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쿠니] 잠자는 자취방의 공주님
쌍방 짝사랑을 하는 고등학생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쿠니미는 잠이 많은 이미지? 느낌? 이 좋습니다ㅠㅠㅠ쿠니미의 요즘 고민이 너무 귀여워서 살기가 힘들어요..
동인설정이지만 맛키랑 맛층은 제 안에서 배구유학을 세죠로 온 이미지가 있습니다...(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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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키는 조심스럽게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편의점에서 데워 온 도시락에서 작게 김이 났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 방이 차가운 탓이었다. 아오바죠사이의 점심시간, 약 60분 정도가 되는 그 짧은 순간을 위해서 난방을 돌리는 건 가난한 자취생에겐 사치였다. 안 그래도 이번 달은 적자였다. 그는 얄팍한 지갑을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항상 먹는 불고기정식이 아니라, 계란정식 도시락이었다. 그는 반찬이 한 가지 정도 줄었음에 안타까워마혀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는 입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숨소리가 들려왔다. 배구부 후배의 것이었다. 하나마키는 ‘선배, 자취하시죠?’라고 묻던 그의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줍고, 당돌한 말투였다.
그는 그 날을 떠올렸다. 하나마키가 도시락을 놓고 온 날이었다. 그는 학교와 5분 거리의 원룸에 자취하고 있었다. 주방. 그리고 거실 겸용 침실이 있는 작은 방이었다. 쿠니미는 그 날 하품을 했다. 내리기 시작한 벚꽃잎이 그의 검은 머리카락에 닿아 있었다. 머리 끄트머리에 달려있는 몇 개의 꽃잎은 마치 여자아이의 귀걸이 같기도 했다.
쿠니미는 항상 달고 다니던 친구를 놓고 왔었다. 하나마키는 그의 이름은 기억했지만, 락교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미들 블로커’였고, 쿠니미는 ‘윙 스파이커’였다. 같은 포지션의 레귤러 후배에게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한테 무슨 일 있어? 하나마키는 곧잘 넘어가는 벽 앞에서 쿠니미의 말을 들었다. 쿠니미는 좌우를 돌려보다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 좀 재워주실 수 있으세요?”
라고. 하나마키는 그 울림이 퍽 재미있었다. 쿠니미는 제법 간절해 보였다. 그의 눈은 많이 졸려 보였고, 그는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 ‘락교’와 떨어졌을 때 의외로 커 보이는 키라던지, 단정한 머리카락이라던지는 하나마키의 스트라이크 존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취향은 없다-는 하나마키의 지론을 쿠니미 아키라는 2년 후배는 사정없이 뒤흔들고 있었다.
정신없이 한 블로킹, 쭉 뻗은 팔에 네트가 걸린 기분이었다. 강한 힘으로 쳐낸 그물망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처럼, 하나마키의 마음은 봄철 숫처녀만큼 설레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계란말이를 잘랐다. 가까운 곳에서 쿠니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젓가락이 움직이는 것, 혹은 도시락의 포장을 제거하는 것 따위의 생활소음이 가득한 하나마키의 공간에서, 그는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하나마키는 그게 신기했다. 온전한 타인의 공간에서 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마키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운동부의 2년 선배는 하늘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거리감이 전혀 없다는 듯 행동했다. 제 멋대로 하는 꼴이 꼭 고양이 같기도 했다. 하나마키는 짧은 머리카락을 벅벅 긁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쿠니미가 그의 세계에 뻗어오는 모양새는, 그가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쿠니미가 그의 세계에 들어온 그 첫날, 같이 담을 넘으면서 쿠니미는 수업시간에 깨어 있는 게 힘들어서 잘 곳을 찾고 있다는 부연설명을 했다. 그의 그 나른해 보이는 입술에서 하품이 나왔다. 하나마키는 그의 하품을 받아 제 입에서 굴렸다. 봄의 나른한 햇살이 둘의 머리카락을 데우고 있었다.
나 자취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하고 하나마키가 묻자, 쿠니미는 오이카와에게 들었다고 대답했다. 키타이치 시절 선배? 라고 물으니 그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여 왔다. 그의 머리카락에 묻어있던 꽃잎이 바람에 실려 공중에 나풀거렸다. 하나마키는 그것을 잡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주진 않았다. 입 속에, 비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숨겼다. 졸지에 그의 혀는 씨앗을 숨기게 되었다.
하나마키의 침대는 싱글이었다. 집이 좁은 탓이었다. 쿠니미는 그의 침대가 좁다고 불평하면서도, 얌전히 그 안에 들어가서 몸을 뉘었다. 선배 향이 나요, 하는 무심한 목소리에 하나마키의 위에서는 벚꽃이 자랐다. 바람에 삼킨 말이 자란 탓이었다. 하나마키가 별 말을 하지 않자, 그는 곧장 돌아누웠다. 하나마키는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교복 니트가 잔뜩 구겨져 있었고, 넥타이는 그의 다른 한 손에 아슬아슬하게 쥐어져 있었다.
잠옷을 가져다 놓을까 봐요, 쿠니미가 졸린 목소리로 말했고
내 꺼 입을래? 하고 하나마키가 대답했다. 쿠니미는 핑크가 좋다고 대답했다. 핑크, 그리고 핑크였다. 하나마키는 그의 말에서 저의 머리카락을 생각하다가, 그래, 하고 말했다. 그 뒤에는 곧바로 숨소리가 이어졌다. 쿠니미는 빨리 잠드는 타입이었다. 예민하게 생긴 주제에 까탈스럽게 굴진 않았다. 하나마키는 그게 퍽 마음에 들었다.
