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2015. 3. 29. 22:31
저희 집 앞 정류장, 횡단보도의 신호가 꼭 저렇게 바뀌던데, 왜 저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되게 시적이라고 생각합니다:3c 너무 좋아서 불안 해 하는 오이카와가 좋아요! 슈가도 슈가 나름대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비슷한 소재로 다뤄보고 싶네요!
***
집 앞 정류장 앞 횡단보도는 이상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중앙선을 기준으로 왼쪽 신호등이 먼저 켜진다. 어물어물하게 십오 초쯤이 지나면 맞은편 신호등도 초록불이 된다. 이 때 먼저 켜진 왼쪽 신호는 여전히 초록불이다. 언뜻 보면 양 쪽 신호가 한꺼번에 켜지고, 한꺼번에 빨간불이 되며, 좌회전 신호가 켜지는 신호등 같기도 했다.
결국 먼저 깜빡이는 건 좌측 신호였다. 파란 불빛이 깜빡, 깜빡이며 빨간 불이 켜지기 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속삭였고, 우측 신호는 여전히 쨍한 초록색을 머금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 광경을 꽤나 좋아했다. 또 가물가물하게 십오 초가 지나면 두 신호는 동시에 깜빡인다. 늦게 흔들리는 것은 우측 신호등이었지만 언뜻 보면 둘 다 동시에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오이카와는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었다 서고, 또 제각각의 목적지로 떠나는 광경만큼 이 풍경을 좋아했다. 그는 좁은 별에서, 조금씩 의자를 뒤로 물려가며 계속 석양을 바라봤다는 어린왕자를 떠올렸다. 어린왕자는 몹시 슬플 때 석양을 바라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어린왕자』의 ‘나’는 작은 소년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마흔 네 번이나 석양을 본 날, 너는 몹시 슬펐니?
이 질문에 어린왕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오이카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반대편 정류장 너머로 넓게 퍼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건널목에서는 신호등이 깜빡였다. 반짝, 반짝 거리면서 점멸을 뜻하는 좌측 신호등과 대조되게, 우측 신호등은 가만히 서 있다. 곧 빨간불이 되려는 좌측을 모르는 탓이었다.
완벽한 평행에서 서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노을과 같은 색의, 빛바랜 중앙선을 기준으로 좌측과 우측 신호가 깜빡이는 걸 바라보았다. 왼쪽이 빨간색이 됐는데도, 오른쪽은 미련을 남기고 반짝였다. 반짝, 반짝, 그리고 반짝, 반짝. 그는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았다. 그는 그것이 퍽 사랑이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멋없는 은유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연인을 떠올렸다. 그는 가끔씩 그 사랑을 생각하면 노을처럼 아련해지곤 했다. 그의 웃음은 상쾌하게 부서지는 아침 햇살을 닮았고, 성격은 온유한 밤하늘을 닮았다. 져가는 해와 퍼져가는 노을은 스가와라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도, 오이카와는 간혹 그를 노을에 비유하며 우울해지곤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을 전화로 시작하고, 끝을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로 장식했다. 간간히 먹은 것이나,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즐거워했다. 아오바죠사이와 카라스노는 의외로 먼 곳에 있었지만 마음이 멀다고는 한 번도 생각 해 본적이 없었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들킨다면 혼이 날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해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엇갈리며 켜지는 신호등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먼저 ‘좌측 신호’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깜빡이는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하면 어쩌지. 오이카와는 불안함에 손을 까딱였다. 미련이 남은 우측 신호도 결국엔 붉은 불을 담는다. 그는 스가와라가 끝을 말하는 광경을 생각하고 소름끼쳐했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파랑’이여야만 했다.
종점이 ‘농수산 시장’인 버스 여러 대가 그를 지나쳤다. 스가와라가 했던 비유가 그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말야, 사랑이 종점에는 없다고 생각해. 오이카와는 그 말에 짧게 몸을 떨었다. 나는 버스, 너를 태우고 지나가고, 너는 언젠간 내리게 되어 있는 거지. 정류장에서 환승할 다른 버스를 기다리던, 거기서 곧장 집으로 가던, 올라 탄 버스에 주구장창 있을 수는 없는 거야. 그치?
오이카와는 ‘그치’를 발음하며 눈웃음치던 스가와라를 떠올렸다. 지금 당장 보고 싶었다. 그는 핸드폰의 메신저를 켰다. 스가와라는 귀여운 스티커와 함께, 조금 남았다는 말을 남겨놓았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 쉬었다. 너무나도 좋아하게 되면 이런 점이 불편했다. 항상 끝을 가정하고 불안해 하다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다. 오이카와는 스쳐 지나갔던 버스들을 떠올렸다. 그네들은 언제나 오이카와의 끝이 더럽다고 말하곤 했다.
사랑에 찌질 한 건 당연 한 거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노을은 정류장 너머 하늘에 짙게 깔리고 있었다. 어느새 너무 좋아져 버려서 불안했고, 불안함 때문에 슬펐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봄의 한가운데였지만 아직 저녁은 추워서, 그는 아오바죠사이의 져지 재킷을 여몄다. 이번에는 헤어지기 싫었다. 둘 다 켜져 있는 초록불로 평행을 유지하고 싶었다. 언제나 버스에 타고 순환노선을 빙글빙글 돌고만 싶었다.
