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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 그대의 본진에 광자포를 02

:3c 2015. 1. 20. 23:13

    오늘 낮에 올렸던 스타훌게... 그대의 본진에 광자포를 01 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반대쪽 이야기? 같은 느낌이에요. 처음 '니본진에 광자포'를 쓸 때에는 속편을 쓸 생각이 하나도 없었는데, 3이랑 4도 ...써보고 싶구 그러네요. 

   스타를 안 하시거나 모르시는 분들께도 어렵지 않게 다가갔으면 좋겠지만....잘 안 될 것두 같아서 애매한 기분입니다^0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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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일이란 지문과도 같다. 한 번 정립되면 그 사람의 특색으로 남는다. 그 분야에서 ‘최고’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그 스타일을 깨부수는 것이 필승전략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일본 프로게이머 중에서 가장 상대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선수였다.


   카게야마 토비오와 그가 ‘인간상성’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카게야마는 천부적인 센스와 컨트롤을 가지고 있지만 유연성이 부족했다. 빌드를 상대에 맞춰가는 부분이 서툴렀다. 또한 한 경기 한 경기를 너무 ‘이기려고’ 했다. 오이카와는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팀게임이었다면 다른 상대가 다른 유닛으로 카게야마를 보좌하며 이길 수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스타는 개인전이었다.


   오이카와는 이 부분을 파고드는데 능숙했다. 카게야마가 맞춰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제했다. 그는 카게야마가 짜 온 빌드를 카운터쳤고, 그의 모든 경기를 낱낱이 분석했다. 일본에서 가장 스타를 잘 하는 선수가 누구냐, 라는 질문에 ‘일등’으로 자기 이름이 나오는 일이 없다면, 일본에서 가장 잘 하는 프로토스가 누구냐라는 질문에는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이 단번에 불려 나와야 한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키타가와 제1 팀이 해체되고 나서, 카게야마가 카라스노로 이적하자마자 그에게 변화가 일었다. 맞춰가는 것도 어느 정도 따라올 수 있게 되었고, 부담감 없이 경기하는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그는 여유 있어 보였다. 어느 정도 고정 팬 층이 있는 팀에 가서 케어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 변화는 매우 급작스러웠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키타가와 제1의 소년가장이었다. 여기서 고정된 스타일을 단박에 바꾸는 것은 그가 아무리 천재라도 사람인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이카와가 그 변화의 시발점을 알게 된 것은 매우 우연한 일이었다. 그는 ‘홈 스토리 컵’ 예선전에 참가했다. 카게야마와 우시지마는 이미 초대권을 받아 독일행이 확정 난 상태였다. 분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대가 ‘fresh’ 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단 걸 알았다. 이거 누구야? 오이카와는 대진표를 보면서 물었다. 이와이즈미는 팀 카라스노의 스가와라 코우시라고 대답했다. 잘 해? 그가 물었다. 쿠니미의 폭풍함을 군단숙주로 방어하던 하나마키가 잘 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VOD 본 적 있어? 오이카와가 다시 물었다.


   마츠카와는 ‘무난하게 한다’고 대답했다. 하나마키 또한 그 말에 긍정했다. 이와이즈미도 나쁘지 않다고만 대답했고, 킨타이치는 방어선을 잘 구축한다고 대답했다. 쿠니미는 가끔 너무 잘 막아서 짜증난다는 말을 내뱉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냥 ‘그저 그런 프로토스 유저’ 구나? 오이카와는 자신이 독일에 가겠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만용이었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의외로 건실한 프로토스였다. 암흑성소를 사용한 찌르기가 날카로웠고, 꾸준한 정찰을 통해 오이카와의 빌드에 맞춰가는 센스가 돋보였다. 오이카와는 그의 소속팀과 스타일이 카게야마 토비오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걸 알았다. 흥미가 동했다. ‘올해의 프로토스’는 마땅히 오이카와 토오루의 것이어야 했다. 그는 카게야마의 스타일이 점점 완벽해져가는 이유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화가 났다.


