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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스가] 어떤 나무의 말

달달한 동거물을 리퀘받았습니다만 좀 다크초콜릿의 쓴맛이 나는 것도 같습니다.

커플링을 말해주시지 않으셔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 같은... 이와스가를 썼는데 마음에 드실질 모르겠습니다.

히르 님의 리퀘를 받았습니다 :Q! 나희덕 시인의 어떤 나무의 말을 빌려와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때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그들의 집에는 햇살이 언제나 들어온다. 산책하지 않고도 비타민 D를 합성하고 싶다는 오이카와의 취향이었다. 커튼은 암막 기능이 없는 하얀색이며, 가구들은 대부분 모던한 디자인이었다. 식탁은 부엌과 거실 사이에 놓여 있었고, 주방은 조리대가 긴 형식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요리솜씨 및 정리 기술이 매우 서툴기 때문이었다. 조리대는 여러 재료들을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스가와라는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물뿌리개를 들고 살금살금 거실을 횡단했다. 발에는 수면양말을 신은 채였다. 그는 방 너머에 있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불편하지 않길 바랐다. 그는 햇볕이 잘 들어오는 베란다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로즈마리가 상쾌한 향을 뿜어냈다. 안녕, 어제는 잘 잤니. 스가와라는 로즈마리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는 그 이파리에다가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햇빛이 닿은 물방울은 마치 보석처럼 반짝였다.

 

   베란다에 식물 여러 개가 놓여 있는 것도 오이카와의 취향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 러닝이나 산책을 나가지 않고도 그 날 그 날 기분을 전환할 수 있길 바랐다. 2학년에 들어오자마자 주전 세터로 발령 난 대왕님의 까탈스러운 취향이었다. 스가와라는 쟈스민의 말라버린 이파리에 물을 뿌렸다. 그는 손을 들어, 오렌지자스민의 이파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 끝에 향기가 달라 붙었다.


   스가와라는 작은 가위를 들어 말라버린 부분을 잘라냈다. 그는 그 이파리들을 달고 있는 나뭇가지가 무거워 보이는 것들을 솎아내기도 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가 집을 떠날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상쾌 군, 식물은 나라고 생각하고 대해줘. 그는 그 목소리의 울림 끝에 메아리처럼 따라오던 폭력 또한 기억했다. 바보 오이카와, 그런 건 상관없잖아! 스가와라는 그 단단한 목소리를 생각하며 짧게 웃었다. 그는 게발 선인장 꽃잎을 손가락 끝으로 건드렸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번 학기 동안에는 배구부 전용 합숙소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스가와라는 기지개를 폈다. 잔뜩 뭉쳐있던 근육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분무기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흰 방문을 바라보았다. 오이카와의 절친한 친우인 그는 쉬이 방문으로 나서는 일이 없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지 약 삼개월이 되는데도 어색한 그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 쉬었다.

 

    애초에 다른 팀이었던 오이카와와 대학에 와서 친해진 것도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스가와라는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어쩐지 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오이카와는 간혹 라인으로 그의 안부를 묻곤 했다. 스가와라가 ‘아직 잘 모르겠어.’ 라고 대답하면 그는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이와는 의외로 섬세한 남자니까 친해지기 힘들지도 몰라. 라고 대답해 왔다.

 

    친해지고 싶은데 힘드네, 하고 스가와라가 투정부리듯 보낸 라인에 오이카와는 너하고 처음 뭐라고 말 해야할지 몰라서가 아닐까? 나도 너랑 배구이야기 말고 교양 교수 까다가 친해졌잖아, 하고 대답해 왔다. 스가와라는 공통화제가 없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그는 이와이즈미의 사소한 버릇이나, 행동, 취향, 취미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는 게 없었다. 오이카와에게 물어도 그는 힘내, 라는 말만 전해 올 뿐이었다.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 쉬었다. 여전히 흰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직 시험이 끝나, 집중하고 싶은 탓이겠지만 여전히 신경이 자꾸 저쪽으로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커피나 다과라도 쟁반에 들고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와이즈미 군은 뭘 좋아해? 오이카와에게서 답장은 의외로 빨리 왔다. 튀김 두부, 스가와라는 다시 물었다. 다과 중에서, 오이카와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 ‘음’을 여러 개 쳐냈다.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이와이즈미는 문 밖의 세상이 거슬렸다. 그는 처음 오이카와와 방을 나눌 때, 자신이 화장실이 붙어있는 큰 방을 선점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방 밖의 세상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거니와, 그와 함께 붙어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스가와라 코우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모순적이게도 그는 그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를 생각 할 때 마다 얼굴이 발그래지고는 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개인을 다른 물체에 비유할 때, 대부분은 큰 나무에 비유하곤 했다. 변덕스러운 오이카와가 바람이라면, 그것에 가장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나무’였기 때문이다.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그 대범한 성질 또한 그를 나무와 비유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무는 계절에 영향을 가장 심하게 받곤 했다.

