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쿠니] 홍차, 우유와 설탕을 가득 넣어서
킹스맨 AU입니다. 이 글과 시간대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킹스맨의 추천인 제도는 키잡을 위한 최고의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쿠니미가 반바지에 니삭스 신을 때 부터 길러온 하나마키가 보고 싶네요 ^0^!!!
***
쿠니미는, 그를 봤을 때 무엇부터 따져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 후보는 단 둘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카게야마의 추천인이 랜슬롯이라고 확신했다. 그 카게야마가 환하게 웃으며 말할 상대는 그의 추천인 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론 때문이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오래 된 이불을 털었을 때, 공중을 부유하는 먼지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개의 목줄을 꽉 쥐었다. 이미 지워진 이름을 가진 도베르만은 그의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그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와 달리 충직한 견공은 쿠니미의 발걸음에 보폭을 맞추어 걸었다.
그가 신은 밑창이 두꺼운 구두가 소리를 냈다. 쿠니미는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그 나른한 햇살에, 그의 색이 엷은 머리카락을 떠올렸다. 그의 세상의 축은 오후에 내리쬐는 햇볕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쿠니미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이미 결심한 이상 망설이는 것은 사치였다. 그는 효율적으로 사랑하고 싶었다.
단단한 원목으로 만든 문 앞에는 예상치 못한 손님이 서 있었다. 랜슬롯, 하고 부르니 회색 머리카락의 남자는 눈을 마주쳐왔다. 그의 상냥한 모습에 쿠니미는 짧게 목례했다. 그는 그와 무슨 관계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날선 욕망을 그는 혀 아래에 숨겼다. 먹기 싫은 알약을 먹을 때처럼 입 안에 썼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쿠니미의 목소리에 랜슬롯은 문에서 비켜주었다. 그는 열린 문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갤러해드의 집무실에서는 언제나 단 향이 났다. 어린애 같은 입맛 탓이었다. 쿠니미는 개에게 앉으라고 명령했다. 지워진 이름의 개는 러그에 편하게 앉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갤러해드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분홍색 머리카락에 햇빛이 들어 반짝였다.
안녕, 하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나한테 뭐 할 말 없으세요? 쿠니미가 물었다. 나는 네 추천인이 아니란다. 갤러해드는 따듯한 물을 주전자에 담으며 말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웨지우드의 파란색이 쿠니미의 눈 안에 가득 들어왔다. 언젠가의 밤하늘 같은 색이었다.
합격 축하라면 가웨인에게서 듣도록 해. 갤러해드는 쿠니미의 추천인 이름을 말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나름대로 단호한 제스처에 그의 맞은편에 있는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목에 건 아침나절 하늘을 담은 넥타이에 든 수국모양의 스치치가 반짝였다. 가웨인이 이런 말은 안 해주던? 갤러해드는 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하얀 모래알을 눈에 담으며 물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쿠니미가 대답하자 갤러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언제나 쿠니미가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능숙하게 말꼬리를 돌리는 모습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갤러해드는 잔 두 개를 꺼내 놓았다. 찻잎은 내 멋대로 고를 거라는 목소리에 그는 성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짙은 밤하늘 여러 겹을 겹쳐놓은 듯 한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모래시계가 떨어지는 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갤러해드는 그저 하얀 모래알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쿠니미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노련한 남자 앞에서 쿠니미는 경험 없는 철부지 소년일 뿐이었다. 갤러해드는 웨지우드 티팟을 손에 들었다. 그는 거름망을 잔에 얹었다.
쿠니미의 마음에 들어 있는 찻잎은 ‘어수선함’과 ‘억울함’, 그리고 약간의 ‘질투’를 블랜딩하여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물을 붓지 않아도 진한 향을 내고 있었다. 그는 갤러해드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에 그의 도베르만이 고개를 들었다. 앉아, 하고 쿠니미가 개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고, 갤러해드는 그게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갤러해드는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찻잔 두 개를 들고 소파로 다가갔다. 그는 흔들림 없이 찻잔 두 개를 탁자로 옮겨두었고, 찬장 깊숙이 숨겨두었던 버터과자와 스콘을 꺼내두었다. 쿠니미는 제 앞으로 놓인 찻잔에 설탕을 두 개 넣었다. 갤러해드 또한 그리하였다. 단 건 좋아, 라고 속편하게 말하는 그에게, 쿠니미는 얼굴을 찌푸림으로 화답했다.
“언제 산 거예요?”
