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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쿠니] 점심시간,

:3c 2015. 2. 26. 00:40

 섹피au 하나쿠니입니다. '아침' 이라는 글과 설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나쿠니가 얼른 연애했음 좋겠습니다.

 이렇게 좋은데 왜 사약일까요.... (오열)










***


   삼학년 층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항상 원 플러스 원 세트상품처럼 묶여 다니던 배구부 일학년 레귤러 중 하나인 킨타이치였다. 하나마키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킨타이치는 곧바로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여긴 무슨 일이야? 그가 물었고, 킨타이치는 머쓱하게 뒷목을 쓸더니 쿠니미를 찾고 있다고 대답했다.


   “쿠니미는 왜?”

   “어디서 자고 있을 것 같아서요.”


   킨타이치는 체온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서둘러 제 입을 막았다. 그는 합숙 다음 날 꽤나 늦게 일어났었다. 하나마키는 다 알고 있다면서 넉살좋게 웃었다. 뱀은 이래저래 불편하네, 하나마키가 흘리듯 말하자 킨타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에는 아이스팩을 잊지 않고 챙겨줘야 하고, 겨울에는 핫팩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말을 하자, 하나마키는 그런 몸으로 배구를 할 수 있어? 하고 물었다.


   그는, 어쨌든 하고 있긴 하네요, 하고 대답했다. 킨타이치의 어깨가 으쓱이는 걸 보면서 하나마키는 자신도 찾아주겠다는 말을 했다. 역시 쿠니미 ‘애인’ 답네요, 킨타이치가 요즘 배구부 안에서 도는 농담소재를 섞어 말했다. 하나마키는 말없이 브이를 그려 보이고선 계단을 내려갔다. 겨울과 가을 사이에 있는 바람이 제법 쌀쌀맞은 날이었다. 하지만 햇살이 느긋하게 들어 낮잠을 자기 좋은 날이기도 했다.


   하나마키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킨타이치가 삼학년 층에 올라오면서까지 쿠니미를 급하게 찾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마키는 느긋하게 걸었다. 종이 어떻게 되었든 결국 하나마키는 ‘큰 고양잇과’ 동물이었다. 아오바죠사이의 넓은 교정에서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 정도는 훤히 알고 있었다. 결국 ‘강아지’인 (물론 킨타이치는 중종 늑대개였다.) 킨타이치가 쉽게 찾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는 하품을 하며 교사 뒤편에 있는 ‘신데렐라 계단’으로 다가갔다. 마법이 풀리기 전, 그녀가유리구두를 벗어가며 내려오던 그 계단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공터가 나왔다. 높은 나무가 별로 없는 그 반원의 작은 정원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었다. 하나마키는 사교회에서 만난 ‘동문’에게 들어 알고 있던 곳이었다. 그는 쿠니미가 그 곳에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 ‘비밀의 정원’의 분위기와 쿠니미는 퍽 닮아 있었다.


   그는 신데렐라 계단을 지나 좁은 길을 따라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건너 온 곳에는 익숙한 공주님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벤치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었다. 182cm라는 키가 무색하게, 그는 얌전히 의자에 수납되어 있었다. 하나마키는 살금살금 그에게로 다가갔다. 발걸음 소리를 죽이는 것은 고양잇과 동물에게는 하품을 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는 풀 밟는 소리마저 내지 않았다.


   벤치 뒤편에는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었다. 여름 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었다. 그만큼 햇볕이 강하게 든다는 소리였다. 하나마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쿠니미의 옆에 앉았다. 그의 고개는 앞, 뒤로 까딱거렸다. 차라리 벤치를 전부 사용해서 누웠으면 편했을 것을, 그는 일부러 불편하게 자고 있는 듯 했다. 점심시간이 지날 때 쯤 깨기 위해서일까, 하나마키는 하품을 하며 쿠니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고왔다.


   하나마키는 언젠가의 하교길에서 들었던 쿠니미의 고민거리를 떠올렸다. 요즘 수업 시간에 깨 있는 게 힘들어요, 하는 목소리는 졸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는 타고난 체력이 남들보다 적은 것 같았다. 그런데다가 체온까지 불규칙하니 운동을 하기에는 별로 좋은 체질이 아니었다. 귀한 집에서 귀한 손으로 자라서 온실에서 길러져야 할 도련님 같았다. 하나마키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햇살 향이 났다.