이런 불안감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더 좋아하면 지는 거라던 연애 격언을 떠올리면서 오이카와는 푸스스 웃었다. 그에게 할 말을 여럿 고민했다. 나 이제 다음 정류장이야, 하고 스가와라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이카와는 어서 오라고 재촉했다. 그 재촉 끝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반대편 정류장에서 멈춘 버스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내리는지 초록 버스는 잠시 동안 머물렀다.
버스가 신호를 받아 사라지는 그 순간에 오이카와는 저 너머에 있는 스가와라를 발견했다. 잘 모르는 곳에 내려서 두리번거리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그는, 큰 소리로 코-우-시- 하고 소리를 냈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신호등 앞으로 다가갔다. 오이카와는 정류장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하고 싶은 수백 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었다. 그는 그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의 앞을 버스 몇 대가 스쳐지나갔기에 스가와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그 짧은 순간이 영화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말에서 파생되는 여러 사랑을 떠올리다가 신호등 앞에 섰다. 아직 빨강인 신호, 동시에 바뀌는 하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둔 신호등 사이에 서서 그들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해야 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색해서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건널목 너머에 연인이 있다는 게 괜히 부끄러웠다.
스가와라는 왜- 하고 소리쳤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스가와라 또한 입술을 쭉 내밀었다가, 다시 그 끝을 당겨 웃고, 다시 땅을 보다가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좌측 신호가 먼저 켜졌다. 오이카와는 제 심장소리를 세었다. 콩, 콩 거리는 맥이 열다섯 번쯤 뛰었을 때 우측 신호가 초록이 되었다.
―여기 신호 이상하게 바뀐다, 그치?
스가와라가 말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꼭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수백 가지 밀어들과, 수천 가지 두근거림이 빠르게 휘발되기 시작되어 가장 전하기 부끄러운 한 마디만 남았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손을 바라보았다. 하얗고 가지런한 손이었다. 나 배고파, 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먼저 걸었다. 스가와라는 그와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머릿속이 이래저래 복잡했다. 하지만 꼭 말해야만 했다. 오이카와는 모든 불안감을 그 단어에 꾹꾹 눌러 담았다. 멀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다가 그는 입술을 먹었다. 스가와라는 여즉 아까 그 신호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오이카와, 듣고 있어? 하고 그가 물었을 때, 오이카와는 그게 사랑을 담은 은유 같지 않느냐 말할 뻔 했다. 지금 그가 품고 있는 불안감을 들키긴 싫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타이밍을 못 잡겠어. 오이카와의 말에 스가와라는 걸음을 멈추었다. 들어줄 게, 그는 상쾌하게 말했다. 밤 바람이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사랑해.”
오이카와는 모든 좋은 말이 휘발되고 나서 남은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새삼스럽게, 헤어지자는 말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 쉬었다. 오이카와는 그 말은 절대 제가 말할 리가 없다면서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기 니 사는 덴데 괜찮누? 스가와라가 물었고 오이카와는 좋아하니까 잡는 거라면서 투덜거렸다. 그것도 몰라? 바부, 오이카와의 목소리 끝에 스가와라의 청량한 웃음이 걸렸다.
아직은 두 신호등 다 초록색을 먹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올라 탄 버스가 순환버스이길 바랐다. 그는 굳이 깜빡임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찾아 올 종점과 다가올 빨간 불은 길을 건너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었음으로. 오이카와는 그의 손을 세게 잡았다. 새삼스럽게 부끄럽다는 스가와라의 말과, 그 끝에 걸린 웃음이 그의 손바닥을 괜히 간질였다.
―이번 벚꽃 4월 4일 경에 핀대.
오이카와는 괜히 말을 돌리면서 입술을 내밀었다. 나 그 날 시간 괜찮아. 스가와라의 말에 오이카와는 이번엔 자기가 가겠다면서 허둥댔다. 스가와라는 언젠가 동물원에서 벚꽃 야간개장이 하면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오이카와는 환하게 피는 꽃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들은 초록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길가 정류장에 버스가 다가왔다. 아무도 내리지 않은 버스는 정류장을 지나쳐 속도를 내, 다음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스가가 너무 좋아.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알고 있어. 대답은 오이카와가 품고 있는 무거움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볍고 상쾌하며, 뿌듯하게 다가왔다. 아직은, 이걸로 됐다.
[오이스가] 라일락 마파두부, 하얀 우산 (0) | 2015.04.05 |
---|---|
[카게스가] 너 ; 반짝반짝 빛나는, (0) | 2015.04.02 |
[하나쿠니] 거짓말 (0) | 2015.03.28 |
[오이스가] ㅇFはん영화 (0) | 2015.03.28 |
[오이스가] 사랑은 열린 문 (0) | 2015.03.27 |
:D | 2015. 3. 27. 00:17
예전에 봄디님이 스가 자취방의 스페어 키 가지고 썰풀어주신 걸 써와봤습니다:Q!! 봄디님 4랑해요!!!!
***
오이카와 토오루는 문을 두드렸다. 똑, 또독 똑-똑. 문 안에서는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저기 슈가, 우리 눈사람 만들래? 굳게 닫힌 철제 문 안에서 ‘고 어웨이’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가와라는 조금의 쉼표 끝, 셋잇단음표처럼 귀엽게 문을 열어줄 게 분명했다. 오이카와는 주머니 안에 든 스페어 키를 만지작거렸다.
