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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쿠니] 사랑은 가끔, 증거를 바라요

:3c 2015. 4. 7. 00:40

  엔피 님께서 커플링 맞추는 하나쿠니가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오래 잡고 있던 것 치고 퀄리티가 안 나와서 슬픕니다. 둘은 연애할 때 합이 잘 맞을 것 같아요. 쿠니미는 어른스러운 척 하는 어린애라서 맛키가 간간히 보듬어주고 길러(?) 줘야 할 타이밍이 있을 것두 같습니다! 

   아무래도 엔피님께 AS 해드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네요.. 커플링 하나 맞추는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절레절레)










***

   "그래서 쿠니미 군, 종종 데리러 오는 선배 말야, 여자 친구 있어?"


   누구? 쿠니미는 웃으면서 되물었다. 종종 받는 질문이었다. 그는 눈 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핑계를 대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다는 여자였다. 쿠니미는 그녀가 새로운 악세사리를 구하는 걸 알아차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가 모른 체 하자, 그녀는 분홍색 머리에 차 있고, 스타일 좋은 남자, 라고 대답했다.

   노골적인 저격이었다. 그녀는 하나마키를 소개시켜 달라는 말을 숨겨서 하고 있었다. 쿠니미는 그녀가 차 없는 남자는 만나지 않는다고 말하던 목소리를 기억 하고 있었다. 그는 이런 타입을 매우 싫어했다. 쿠니미는 이런 여자가 자신과 같은 취향이라는 게 불쾌했다.


   "사귀는 사람 있을걸?"

   "그래? 커플링 없던데."


   쿠니미는 '사귀는 사람'에 강세를 주어 발음했다. '여자 친구'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이 매번 깨끗했다면서, 깊게 사귀는 관계가 아닐 거라고 추측했다. 쿠니미는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일 것이라고 쏘아붙이려다가 그만 두었다. 아웃팅은 안 된다는 생각이 쿠니미의 이성을 잡아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쿠니미의 옆에 앉아있던 킨타이치가 안절부절 못하는 게 느껴졌다. 쿠니미는 심술을 부려 야하바를 소개시켜 주려다가 그만 두었다. 킨타이치의 위장을 조각조각 낼 정도로 나쁜 사람이 아니었거니와, 그녀가 한 말이 그에게 나름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커플링이 없어도 사귈 수도 있지, 그는 나름 반격했다.

   진지하지 않은 관계니까, 걔랑 맞추기 싫으니까 커플링이 없는 거야. 쿠니미 군은 연애를 진심으로 한 적이 없으니까 모르는 거지. 그녀는 제법 예의 없게 쏘아 붙였다. 쿠니미는 이 말의 의미가 '내가 알아서 꼬실 거니까 닥치고 연락처나 알려줘'라는 걸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 섹스도 하는 관곈데'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날 것이었지만, 그 '모든 것'에는 쿠니미와 하나마키의 평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게이가 자유롭게 아웃팅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음 깊이 아쉬워했다. 그는 그 형이 전화번호 다른 사람한테 알려 주는 거 싫어한다는 변명을 댔다. 그녀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알려주기 싫으면 알려주기 싫다고 말해."

   "너 같은 사람한텐 선배가 아깝긴 하네."


   쿠니미는 쏘아 붙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하나마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에서 찾을 수도 없게 만들고 싶었다. 이것저것 귀찮아 하는 쿠니미와 달리 하나마키는 인스타그램이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SNS를 성실하게 관리 하는 편이었다. 쿠니미는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분에 차 씩씩거렸다.

   킨타이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쿠니미는 시계를 확인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서 집에 가야만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는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 하나마키에게 뭐라도 쏘아 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했던 말이 그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진지하지 않은 관계니까, 커플링도 맞추기 싫었던 거 아냐? 쿠니미는 그녀에게 어떻게든 엿을 먹여야겠다고 결심 하면서도, 하나마키가 자신에게 커플링을 맞추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걸 떠올렸다. 점점 확신이 없어졌다. 그는 가방을 챙기고 우산을 들었다. 오늘은 하나마키의 자취방에 가기로 한 날이었으나, 쿠니미는 그가 오기 전에 얼른 달려,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자신의 자취방에 틀어 박혔다.