   결국 독일, 홈스토리 컵 행 티켓을 따낸 것은 오이카와였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프로토스에게 한 경기를 밀릴 뻔 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같은 지구일텐데 어째 조지명식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의아했었다. 그는 마무리를 추적자의 ‘/춤’으로 장식했다. 추적자들의 춤을 보자마자 GG가 올라왔다. 오이카와는 다음번에도 그의 속을 긁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둘의 다음 만남은 비행기 안에서였다. 일본에서 드림핵에 참가하는 선수는 총 여섯 명이었다. 팀 아오바죠사이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였고, 네코마의 쿠로오, 후쿠로다니의 아카아시, 카라스노의 카게야마와 스가와라였다. 협회 직원이 안내 해 주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좌석을 한꺼번에 발권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창가 자리를 양보했고,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옆자리에 앉았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짧게 목례 한 다음 스가와라와 빌드 이야기를 했다. 이와, 여기서 너만 테란이야.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속삭였다. 이와이즈미는 미리 준비한 안대를 끼면서 조용히 하라고 종용했다. 오이카와는 마치 스파이가 된 것처럼 그들의 빌드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행했다. 좁은 좌석에서 간간히 그와 팔꿈치가 맞닿았다. 스가와라가 움직일 때 마다 그의 아이디마냥 상쾌한 향이 났다.


   섬유유연제도, 향수도 아니었다. 그냥 그런 상쾌함이었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흥미가 동했다. 카게야마는 전진 우주관문과 공허를 조합하는 빌드를 이야기했다. 스가와라는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하라는 조언을 했다. 선수보다는 코치가 어울리는 타입인가? 그는 눈을 감으며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이카와 선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에게 물었다. 우리 동갑인데 반말하면 대답할게요, 오이카와는 웃으며 눈을 살짝 떴다. 전진 우주관문이랑 공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스가와라는 바로 존댓말을 그만뒀다. 그 갭과 비행기의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새삼스럽게 좋았다. 오이카와는 고민하는 척 하다 ‘차라리 초반 전략이면 예언자가 좋은 것 같다’ 라는 평범한 결론을 내려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만남은 드림핵 결승에서였다. 오이카와는 오전조였다. 그는 쿠로오 테츠로를 셧다운 시켜 시간이 남았다. 군단숙주를 이용한 노련한 수비는 볼만 했지만 살모사 따위의 조합을 하지 않은 게 아쉬웠었다. 오이카와는 남는 시간동안 스가와라 코우시의 VOD를 봤다. 그가 올라올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스타일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카게야마 토비오가 어떤 느낌일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건실한 느낌의 프로토스였다. 그러나 나름의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암흑성소’를 사용하는 느낌을 떠올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옆에서 아이패드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는 트위치 중계를 켜 오후조 경기를 시청했다. 그러던 와중 오이카와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야 카게야마 졌는데, 이와이즈미가 말했고, 오이카와는 뭔가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가끔씩 뜬금없는 곳으로 그 몸을 옮기곤 했다.


   영상 보길 잘 했네. 오이카와는 단지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알 수 없이 설렜다. 결승에서 한 번에 눌러버리려고 했었는데 상쾌 군이라니 너무 아쉽네, 오이카와는 건성으로 중얼거렸다. 무대 위로 올라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오이카와는 무대 뒤에서 스가와라를 살펴보았다. 저 성실해 보이는 인상 뒤에 숨겨진 모습을 알고 싶었다. 또 만났네, 오이카와가 말을 걸었다. 스가와라는 아직도 승리에 취해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법 귀여운 표정이라 오이카와는 그걸 부셔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블리자드가 준비한 특별 공연 때문에 무대 아래로 갔을 때, 오이카와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이번에도 암흑성소 갈 거야? 라는 말에 그는 놀란 것 같았다. 그는 곧이어 왜? 라고 물어왔다. 오이카와는 그가 올라올 줄 알고 DVD를 보고 준비했다며 웃었다. 내가? 스가와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 의아해하는 표정마저 귀여워보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뭔가 ‘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완전히 읽히고 시작하는 거네.

   -암흑성소 안 가져가면 내가 좋은 거고, 가져가도 내가 좋은 거고.

   -너 치사하다. 그래서 내가 가져갈 것 같아?

   -머리 좋은 타입이니까 아마 내가 ‘안 가져갈 것 같아’ 하면 안가져가겠지.

   -대박 치사해.

   -난 우시와카가 안 나오는 경기에서는 모두 1등 하기로 결심했거든.