얼마 전에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일일이 문 열어주기 귀찮아, 라는 남자다운 이유 때문이었다. 연인 사이의 로망도, 간질거리는 로맨스도 없는 마음이었지만 오이카와는 그게 퍽 마음에 들었다. 스가와라가 ‘자신’만을 나름대로 ‘생각’해서 준 ‘자취방 열쇠’. 그는 나름대로 그 열쇠에 담긴 마음을 해석했다. 몇 번을 머릿속으로 굴려봐도 스가와라의 자취방 두 번째 자물쇠 열쇠가 의미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사랑, 사랑이었다. 오이카와는 ‘사랑의 열린 문’을 입에 머금어 불렀다. 그가 겨울왕국 OST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는 문이 열리기 바라면서 얇은 철문을 바라보았다. 스가와라가 사는 원룸 문은 조잡했고, 통로는 좁았다. 사람이 지나갈 때 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마음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열쇠는 있지만 문을 제 손으로 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안나’의 목소리를 허밍으로 흉내냈다.
그렇게 오이카와가 마음속으로 몇 개의 노래를 부른 다음에서야 스가와라는 문을 열었다. 버림받은 줄 알았어, 라고 가볍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젖은 머리카락과 물 묻은 티셔츠를 손가락질했다. 네가 서운하지 않게 ‘고 어웨이’를 외쳐줬을 때, 나는 막 머리에 거품을 낸 다음이었어. 스가와라는 잔뜩 투덜거렸다.
“애초에 너 스페어키 가지고 있잖아.”
스가와라는 티셔츠를 갈아입으며 말했다. 오이카와는 바닥에 앉으면서 그걸로 따고 들어오는 건 낭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의 연인은 제법 시니컬하게 볼장 다 본 사이에 무슨 낭만이 있냐면서 투덜거렸다. 슈가는 로망이 없어, 오이카와는 투덜거리며 스가와라에게 두 팔을 벌렸다. 머리카락을 말려주겠다는 뜻이었다. 스가와라는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몇 번 털어내더니, 그의 앞에 앉았다.
그는 하얀 수건을 들어 스가와라의 머리카락을 털어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스가와라는 눈을 감으며 머리를 꾹꾹 누르는 그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나는 상쾌 군이 문 열어주는 게 좋아. 오이카와가 그의 머리카락을 꾹꾹 누르며 말하자 스가와라는 의미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그 뒷말을 씹어 삼켰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소녀 같은 발상이었다. 오이카와는 얌전히 두 손에 수건을 잡고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꼼꼼히 털었다.
레포트 썼어? 스가와라가 물었고, 오이카와는 대충, 이라고 대답했다. 배신자라고 곧바로 따라오는 목소리에 그는 밝게 웃었다. 수면 위에 반짝반짝하게 든 윤슬 같은 느낌이었다. 하얀 레이스 커튼 너머로 자취방 창문에서 햇빛이 스믈스믈 들어왔다. 싼 원룸 치고는 채광이 좋은 곳이었다. 오이카와는 드라이기를 들었다. 늬 집에 왁스 없지? 그의 장난스러운 어조에 스가와라는 팔을 들어 허벅다리를 꼬집었다.
“몇 분이나 기다렸어?”
“오이카와 씨의 콘서트가 성황리에 개최 될 정도로?”
오이카와의 은유를 스가와라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몇 번쯤 그가 이런 비유를 써 먹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기다렸네, 하는 말은 드라이기의 윙윙대는 소리에 가려 사라졌다. 오이카와는 ‘중간’ 세기의 따듯한 바람으로 스가와라의 머리카락을 포슬포슬하게 말렸다. 열쇠 까먹었어? 그가 다시 물었고 오이카와는 확실하고 큰 목소리로 아-니, 하고 대답했다.
그럼 왜 기다리고 있던 거야? 놓고 왔어? 스가와라는 다시 질문했다. 오이카와는 그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놓친 행간이 있는지 고민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는 고민을 할 때 입술을 오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오이카와는 손을 뻗어 그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다가 다시 머리카락으로 손을 옮겼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눈치 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묘한 부분에서 아저씨 같은 구석이 있었고, 오이카와는 애매한 부분에서 소녀 같을 때가 있었다.
“줘도 써먹들 못혀.”
“내가 알아서 써먹을건께 걱정을 하덜말어.”
“왤케 못 미더운지 모르겄네. 니 열쇠 쓴 적이 없잖어.”
“그건 그렇지만서두, 내가 그렇게 니한테 신용이 없었는감?”
오이카와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눈을 감고 뒤로 누웠다. 오이카와는 그의 이마와, 부드럽게 붕붕 뜨는 앞머리를 잡아 흐트러트렸다. 오이카와는 오늘도 ‘네가 문을 열어주는 게 좋아’라고 말하지 못 함을 안다. 그는 자신이 왔다는 ‘똑, 똑똑 똑-똑.’ 하는 노크에 스가와라가 두근거리길 바랐고,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까지 도달하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오이카와 토오루를 온전히 생각하길 바랐다.
이런 부끄러운 이유를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이카와는 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설설 쓸었다. 린스 칠이라도 했나베. 오이카와의 말에 스가와라는 오랜만에 해봤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오이카와는 드라이기를 끄고 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정리했다. 빗 보다 오이카와 씨 손이 기분이 좋제? 그의 당당한 물음에 스가와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분명 ‘좋다’는 뜻을 가득 함축하고 있었다.
