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쿠니] 동거
하나쿠니의 날을 맞아 받은 돌발 리퀘입니다. 동거하면서 나오는 달달한 에피소드를 리퀘 해 주셨었는데.. (동공지진) 쓰다 보니까 이렇게..되어버렸읍니다.. 요리하는 쿠니미가 쓰고 싶었을 뿐인데... ㅠㅠAS를 원하신다면 다시 에슥흐폼으로 연락주셨음 좋 겠 습니다... 익명님 사랑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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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인지 눈이 빨리 떠졌다. 쿠니미는 눈을 깜빡였다. 열린 커튼 틈 새로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냈다. 잔뜩 잠겨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제 목을 쓰다듬었다. 입으로 작은 기침이 새어 나왔다. ‘아침’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따끔거림에 쿠니미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연인은 무사태평하게 자고 있었다. 그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쿠니미는 어떻게 할까, 하고 눈을 깜빡였다. 그는 장난을 앞둔 고양이처럼 굴었으나, 무언가 할 여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쿠니미는 조심스럽게 팔을 뺐다. 하나마키는 쿠니미의 팔 안쪽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었다. 가슴에 닿는 숨결이 낯간지러웠다. 밤에는 친절했을지 모르지만 낮의 쿠니미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었다. 그는 입술을 쭈뼛거렸다. 다행이 하나마키는 깨지 않았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몸을 작게 꼬물거릴 때 마다 허리와 엉덩이가 지끈거렸다. 쿠니미는 손을 들어 허리께를 꾹꾹 눌렀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이불을 끌어 당겼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닿는 감촉은 미묘했다. 쿠니미는 어젯밤을 회상했다. ‘생일기념 특별 서비스’였다. 그는 다음부터 고양이 꼬리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침대를 조심스럽게 벗어났다.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어째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커튼을 두꺼운 걸 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그는 슬금슬금 움직였다. 어제 뒤처리를 하고 잔 까닭에 속앓이를 하진 않았다. 쿠니미는 일단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익숙하게 움직였다. 거의 반 동거에 가까운 관계였다. 뺀질나게 들락날락했기 때문인지 하나마키의 속옷함에는 쿠니미의 속옷도 여러 벌 들어 있었다.
아예 집을 합치자고 할까. 쿠니미는 하품을 했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하나마키의 자취방은 대학에서 너무 멀었다. 매일 차로 실어다주는 것도 일이었고, 쿠니미는 5분 거리의 제 방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내향적인 인간이었음으로 언제나 자신만의 공간이 하나쯤은 필요했다. 하나마키의 방은 넓었지만 독립된 방이 없었다. 고양이었다면 4호짜리 상자에 만족했을테지만, 안타깝게도 쿠니미는 180cm가 넘는 성인 남자였다.
어제 말다툼을 한 것도 반쯤은 그 때문이었다. 하나마키는 방을 합치길 원했다. 지금도 서로의 자취방을 오가며 동거처럼 지내고 있으니까, 룸메이트가 되어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논리였다. 쿠니미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거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게 하나마키에게 종속되는 게 싫었다. 도망칠 구석이 필요했고, 쿠니미의 연인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화해는 했지만 뒷맛이 썼다. 쿠니미는 제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사랑은 언제나 빛날 수 없다. 그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쿠니미는 아직도 자신의 판단이 이성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호피무늬 드로즈를 걸쳤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하나마키 다운 속옷이었다. 쿠니미는 옷장을 뒤져 맨몸에, 그의 후드집업도 마저 걸쳤다. 쿠니미 자신의 옷을 입지 않은 것은 일종의 심술이었다. 그는 하품을 하면서 다시 침실로 향했다.
하나마키는 이불도 다 덮지 않고 자고 있었다. 쿠니미는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전날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자르는 걸 까먹어 손톱이 꽤나 길어 있었다. 쿠니미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중에 약이라도 발라줘야지 싶었다. 그는 하나마키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볼에 입술을 맞춰도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꽤나 피곤한 모양이었다.
