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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쿠니] 어느 밤

:3c 2015. 3. 12. 01:03

  아침 과, 점심시간 과 설정을 공유하고 있는 섹피AU 하나쿠니입니다. 둘 다 마음이 있으면서 간보는...게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여시 같은 쿠니미와 은근히 눈치 있으면서도 둔한 하나마키 씨가 좋습니다...☆★









***

   “그래서 오늘 같이 갈 거야?”


   오이카와가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반상 위에 놓여있는 두 장의 초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문 너머 정원에 있는 연못을 바라보았다. 수면 위에 비가 톡톡 떨어지고 있었다. 축 젖은 연잎과 나무수국을 바라보다, 쿠니미는 나가기 싫다고 다시 한 번 말했다. 그 똑부러지는 의사표현에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 쉬었다.


   아키라, 오늘 가서 얼굴이라도 비춰 주면 안 돼? 오이카와가 물었다. 나 냉혈동물이라서 이런 날 밖에 못 나가요 토오루, 하고 쿠니미는 능숙하게 넘어갔다. 누가 뱀 아니랄까봐, 하면서 오이카와는 입을 내밀고 툴툴거렸다. 그는 사촌 형의 부탁 정도는 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혈연을 이용한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귀찮은 남자였다.


   쿠니미는 다 식어가는 핫팩을 꼭 쥐었다. 하늘이 꾸물거리고 비가 몇 방울 떨어질 때 받은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오늘은 꼭 가면 안 되냐면서 쿠니미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쿠니미는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대 설설 쓰다듬었다. 나 체온조절하기 힘들어서 밖으로 못 나가요. 그의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자신도 악어라고 대답했다. 익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아키라야,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해도 안 가요.”

   “너 지금 내가 귀찮다고 생각하고 있지?”


   오이카와 씨는 모르는 게 없어. 오이카와는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쿠니미는 연못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활발한 성격의 오이카와와 달리, 그는 사교회가 귀찮았다. 모르는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배구보다 많은 체력을 필요로 했다. 그는 오이카와의 갈색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잘생긴 이마가 드러났고, 쿠니미는 엄지와 중지를 튕겨 그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왜 가기 싫어하는 건데? 오이카와가 물었다. 귀찮잖아요, 쿠니미는 다시 대답했다. 그는 예쁘게 차려입고 웃는 자리가 취향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너 우리 엄마 같은 소리를 한다, 라는 그의 말에 쿠니미는 오이카와 또한 제 엄마 같은 소리를 말한다면서 받아쳤다. 쿠니미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자리를 불편해 하는 걸 잘 알면서도 오이카와는 쿠니미에게 사교회에 나올 것을 권하곤 했다. 쿠니미는 그게 오이카와 나름의 친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류 사회에서 결혼과 연애는 정치적인 퍼포먼스를 다분히 품은 도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쯤이면 선자리가 설설 들어올 테니, 그 전에 미리 얼굴이라도 알아두는 게 좋다는 것은 쿠니미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답지 않게 연애결혼 하고 싶은 거야?”

   “답지 않다는 게 뭔지 모르겠는데요.”


   쿠니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말 그대로라고 대답하는 오이카와의 입술을 쭉 잡아당겼다. 그는 그의 불퉁한 입술을 두어 번 더 잡아당기고는 조금만 있다 가겠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는 몸을 일으켰다. 정장을 골라주겠다고 신이 나서 말하는 사촌형을 바라보다가, 쿠니미는 연못으로 시선을 돌렸다. 밖은 꽤나 추울 것 같았다. 그는 핫팩을 손에서 이리저리 굴렸다.


   오이카와가 손을 뻗어왔다. 쿠니미는 그의 손바닥에 있는 핫팩을 그의 손에 올려주었다. 다 식은걸 뭐 하러 쥐고 있어? 중종 악어가 태연한 얼굴로 물었고, 흰뱀 중종은 그의 표정을 따라하면서 손이 심심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느릿하게 핫팩을 만지작거리다가, 가지 않으면 돌려주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쿠니미는 그의 손바닥에 있는 다 식은 핫팩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갈게요.”

   “정말?”


   쿠니미의 대답에 오이카와가 놀라 되물었다. 쿠니미는 대신 조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자기소개를 하는 게 너무 귀찮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오이카와 씨의 친사촌동생이며 뱀목이라는 것을 대신 말해 달라 했다. 오이카와는 별로 어렵지 않은 조건이라 말하면서 웃었다. 쿠니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서 나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집에 가고 싶었다.