셋잇단음표와 스타카토 같은 기분이었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꾹 닫고 목으로 허밍했다. ‘사랑은 열린 문’의 후렴 부분이었다. 오이카와가 먼저 올린 무-우-운 부분에 스가와라가 곧장 따라왔다. 오이카와는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간지럽다 야, 스가와라가 쿡쿡 웃는 목소리가 너무 달아 오이카와는 질식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는 그게 오이카와임을 알고 있었다. 자취방 열쇠를 가지고 있는 건 두 사람 뿐이었다. 쓰라 할 때는 지지리도 안 쓰더니, 그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때만 문을 따고 들어왔다. 지독한 악취미였다. 어쩜 그렇게 기분 나쁠 때를 귀신 같이 아는지, 스가와라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렸다. 내가 깨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날 ‘건드리지 말라’는 나름대로의 의사 표현이었다.
오이카와가 내 쉬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이불 안에서 눈을 떴다. 오이카와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그의 잠을 완전히 내쫓았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이불 안감의 붉은 색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그는 오늘 한 발표 실수를 떠올렸다. 그래프를 완전히 반대로 해석했다는 걸 발표 중간에 알아버린 날이었다. 질문 시간이나 다음에 수습했으면 될 것을, 대본을 그대로 읽어버리기까지 했다. 옷차림을 지적 받았고, 교수가 던진 다섯 가지 질문 중 두 가지를 대답하지 못했다.
‘암울함’이라는 단어를 정제한다면, ‘스가와라의 오늘’이 될게 분명했다. 오이카와가 식기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뭔가를 만드는 듯 했다. 나 안 아프니까 가- 스가와라는 조곤조곤히 말했다. 이런 날에 죽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곤죽처럼 푹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이불 너머 소리가 들렸는지, 들리지 않았는지 오이카와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결국 속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그는 이불을 목 부근으로 내리고 몸을 돌렸다
“뭐 해?”
“상쾌 군은 티라미수의 뜻을 알아?”
스가와라는 그가 티라미수를 만드는구나, 하고 짐작했다. 죽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스가와라는 모른다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그 작은 케이크에 ‘기운이 나게 하다- 기분이 좋아지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 하면서 생크림을 차가운 볼에 휘핑했다. 그가 속삭이는 케이크의 이름은 품고 있는 사랑스러움 만치 달콤했다. 배구 선수의 팔 힘으로 치는지라 생크림은 전동믹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 주는 거야? 스가와라는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망토처럼 둘렀다. 오이카와는 바로 그거라면서 시트를 깐 컵을 내밀어 보였다. 나 오후 연습 있으니까 빨리 만들고 가야 하거든? 뒷정리는 다시 문 따고 들어와서 할 거니께, 니는 푹 잠이나 잤다가 일어나서 꺼내 먹어. 그는 빠르고 발랄하게 말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불이 따라 움직이는 모습에 오이카와는 빨간망토 같다며 나름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너 니 손으로 문 따고 들어오는 거 싫어하잖어.”
“내 맘 속으로 정해 놓은 기준이 있어.”
“진짜?”
“안 믿음 말구.”
오이카와는 간질거리게 웃었다. 스가와라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오이카와는 크림치즈믹스와 생크림을 섞어 다시 몇 번 저었다. 맛이 없어도 달게 했다 야, 그의 말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좋아, 라고 말 하면서 꺄르르 웃었다. 여고생 같은 웃음이었다. 그는 스가와라가 가장 좋아하는 컵, 그 안에 깐 카스테라 시트에 커피시럽을 바르고, 크림을 넣었다. 그는 그 순서를 반복하며 층을 쌓았다.
스가와라는 턱을 두 손으로 꽃처럼 받치고 그를 바라보았다. 니 애인한테 넘 많이 반하지 말어, 내가 내지만 질투나. 오이카와는 예쁘게 웃어보였다. 그의 웃음에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 간질거리는 것도 같았다. 그는 컵 위에 코코아가루를 뿌린 다음, 몇 개를 더 만들었다. 손이 큰 만큼 손이 큰 모양이었다. 그는 그걸 냉장고에 얌전히 넣어 둔 다음, 좀 자! 하고 퇴장했다. 갑작스러운 퇴장에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였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청소 내가 할텐게 니는 잠이나 자, 라는 메시지가 바로 도착 해 있었다. 문이 닫히고 잠기는 소리가 찰칵거리며 들렸다. 스가와라는 그가 자주 부르곤 하뎐 겨울왕국의 OST를 떠올렸다. ‘사랑은 열린 문’으로 덥썩덥썩 들어오는 게 분명했다. 그는 아직 실수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지만 기분은 조금 좋아진 것도 같았다. 스가와라는 베개를 고쳐 베고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냉장고에 들어 있는 사랑을 적당한 온도로 그를 반길 것이었고, 그가 자는 사이 문을 따고 들어온 오이카와는 설거지를 해 뒀을 것이다. 아무것도 해결 되지 않은 날이었지만 조금 괜찮아졌다. 스가와라는 스페어 키를 잘 줬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오이카와가 제 자취방을 따고 들어온 날은 다 ‘이런 날’이었다는 걸 알아채고 웃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하나쿠니] 거짓말 (0) | 2015.03.28 |
---|---|
[오이스가] ㅇFはん영화 (0) | 2015.03.28 |
[하나쿠니] 동거 (0) | 2015.03.26 |
[하나쿠니] 봄, 봄. (0) | 2015.03.26 |
[카게스가] 봄, 사랑, 벚꽃 말고 (0) | 2015.03.22 |
:D | 2015. 3. 15. 22:29
스가른 전력에 [사탕]이라는 주제로 참가했습니다.