“오늘 아침.”
“왜.”
“네가 올 줄 알았거든.”
갤러해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의 머리카락에는 여전히 반짝임이 스며 있었다. 쿠니미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애써 참아 냈다. 그가 어른 같아 보이려고 하는 모든 행동들이 갤러해드 앞에서는 어린애의 유치한 놀잇거리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닫고 문득 외로워졌다.
나는 네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어. 갤러해드는 무심하게 말했다. 그것이 쿠니미가 쌓아올린 모든 행적에 대한 그의 최종 평가였다. 쿠니미는 찻잔에 손을 댔다. 도자기 너머로 희석된 따듯함이 전해져 왔다. 찻잔의 다른 이름은 분명 ‘갤러해드’의 이명일 것이었다.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있는, 불완전한 킹스맨은 고개를 숙였다.
“왜 날 추천하지 않았어요?”
쿠니미가 물었다. 갤러해드는 고개를 저었다. 알려주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그 어른 같은 척 하는 얼굴을 싫어했다. 그는 코끝이 찡해온다고 생각했다. 따듯함이 갑자기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갤러해드는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도베르만과 제법 닮은 눈길이었다. 쿠니미는 그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는 어린아이임을 확인받는 게 싫었다.
“나는 언제나 당신이 날 추천해주길 바랐어요.”
“그래?”
갤러해드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의 긴 손가락이 스콘을 뜯어 쿠니미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쿠니미는 입을 벌려 빵조각을 받아먹었다. 그는 그의 손끝을 핥았다. 대담하네, 갤러해드는 그이 행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듯 웃었다. 쿠니미가 언제나 따라가고 싶어 했던 미소였다. 그는 개에게 손짓했다. 도베르만은 빠른 걸음으로 그의 곁에 섰다. 앉아, 하고 그는 다시 속삭였다.
“나는, 언제나, 바랐어요.”
그는 절박하게 말했다. 갤러해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웨인이, 오이카와 씨가 나를 추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어요. 걱정했나요? 아니면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나요. 쿠니미는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을 혀 위에서 굴렸다. 큰 알약을 물 없이 입안에서 굴리는 기분이었다.
“이번에 떨어지면 내 프로방스 별장에 가서 청소나 하고 수틀에 수나 놓아.”
“갤러해드.”
“안전하게 지내. 총, 칼, 독, 킹스맨. 어느 것도 너한테 안 어울려. 쿠니미 너 귀찮은 거 싫어하잖아.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내 새장에 든 새처럼 지냈으면 좋겠어.”
갤러해드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쿠니미는 황량하게 빈 프로방스의 저택을 떠올렸다. 사용인 몇 외에는 오지 않는 그 속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유령처럼 부유하던 빈 날을 떠올렸다. 갤러해드가 ‘원래 이름’을 가지고 오는 날은 매우 드물었다. 쌍무지개가 뜨는 것만큼 가끔씩 찾아왔고, 그 마저도 하루를 머물지 않고 떠났다.
쿠니미는 그 빈 침실을 기억한다. 두 사람이 잘 수 있는 공간은 언제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차갑게 식은 시트는 프로방스의 따듯한 햇살도 닿지 않는 곳이었다. 쿠니미는 잔을 놓았다. 그는 제 손을 만지작거렸다. 손끝부터 다시 차갑게 식어갔다. 그는 갤러해드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없는 곳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가 물었다. 갤러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 놓인 잔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쿠니미는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에 들이 찬 자신은 매우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가까이 있었지만 태양처럼 멀었다. 쿠니미는 차를 천천히 들이켰다.
“나는,”
“미안한데, 난 어린애 투정 듣기 싫어.”
비수가 꽂히는 기분에 쿠니미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생명줄마냥 잡고 있는 찻잔의 수면이 흔들렸다. 차라리 독약이라, 마시고 죽었으면 싶었다. 그가 눈을 깜빡일 때 마다 그의 세계는 첫사랑 빛으로 일렁였다. 그는 일인극을 하는 배우처럼 고독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어요, 쿠니미는 천천히 말했다.
그의 마음에 물이 가득 채워졌다. 더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마음이 우러나고 있었다. 넓게 퍼지는 그 향을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다는 듯, 갤러해드는 그저 스콘을 입에 넣을 뿐이었다. 뻑뻑한 빵이 그의 목을 막으려 할 때 마다, 그는 우아하게 찻잔을 들었다. 쿠니미는 그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잔인한 사람, 그가 말하자 갤러해드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웃었다.