   오이카와가 일어났다. 정장을 골라주겠다는 말에 쿠니미는 얼굴을 찌푸렸다. 피곤해? 그의 말에 쿠니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얼굴에서 피곤함을 감출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오이카와는 사촌동생의 모순 된 말과 행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익숙한 옷방으로 발걸음 했다. 쿠니미는 의욕 없이 그의 발자국을 쫓아 갈 뿐이었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하는 건 싫다. 쿠니미는 반짝거리는 조명을 보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몇 사람이 그에게 말을 붙여왔고 그의 옆에 있던 오이카와는 그 대신 자기소개를 했다. 모임에 꾸준히 참석 해 왔는지, 오이카와는 사람무리 속의 중심처럼 이동했다. 쿠니미는 그에게 휩쓸리지 않고 천천히 구석으로 다가갔다. 그는 베란다 안에 기대어, 환한 안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 많은 인파를 천천히 관찰했다. 다행이도 비는 그쳤지만 밤공기는 서늘했다. 그는 이미 여며진 재킷을 쓸었다. 코트를 하나 더 입으라는 조언을 곧이곧대로 들었어야 했다. 쿠니미는 회장 한 가운데서 웃고 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빛에 눈이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파티장 구석에서 이와이즈미의 모습이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조명처럼 반짝이는 오이카와를 놓치기 싫다는 듯 굴고 있었다. 쿠니미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하다가 하품을 했다. 어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눈길을 끌만한 반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내일 연습을 좀 더 성의 있게 설렁거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해야 했으나, 그는 너무나도 멀리 있었다.


   인기인은 괴롭다고 생각하며, 쿠니미는 제 목을 옥죄고 있는 보타이를 풀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는 파티장 안을 돌아보았다. 멀리, 튀는 머리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하나마키였다. 쿠니미는 그의 혼현을 생각하다가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머니 안에 넣었던 보타이를 꺼내 천천히 맸다. 일찍 가지 않아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곤란한 일이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쿠니미는 옷매무새를 단장했다. 심호흡을 한 후, 그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회장에 들어왔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빛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뱀은 원래 눈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마키에게 들키지 않게 돌아서 오이카와의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자 오이카와에게 쏠려있던 관심이 쿠니미에게 몰렸다.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소개할게요, 라고 운을 띄우는 경쾌한 목소리에, 쿠니미는 이제부터 소개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오이카와는 그의 눈동자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엮어서 기억되고 싶진 않았다. 쿠니미는 자신의 등 뒤로 따라오는 시선을 느끼면서 하나마키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신경이 쓰인다면 가까이 하지 말자, 라는 말은 쿠니미의 좌우명 중 하나였다.


   그는 식어버린 핫팩을 생각했다. 파티장 구석에서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꼴이 우습기만 했다. 쿠니미는 가볍게 눈웃음 쳤다. 하나마키의 앞에 있던 사람이 얼굴을 붉히면서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를 노린 것은 아니었으나, 쿠니미에게 대상이 누군지는 이미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한 사람이었다. 웃기는 질투심이었고, 반항심의 발현이었다. 쿠니미는 넘어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귀찮은 일도 감수해야만 하는 때가 오는 법이었다. 쿠니미는 지금이 그 때라고 생각하면서, 어느새 자신의 가까이에 다가온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그는 그에게 자신을 오이카와 토오루의 사촌동생인 쿠니미 아키라입니다, 하고 소개했다.






***


   어느 밤, 하나마키 타카히로의 기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벽에 기대에 홀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섞인 명백한 불쾌함을 느끼면서 오이카와는 그의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맛키, 하고 부르니 하나마키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년 동안 그를 겪어왔음에, 오이카와는 그의 이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음’이란 뜻을 내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하나마키의 시선 끝을 따라갔다. 그의 눈길의 끄트머리에는 짙은 붉은색 보타이를 맨 쿠니미가 있었다. 신경 쓰여? 그가 물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제 손에 들고 있는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는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이 상황이 매우 웃겼다.


   “애인이 신경 쓰여?”

   “맛키 씨는 솔로인데요?”