오이카와를 짝사랑하는 슈가 군이 보고 싶었습니다 ^//^!!!! 남자답게! 서툴게! 고등학생!답게 짝사랑하는 슈가가 좋습니다. 사랑은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오이스가 연애 해~ 사랑 해~!!!
***
첫 홍삼사탕의 기억은 ‘리시브는 하루아침에 느는 게 아니다’는 설교를 마친 후였다. 오이카와는 선전포고에 가까운 말을 한 다음에 멋있게 뒤를 돌았고 몇 걸음을 걸어갔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다 넣었을 때 쯤, 그는 후두부를 무언가가 자신의 후두부를 강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이카와는 멋없게 다시 뒤를 돌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봉지를 들었다. 검은색 포장지에, 붉은 홍삼이 그려져 있었다. 난데 없는 ‘홍삼사탕’의 등장이었다. 그가 어리둥절 하면서 홍삼캔디를 들고 멍하니 서 있자, 까마귀 무리에 있던 한 사람이 소리쳤다. 아까 벤치 쪽에 있던 멤버였다.
“너 말 함부로 하지 마!”
홍삼사탕의 달짝지근하고 늘그수레한 맛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였다. 오히려 상쾌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오이카와는 사탕으로 맞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다시 뒤를 돌았다. 스가 선배 후두부 서브는 너무하잖아요, 하면서 스님 머리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까마귀 쪽에서 들려오는 여러 목소리들은 팝콘 같은 웃음으로 터져 나왔다.
오이카와는 다시 뒤를 돌았다. 까마귀들은 무리지어 교문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사탕을 던진 회색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상큼하게 늙은 군. 상큼-늙은군. 애늙은이군. 오이카와는 그의 애칭을 고민하면서 뒤를 돌았다. 포지션이 어떻든 코트 위에서는 통 만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늘어지게 하품했다. 노을이 그의 머리카락에 진하게 들었다.
오이카와가 두 번째 홍삼사탕을 받은 것은 연습시합 때였다. 여름 인터하이가 시작되기 전에 ‘카게야마’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고 싶다는 감독의 고집 때문이었다. 같은 지구에 있는 상대와, 인터하이 한 달 전에 연습시합을 하는 건 ‘불문율’을 어기는 행위였지만, 연습시합은 의외로 쉽게 성사되었다. 아오바죠사이는 3세트를 해서 두 번 연달아 이겼고, 그 ‘상큼 군은 연습시합의 스코어보드를 넘기는 역할이었다.
여전히 리시브가 약하다면서 카게야마를 보며 웃자, 얼굴을 찌푸리는 건 ‘상큼-늙은’군이었다. 그는 툴툴 거리면서 서브를 넣는 폼을 취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비닐봉지는 그의 이마를 정확히 강타했다. 허둥지둥하며 손을 밑으로 내려 받으니, 그 곳에는 ‘홍삼 사탕’이 있었다. 여전히 늙은 취향이었다. 오이카와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그는 자신의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스가와라 선배! 카게야마는 그의 뒤를 곧장 따라 갔다. 오이카와는 그의 건방진 후배를 더 골려주고 싶었지만 뒤를 쫓아갈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다. ‘취향이 늙은 상큼한 소년’의 이름이 ‘스가와라’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손에 홍삼 사탕을 쥐어주었다. 이와는 쉬는 날에 방에서 배만 지지고 있는 늙은 취향이니까, 이런 거 잘 먹지? 라는 말과 함께.
이와이즈미는 그의 가슴팍에 홍삼 사탕을 던졌다. 하나마키와 마츠카와가 웃음을 터트린 가운데, 오이카와는 자신의 가슴에서 떨어지는 사탕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저번에 ‘받은’ 홍삼 사탕을 먹지 않은 채였지만, 왠지 챙겨가야 할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짐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스가와라’를 회상했다. 그의 얼굴이 조금 붉은 것도 같았다. 오이카와는 리시브가 약하다는 말을 듣는 게 그렇게 싫나 짐작 할 뿐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세 번째 사탕의 기억을 떠올렸다. 역 앞 분수대에서 받은 물건이었다. 상쾌 군도 약속 있어? 라고 묻는 말에 응 있어, 하고 대답하면서 손에 쥐어준 것이었다. 그것 또한 먹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에게 사탕을 받을 때 마다 기분이 멜랑콜리 했다. 그저 스가와라가 그 사탕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짐작 할 뿐이었다.
좋아하는 걸 주는 건 날 좋아한다는 뜻인가? 오이카와는 철없이 생각했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이와이즈미는 그의 ‘홍삼 사탕’이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고, 하나마키는 좋아했다면 좀 더 상큼한 걸 던졌을 거라고 대답했다. 마츠카와는 그래도 그 홍삼사탕 군이 재미있는 사람일 거라고 추측했고, 쿠니미는 어찌 되었든 그걸 먹지 않는다는 건 오이카와가 상쾌 군을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물었다.