   그는 쿠니미의 바로 옆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틈만이 그들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어깨로 옮겼다. 진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그는 꽤나 깊게 잠이 든 것 같았다. 이래서는 5교시를 알리는 종소리 또한 놓칠 게 분명했다. 하나마키는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엮었다. 팔짱을 낀 다음, 그의 손을 잡았다. 혼자 도망가는 것을 막으려는 속셈이었다.


   뱀은 두 손으로 잡아도, 능청스럽게 빠져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는 이 흰 뱀을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먼저 깨서 도망치는 일이 없도록, 그는 쿠니미의 손을 꽉 잡았다. 감촉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지, 아니면 잠이 그렇게도 좋은지 쿠니미는 반응 하나 없었다. 하나마키는 그의 숨소리를 간간히 들으면서 목 안으로 웃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아, 그는 입 속에서 내내 머물던 말을 떠올렸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살짝 입을 맞췄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은 햇살 향을 가득 머금고 떨어졌다. 당장이라도 목에 이를 박고 사냥하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뭔가 굴복시키고 싶기도 했고, 소유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는 이 들쭉날쭉한 마음을 참아보기로 결심했다. 뱀은 잡기 힘든, 동물이었다.


   하나마키는 하품을 했다. 점점 햇살이 그에게도 녹아오는 것 같았다. 고양잇과 동물과 변온동물의 유일한 공통점은, 따듯한 햇살 아래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둘의 목적은 제법 다르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나타나는 행동은 같았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괜찮은 느낌이었던지라, 하나마키는 눈을 감았다. 합숙에서 끌어안았을 때 맡았던 냄새와 비슷한 향이 바람을 타고 그의 예민한 코끝을 간질였다.


   찾으면 바로 알려달라던 킨타이치가 생각이 났다. 하지만 하나마키는 이 멈춘 것 같은 시간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평소의 쿠니미라면 절대 30cm 이하의 거리감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이 변덕 심한 동물이 얌전한 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고양잇과 동물은 대부분이 노련한 사냥꾼이었고, 하나마키는 흑표범이었다. 그는 목 끝으로 다시 웃었다. 햇살은 진하게 내리고 있었다.


    가을과 겨울 사이, 그 애매한 추위에도 볕은 따듯했다. 어깨에 기댄 쿠니미가 새삼스럽게 예뻐, 하나마키는 눈을 감기가 아쉽다고 생각했다. 햇빛이 든 그의 머리카락에서 윤기가 흘렀다. 하나마키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가만가만 만지작거렸다. 그는 마주잡은 손을 괜히 바라보았다. 깨기 전 까지는 놓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잠에서 깨고 난 다음에는 뭐라고 말할까. 나 손 안 잡고 잤는데 네가 자면서 잡더라, 너 나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니? 네가 안 놔줘서 수업에 늦었잖아, 따위의 말을 생각하면서 하나마키는 눈을 감았다. 햇살처럼 졸음이 느릿하게 몰려왔다. 잡은 손으로부터 온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너무, 좋아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이 마음을 자신의 후배가 얼른 알아줬으면 했다. 실실, 입가에 걸려있던 웃음이 목 끝에서 고롱고롱 퍼져나왔다.






***

   몸이 으슬으슬한 기분에 쿠니미는 눈을 떴다. 잠시 점심시간에 눈을 붙이려던 게, 시간이 너무 지나버린 것 같았다. 목이 뻐근해서 그는 목을 양 옆으로 돌렸다. 그는 자신의 손을 누가 잡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옆을 돌았다. 익숙한 선배가 옆에서 자고 있었다. 합숙 첫날밤이 자연스럽게 번져와 쿠니미의 얼굴에 붉은 노을이 들었다. 지금 하늘에 걸쳐져 있는 것과 퍽 닮은 것이었다.


   그의 분홍색 머리카락에 주황이 들었다. 쿠니미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쿠니미의 것보다 뻣뻣한 머리카락이었지만 만지고 있는 느낌은 좋았다. 그는 언제나 소리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오곤 했다. 발소리가 없는 것이 고양이의 특징이라 하지만, 쿠니미는 그가 이렇게 다가 올 때 마다 불안했다. 하나마키는 쿠니미가 치는 모든 방어기제를 차근차근 녹여가고 있었다.