“넌 곧장 내 방문을 나서야 해. 그리고 쭉 직진해서, 오른쪽 코너로 돌아서, 네 추천인의 방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렴, 오이카와 씨 저를 추천해주신 건 감사할 일이나 저는 이제부터 프로방스의, 미스터 갤러해드 씨 소유의 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석인 퍼시빌 자리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채울 것입니다. 갤러해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쿠니미는 그의 독단적인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함께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의 작은 꿈마저 갤러해드는 담뱃불을 구두로 밟아 끄듯, 소화하고 있었다.
“하나마키 씨.”
“이게 내 사랑이야.”
쿠니미는 갤러해드가 프로방스의 침실에 놓고 온 이름을 말했다. 그의 본명을 기억하는 다섯 손가락 안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 쿠니미는 그가 입에 담는 사랑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했던 노력의 반절도 알지 못했다. 빈 침대 시트에 누워 지새웠던 밤을, 그 밤이 여러 겹 겹쳐져 만든 검은 색의 마음을 미처 헤아릴 수 없었다. 그가 입에 담는 사랑은 한없이 이기적이였다.
그는 멋대로 쿠니미가 사랑하게 만들고, 따라온 모든 다리를 끊고자 했다. 쿠니미 아키라의 모든 세계는 하나마키 타카히로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명제의 역은 성립하지 않았다. 그는 그게 슬펐고, 그게 아쉬웠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를 똑똑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래도, 킹스맨이 될 거예요, 하나마키는 그 말을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말하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하나마키가 기억하는 것 보다 5cm는 더 자란 모습이었다. 쿠니미는 찻잔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쉼표와 같은 한숨이 자리했다. 당신과 같은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를 신고, 프로방스의 날씨 따위는 기억도 나지 않는 런던 거리를 걸어다닐 거예요, 그는 확정된 것 같은 미래를 말했고, 갤러해드는 그것을 불확실한 망상으로 만들었다.
계속 반복되는 문답에, 쿠니미는 울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의 도베르만에게 손을 뻗었다. 갤러해드가 지워버린 이름을 가진 개였다. 그는 그의 귀를 느릿하게 쓸었다. 그는 귀 뒤와 목을 솜씨 좋게 쓰다듬었다. 날 불안하게 하지 말아줘요, 쿠니미는 애원하듯 말했다. 하나마키는 그가 그토록 갈구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버려진 사람은 주어진 온기에 집착하기 마련이었다. 하나마키는 자신이 어미 새라도 되는 양 따라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모르는 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착실하게 자라온 그의 사랑은 이미 맹목적인 움직임이었다. 난, 불안해요.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쿠니미가 말했다. 그는 손을 뻗어, 쿠니미의 턱을 들어 눈을 맞추었다. 그의 눈 안에는 혼자 있던 밤이 고여 있었다. 쿠니미는 외로움에 지쳐 있었다.
하나마키는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 목소리에 쿠니미가 짧게 떨었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의 눈 아래에 입을 맞추었다. 마른 입술이 닿은 자리, 반대편에 눈물길이 생겼다. 그는 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나마키는 마법을 거는 것처럼 속삭였다.
“나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변명이라면 듣기 싫어요.”
쿠니미는 웃으며 말했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눈가에 담긴 눈물보다 아름다웠다. 자신에 대한 동정은 받지 않겠다는 그 당돌함에, 하나마키는 침을 삼켰다. 지금 그에게 서툰 감언이설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고, 그에게 손을 뻗은 것은 하나마키의 자의였다. 그 손길에 의해 세계가 돌아갔고, 재구축 된 이상 책임져야 마땅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실을 말해 줄 타이밍이었다.
“난, 널 이명으로 부르기 싫어.”
“네?”
“퍼시빌이니, 가웨인이니, 랜슬롯이니 하는 역할놀이에 네 이름을 가리기 싫다는 뜻이야.”
쓴 물이 우러난 쿠니미의 세계에, 하나마키는 설탕을 한 스푼 더했다. 그는 멈춰버린 모래시계를 반대로 뒤집었다. 설탕 같은 하얀 모래알이 다시 낙하하기 시작했다. 하나마키는 손목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 침이 째깍거리며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시간은 허비한 뒤에야 아까워지는 법이었다. 하나마키는 반쯤 식은 차를 입에 머금었다.