쿠니미는 등을 돌리고 자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천장을 보기 시작한다. 하나마키는 그의 이 잠버릇을 귀여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놀릴 시간이 마땅찮았다. 막 깨어났을 때 쿠니미는 정말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말을 함부로 걸 수 없었다. 막 잠들려고 할 때의 그에게 묻기에는 자는 애를 방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배구부에서 흘리듯 놀릴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집에 자러 온다는 것을 킨타이치가 알게 된다면, 분명 실례가 되느니 하면서 방해 할 게 분명했다. 하나마키는 계란말이를 씹었다. 은근한 단맛이 혀끝에 들었다. 지금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 소음은 쿠니미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는 많이 줄어든 거리감에 눈을 깜빡였다. 아마도, 일방적인 마음이겠거니 싶어 그는 귓불을 매만졌다. 고민은 개화하는 꽃송이처럼 제 부피를 늘려갔다.
하나마키는 의욕 없이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어째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입 안에서 단맛이 빠지지 않은 터였다. 그는 자리를 옮겼다. 쿠니미의 옆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는 천장을 보고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하나마키의 손끝에 닿았다. 그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쿠니미는 정말로 고왔다.
피부가 하앴고, 머리카락은 가지런했다. 그의 머리카락은 결이 좋았다. 윤기가 흐르면서도 찰랑거렸다. 특별히 린스나 헤어컨디셔너를 가지고 와서 씻는 것도 아닌데 좋은 향이 났다. 눈매는 졸려 보이는 모양새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스럽기도 했다. 그 졸린 눈과 다물린 입을 볼 때면 하나마키는 중국의 포사를 떠올렸다. 웃지 않은 후궁을 위해서 거짓 봉화를 올리다 죽은 왕을 절절히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주고, 매일 같이 집에 오는 것도 반쯤은 그 때문이었다. 담을 넘고 나서, 집으로 걸어올 때의 그 5분, 쿠니미는 벚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화사한 프리지아처럼 걸었다. 그는 잠을 잘 수 있다는 게 매우 기뻐 보였다. 연왕이 포사의 미소를 위해 봉화를 올리고 군수와 제후들을 놀라게 했듯, 하나마키는 그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며 그의 입가에 편안함을 얹는 것이었다.
쿠니미가 뒤척였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하나마키는 그 때 마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그의 귓불을 만지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려 귀가 드러났다. 하얀 귀에서부터 목으로 이어지는 선이 고왔다. 하나마키는 멍하니 그를 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그의 위속에 들어간 벚꽃 탓이었다. 그 날, 쿠니미의 머리카락에 붙어 있던 그 꽃자락 때문이었다. 하나마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것만으로도 죄를 지은 것 같아, 하나마키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가 뒤를 돌았다. 쿠니미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란 이름을 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의 눈감은 모습은 제법 어린아이 같은 태가 났다. 어른스러운 척 하려는 그 모습이 벗겨진 채였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몇 백 년을 잤어도, 왕자에게 사랑스러워 보였던 이유도 이것 때문일까. 하나마키는 익숙한 동화를 생각하다가 자리에 앉아,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는 쿠니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에게서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났다. 그는 킁킁 향을 맡다가, 그의 말간 볼에 입을 맞추었다. 서툴고, 깊은 입맞춤이었다. 하지만 쿠니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제 입술을 쓰다듬었다. 불에 댄 것처럼 화끈거렸다.
마법이 풀리지 않은 공주를 보며 하나마키는 그의 입술에 한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뒤를 돌았다. 째깍이는 시계가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위험했다. 하나마키는 바닥에 풀썩 앉아서 초조하게 얼굴을 쓸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은 여전히 숨만 색색 내뱉고 있었지만, 하나마키는 오늘 아침 받은 진로조사서의 장래희망 칸에 ‘왕자님’ 이라고 적을까, 하는 공상을 했다.
저 좀 재워주실 수 있으세요, 라고 했을 때 거절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 먹은 벚꽃잎이 그의 위 속에서 여실히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달음박 쳤다. 차가운 물을 틀었고, 그 물이 그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가려주고 있었다. 공주님은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채였지만, 왕자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상상을 하며 급하게 세수를 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꽃이 피지 않은 탓이었다. 하나마키는 화장실 벽에 기대었다. 다리가 풀려왔다. 그는 봄 때문에 미쳐간다고 애꿎은 계절에 화를 내뱉었다. 얇은 화장실 벽이 웅웅 울렸다. 하나마키는 이 점심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법이 걸리고 가시덤불이 생겨, 멍청한 초침이 더 이상 달리는 상상을 하다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 없는 핸드폰 알람은 지나가는 시간을 나타냈다. 5교시가 시작되기 10분이 남았다는 ‘모닝콜’이었다. 왕자가 아닌 선배가 로맨틱하다기보다는 기계적으로, 후배를 깨울 시간이 왔다. 하나마키는 부끄러움을 가려주던 수도꼭지를 단단히 잠갔다. 그는 쿠니미의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그의 몸을 천천히 흔들었다.
학교 가야지, 일어 나. 하나마키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나 조금만 더 잘래, 하고 웅얼거렸다. 아직 ‘후배 쿠니미 아키라’가 되기 전의 잠자는 자취방의 공주님을, 하나마키는 눈 속에 가득 담았다. 그는 진로조사서에 장래희망을 ‘왕자님’이라고 적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쿠니미를 세게 흔들었다. 방 밖에 벚꽃이 피어있었다. 쿠니미가 하나마키의 세계에서 깊은 잠을 잔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