 동상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음악실로 그랜드 피아노를 옮길 때에는 한 명을 피아노에 앉히고 ‘레미제라블’의 노동요를 노래하기도 했다. 대학 센터시험에 찌들어 사는 스가와라와 같은 인종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스가와라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옆 반 쪽을 힐끔거렸다. 저번에 음악실로 그랜드피아노를 옮길 때, 예술 반 중에서 유일하게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던 애가 보였다. 그는 움직이는 피아노 위에서도 제법 멋있는 연주를 했던 친구였다. 성악을 전공하는 아이들이 룩 다운, 룩 다운, 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피아노를 옮길 때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건반을 두드렸다. 그 소리가 복도에 힘차게 울렸던 기억이 났다.

 

   ‘피아노 남’은 지루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그는 종종 얼굴을 받힌 손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톡톡 두드리곤 했다. 리듬을 타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음악이 지루한 걸까. 스가와라는 그의 머릿속에 대해 상상했다. 그는 흐르고 있는 야상곡을 들으며 하품을 했다. 옆에 앉은 그의 친구가-스가와라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피아노를 옮길 때 ‘쟈베르’역을 했었다. 그는 피아노 옮기는 것을 ‘감독’했었다- 잘생긴 남자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바보 오이카와, 집중 해! 라는 말이 책상 사이로 난 길을 건너 전해져 왔다.

 

    교실을 이리저리 배회하던 음악선생님이 이와이즈미, 하고 ‘오이카와’의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숙여 짧게 목례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스가와라는 그 ‘피아노 맨’의 이름이 오이카와임을 알았다. 그는 속으로 그의 이름을 짧게 발음했다. 그가 연주하던 강한 피아노 소리가 귓가에 스치는 것 같았다. 다시 선망의 붉은 색이 그의 볼에 올라 열을 냈다.

 

   어디 아파? 아즈마네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볼이 빨개, 하고 그는 이어 말했다. 스가와라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말을 노트에 적었다. 아즈마네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스가와라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단단한 손가락이 건반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달빛이 건반에 내리앉아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이 연주자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펜 뚜껑을 열었다. 칠판에는 ‘우시지마 와카토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스가와라는 핸드폰을 꺼내 잠금을 풀었다. 그는 핸드폰의 밝기를 가장 어둡게 만들었다. 그는 핸드폰에 그의 이름을 입력했다. 일본 최대의 어린 피아니스트, 피아노의 왕자, 라는 수식어가 화면에 떴다. 그는 새삼 그가 대단한 사람임을 실감했다. 그는 스가와라가 아는 한도 안에선, 쇼팽의 야상곡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소개 해 줄 정도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음반을 주문해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아는 것은 그 사람에게 관심을 준다는 것이다. 스가와라는 그의 ‘라벨’과 ‘드뷔시’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노트 한 구석에 ‘우시지마 와카토라 - 라벨, 드뷔시’ 라고 적었다. 그는 새로 알게 된 어린 피아니스트가 퍽 마음에 들었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어두운 밤, 야외 무대에서 그는 오직 홀로 빛나고 있었다. 꽤나 멋있는 광경이었다.

 

   여운이 남는 것처럼 음의 꼬리가 길게 이어졌다. 박수, 라는 음악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교실의 전원이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스가와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박수의 가운데서 손을 들지 않은 것은 ‘오이카와’ 뿐이었다. 오이카와, 너는 왜 박수를 안치니? 음악 선생님이 물었다. 오이카와는 눈을 깜빡이다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잘 생긴 얼굴에 미소가 가득 퍼져왔다.

 

   “제가 우시와카보다 더 잘해서요.”

   “네가?”

   “요즘 잡지 안 찾아보시나 봐요.”

 

   제가 일본 피아노계의 귀공자예요. 그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자신만만함에 음악 선생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달아났다. 스가와라는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한 긴장감에 새삼 침을 삼켰다. 네가 우시와카보다 잘 한다고? 그녀가 다시 물었다. 오이카와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의 옆에 있는 ‘이와이즈미’는 말릴 법 한 상황인데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예술반, 너희 다 그렇게 생각하니? 음악 선생이 동의를 구하는 듯 물었다. 크림색 니트를 입은 그들은 네, 하고 일제히 대답했다.

 

   그럼 네가 한 번 쳐보던가. 그녀가 내뱉은 오만에 그는 기꺼이 화답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실에서 잘 쓰지 않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스가와라는 그의 손가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었다. ‘우시지마’의 것보다는 여리여리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잘 듣는 게 좋을 거라면서 웃었다. 야상곡? 그녀가 물었고 그는 자신은 쇼팽보다 베토벤이 좋다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악보 없이 첫 음을 밟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의 연쇄는 폭풍이 몰려오는 것과 닮았다. 마치 비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듯, 그는 음을 정확하게 밟아가면서 그 ‘모습’을 재현했다. 그의 손은 매우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손끝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묵직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그랜드피아노에 앉은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가락은 낮은 음에서 다시금 높은 음으로 이동했다. 그 이동은 마치 세차게 내리다가 몸집을 줄여 가벼히 자리하는 빗줄기와도 닮은 것이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몰아치는 음에 힘이 가해졌다. 스가와라는 그것이 ‘대단한’ 테크닉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왼손은 그의 허벅지에 올라가고, 한 손이 노래하는 폭풍이 잠시 이어지다가, 왼손이 다시 가세하여 음을 몰아붙였다. 음의 가감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우열을 가리긴 어려웠지만, 그의 연주에서는 카리스마가 뚝뚝 떨어져 나왔다. 스가와라는 음악 선생님의 얼굴을 봤다. 그곳에는 ‘부끄러움’이 잔뜩 서려 있었다. 스가와라는 정말로 ‘오이카와’가 대단함을 확신했다

 

   스가와라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은 지 어느새 5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의 음이 자신의 시간을 먹어버렸다고 확신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그는 여전히 폭풍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언젠가 관람했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라는 연극을 떠올렸다. 왕자 일행을 마법의 섬으로 끌어오는 요정의 ‘폭풍’은 피아노를 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연출됐었다. 그는 그 이유를 지금에서야 안 듯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의 작은 소리에 ‘오이카와’는 스가와라가 앉은 쪽을 곁눈질 하다가 다시 시선을 건반 위로 옮겼다.