화를 가득 담은 키스와 폭력적인 섹스는 뒤로 가면서 점점 미안하다는 말로 점철되어갔다.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것은 쿠니미였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하나마키였다. 그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신 사과했다. 상처를 준 쪽은 쿠니미였다. 가해자는 씁쓸하게 혀를 찼다. 그는 내려간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덮어주었다. 섬유에 닿는 상처가 따끔한지, 하나마키는 얼굴을 찌푸렸다.
도피처를 만드는 것은 나쁜 버릇이었다. 쿠니미는 이를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어제 했던 ‘기분 좋은 섹스’만을 떠올리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키스에 가득 담아 휘핑크림처럼 부드럽게, 가벼운 슈크림처럼 장난을 치고 기분 좋은 느낌만을 회상하면서 쿠니미는 기지개를 폈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시계는 ‘아침’과 ‘점심’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는 폭신한 이불을 보면서 좀 더 잘까를 고민하다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확실하게 사과 할 요량이었다. 쿠니미는 냉장고와 선반을 뒤졌다. 언제나 밥을 하는 건 하나마키였음으로, 그의 부엌은 쿠니미가 유일하게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는 허리를 두드리면서 밀가루와 계란, 베이킹파우더와 단호박 등을 찾아냈다. 쿠니미는 단호박을 찌기로 결심했다. 그는 단호박을 네 등분 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그는 속 씨를 설설 긁어냈다.
갉작이는 소리는 의외로 듣기 좋았다. 그는 꿀을 바르고 찜기를 꺼내 냄비에 물을 붓고 단호박을 올렸다. 핫케이크를 만들 것이었음으로 좀 무른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시간을 확인했다. 주인 몰래 말썽을 부리는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쿠니미는 다시 살금살금 걸어 침대로 다가갔다. 그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 매트리스가 움직이는 느낌에 하나마키가 슬쩍 눈을 떴다.
깼어?
네
더 자자, 하나마키는 쿠니미의 입술에 작게 입 맞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피곤한 듯 했다. 쿠니미는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설설 쓸자, 하나마키는 기분이 좋은 듯 아이 같이 웃었다. 쿠니미는 그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오늘 기분 좋아? 그가 눈을 감은 채로 물었다.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쿠니미는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아직도 같이 살기 싫어? 하나마키가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타이밍에 물어보는 건 명백한 반칙이었다. 난 네가 내 옷 입고 있는 게 좋은데. 하나마키는 능청스럽게 손을 뻗어왔다. 그는 쿠니미의 매끈한 허리와, 엉덩이 위 팬티를 노골적으로 쓸어내렸다. 나 잠옷 야해서 동거 못 해요. 그는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고, 하나마키는 뭘 입는데? 하고 물었다. 하나마키는 제대로 베개에 머리를 올리고 손을 뻗었다. 쿠니미는 얌전히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단호박이 익기 까지는 최소 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
“샤넬 넘버 파이브요.”
“같이 못 살만 하네.”
하나마키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랑 잘 때도 입어 줘라, 그의 말에 쿠니미는 복숭아 향 향수를 뿌리기 때문에 무리라고 대답했다.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농담 속에는 불안감이 가득 들어 있었다. 쿠니미는 그가 자신을 옭아매고 싶은 거라고 확신했다. 쿠니미는 하나마키의 맨 가슴에 이마를 댔다.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나 좋아하지? 하나마키의 질문에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마키는 그럼 됐다고 말하며 그의 뒷머리를 쓸었다. 나랑 동거하면 좋은 점 정말 많을 텐데, 라고 마침표 뒤의 P.S가 따라 붙었다. 쿠니미는 그의 가슴에 소리 나게 입을 맞추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요, 라고 속삭이는 무게감 있는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그의 결 좋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짙은 커튼의 벌려진 틈으로 햇볕이 들어왔다. 매일매일 너랑 눈 뜨고 싶어. 그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대답 할 수 없었다. 내가 널 불안하게 만들어? 하나마키가 물었다. 어제 이야기의 연장이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그럼 됐어. 그는 이 선에서 만족한다는 듯 물러났다. 여전히 그는 미안해하고 있었다. 생일에 싸웠단 것이 뭇내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나 아침 만들 거예요. 쿠니미가 중얼거렸다. 하나마키는 그를 더 제 품 안에 가두면서, 놓기 싫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나랑 동거하면 매일 아침 만들어 줄 텐데, 매일 차로 실어다 주고. 그는 미련 남은 말들을 반복했다. 좀 생각 해 본다고 어제 말했는데, 쿠니미의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그랬었지, 하면서 팔을 풀어 주었다.
