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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 샤프소리, 비 내리는 창가, 옆에 있는 너

:3c 2015. 1. 16. 15:44

잠이 너무 와서 받은 셀프 전력 60분! 비져님이 퀘스트를 주셨습니다... 샤프소리, 비 내리는 창가, 옆에 있는 너라는 키워드였어욤. 근데 너무 졸려섴ㅋㅋㅋㅋㅋ이겤ㅋㅋㅋㅋㅋㅋ뭔소리하는건지 1두 모르겠습니다....

 

 

 

 

 

 

***

도서관이 조용하다는 것은 일종의 클리셰와도 같은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캔커피를 손에 쥐었다. 그는 캔을 매만지다가, 오른손 검지로 캔뚜껑을 톡톡 두드렸다. 어마무지하게 작은 소리였지만, 한 순간 시선이 여기로 몰린 것 같았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캔을 따 목을 축였다. 커피의 쓴 맛이 혀에 돋았다.

 

그는 캔에 힘을 주어 내려놓았다. 탁자와 캔 밑바닥이 만나는 소리는 의외로 작았다. 그는 제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오물거리다 샤프를 들었다. 열람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았다. 시험기간이 되면 정보검색실까지 사람이 가득 찬다는 소리는 과언이 아닌 듯 했다. 오이카와는 이세계의 언어가 담겨 있는 책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체육 특기생이었다. 다른 교양 교수님들은 시험지 위에 배구부라고 적으면 기본 성적을 주셨다. 아침부터 밤까지 배구 연습을 하는 터라 공부 할 시간이 없음을 배려해주시는 처사였다. 성적표에는 비록 C가 가득했지만 D를 안 주는 게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교양서적을 바라보았다. 프랑스어 문법 기초 서적이었지만 그는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없었다.

 

프랑스어를 신청한 건 자의가 아니었다. 운동부는 보통 조교가 시간표를 맞춰 짠다. ‘수업에 빠져도 C는 줄 수 있는 대형 교양 강의, 운동계열(스포츠 의학과나 체육학과) 전공을 섞어 분배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오이카와의 시간표에는 프랑스어 기초라는 과목이 들어 가 있었다. 조교의 명백한 실수였지만, 오이카와가 그 과목 수업에 반드시 나가야 하고, 시험을 봐야 한단 걸 안 것은 정정기간 이후였다.

 

모든 시간표와 학점을 계산해 넣는 대학 배구부 시스템 상, 이 과목 학점을 따지 못하면 위험했다. 3학점이 비어서 5학년 1학기를 다니게 되는 건 사양이었다. 그는 배구부 감독님께 양해를 구하고 시험이 있는 오늘 아침부터 도서관에 박혀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의 학습도서관에서 포스트잇 몇 장을 연달아 받고 쫓겨나, 도서관 열람실에 유배당하기까지 했다. 오이카와는 손에 쥔 샤프를 돌렸다. 고등학교 이후 처음 잡아보는 샤프는 의외로 묵직했다.

 

시간은 지지리도 가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일 분에 한 번 꼴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배구는 실내 경기였지만 오늘 오후 연습을 쉬는 통에, 노는 법을 모르는 남자새끼들이 자꾸 단체 라인방의 숫자를 늘려갔다. 오이카와는 자신만 공부하고 있는 이 작금의 사태가 매우 불만족스러웠다. 그는 핸드폰을 만지다가 책을 바라보았다. ‘aimer’ 동사의 변화가 적혀 있었다. 그는 왜, 동사가 변화하는지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겠다고 적었다. 모두들 그를 동정했고, 오이카와는 복잡해진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저기, 여기 앉아도 괜찮아?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커피를 마시면서 앞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회색 머리카락에 흰 피부, 단정한 인상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야하게 만드는 눈물점. 오이카와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지루하고 늘어지는 오후에 약간의 흥밋거리가 생겼다. 그는 오이카와의 시선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 곧 책을 바라보았다. 급하게 복사해 온 필기에서는 그 페이지에서 외워두어야 할 단어가 적혀있었다. 그는 그동안 몰아서 잔 잠을 후회했다.

 

Déjà-vu[남성명사] : 1. 이미 본 것 2. 기시(旣視)체험, 기시감. 마침 딱 알맞은 단어가 거기 있었다. 오이카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히터가 뜨거운 바람을 내보냈기에 그는 창문을 열었다. 창문 밖에서 차가운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그 묘한 상쾌함까지도 오이카와는 익숙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샤프를 돌렸다. 외워지지 않는 단어들이 공중을 부유하는 것 같았다. 그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가, 다시 Aimer 동사 변형을 바라보았다. 이것만 외워도 두 문제는 맞출 수 있다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고등학생 때 보다 더 멍청해 진게 아닌지 고민했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정말 하기 싫었고, 집중해야 한단 걸 알면서도 정신줄을 잡을 수 없었다. 그는 핸드폰에서 프랑스어에 대한 욕을 하다가, 앞자리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가 쓰는 샤프는 오이카와의 것과 같은 브랜드였다. 오이카와는 그 샤프 소리를 듣다가 다시 밖을 쳐다보았다. 물방울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다리를 뻗었다. 맞은 편 회색 남자의 다리와 부딪혔다. 그가 다리를 움직였고, 오이카와 또한 다리를 굽혔다. 그는 묘하게 곤란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 표정이 익숙했다. 죽어라고 빈 종이에 베껴 쓰던 Déjà-vu, 란 명사에 담겨있는 기시감이 강하게 몰려왔다. 그는 포스트잇을 꺼냈다. 너 나 어디서 본적 있니? 그는 제법 당돌한 문장을 적어 맞은 편 책상에 붙였다.