    그는 일부러 비틀어 말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스가와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미간을 좁힌 그 모습이 정말로 ‘무민’을 닮아 있었다. 왜 팬들이 너 무민이라고 하는 줄 알겠다. 오이카와는 그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스태프가 와서 둘에게 이동해 달라며 부탁해왔다. 오이카와는 이긴 다음에, 그의 얼굴을 보고 웃으면서 말하기로 결심했다. 스가와라는 매우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 살얼음이 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오이카와는 그 표정을 더 보고 싶었다. 도S 같은 생각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그는 일부러 ‘날빌’을 선택했다. 초반 전략으로 세 번쯤 당하고, 마지막을 운영싸움으로 끌고 가서 부셔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면 좀 더 멘탈이 깨지겠지? 라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다. 오이카와는 광자포러쉬와 암흑기사를 적절히 배합했다. 올인인 척 하면서도 올인이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멀티를 엇박자로 가져갔다.


    4세트, 마지막 세트의 운영 싸움에서 스가와라는 GG를 입력했다. 그와 동시에 하얀 테이프가 날리면서 오이카와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는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으러 부스에서 나갔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 행동했다. 화려하게 날리는 테이프 아래에서 그는 예쁘게 웃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만을 위한 플래쉬가 터졌다. 그 반짝이는 순간에서 오이카와는 뒤를 돌았다. 상쾌 군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단순한 사실이었지만 이는 파랑처럼 다가왔다. 상금 1억보다 그의 표정이 더 마음에 깊게 남았다. 그 이후에 오이카와는 샴페인을 터트리고 트로피에 진하게 키스했지만 스가와라가 잊히지 않았다. 그는 모든 걸 체념한 듯한 표정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걸 보기 싫었다. 그랬기에 그는 ‘날빌’을 더욱 더 갈고 닦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이와이즈미는 너 게시판에서 ‘인성’ 나쁘대, 라며 말을 걸어왔다. 인성포에 인성기사, 네 성격 짐작 된다던데? 그가 이어 말했고, 오이카와는 그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런 느낌으로 사랑고백을 하는 건 어떨까. 그의 마음을 이토록 두근거리게 만드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는 그 표정을 더 보고 싶었다. 비뚤어진 사랑이었다.


    그래서 오이카와 토오루는 스가와라 코우시만 보면 날빌을 시도했다. 운영싸움으로 넘어가도 마지막에는 꼭 일꾼을 끌고 갔다. 그는 그의 앞마당에, 본진에, 어디 비빌 구석이 있으면 꼭 광자포를 지었다. 꽃받침처럼 아름다운 광자포가 여러 개 모이자 사람들은 오이카와를 ‘꽃밭토스’라고 불렀고, 스가와라와의 맞대결을 ‘꽃밭록’이라고 불렀다. 오이카와는 그와 관계성을 쌓아가는 게 그저 좋을 뿐이었다.





***


    너 이번에 스가와라한테 또 날빌 쓸 거야? 하나마키가 쿠니미의 유닛을 살모사로 납치하며 물었다. 글쎄, 오이카와는 웃었다. 일단 꽃밭은 만들어 줄 거야. 아니면 하트모양으로 짓는 것도 괜찮은데 상쾌 군이 요즘 너무 심시티를 빡빡하게 하더라. 오이카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츠카와는 그가 성격이 나쁜 걸 다시 확인했다면서 혀를 찼다. 그는 그 말을 들으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앞에만 서면 그를 흔들어버리고 싶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를 성장시킨 데에 대한 1%의 복수심과, 그 흔들리는 표정을 보는 쾌감 80%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는 유투브를 열었다. 프로모션 영상이 자동재생되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는 이번에야말로 이겨보고 싶어요. 진짜 초반 전략 다 막아버리고, 이 지긋지긋한 상대전적을 청산하고 싶네요, 라고 인터뷰했다. 인터뷰마저 단정한 사람이었다. 오이카와는 흔들릴 스가와라의 표정을 생각하고 웃었다.


   “이상하게 너 걔랑 경기 잡히면 많이 웃더라.”


   마츠카와가 말했다. 오이카와는 기분 탓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각종 게임 게시판에서는 오이카와가 이번에도 ‘사랑고백’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예언자가 자신의 일꾼을 죄다 죽이는 게 아니라면 사랑고백을 할 거라고 떠들어댔다. 이와이즈미가 사랑을 이야기 하는 오이카와에게 ‘시끄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자가 발로 차이는 걸 느끼면서, 경기장에서 스가와라를 만날 순간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어서 스가와라에게 광자포를 지어주고 싶었다.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도 같았다. 짜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