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스가] 가까이, 더 가까이.
트위터에서 리퀘를 받아서 셀프 전력 60분을 해봤습니다.
카게스가는 왠지 모솔인 카게야마가 귀여운 것 같아요. 한 걸음씩, 작지만 착실하게 스가선배한테 다가가주길!
***
카게야마는 제 손에 들려있는 멍댕한 얼굴의 하마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멍해 보이는 볼을 쿡쿡 찔렀다. 그의 손끝에서 비닐 소리가 났다. 그는 뚱한 얼굴로 도넛 상자를 응시했다. 모두 달고, 크림이 들어있으며, 하얀 분말이 뿌려져 있는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매운 걸 좋아한다. 도넛은 달갑지 않은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는 옆구리에 ‘무민’을 끼웠다. 배구공과 비슷한 부피였지만, 그와 같은 무게는 아니었다. 그는 어색한 듯 인형의 꼬리부분을 살펴보다가, 왼손에 들린 도넛박스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저질러 버린 것을 무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카게야마는 도넛상자를 옆에 내려놓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요즘 어느 도넛 브랜드에서 론칭한 ‘무민’이라는 인형이 귀엽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구부 점심 연습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히나타가 자신의 여동생도 좋아한다면서 무민이 얼마나 평화적이고 사랑스러운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그 눈썹 있는 하마를 끌어안고 있으면 잠이 잘 온다고 말했고 저절로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라 좋다고 말했다, 츠키시마는 아직도 인형을 끌어안고 자다니, 하면서 히나타를 놀렸다.
야마구치가 풋, 하고 웃자, 히나타는 입술을 새 부리처럼 내밀었다. 그는 직접 끌어 안아보지 못해서 모르는 거라면서 툴툴댔다. 그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반에서 여자아아들이 떠들던 소리를 기억 해 냈다. 솔직히 도넛을 사면 무민을 주는 거야, 하지만 귀여워, 머리 위에 안경을 올리면 두 배로 귀여워 진대! 맞아 옆 반의 야치가 그걸 샀는데, 매일 무릎에 올려두게 된다더라, 정-말? 새소리 같이 높이 들려오는 그 목소리들은 인형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들은 남자친구가 이 인형을 선물 해 준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잘거림은 항상 ‘-군이 이걸 사오면 좋을텐데’로 끝을 맺었고, 그 결론 끝에는 발끝에 붙은 그림자처럼 ‘하지만 -군은 눈치가 없어서 무리지요’라는 말이 다가오곤 했다. 카게야마는 여자아이들의 목소리 속에서 한 가지 훌륭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여하간 ‘연인에게 그 인형을 받으면 좋은데, 그 인형이 수면안정제 역할을 한다더라. 그는 그 명제에 포함된 ’연인‘이라는 글자에서 스가와라를 떠올렸다.
카게야마는 요즘 배구부 연습이 끝나고 잠들기 전, 그 짧은 시간을 쪼개어 연애 지침서를 읽고 있었다. 그가 스가와라에 비해서 뒤쳐져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솔로였던 카게야마와 달리 스가는 여러 번의 실전 연애를 거친 남자였다. 카게야마는 그에게 좀 더 어른스럽게 보이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고 싶었다. 또 스가와라에게 잊힐 수 없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이론을 공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연애지침서의 초입에는 연인에게 센스 있는 선물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나와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 말을 평소에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러나 스가와라는 의외로 준비성이 철저한 남자였다. 그의 가방 안에서 타올은 떨어지는 날이 없었고, 에어파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릎보호대도 떨어지기 전에 바로바로 교체했으며, 배구화는 너무 부담스러운 선물일 것 같았다. 배구 외의 것을 선물하려고 해도 카게야마는 그에게 필요한 다른 것을 생각 할 수가 없었다.