***


  자신에 대한 그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쿠니미는 하나마키가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며, 그게 거짓 한 톨 없는 진실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흥미 없는 것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제 마음에 솔직한 남자였다. 만약 사랑하지 않는다면 훌쩍 떠나버릴 것도 쿠니미는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얽매고 싶지 않았다. 새장 문을 활짝 열어 둔 것은 쿠니미였다.

   그는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가만히 두었다. 분명 약속 장소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찾고 있을 것이었다. 하나마키는 쿠니미가 제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싫어했다. 쿠니미는 돈나물을 찬물에 씻었다. 손끝이 차갑게 단단해졌다. 그는 한숨을 내 쉬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론 서운했다.

   남자와 남자와의 관계에는 언제나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 부모님 네 분이 다 개방적인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고, 다행이도 하나마키와 쿠니미는 그 확률에 당첨 된 행운아였다. 집에서 이해를 받는 관계라고 해도, 주위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을 순 없었다. 결국 모난 돌이었다. 평평한 땅에서 툭 튀어 나온 돌.

   흔적이 남는 모든 건 비밀로 하기로 했다. 이 년 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쿠니미는 돈나물을 헹구어 채에 걸렀다. 물기가 천천히 빠져 나갔다. 그는 조리대 한 구석에 그것을 방치하고 두부를 꺼냈다. 튀긴 두부가 다 떨어지고 말랑말랑한 것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두부를 굽기로 결심했다. 한숨이 그의 손가락에 매달렸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자는 건 이미 합의를 본 일일 텐데도, 쿠니미의 마음은 너무나도 쉽게 일렁였다. 저번에 동거를 조르던 하나마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는 한숨을 내 쉬면서 두부를 잘랐다. 두부가 삐뚤빼뚤하게 잘라지고, 그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 여기 있어? 하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하나마키가 들어왔다. 그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쿠니미는 그에게 앉으라고 권하면서, 두부에 계란 물을 묻혀 팬에 올렸다. 계란이 익는 소리가 자글자글하게 들려왔다.


   "오늘 우리 집 가기로 하지 않았었어 자기야?"

   "나 오늘 기분 좀 안 좋은 일 있어서, 이런 기분으로 보고 싶지 않았어요."


   쿠니미는 능숙하게 변명했다. 그는 저녁 같이 먹을 거죠? 하고 물었다. 하나마키는 물론이라고 대답하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쿠니미는 그의 소유욕이 아직 건재함에 감사했다. 그는 여전히 하나마키의 일순위인 것이었다. 오늘 반찬 뭐냐는 질문에 쿠니미는 돈나물을 무치고, 튀긴 두부와 영양부추 샐러드를 만들 거라고 대답했다.

   나 스팸도 구워줘. 하나마키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이요리가 두 개가 되지만 별 수 없었다. 좋아하는 반찬은 먹어야 한다가 그들의 지론이었다. 쿠니미는 코를 킁킁거렸다. 뒤를 돌지 않았다. 얼굴을 보자마자 코가 시큰거릴 것 같았다. 연애란 행복 아래의 불안함을 맛보는 행위였다. 그는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렸다. 쿠니미는 한숨을 내 쉬었다.


    "무슨 일 있었어?"


   하나마키가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하나마키가 의자를 밀고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대학에 들어와서까지 더 자란 하나마키와, 자라는 게 멈추는 쿠니미 사이에는 은근히 체격 차이가 났다. 전화도 안 받고, 얼굴도 안 보여 주고, 오늘 아키라 별로 맘에 안 들어. 하나마키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쿠니미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는 나무젓가락을 들고 두부를 부쳤다. 튀김 두부가 없는 거 있죠, 라는 속이 뻔히 보이는 화제전환에 하나마키는 끌려오지 않았다. 그는 눈치가 빠른 남자였다. 너 오늘 무슨 일 있었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깨금발을 들었다. 그는 쿠니미의 볼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좋아하고 있는데, 한 순간이라도 의심했다는 사실이 쿠니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커플링이라는 징표 없이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데도 불안 해 했다. 그는 묵묵히 두부를 부쳤다. 그는 선반을 열어 스팸을 꺼냈다.

   그는 조리대에서 양파를 썰었다. 돈나물 무침과 영양부추 샐러드에 둘 다 들어갈 것임으로, 하나를 온전히 잘라냈다. 그는 그릇을 꺼내 저민 양파를 넣고 찬물을 담았다. 매운 기를 빼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마키는 그 과정 내내 쿠니미에게 끈덕지게 붙어 있었다.