   합숙 때도 그랬다. 엉겨오는 180 넘는 남자가 뭐가 좋다고, 그는 성실하게 꼬리까지 엮어 오며 그를 안심시키고 체온을 나눠 주었다. 사람에게 나눠 받는 체온은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었고, 날이 쌀쌀해질 때면 그가 생각났다. 쿠니미는 이 사실이 별로 좋지 않았다. 선배에게 의지를 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체온 조절 같은 사적인 문제 까지 도움 받고 싶진 않았다.


   뱀은 불편하다. 변온동물이라는 한계 때문에 체온을 조절하려면 타인의 온기가 필요했다. 쿠니미는 차라리 여름이 좋았다. 여름에는 사람보다는 아이스팩에 의지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가을과 겨울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이 그리웠다. 핫팩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사무치곤 했다. 쿠니미는 괜히 그의 입술을 잡아당겼다. 개성있게 잘 생긴 얼굴이 무너지는 게 제법 웃겨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하나마키의 머리카락을 느리게 쓸었다. 그가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다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계속 이러고 있었다면 어깨는 안 아팠을까, 쿠니미는 자신과 같은 포지션인 윙스파이커 선배의 안위를 걱정했다. 자주 쓰는 손인 오른쪽 어깨에 기댔다는 게 아쉬웠다.


   쿠니미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다. 이는 그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가 예쁘다고 어깨를 빌려주고 체온을 나눠주는지 그는 이해 할 수 없었다. 하나마키는 간간히 쿠니미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후배와 선배 사이의 ‘좋아함’이라는 단어로 이런 헌신을 설명 할 수 있는 걸까, 쿠니미는 하나마키가 자신에게만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자고 있는 게 기분이 좋은지 그는 목에서 고롱고롱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쿠니미는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긁었다. 중종이라고 해도 고양이는 고양이인지라, 그는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제법 귀여운 모습이었다. 쿠니미는 일어나세요,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하나마키를 설설 밀었다. 그는 잠귀가 의외로 밝은 지, 얼른 눈을 떴다.


    “잘 잤어 허니?”


    하나마키가 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쿠니미는 잡은 손을 반대편 손으로 가리켰다. 하나마키는 능청스럽게 쿠니미를 깨우러 왔는데 말야, 날 너무 좋아했는지 다짜고짜 손을 잡더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는 거 있지-로 시작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쿠니미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나마키 또한 그의 손마디에 힘을 주었다. 연인들 끼리 하는 손장난과 같은 모습이었다.


   손을 놓아 준 하나마키는 시계를 확인했다. 그는 하품을 하면서 배구부 연습에도 늦었다는 말을 꺼냈다. 서둘러 일어서려는 쿠니미의 팔을 하나마키가 잡아 당겼다. 그는 다시 벤치에 앉았다. 으슬으슬해 지는 기온에 그는 짧게 떨었다. 어서 방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추워? 하고 하나마키가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할까, 하나마키는 쿠니미를 꼭 끌어안았다. 강한 팔힘이 자신을 옭아매는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의 체온은 적당히 따듯했다. 겨울에는 내가 필요할 것 같지? 그는 능청스럽게 물어왔다. 손난로보다는 좋은 것 같네요, 쿠니미가 건성으로 대답 한 말에 하나마키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띄웠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쿠니미는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 어둑어둑 해 지고 있었다. 너 아까 나 잘 때 목 쓰다듬었지 하나마키가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하나마키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하면서 기지개를 폈다. 어깨 안 아파요? 쿠니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나마키는 반대편 손을 어깨에 얹고 몇 번 돌리더니 유연해서 괜찮다는 말을 꺼내왔다. 다음 부터는 그러지 마요, 쿠니미는 진심으로 충고했다.


   “왜?”


   하나마키가 물었다. 쿠니미는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걸? 하나마키는 또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쿠니미가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어떤 의미의 좋아함인지 물어보려다가, 쿠니미는 말을 말았다. 그의 말이 멈춘 걸 알았는지 하나마키는 웃음을 터트렸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하나마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다가, 교복 재킷을 벗어 쿠니미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하나마키의 향이 강하게 났다. 꽃향기를 닮은 것 같기도 했고, 따듯한 햇살 같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나마키는 그에게 팔짱을 꼈다. 선배? 하고 행동의 경위를 묻자 하나마키는 그저 ‘춥잖아’ 하고 대답 할 뿐이었다.


   쿠니미는 그의 친절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조금은 의지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모르는 척 하나마키의 손을 잡았다. 하나마키가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는 걸 느끼면서 쿠니미는 애매하게 웃었다. 참으로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마키의 손은 가을과 겨울의 과도기마저 잊을 정도로 따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