선물에 대한 것을 히나타나 츠키시마, 야마구치에게 상담하고 싶진 않았다. 애인이 배구부 안에 있는 것을 들키기 싫었거니와, ‘비밀연애’를 하자고 했던 스가와라의 입장이 곤란해 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무민’을 만지작댔다. 눈썹 있는 하마가 더 멍청해 보이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고른 선물이었지만 그게 ‘괜찮은 선물’인지는 잘 모르는 것이었다. 애초에 인형을 남자가 좋아할지, 스가와라가 좋아할지, 그가 밤에 잠은 잘 드는지,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에 대한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도넛을 같이 줄지, ‘무민’만 줄지를 고민했다. 매운 걸 좋아한다는 것의 역은 단 걸 싫어한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 고민하게 됐다. 카게야마는 배구 경기 중, 어떤 스파이커에게 토스를 올릴 지 고민하는 것 보다 스가와라의 앞에 서는 게 더 긴장되곤 했다. 그의 앞에 서면 그림자가 땅에 단단히 붙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발 하나도 못 움직인 채로 도망도 못가고 안절부절 한 채 말을 잇곤 했다. 좋지 않은 버릇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느 한 사람에 대해서 담을 수 있는 ‘애정’의 크기가 100이라면, 스가와라의 곁에 있을 때 카게야마는 100을 한없이 넘어선 크기를 담아 흘리곤 했다. 심장이 5판 3선승제 배구경기에서 패패승승승으로 이겼을 때 보다 더 심하게 뛰었고, 리드를 하고 있는 듀스 상태에서 서브권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배구에서는 그나마 담대할 수 있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나 스가와라의 앞에서 겪는 모든 일들은 카게야마가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다. 언제나 상황은 책에서 배운 데로 흘러가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실수 또한 많이 했었다.
스가와라는 언제나 그의 실수에 ‘괜찮다’라는 답을 하곤 했다. 그가 먼저 연락을 안 하고 받기만 했을 때, 데이트 장소로 언제나 배구 코트나 배구장을 말했을 때도 ‘괜찮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히나타처럼 사소한 일에 입술을 내미는 일이 없었으며, 정말로 서운했을 때도 ‘카게야마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들어주곤 했다. 스가와라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다. 카게야마는 그에게 뭔가 더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무민과 도넛박스를 들고 일어났다. 그는 곧장 스가와라의 집 앞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루비콘 강을 건너던 알렉산더 대왕은, ‘이미 주사위가 던져졌다’는 말을 내뱉었다고 했다. 이미 사귀게 된 이상 자신은 더 배워가는 수밖에 없고, 그 서툰 과정을 보는 스가와라는 좀 괴로울지도 모르겠지만 이걸 기대는 것도 나름은 괜찮지 않을까, 하고 카게야마는 나름대로 결론을 냈다. 이미 그들이 연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 건 던져진 주사위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전화기를 들어 스가와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렸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 하고 들리는 목소리가 도넛에 뿌려진 흰 설탕만큼 달았다.
***
―스가 선배, 잠시만 집 앞으로 나와 주세요.
스가와라는 자신의 연인의 호칭이 여전히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둘 만 있는 전화에서 아직도 ‘선배’라는 애칭을 사용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그는 이걸 그에게 어떻게 깨닫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후드 집업을 걸쳤다. 그는 천천히 자크를 올렸다. 엄마, 나 잠시 친구가 불러서 내려갔다 올게요, 하고 말하니 부엌에서 그러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핸드폰을 주섬주섬 챙기고, 슬리퍼를 챙겨 밑으로 내려갔다.
그는 오늘 카게야마가 내뱉은 말을 몇 달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과 비슷한 시간이었다는 걸 카게야마는 아마 모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무심한 감이 있었다. 배구 이외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려 했다. 스가와라는 그 사실을 인식할 때 마다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결국 그가 배구 이외에 가장 좋아하는 건 스가와라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우주 안에서는 스가와라의 지분은 사람 중에선 제일 클지도 모른다.
그는 카게야마가 자신을 위해 한 서툰 일들을 떠올렸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공통분모가 ‘배구’이기 때문에 데이트 장소는 언제나 배구장이었고, 스가와라가 곤란한 상황에 있을까봐 먼저 연락을 하질 못했다. 밤늦게 깨어있지 않을 것이며, 이 시간에 자신이 연락을 하는 건 부담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지 언제나 10시 이후에는 라인도 보내지 않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가 하는 이 모든 ‘처음’들이 사무치게 소중했다.