 

   찰나의 순간에 눈이 마주쳤었다. 스가와라는 온 몸의 털이 곧추서는 것 같은 감각에 짧게 떨었다. 그의 갈색 눈동자에 자신이 온전하게 담기는 순간은 짜릿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의 음악소리가 귓가에 다가오는 듯 했다. 대단하다, 하고 아즈마네가 스가와라에게 속삭였다. 스가와라는 단지 고개를 끄덕이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 다시금 묘한 감정이 얹혀졌다. 그것은 여전히 붉은 빛을 담고 있었다. 환희, 혹은 존경, 심장에 노크를 하는 것 같은 두근거림이 다시 스가와라에게 찾아왔다. 그는 건반을 강하게 두드리는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지문처럼 음을 읽었을 손가락이었다.

 

   그가 마지막 폭풍을 내리쳤다. 그가 손가락을 멋있게 건반에서 땐 순간, 음악실 전체에서 박수가 밀려나왔다. 일반반 학생중에는 입에 손가락을 넣어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사적으로 다시 인사했다. 그의 가슴에 손가락을 얹고 상체를 가벼이 숙였다. 베토벤의, 템페스트였습니다. 하는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오만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을 확신하고 있는 그 모습이 멋있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음악 선생님은 그의 음을 칭찬 해 줘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잊은 듯 했다. 오이카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분홍색 머리카락의 남자아이가, 우리 학교에서는 당연히 ‘오이카와’라면서 그를 추켜세웠다. 그의 목소리에는 무한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스가와라는 핸드폰의 홀드를 풀었다. 아까 우시지마를 검색했던 페이지가 떴다. 그는 그곳에 ‘오이카와’라는 이름을 입력했다. 약간의 로딩 끝에 그는 한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우시지마에게 밀려 아쉽게, 라는 기사를 보면서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였다. 그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그 몇 줄 안 되는 기사에, 그가 왜 우시지마의 노래를 들으면서 지루 해 했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는 노트에서 우시지마의 이름에 몇 줄을 그어 냈다. 그리고 그 옆에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적었다. 왠지 우시지마보다 그에게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스가와라는 그에게 뭔갈 물어보고 싶었다. 너도 ‘리스트’나 ‘라벨’을 연주해? 드뷔시도? 드뷔시는 건반을 따로 배워야한다던데 좋아하니? 스가와라의 입 속에서 정제되지 않은 질문들이 팝콘처럼 튀겨질 것 같았다. 음악 선생님은 얼굴에 여전히 당황함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수업을 종료했다. 교실 앞쪽에서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일반반도, 크림색 니트의 예술반도 지금은 같은 교실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검은색과 흰색은 의외로 조화가 되는 게 아닐까, 스가와라는 그 무리들을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오이카와의 자리도 스가와라의 자리처럼 ‘뒷자리’였다. 그들은 인파가 빠지기를 기다렸다. 스가와라의 앞에 오이카와가 있었다. 그는 이와이즈미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시와카 이번엔 이겨라, 하는 이와이즈미의 단단한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손가락의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오케이’ 사인을 만들며 웃었다. 그의 눈꼬리가 고양이 수염처럼 예쁘게 휘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뒷모습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그의 니트 끝자락을 잡았다. 어? 하고 그가 잠시 뒤를 돌았다. 아즈마네가 당황한 것처럼 스가, 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스가와라는 나는, 하고 운을 땠다. 나는 우시와카보다 네가 훨씬 좋아. 그의 ‘선언’ 같은 말에 오이카와는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나 이내 이와이즈미에게 보여준 것보다 예쁜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오이카와 씨가 우시와카보다 대단한 건 당연하잖아? 상쾌 군.”

 

   그 자신감 넘치는 웃음에 스가와라는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히, 하는 웃음에 그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으로 매인 건 오직 두 사람 뿐이었기 때문에, 아즈마네와 이와이즈미는 그들의 옆구리를 찌르며 그들에게 어서 걸으라 재촉했다. 영상을 보기 위해 암실처럼 만들어 놓은 음악실에서 발걸음을 내딛자 오전의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음악실 문턱에서 멈춰 섰다. 예술반 강의동으로 이동하는 오이카와의 그림자에, 계속 눈길이 갔다.

 

   아는 애야? 반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즈마네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상쾌 군이라고 하길래 아는 앤 줄 알았지, 하는 그의 나른한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눈을 깜박였다. 오이카와 나름의 ‘애칭’ 같은 말이었나, 싶어 그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럽게 꽃을 틔우는 꽃망울 같은 웃음이었다. 묘한 동경, 선망, 두근거림을 잔뜩 담은 웃음이기도 했다.

 

   아사히가 오늘 스가는 좀 이상하다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스가와라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의 이름을 속으로 발음했다. 오이카와, 토오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