신경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섯 번째 홍삼 사탕을 만졌다. 역 앞 분수대에서 세 번째 사탕을 받은 그 날, 그는 네 번째 사탕도 받았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둘은 옆자리에 앉았다. 별 이야기를 할 사이가 아니었기에, 둘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Maroon 5의 ‘Sugar'를 듣고 있었고, 그의 이름에 들어가는 ‘스가’가 ‘슈가’와 비슷한 발음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내린 건 ‘홍삼사탕 군’이었다. 그는 내리기 전에 주머니에서 손을 꼬불거렸다. 그는 후드 집업의 주머니에서 검은색 사탕을 꺼냈다. 예의 그것이었다. 너 이거 진짜 좋아하는구나? 오이카와가 물었고, 스가와라는 너 진짜 눈치 없구나, 하고 대답했다. 오이카와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을 때, 버스가 멈췄다. 스가와라의 대답은 ‘환승입니다’ 라는 소리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오늘 받은 홍삼사탕을 만지작거렸다. 오늘 경기가 끝나고 받은 것이었다. 그는 버스에 타기 전 홍삼사탕을 건넸다. ‘서브’가 아니라 손에 쥐어준 것이었다. 오이카와가 내민 두 손에 그는 사탕 여러 봉지를 쏟아두었다. 나 홍삼 사탕 싫어해, 오이카와가 말했고 스가와라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새로운 종류의 이지메인가요? 그가 눈치 없이 물었고, 상큼 군은 멋대로 생각하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홍삼 사탕이라니 너무하잖아.”
“너무 해?”
스가와라는 그의 말꼬리를 잡고 샐쭉 웃었다. 그 동안은 낱개였는데, 지금은 왜 봉다리 채인데? 오이카와가 다시 물었다.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노을이 그들의 머리카락에 들어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한 뼘은 작은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정수리가 둥그렀고, 얼굴은 좀 붉은 것도 같았다. 지기 시작한 해 때문이었다. 스가와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오이카와의 주변에서 머뭇거리는 여자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단박에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그의 변화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야 다른 사탕은 여자애들이 많이 주잖아? 스가와라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나도 상큼하지 않았다. 오히려 눅진거리는 홍삼젤리, 홍삼사탕의 느낌이 났다. 너 꼭 이거 같아. 오이카와가 말하자 스가와라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홍삼 사탕이야? 오이카와 씨는 우유 맛이 좋아.”
“그 편이 기억하기 쉬우니까?”
스가와라는 즉답했다. 오이카와는 어? 하고 물었다. 스가와라는 다시 똑똑히 말했다. 그 편이, 기억하기 쉽잖아. 그의 말은 노을처럼 느리게 오이카와에게 퍼지고 있었다. 그는 그 말을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가 추측할 수 있는 범위보다 스가와라는 멀리 멀어져 있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한데, 하면서 오이카와가 물었다. 그는 두 손에 가득 담겨 있는 홍삼사탕을 하얀 져지 주머니에 우겨 넣었다.
그의 주머니가 잔뜩 울퉁불퉁해졌다. 스가와라는 여자애들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는 입술을 쌜쭉하게 내밀었다. 오이카와는 그가 퍽 귀엽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스가-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있다 갈게, 라고 그는 크게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그 울림에서 마룬파이브의 노래를 떠올렸다. 그의 머릿속에서 익숙한 음들이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의 눈앞에 있는 ‘슈가’가 입을 땠기 때문이었다.
“홍삼 사탕은 스가와라 코우시이다.”
너 내 이름은 알지? 스가와라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우시인 건 지금 알았어. 그의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진작 알려줄 걸 그랬다면서 웃었다. 여전히 상큼한 느낌이었다. 여름 한 가운데서 부는 바람 같기도 했다. 스가와라는 뭔가 자신이 대단한 말을 했다는 듯, 오이카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여전히 그의 메타포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너무 어렵게 돌려 말했다.
“나 잘 모르겠어.”
“뭐, 별 할 말 없으면 간다.”
스가와라는 뒤를 돌았다. 오이카와는 그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기 스가 쨩, 하고 부르니 그는 지체하지 않고 뒤를 돌았다. 오이카와의 말은 입 안에서 머뭇거렸다. 맛없는 홍삼사탕을 혀 위에 올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혀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할 말 없으면 갈 거야! 그는 다시 뒤를 돌아 움직였다. 그의 발걸음이 홀가분해 보였다. 오이카와는 이 상황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핀치 서버로 나갔었던 첫 번째의 연습시합부터, 다섯 번의 홍삼사탕을 받을 때 까지 그는 나름의 은유를 쌓아 올린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스가와라의 뒷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는 이 비유를 직관적으로 알아 챌 수 없었다. 멀어진 스가와라의 키가 더더 작아졌을 때 까지 오이카와는 그의 뒷모습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그가 뒤를 돌았다.
야! 오이카와! 하고 악을 쓰는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어! 하고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이 ‘건강히, 잘 지내시나요!’를 외치던 절박함과 닮아 있었다. 그는 야구의 와인드 업 포즈를 취했다. 오이카와는 몸을 살짝 숙이고 두 손을 꽃처럼 펼쳤다. 포수의 미트 같은 손에 스가와라는 정확히 뭔가를 꽂아 넣었다. 먹어!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또 홍삼사탕이겠거니 싶었지만 잡히는 모양이 달랐다.
츄파츕스였다. 홍삼사탕과 딸기우유 맛 츄파츕스 간의 거리감에 오이카와가 당황 해 있는 사이, 스가와라는 멀리 달려가 버렸다. 검은색 유니폼 무리들이 파도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오이카와의 뒷덜미를 이와이즈미가 잡았다. 오늘은 수거 물품이 적다? 이와이즈미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져지 주머니 속의 홍삼 사탕을 보여주었다.