“불안해요?”
쿠니미의 말에 하나마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불안할 때가 없지, 라고 푸스스 떨어지는 말에는 그 나름의 사랑이 가득 담긴 듯 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불안해하는 게 뭐 때문인지 알아요? 그가 물었다. 협탁 옆 시계는 그가 일어나야 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안다고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좀 울 것 같은 모습이었고, 쿠니미는 서둘러 그의 눈두덩이에 입술을 맞췄다.
만약 괜찮다는 결론을 내리면 내 집에 바로 들어 올 거야? 하나마키가 질문했다. 네. 쿠니미는 확실하게 대답했다. 좋아, 그는 제법 후련해 보이는 얼굴로 눈을 떴다. 그의 갈색 눈동자에 자신이 가득 들어 차 있다는 게 나름 감동적이라, 쿠니미는 그의 입술에 먼저 키스를 졸랐다. 부벼온 부드러운 입술을 하나마키는 마다하지 않았다. 혀와 혀가 얽히고 숨이 서로를 진하게 적셨다.
쿠니미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가 얼른 내렸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하나마키는 조금 있다가 약을 발라 달라 말했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다. 쿠니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넓은 침대가 출렁거렸다. 그와 그가 사귀고 있다는 증거는 어쩌면 왼손의 반지와 적막한 침대뿐일지도 모른다. 다 되면 부를 테니까 좀 더 자요. 쿠니미의 말에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야해.”
쿠니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하나마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 품에 안기고 싶을 정도로 섹시한 게 아니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속옷을 넣어두는 함으로 다가갔다. 나는 가끔 니가 와서 속옷을 놓고 갈 때마다, 그래서 그걸 빨래해서 개놓을 때 마다 설레. 하나마키의 독백에 가까운 말에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단호박을 확인했다. 색이 짙게 들어 있었고, 알맞게 쪄진 느낌이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동거하자고 말만 하잖아?”
나 안 좋아했으면 가둬 놨을지도 몰라.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하나마키는 속옷을 입었고, 티셔츠를 걸쳤다. 쿠니미는 콧노래를 경쾌하게 부르면서 단호박을 으깨기 시작했다. 하나마키는 식탁 의자에 앉아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년 네 생일 까지는 대답해 줄 거지? 스스로 생각해도 구질구질한 느낌이었다. 쿠니미는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냉장고에서 파프리카를 꺼냈다.
연애는 점점 서로의 반경을 넓혀가는 것이라 했다. 하나마키는 약간의 유예에 감사하며, 쿠니미의 불안감이 종식되길 바랐다. 오늘 따라 침묵이 썼다. 사랑해, 그가 매달리듯 말했고, 쿠니미는 저도요, 라고 긍정했다. 그 목소리가 꼭 손과 손을 묶는 수갑 같았다. 그는 지금은 이 ‘동거 놀이’에 만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다려주는 것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사랑해요, 하고 쿠니미가 속삭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하나마키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약간의 여백 후, 하나마키는 우리 집에 메이플 시럽 있던가? 하고 질문했다. 가니쉬를 만들 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쿠니미는 지금부터 찾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하나마키는 동거 하면 이것도 바로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라는 말을 애써 목 끝으로 삼켜냈다. 아직 아니라면 아직 아닌 거였다. 그는 참을성 없는 마음을, 꾹꾹, 꾹꾹 또 눌러냈다. 그것은 마치 쿠니미가 으깨고 있는 단호박 같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