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12월 31일의 흔한 풍경
스가른 전력에 참여한 글입니다. '양/복실복실'이라는 주제를 받았습니다.
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라구 생각합니다.. 노력했으나... 장렬히 실패했습니다.
다이치랑 아사히 생일이 한 해의 첫과 마지막이란 건 오이카와 씨에게 꽤나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이카와는 볼을 부풀렸다. 그는 스가와라의 복슬복슬한 니트 끝자락을 매만졌다. 천엽, 혹은 양털과 닮은 듯한 재질이었다. 가지 마, 하고 붙잡는 목소리에는 나름대로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스가와라는 곤란한 듯 뒤를 돌아 무릎 꿇고 앉은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양의 해라서, 양 닮은 니트 입고 걔내 만나러 가는 거라면, 오이카와 씨에게도 조금 더 신경을 써줘. 오이카와는 억울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매년 있던 일인걸.”
“오이카와 씨와 동거를 시작한 첫 해잖아.”
“그게 뭐?”
“스가와라 코우시의 매년이 오이카와 토오루와 상의해서 재정립되어야하는 거지.”
그런 어려운 말은 어디서 배워왔어. 스가와라는 웃으면서 니트를 잡고 있는 오이카와의 손끝을 쳐냈다. 오이카와는 불퉁한 얼굴을 하고 미간을 좁혔다. 스가와라는 엄지와 중지를 동그랗게 만든 손가락으로 그의 미간을 때렸다. 잘 생긴 얼굴 쓸모없어져. 그 말에 오이카와는 급하게 미간을 꾹꾹 눌렀다. 스가와라는 옷장에서 외투를 고르고 있었다. 검은 거 보다는 버건디가 좋아. 스가와라가 외투 두 개를 각각 한 손에 들고 오이카와에게 보여주기 전에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리 망가져, 하고 타일렀음에도 그는 오이카와 씨가 버려졌단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면서 뾰로통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그가 꽤나 막무가내 같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외투를 골라주면서도 그가 옷을 첫 개시하는 첫 외출은 자신의 것이어야만 한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들은 스가와라의 ‘배경화면’인 것처럼 꾸준히 들려왔다.
“양의 해잖아! 오이카와 씨와 양의 해를 다시 맞으려면 12년이나 걸린다구.”
“12년 동안 안 헤어지면 되는 거지 걱정이래. 그 정도도 못 기다려?”
“오이카와 씨는 인내심이 없단 말야”
“이 참에 기르면 되겠다. 이와이즈미가 좋아할 거야”
스가와라는 버건디 색 재킷과, 쑥색 야샹을 왼손 오른손에 들었다. 오이카와는 버건디 재킷이 좋다고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다시 옷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내밀었다. 아사히랑 다이치가 무슨 색 입고 오는지 물어봐야 하나? 스가와라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색 겹쳐서 커플룩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싫어. 애 같은 대답이었다.
스가와라는 핸드폰을 가지러 방 밖으로 나갔다. 오이카와가 일어서서 따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얼마 전에 읽었던 ‘2015 을미년 기념 양의 습성 설명’에 대한 글을 떠올렸다. 양은 눈이 나빠서 목자가 필요하고, 앞에 가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온다, 라는 대목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그는 갑자기 뒤를 돌았다. 슬금슬금 따라오던 오이카와가 멈춰 서,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모른 체’를 했다.
왜 따라와? 스가와라가 물었다. 스가와라가 거기로 가고 있으니까요, 하고 공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애칭 없는 이름’이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스가와라는 제 작은 방으로 휙 들어갔다. 둘의 침실이었다. 그는 문을 빠르게 닫았다. 갑자기 닫힌 문에 당황한 듯, 오이카와가 상쾌 군, 코우시, 2번 군, 스가, 등의 애칭을 말하면서 그의 방문 앞에서 서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핸드폰 충전기를 뽑고 라인을 열었다. 그는 다이치와 아사히에게 무슨 색 옷을 입을 거냐고 메시지를 보냈고, 바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가 문을 열려고 하는 듯, 문을 사이에 두고 방향이 다른 힘이 동시에 가해졌다. 내가 때 써서 이래? 오이카와가 말했다. 응, 스가와라는 발랄하게 대답했다. 한 해의 마지막을 내 코우시랑 같이 보내겠다는 게 뭐가 나빠! 오이카와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눈앞에 두고 엄마에게 때 쓰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스가와라는 여기에서 ‘양은 사실 성격이 나쁘다’는 대목을 떠올렸다.
팽팽한 신경전이 지속되었다. 순간 스가와라는 문을 열었다. 힘의 균형이 깨져 오이카와가 험하게 넘어지려 했다. 스가와라는 그것을 끌어안으면서 바보야, 하고 웃었다. 그가 킥킥대는 소리에 오이카와는 문 닫지 말란 말야, 하고서 투정을 부려왔다. 자신보다 덩치도, 키도 훨씬 크면서 간간히 이렇게 부려오는 투정과 애교가 스가와라는 정말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에 손을 넣고 헤집었다.