걔도 참 한결같다. 이와이즈미는 혀를 툴툴 찼다. 오이카와는 손에 쥔 딸기우유 맛 사탕 껍질을 까 입에 넣었다. 참 달았다. 매번 홍삼만 주더니 이건 반칙이었다. 그는 입에 넣은 사탕 꼭지를 잡아 뺐다. 분홍색과 하얀색이 섞인 달달함이 그의 입 안에 여즉 남아 있었다. 홍삼보다 꼭 세 배쯤 달달했다. 그 날 그는 내내 홍삼사탕과 딸기우유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상쾌 군이 깨물어 먹은 사탕의 잔여물처럼 남아있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하나쿠니] 호흡 (0) | 2015.03.21 |
---|---|
[카게스가/킨야하/하나쿠니] '하고 싶어' 라고 말 해 보았다 (0) | 2015.03.18 |
[하나쿠니] 내 주머니에 소금캬라멜이 들어 있는 경위에 대하여 (1) | 2015.03.14 |
[오이스가] 벚꽃 피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0) | 2015.03.09 |
[하나쿠니] 홍차, 우유와 설탕을 가득 넣어서 (0) | 2015.03.07 |
:D | 2015. 3. 9. 00:18
권태롭고 지루한 오이스가가 보고 싶었습니다. 스가른 전력에 참여한 글이에요. '꽃샘추위'라는 주제를 받았었습니다.
***
봄이 왔다. 바라던 봄은 아니었다. 스가와라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유리벽 너머의 거리에서,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유연하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다가, 숨을 내쉬었다. 잔에 담긴 커피의 수면이 흔들렸다. 꼭, 저 같은 흔들림이었다.
이번 봄은 춥다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돋아왔다. 너무 따듯하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차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스가와라는 그에게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 역시 뜨겁지 않았다. 그의 수려한 외모는 요즘 들어 수척해져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에게 '많이 말랐네',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미적지근했기 때문이다.
모든 말은 입 밖으로 나서는 순간 의미를 가진다. 스가와라는 그에게 의미 없는 사람이고 싶었다. 이는,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상 힘든 일이었으나, 그는 반드시 그러고 싶었다. 그는 스가와라에게 늦게 오느냐 물었다. 스가와라는 약속이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미안해, 오이카와. 스가와라의 목소리에 그는 괜찮다고 말했다. 말간 미소였다.
햇살에 부유하는 먼지 같은 모습이었다. 오이카와는 이 지리함이 단순한 권태라 믿었다. 고등학교 때 부터 지금까지. 청춘이 퇴색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미성숙한 청소년이 어른이 되기에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 권태라는 단어에는 이 미련들을 다 넣을 수 없었다. 스가와라는 멍하니 찻잔을 보면서 오이카와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는 오이카와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예전처럼 뜨겁냐,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스가와라는 쉽게 대답 할 수 없었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권태'나 '익숙해짐' 이라는 익숙한 단어들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그것이 헤어짐의 전초라고 확신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는 종말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매끈했던 입술이 꽃피는 봄 잠시 찾아 온 추위에 터 버리는 과정과 같았다. 언제나 상처는 갑자기 찾아온다. 그는 혼자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가장 무게있는 걸 생각했다. 네 번째 약지에 끼워져 있는 커플링이었다. 스가와라는 그것을 변기에 넣고 내리는 상상을 했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쏟아지는 물에서도 백금 반지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지루한 사랑에서 퇴색되지 않는 것은 그 반지 뿐일지도 모른다. 미약한 반짝임과 부질없는 약속을 매일 성실히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랑에는 잡초가 자란지 오래였지만, 이미 습관이 된, 그 행위는 멈추기 힘들었다. 사랑보다 습관적인 것은 일상이며, 그 일상들이 평범한 삶을 영위하게 돕는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와 함께했던 모든 비일상을 떠올렸다.
같은 성별, 같은 지역 출신. 이 두 가지 단어에서 파생될 수 있는 모든 비일상은 그들의 것이었다. 제법 열렬하게 사랑했다, 스가와라는 사랑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따듯하게 내리쬔 햇살에 드러누운 고양이가 보였다. 복슬복슬한 꼬리는 끊임 없이 아스팔트를 때렸다. 그는 아스팔트 위에 누워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 같았다. 사랑 또한 저렇게 귀찮은 과정을 동반한다.
사랑을 하면서 잃어버린 일상을 복구하려면 얼마의 시간을 들여야 할까. 오이카와는 의외로 궤도에 쉽게 정착할지도 모른다. 스가와라는 잔을 매만졌다. 잔 안에 들어있는 음료는 점점 미지근해지고 있었다. 영원히 뜨거운 것은 없음으로 그들의 사랑 또한 순리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해, 라는 말을 스가와라는 입에 머금었다.
놀랍게도, 어색했다. 이 말을 처음 쓰지 않았던 날이 언지였던가. 스가와라는 천천히 반추했다. 카페 안에 흐르고 있던 음악이 다섯 번 쯤 끝을 고했을 때야 그는 그 시작을 알 수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기에 말하지 않았었다. 그는 천천히 얼굴을 쓸었다. 목이 뻐근했다. 숨이 찼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말이 그의 목에 천천히 매달렸다.
익숙한 권태일 거야. 가끔식 찾아오는 거고, 봄에 귀속된 꽃샘추위 같은 거지..... 우리는... 이겨.. 낼 수 있어. 나는 여전히 코우시를 좋아하고, 너도 여전히 나를...... 좋아하고.......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오늘 아침의 그도, 저번 주의 그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벚꽃 같은 소리였다.