그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불 켜진 가로등 밑에 서 있는 카게야마가 보였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토비오, 하고 불렀다. 갑작스럽게 이름이 불려 놀랐는지, 그는 한 동안 스가와라만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다가가는 것은 아직 스가와라였다. 그는 카게야마의 두 손이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뭐야, 하고 물으니 그는 서툴게 스가와라의 품에 상자와 인형을 안겨 주었다.
“무민이요.”
“무민?”
“잠이, 잘 온대요.”
그는 뭔가 더 설명하려고 하는지 입술을 우물거렸다. 아마 무민을 사게 된 ‘깊은 사연’을 어디서부터 정리해서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평소 히나타나 다른 1학년에게 말할 때의 카게야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직설적이고 독단적인 모습이었다. 스가와라는 인형을 품에 안고서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카게야마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웃음소리에 놀란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이 연하 남자 친구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러니까 카게야마가 귀여웠어. 왜 귀여웠냐면 히나타나 츠키시마한테 말할 때는, 으로 시작한 말을 듣는 카게야마의 표정은 꽤나 진지했다. 귀여운데 토비오, 라고 다시 이름을 부르니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여왔다. 그의 얼굴에 주황색 가로등 불이 들었는지 붉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게야마는 도넛은 취향이 뭔지 몰라서, 라며 말을 흐렸다. 스가와라는 나 도넛 좋아해, 라면서 웃었다. 그제야 카게야마의 눈이 커지면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알기 쉬운 남자였다.
언젠가 시미즈가 스가와라에게 질문 한 적이 있었다. 카게야마 군이랑 사귀면 답답하지 않아? 라고. 그 때 스가와라는 그렇게 대답했다. 한 발 한 발 나한테 걸어오는 게 사랑스러워, 라고. 스가와라는 그 때 했던 대답이 맞는 말이라고 느꼈다. 그는 무민을 옆구리에 끼고, 반대편 손을 뻗어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날 생각했구나, 요즘 잠이 안 오더라, 라는 두 마디의 칭찬을 함으로써, 카게야마는 몇 걸음 더 스가와라에게 다가올 것이었다. 그 서툰 움직임을 볼 때 마다 스가와라는 작은 까마귀가 날갯짓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퍽 귀여운 모습이었다.
고마워, 하고 스가와라가 말하자 카게야마는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아마 배구부에서 자신 말고는 모르는 모습일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내일 등교하면, 시미즈에게 ‘연하를 사귀는 것도 의외로 괜찮은 일이고, 카게야마랑 사귀어서 너무 행복하다’정도로 자랑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쿡쿡 웃었다. 카게야마가 다시 웃음의 의미를 물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으면서 비-밀- 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뚱해졌는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는 그 주름을 검지로 콕, 찌른 다음 그 감촉이 사라지기 전에 발뒤꿈치를 들어 그의 미간에 입을 맞추었다.
쪽, 하는 소리가 떨어지자 카게야마는 눈을 뜬 채로 멍하게 서 있었다. 싫어? 하고 물으니 고개를 저으면서, 촉감을 잘 모르겠으니 한 번 더 해달라는 재촉이 돌아왔다. 카게야마는 역시 응용력과 습득이 빠르구나, 스가와라는 나름대로 그를 칭찬하면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입술을 대지 않으니, 카게야마는 시무룩해 보였다. 마치 ‘무민’ 같은 표정이었다. 스가와라는 그를 부르는 듯, 오른손을 까닥였다. 카게야마가 그에게 한 걸음 쯤 더 가까이 다가와, 스가와라의 목소리를 더 잘 들으려는 듯 몸을 앞으로 숙였다.
다시 입술이 살과 닿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캉한 감촉은 분명 도넛보다 달고, 츄이스티보다 폭신했을 게 분명했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스가와라는 아직 그가 입술에 하는 입맞춤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웃었다. 어린애 취급 하지 말아주세요, 하고 따라오는 목소리가 제법 절박하게 들려, 스가와라는 그의 머리카락을 힘을 주어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오늘도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한 걸음 쯤, 더 다가오고 있었다. 서툴게, 또 서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