약속 파토날 일은 없는 거지? 오이카와가 물었다. 전혀 없네요, 하고 스가와라가 대답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 구름이 드리워졌다. 스가와라는 그의 멱살을 잡아 높이를 끌어 내렸다. 오이카와는 순순히 다리를 굽혀주었다. 그는 그의 미간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매번 한 해의 마지막이랑 한 해의 첫날을 걔네한테 뺏기는 거 싫어. 말의 해도, 양의 해도, 걔네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이 생길 때 까지 뺏기는 거잖아. 스가와라는 그의 중얼거림을 들어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스가와라는 그 동안 그와 같이 보내지 않은 날들을 떠올렸다.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시절을 지나 지금 까지 오이카와는 그의 마지막 날과 첫 날을 항상 스가와라와 보내지 못했다. 그의 속은 양털처럼 베베 꼬이고 꼬여 있을 것이며, 고양이가 망쳐놓은 털실처럼 엉켜있을 게 분명했다. 고작 2년 정도 먼저 만난 것 가지고 맨날 뺏어가는 건 치사해, 오이카와는 입술을 내밀었다. 그의 정제되지 않은 독점욕을 받는 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오이카와도 이와이즈미 생일은 이와이즈미랑 보내잖아? 스가와라가 물었다. 걔 생일은 걔한테만 의미 있는 일이잖아, 오이카와가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그의 등을 말없이 쓸었다. 이미 정해진 거니까 가지 말라고는 더 이상 안할 건데, 그래도 걔네한테 소개팅 받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해. 걔들은 좀 애인이 생겨봐야 해. 바가지를 좀 긁혀 봐야 애인 있는 사람의 심정을 알아 챌 거란 말야. 오이카와가 우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스가와라는 네에, 네에, 하고 대답했다. 양 같은 목소리였다.
술 많이 마시면 연락 해. 1월 1일 다 지나기 전이라도 데리고 올 거야. 오이카와가 말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 해줘, 오이카와의 말에 스가와라는 목소리를 냈다. 응, 하는 목소리에는 한숨이 따라왔다. 그 숨결에는 체념과 존중이 함께 섞여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는 뒤를 돌아서 거실로 나갔다. 스가와라는 그의 발걸음을 바라보았다.
목자를 잃은 양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방황하며, 넓은 초목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스가와라는 몇 번 훑듯 읽었던 성경구절에 ‘양’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습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소파에 앉은 오이카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댔다. 양 같은 오이카와 씨, 스가와라의 말에 말 잘 듣는 오이카와 씨예요, 하고 오이카와가 대답했다. 그는 무릎을 제 팔로 끌어안고 있었다.
이틀 말고 다른 날은 다 너한테 집중할게. 스가와라가 속삭였다. 오이카와는 당연하지, 하고 대답했다. 묘하게 심드렁한 말투에 스가와라는 올 때 맛있는 거 사올 게, 라고 말했다. 나 역앞에서 9시부터 파는 한정 초코딸기찹쌀떡 아니면 안 먹어, 오이카와는 제법 어려운 주문을 말했다. 사 올게, 스가와라가 순순히 대답했다. 그 둘 사이에 몇 초간의 공백이 생겼다. 오이카와는 눈을 굴리다가, 사오지 않아도 괜찮아, 장난이야. 코우시가 일찍 돌아오는 게 더 좋아, 하고 대답했다.
“약속시간 늦겠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옆으로 살짝 밀었다. 스가와라는 으으, 하고 앓는 소리를 내다가, 오이카와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스가와라의 양털(혹은 천엽) 같은 니트가 까슬거리는지 오이카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가, 이내 그 또한 스가와라의 어깨에 팔을 둘러왔다. 걔내한테 소개팅 생각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해, 내년에는 좀 여자친구랑 보낼 생각도 좀 하고, 요즘 일찍 결혼하는 사람도 없다는데 사회문제 개선을 위해 결혼도 좀 생각해 보라고 전해줘. 오이카와의 말에 스가와라는 꼭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이쁘니까 심술도 못 부리겠어. 오이카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스가와라의 말랑말랑한 볼을 약하게 꼬집었다. 스가와라는 웃으면서 그를 끌어안았던 손을 풀었다. 시간 마다 뭐 하는지 연락 해, 취하면 연락 하고, 다이치랑 아사히한테 여자 친구 제발 좀 만들라고 해, 오이카와는 안심이 안 되는지, 혹은 아직도 꼬인 마음이 풀리지 않았는지 재차 말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가와라는 버건디 재킷을 걸쳤다. 오이카와는 방 안으로 급하게 들어가서, 복슬복슬한 목도리를 꺼내 왔다. 새해 선물인데, 올 해도 걔네가 널 포기하지 않아서 지금 주는 거야. 오이카와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스가와라는 고마워, 하고 목도리를 둘렀다. 양 같은 크림색은 그의 니트와, 붉은색 재킷과, 제법 잘 어울렸다. 신경 써서 골랐다는 게 느껴지는 선물이었다. 스가와라는 현관으로 가려다가 뒤를 돌아, 오이카와를 세게 끌어안았다.
좋아해, 토오루! 그가 외쳤다. 당연 한 걸 굳이 말하지 말아줄래? 오이카와가 장난길 담은 어조로 말했다. 짧은 포옹을 하고 스가와라는 현관으로 나갔다. 빨리 들어 와, 몇 번이나 말했던 말을 또 말해주면서 그는 신발을 신는 스가와라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스가와라는 현관에서 뒤 돌아, 예쁘게 웃어보이며 양처럼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라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화난 양처럼 어지르면서 있을 거야, 하고 대답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스가와라는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그는 그 하트 안에 오이카와를 가득 담았다. 스가와라는 현관문을 열었다. 연락 자주 해, 라는 말이 그림자처럼 스가와라의 뒤에 따라붙었다. 오이카와는 안심이 되지 않는 듯 대답, 하고 크게 말했다. 다이치랑 아사히한테 소개팅 필요하면 연락하라고도 전해 줄게! 스가와라의 믿음직한 대답에 오이카와는 그제야 활짝 웃으면서 다녀와, 하고 크게 말했다. 스가와라는 그래, 하면서 문을 닫았다. 12월의 마지막에, 몇 번이고 반복되며 변주되는 풍경이었다. 스가와라는 부드러운 목도리를 매만졌다. 저렇게 투정 부리는 것도 귀여워서 연말 약속을 포기하지 못하겠단 생각을 하며, 그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