혀가 바짝바짝 말라갔다. 하나마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쿠니미의 볼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나는 네가 날 갤러해드라고 부르는 게 싫어. 나는 너에게 영원한 ‘아저씨’고, ‘하나마키 씨’야. 그의 서툰 고백에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갤러해드란 이름 속에 담긴 그 이름을, 나만 기억하면 되잖아요? 그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햇번처럼 사랑스럽게 물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가려진 이름을 부르는 것은 너 하나로 충분하다는 말을 하면서 제 머리를 쓸었다. 목이 답답해 옴에, 그는 자신의 목을 옥죄고 있는 넥타이를 풀었다. 예법에 어긋나고 매너 없는 행동이지만 용서 해 다오, 하나마키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 매너보다는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말해 주세요. 쿠니미의 속삭이는 목소리는 하나마에게 곧장 닿았다.
“셋째, 난 널 전장에 내 보낼 생각이 전혀 없어.”
네가 들 날붙이는 수를 놓을 바늘이면 충분 해. 하나마키는 그렇게 말하면서 은제 담뱃갑을 꺼냈다. 그는 싸구려 담배를 입에 물었다. 초조해질 때만 피우시죠, 쿠니미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연극이 아니라서 그래. 갤러해드는 능숙하게 대답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쿠니미는 담뱃갑 안에 들어있던 사포와, 성냥을 꺼냈다. 그는 불을 피워, 손으로 주변을 감쌌다.
그의 담배 끄트머리에 불이 붙었다. 하나마키는 한동안 담배를 피웠고, 쿠니미는 달지 않은 스콘을 먹었다. 그는 라즈베리가 든 스콘을 좋아했고, 버터 과자를 홍차에 찍어먹는 것을 좋아했었다. 이유, 더 말해주세요. 쿠니미가 말했다. 그와 웨지우드는 퍽 어울리는 그림이었기에 하나마키는 혀를 차냈다.
집 안에서만 가두고 싶어서 그렇다, 는 이유에 쿠니미는 기각, 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하나마키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 그의 오물거리는 입술에 쿠니미는 키스하고 싶은 것을 참아내면서, 납득할 수 있는 말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마키의 기억 속 어린아이는 이렇게 집요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그가 많이 컸다고 대답했다. 그 엉뚱한 문답에 쿠니미는 눈을 깜빡였다. 젖은 속눈썹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네 이름을 좋아한다.”
“그래서요.”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어 아키라.”
아키라, 하고 하나마키는 다시 그의 이름을 입에 머금었다. 그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느냐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닿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쿠니미는 마지막을 포기하진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하나마키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 껐다. 담배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달려있던 재들이 불꽃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내가 혼자 지새웠던 밤을 알고 있나요? 쿠니미가 물었다. 하나마키는 대답 없이 그의 셔츠 아래의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우리 쿠니미는, 스물네 시간 동안 예법과 예의, 매너를 중시하는 가웨인에게 가게 될 텐데. 하나마키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넥타이를 그의 목에 걸었다. 그는쿠니미의 흰 셔츠에 자신과 비슷한 색의 타이를 매어, 매듭을 지었다. 그는 그 매듭과, 그의 목울대에 입을 맞추었다.
숨이 닿아 간질거리는 목에, 쿠니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나마키는 자신의 색으로 물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떨어지면 프로방스로 가서 자수나 배워.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쿠니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목에 걸린 넥타이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의 흰 손가락은 넥타이 매듭이 영원을 약속한 징표라도 된다는 듯, 서툴고 진득하게 쓰다듬었다.
“내가 만약 붙으면, 내 정장은 하나마키 씨가 맞춰주세요.”
한참의 침묵 끝에, 넥타이 매듭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꺼낸 목소리는 여전히 자신의 곁에 있고 싶다는 말의 변주였기에, 하나마키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웨인이 화낼 거야, 갤러해드의 말에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내 앞에서는 갤러해드가 아니라 하나마키 씨. 그의 긴 손가락이 찻잔을 잡았다.
하나마키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킹스맨 안에서 심리전의 대가라고 불리고 있던 그는, 한참 어린 후보생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갤러해드는 한숨을 내 쉬었다. 쿠니미의 눈 안에 있던 짙은 밤하늘은, 어느새 새벽을 가득 겹쳐 놓은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홍차 더 마실래? 하나마키가 물었고, 쿠니미는 우유와 설탕을 넣어달라는 말을 내뱉었다. 햇살이 느리게 움직여, 시계초침과 왈츠를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