 

   봄에는 꽃을 틔우며 여름에는 무거운 나뭇잎을 매단다. 머리 한가운데서 내리쬐는 햇살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밤이 길어지는 때가 오면, 그 나뭇잎들은 마치 회한과 실연을 담고 말라 비틀어져간다. 이는 후회의 기억과도 같은 것이었다. 무성히 자란 추억들을 잘라내는 과정을 겪고 겨울이 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날카로운 가지를 하늘로 뻣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스가와라 코우시는 계절과 같은 남자였다. 변화무쌍한 남자였다. 이와이즈미는 코트 너머에서 웃던 그의 상쾌한 봄을 기억한다. 가장 높은 고도에서 내리쬐는 햇살 같은 상냥함을 기억하고, 가을처럼 슬퍼하던 모습과 겨울처럼 단정했던 교복 차림을 기억한다. 아오바죠사이의 교복과는 상당히 다른, 각이 잡힌 가쿠란은 겨울, 눈이 쌓인 언덕에 비치는 볕 같은 그에게 퍽 잘 어울렸었던 기억도 이와이즈미에게는 생경하게 사무쳤다.

 

   철 지난 짝사랑이었다. 마주 들어줄 사람이 없어 혼자만 깊게 심었던 씨앗이었다. 다람쥐가 퍼트린 씨앗을 잊고 살듯, 그는 제 뿌리에 심긴 외사랑을 잊고 살았다. 몇 번은 여자를 소개받았고, 긴 연애 또한 겪었다. 그러나 그는 계절이 다시 돌고 돌아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그의 씨앗에게 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사계와 같은 버릇이었다. 고칠 수 없는 습관이었다. 한 마디 말조차 주고받지 않은 상대에게 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지만 그는 이 영화 같은 일을 몇 년째 쳇바퀴를 돌리듯 반복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씨앗이 기적적인 확률로 봄에 움트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자기가 없는 동안 하우스쉐어를 할 룸메이트라면서 스가와라 코우시를 데려왔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웃으면서 이와이즈미에게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외사랑에 마르고 말라, 가늘어질대로 가늘어져 꽃조차 맺힐 수 없는 가지에, 봄이 찾아왔다. 그는 그 때부터 오히려 그를 멀리 하기로 결심했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온다. 나무에는 꽃이 피며, 그 진자리에는 나뭇잎이 맺힌다. 그것을 추억이라고 정의한다면, 혹은 사랑이라고 가정한다면- 결국 그 아름다움은 낙엽이 되어 떨어질 날만 남은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감정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를 잘 알지 못하고, 상상속으로만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끊임없이 회귀했다. 그를 알게 된다면, 품고,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이 파급력은 어마무지 할 것이었다.

 

   자연에서의 계절은 끊임없이 나무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지친지 오래였다. 그는 다만 날카로운 가지를 곧추세울 뿐이었다. 허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차가움을 벼려 가지처럼 세웠다. 그가 보내는 제안을 거절 할수록 속이 곪아오는 듯 했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의 옷깃에만 스쳐도 봄이 오고, 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피어나는 것이 무서웠다. 무거워져,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잎사귀라면 차라리 가지지 못하는 것이 속이 편했다.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전공책에 금을 그었다. 흑연이 사각거리를 소리를 냈다. 방문 뒤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 정갈한 노크소리는 스가와라의 것이었다. 네, 하고 대답하니 들어가도 되느냐는 친절함이 묻어왔다. 그의 가지에 꽃대가 돋는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허나 ‘룸메이트’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상 거절 할 명목이 없었다. 그는 네, 하고 대답했다. 경어는 그의 마지노선이었다.

 

   스가와라는 고구마를 졸여 달게 만든 맛탕과 아메리카노를 가져왔다. 튀김 두부를 좋아한다기에, 비슷한 간식으로 만들어 왔다는 말은 여전히 경칩이 지난 후, 움트기 시작하는 계절처럼 이와이즈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 말이 무서웠다. 암막 기능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흰 커튼 너머에서 햇살이 진하게 비춰져 왔다. 서서히 여름이 되가는 계절 사이에서 이와이즈미는 움트려고 하는 자신을 옭아매고 싶었다.

 

   싫어해? 하고 그가 물었다. 이와이즈미는 좋아해요, 하고 대답했다. 어색한 경어에 그의 얼굴에 살얼음이 피는 것이 느껴졌다. 이와이즈미는 쓴 입을 다셨다. 그렇지만 가지에 나부낄 황홀 대신, 관에 들어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큰 외사랑에는 잘못 씌워진 겉껍질이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는 그 갭에 실망하게 될 자신을 가정했다. 이와이즈미 군은 나하고 이야기 하는 게 싫어? 스가와라가 물어왔다.

 

   눈에 벚꽃이 들어와 꽃잎이 흩날리는 기분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세례이자 종교일 그에게 간청하고 싶었다. 부디, 저를 꽃피우지 말아달라고. 진하게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스가와라의 머리카락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요즘 바빠서, 라고 핑계를 댔다. 시험 끝나면 나랑 커피 마시러 가자, 라는 제안이 되돌아왔다. 이와이즈미는 그의 친절함이 가시꽃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끝은 낙엽이지 않을까, 묘한 불안감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우린, 룸메이트잖아. 스가와라가 친절하게 말했다. 룸메이트라고 규정 된 딱딱한 사이였지만, 그 경직된 사이를 비집고 꽃이 움트는 것만 같았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메마른 가지를 가진 나무였다. 그는 아득하게 다가온 최초의 봄에 눈이 시리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봄이었다. 



나부끼는 황홀대신

스스로의 관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피우지는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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