 

아니, 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글씨체는 동글동글했다. 오이카와는 그를 어디서 봤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배구, 배구인가. 그는 그가 겪었던 6년간의 학교 배구를 진지하게 회상했다. 시라토리자와에는 저렇게 착하게 생긴 애가 없었고, 아오바죠사이에는 저런 단정한 얼굴이 없었다. 다테공고는 애초에 공고였음으로 편자치가 높은 이 학교에 올 인재가 없었을 것이고, 연습시합 때문에 한 두 번 마주쳤던 학교의 선수가 이렇게 기억에 남아있을린 만무했다.

 

오이카와는 기억을 뒤집었다. 천천히 곱씹었고, 아낌없이 시간을 들였다. 그는 그러다 카라스노 고등학교를 떠올렸다. 봄고에서도 만났었던 것 같은데, 그는 하품을 하면서 눈앞에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샤프소리는 그가 올리던 토스만큼 단정했다. , 하고 오이카와는 느리게 미소 지었다. 그는 턱을 괴고 카라스노 2번 군을 바라보았다. 그를 향한 애칭도 지어줬던 기억이 난다. 2번 군, 혹은 상쾌 군. 창 밖에서 안으로 무단 침입하는 빗소리 만큼 상큼한 호칭이었다.

 

상쾌 군, 왜 여기 있어?

오이카와가 포스트잇을 보냈다. 그는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라는 답장을 전해왔다. 그렇게 쉽게 잊힐 사람이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 군 아니신가요? 하고 물었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였다. 그가 사각거리던 샤프소리가 멈추었다. 오이카와는 그 정적의 순간이 좋았다. 적어도 그것은 오이카와 토오루를 상쾌 군이 기억하고 있다는 약간의 반증이었다. 항상 너머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도서관에서마저도 너머였다. 오이카와는 그 어색한 거리감이 좋았다. 그은 그의 발을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혼난다, 스가와라가 숨결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모른 척 했어?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엮이기 싫어서, 라고 대답했다. 명쾌한 대답이었다. 오이카와는 약간 상처라고 말하면서 스가와라의 가슴팍 앞에 놓인 포스트잇에 상처라고 적었다. 그는 그가 공부하고 있는 프린트물을 보았다. 오이카와의 것과 별반 차이 없는 말이었다. 너도 프랑스어 기초야? 오이카와의 질문에 스가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알려줘, 그의 무책임한 말에 말간 얼굴에 찡그림이 올라탔다. 오이카와는 그 변화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에게 시험은 뒷전이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옆자리에 앉았다.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창 밖에서는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고, 시험 시간까지는 약 두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도서관 공기는 여전히 눅눅하고 느리게 움직였다. 다른 곳의 한 시간이 도서관에서는 세 배 정도 늘어진 채 움직였다. 스가와라는 뭘 모르느냐 물었다. 오이카와는 왜 동사가 여섯 개로 변하는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외운 것은 Déjà-vu라는 단어 하나뿐이라고 대답했다.

 

스가와라의 오물거리는 입술에서 한숨이 비져나왔다. 오이카와는 그 새로운느낌에 웃었다. 스가와라는 하얀 연습장을 펼쳤다. 상쾌한 느낌으로 눈이 시렸다. 그는 Aimer 동사 여섯 개를 적었다. 프랑스어는 너도, 나도, 그도, 그들도, 다 신경 써주니까 동사가 변하는 거야. 그래서 다 외워야 해. 스가와라의 목소리를 담은 필체는 단정했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적는 손가락 끝이 귀여웠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움직일 때 마다 글씨가 생겼다.

 

왜 달라지는데?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박였다. 이해 못 해? 라는 무례한 말이 따라왔다. 몸쪽으로 들어오는 꽉 찬 돌직구 같은 말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잖아, 오이카와는 오랜만에 만난 카게야마 토비오의 선배에게 장난을 걸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의외로 성실한 성격인지, 아니면 잘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 선을 긋는 타입인지 음,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그게 꽤나 흥미롭다고 느꼈다.

 

그야, 너랑 내가 서로 사랑을 한 대도 네가 날 사랑해주는 방식과, 니가 날 사랑해주는 방식이 다르잖아.”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오이카와는 어? 하고 되물었다. 내가 널 사랑한다면 나는 너에게 매일 전화를 걸거고, 우리 사이의 선을 허물어 갈건데, 니가 날 좋아한다면 나한테 장난을 치고, 날 괴롭히고, 내 반응을 보는 걸 더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 스가와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단순한 비유일 뿐인 말들을 내뱉었다. 그는 그래서 동사가 변화하는 거라면서 동사의 변형을 적어냈다. 애초에 이건 뒤가 규칙적으로 변하니까, 외워 둬. 스가와라의 샤프심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멍한 얼굴로 눈을 감빡였다.

 

그에게 그것은 단순한 비유였을 뿐이고, 오이카와 토오루와 스가와라 코우시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시험 기간에 빈자리를 찾아 만났을 뿐이었고, 오이카와가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기본 동사와 그 변형형에 대해서 질문했을 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들이 모여서 의미를 내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오이카와가 속삭였다. 뭐가? 틀린 거 있어? 스가와라가 물었다. 듣기에 절묘한 대답이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 혹시, 전화번호 있어? 오이카와가 물었다.

 

처음 땅에 닿은 빗방울이 다음 낙하를 불러오고,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땅이 젖는다. 오이카와는 그 첫 낙하의 순간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창가에 앉은 스가와라는 부채질을 하는 오이카와를 보더니 창문을 열어주었다. 비 내리는 날 특유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볼을 스쳤지만 두근거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스가와라가 다음에는 이걸 외워야 한다면서 적어주는 샤프소리는 심장소리처럼 점- - - 졌다.

 

그야말로, 순정만화의 클리셰같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