   "진짜 말 안 해 줄 거야?"

   "네."

   "치사하게 이러기야? 침대에서도 안 알려줄 거지?"

   "네."


  쿠니미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간간히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큰 문제는 아닌데, 내가 짜증나서 그래요. 쿠니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나한테도 못 말해? 하고 물었다. 그는 뒤를 돌았다. 쿠니미의 검은 눈동자에 그의 갈색 눈동자가 가득 들어찼다. 새장 문을 연 것은 쿠니미 자신이었으나, 그는 그 문을 닫아버리고 싶었다. 언제든 가버릴 것 같은 그를 옭아매고 싶었다.

   쿨한 연애를 하고 싶었다. 어린 만큼 어른이 되고 싶었고, 그 ‘이 년’이라는 간격을 한 순간에 뛰어 넘을 만큼, 하나마키가 자신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을 만큼 크고 싶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숙여 하나마키의 매끈한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목에 있는 팔찌와는 다르게, 손은 깨끗했다. ‘그녀’들이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싶어, 쿠니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꾹꾹 눌러 닦아냈다.

   오늘의 아키라는 이상하네. 하나마키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멋대로 화대고 멋대로 실망하고, 멋대로 자책하며 제멋대로 울기까지 하는 연인은 마음에 들지 않죠? 쿠니미가 말하자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기름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마키는 가스불을 끄고 다시 그의 앞에 섰다.


   “나, 하나마키 선배가 좋아요.”

   “나도 좋아해.”

   “그래서 옭아매기 싫었는데.”


   나 진짜 오늘 반지 맞추고 싶어요. 쿠니미는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오늘 무슨 일 있었구나, 하고 하나마키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깔렸다. 쿠니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싸구려 로맨스 소설ㄹ의 여주인공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배가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다고 속삭이는 쿠니미가, 하나마키는 마냥 귀여울 뿐이었다. 내가 싫으면 바로 떠나게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될 것 같다는 뜬금 없는 말들이 다가왔다.

   쿠니미는 가끔씩 멋대로 상상하고 스스로 지칠 때가 있었다. 하나마키는 그 때 마다 얌전히 기다리는 역할이었다. 그가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투정을 부릴 때. 그 때 받아주고 사랑을 퍼부어주는 게 하나마키는 퍽 즐거웠다. 어른인 척 하는 어린애가 어린애 티를 내는 이 순간이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하나마키는 쿠니미의 왼손을 잡아 들었다. 맞추자, 커플링. 우리 사랑도 이제 증거가 필요 할 때가 됐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쿠니미의 네 번째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고, 느릿하게 핥았다.


   “사랑해?”

   “사랑해.”


   즉각적인 언어가 다가왔다. 쿠니미는 눈을 감았다. 하나마키는 그의 손을 깍지를 끼어 세게 잡았다. 무슨 이유로 커플링을 맞추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스스로 지쳐버린 쿠니미를 위로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는 그의 투정 가득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달콤한 입술을 핥고, 혀를 감싸자 쿠니미는 익숙하게 응해왔다. 하나마키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감정’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증거를 바라기 마련이었다. 밥 먹고, 우리 반지나 보러 가자. 그는 그의 윗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하나마키는 그가 솔직해지는 이 타이밍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는 쿠니미를 이런 상태로 몰아 간 누군가에게 속으로 감사인사를 했다.

   쿠니미는 다시 가스불을 켰다. 하나마키는 식탁 의자에 앉아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다가 쿠니미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는 유성 매직을 꺼내, 그의 왼손에 선을 그어 반지를 만들었다. 뭐 하는 거예요, 라고 물어보는 ‘평소의 쿠니미’에게, 하나마키는 빨리 맞추고 싶어서 라는 대답을 하면서 제 손에도 매직으로 선을 그었다. 밥 먹고 나서 기깔나는 거 채워 줄게, 하나마키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그러든가요,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 입술을 내밀었다.


   하나마키는 그의 내민 입술에 다시 쪽, 하는 소리를 남겼다. 아까의 ‘사랑해’ 라는 말에 미처 다 담지 못하고 남은 것이었다. 그는 그 남은 사랑을 담아 다시 그의 이를 혀로 톡 톡 노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