   하나마키는 즉각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쿠니미 보고 있던 거 아니었어? 오이카와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가 내 애인이에요? 하나마키는 오이카와의 말투를 흉내 내어 물었다. 오이카와는 눈을 깜빡이다가, 배구부 안에선 아예 공인이잖아요? 라고 대답했다. 하나마키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맛키는 쿠니미가 싫어? 오이카와가 물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애인이었으면 저렇게 안 놔뒀다는 고지식한 말이 뒤따라왔다. 싫지는 않은가 보다는 물음에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이 상황을 가득 즐기면서 키득거렸다. 쿠니미가 공중에 옅게 친 거미줄에, 하나마키가 덥석 걸린 꼴이었다.


   “예쁘지?”


   오이카와가 물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몸에 잘 맞는, 투 버튼 검은색 정장이 인상적이었다. 교보을 입었을 때와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하나마키는 활발하게 웃고 있는 쿠니미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얼굴이었다. 하나마키는 곤란하게 웃는 쿠니미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다가갈 때 마다 철벽을 치면서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하나마키는 저런 모습의 그 보다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서 미미하게 멈춰있는 쿠니미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하나마키가 모르는 중종 앞에서 얼굴을 붉히면서 웃고 있었다. 백합처럼 우아하고, 프리지아처럼 수줍은 모습이었다. 그는 태나게 얼굴을 찌푸렸다. 오이카와는 휘파람을 불었다. 오늘 오는 게 아니었어, 하고 넋두리처럼 말하자 오이카와는 오지 않았어도 불안했을 거라고 대답했다. 분명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체크 할 거잖아? 그의 말에 하나마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불안하면 말이라도 걸러 가 보는 건?”

   “그럴까.”


    하나마키는 계속 쿠니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저렇게 밝게 웃는 쿠니미에, 하나마키는 적응 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리 위에 스포트라이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하나마키는 그에게서 눈을 땔 수 없었다. 그의 열렬한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살짝 몸을 틀었다. 오이카와가 그에게 손을 흔들자, 쿠니미는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쿠니미는 자신이 이야기 하던 상대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서, 천천히 하나마키의 쪽으로 다가왔다. 하나마키는 천천히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유연하게 걷는 고양잇과 동물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혼현이 눈처럼 하얀 뱀이라는 것을 하나마키는 가끔 잊곤 했다. 쿠니미는 하나마키와 눈을 맞추고 눈웃음 쳤다. 초승달처럼 예쁘게 휘어지는 눈에, 하나마키는 입을 맞추고 싶었다.


   애매한 소유욕이 천천히 번져왔다. 하나마키는 그의 웃는 모습을 모두 가지고 싶었다. 그는 쿠니미의 손목을 잡았다. 선배? 하고 묻는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쿠니미는 잠시 놀란 것처럼 얼어 있다가, 이내 표정을 풀고 그의 이름을 똑바로 말했다. 쿠니미 아키라입니다, 하고 말하는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그에게 밖으로 나갈 것을 권했다.


   “추울 것 같은데요.” 

   “괜찮아.”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해? 하나마키가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에, 하나마키는 그의 혼현이 여우였던가를 잠시 고민했다. 하나마키는 뒤를 돌았다. 오이카와는 둘에게 잘 다녀오라면서 손을 흔들었다. 오이카와 씨도 변온동물이라서 밖에 따라가고 싶진 않거든, 이와랑 놀러 갈 거야. 그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하나마키는 쿠니미를 이끌었다. 오이카와가 눈치가 있는 녀석이라 다행이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품안에 가두고 싶었다. 하나마키는 그에게서 나는 은은한 꽃향기를 맡았다. 향수 뿌렸어? 그의 질문에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좋은 향이 난다는 칭찬에는 선수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나마키는 자신처럼 친절한 사람이 없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충동을 참아내며, 하나마키는 그를 천천히 에스코트했다. 쿠니미는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리 구두라도 신은 것 마냥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가 신은 구두 굽에서 꽤나 경쾌한 소리가 났다. 하나마키는 그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았다.


   타카히로 씨는 핫팩 같네요. 쿠니미가 웃음기를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테만 그래. 하나마키는 그 말을 애써 씹어, 삼켰다. 말이 들어간 위가 더부룩했다. 하나마키의 표정을 보던 쿠니미가 걸음을 멈추었다. 웃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후배의 당돌한 선언에, 하나마키는 애써 웃어 보였다. 쿠니미는 느릿하게 웃었다. 비온 후의 꽃이파리처럼 예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