한참 몽우리진 꽃망울을 시샘하기에 하늘은 바람을 보낸다. 피기 전에 흐트러지는 봉오리라기에 자신들은 이미 활짝 피어 있었다. 스가와라는 이별을 준비하는 자신을 떠올렸다. 먼저 집을 구할 것이다. 고양이를 기를 수 있는 작은 원룸으로. 가스레인지 구가 두 개 정도 되는 부엌이 있고 햇볕이 간간히 들어오는. 그는 상상해오던 미래에서 천천히 오이카와를 뺄셈했다. 꽃망울이 한없이 매달려 있던 나뭇가지에서 미성숙함이 털어졌다.
혼자 있는 집은 외로웠다. 그는 자신이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사실을 더했다가, 다시 뺐다. 그 조건을 충족하면 오이카와 토오루가 필연적으로 함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별 한 후의 스가와라 코우시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다시 공상을 시작했다. 알알이 나눠진 설탕가루가 솜사탕이라는 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그의 상상은 천천히 몸을 불려갔다.
그는 창문에 묻은 물방울 자국을 바라보았다. 비가 온 후 남은 자국이었다. 신문지로 닦아내는 상상을 하다가, 스가와라는 아스팔트에 누워있던 고양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햇살은 여전히 따듯했으나 고양이가 누운 자국은 없었다. 스가와라는 창 너머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그 모습에서 스가와라는 난데없는 꽃샘추위가 왔음을 떠올렸다.
올 봄은 춥다던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돋아왔다. 자신과 그 사이에 있는 이 모든 감정을 한 때의 꽃샘추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시절이 지나면 언제나 따듯한 봄이 있을 것이다. 그는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여전히 뜨겁지 않고 미지근한 모습이었다. 스가와라는 고양이가 떠나버린 아스팔트를 바라보았다. 하염없이, 눈에 담다가 그는 떨어지는 벚꽃망울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같이 한 권태만큼이나 눌러 댄 전화번호를 누르니, 몇 초 지나지 않아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하고 받는 그의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난데없이 고백했다. 마땅히 외쳐야 할 말이었다. 그는 이 지루한 말이 그들의 '내일'을 일시적으로 연장시켜 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사랑해."
그 꽃샘추위 같은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나도, 하고 대답했다. 그 말 말고 사랑한다는 확신이 필요했으나 스가와라는 애써 조르지 않았다. 봄처럼 느리고 천천히 찾아왔던 불안이 그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사랑해, 하고 스가와라는 다시 속삭였다. 오이카와는 기쁜 듯, 나도, 하고 대답했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으나 스가와라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 반찬이 될 꽁치조림과 시금치 된장무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스가와라는 오늘 저녁이 인스턴트가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권태란 그런 것이었다. 그는 짧게 웃었다. 불안은 확신처럼 그를 덮쳣다. 창 밖의 몽우리들이 사정없이 날리고 있었다. 따듯한 봄에 적응했던 꽃은 갑자기 추워졌을 때 적응하지 못하고 동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스가와라는 그가 버릴 수 있는 가장 가벼운 것을 생각했다.
그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벚꽃 피는 계절에, 스가와라는 카페 테이블에 제 몸을 기대었다.
[오이스가] 홍삼 맛과 딸기우유 맛 사이. (0) | 2015.03.15 |
---|---|
[하나쿠니] 내 주머니에 소금캬라멜이 들어 있는 경위에 대하여 (1) | 2015.03.14 |
[하나쿠니] 홍차, 우유와 설탕을 가득 넣어서 (0) | 2015.03.07 |
[오이스가] 마티니, 보드카가 아닌 진으로 (0) | 2015.03.07 |
[카게스가] 파문을 부른 돌은 수면 아래에 있으니, (0) | 2015.03.05 |
:D | 2015. 3. 7. 01:42
킹스맨 AU입니다^0^ 영화를 볼 때는 참 좋았는데 글로 옮기려니까 제가 너무 부족해서 혼났네요8ㅅT.,.
수트와 남자와 칵테일의 조합은 세계 최강이라구 생각합니다^0^!!!!!
***
랜슬롯은 문을 열었다. 그의 앞에는 가웨인의 추천인이 있었다. 랜슬롯, 하고 부르는 청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그가 청하였다. 평소와 같이 나른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스가와라는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문에서 살짝 몸을 비켜 주었다. 비밀임을 당부하는 그는 꽤나 절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잠시 멈추어 그를 감상한 것뿐이었으나, 언제나 효율적이고 냉정함을 추구하는 ‘가웨인의 추천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열린 문틈으로 소년이 들어갔다. ‘가웨인의 추천인’ 쿠니미 아키라는 온전히 갤러해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것이 못내 부러웠다. 그는 갈팡질팡하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갤러해드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짙었고, 스가와라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스가와라는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그의 몸을 감은 짙은 회색 양복에 복도를 밝히고 있는 백열등 빛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시계를 확인했다.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추천인과 함께하는 스물 네 시간이 시작될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을 이 세계에 발들이게 한 남자를 떠올렸다. 언제나 킹스맨은 그들의 추천인과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이벤트를 열곤 했다.
그 때, 그는 마티니를 타는 법을 배웠다. 베르무트를 기본으로 한 마티니, 젓지 말고 섞어서. 007 스리즈의 제임스 본드 같은 느낌이 난다고 지적하자, 그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바로 그거라고 대답했다. ‘킹스맨’은 예법과 품위, 약간의 위트를 가진 젠틀맨이지. 스가와라는 가웨인의 지론을 떠올렸다. 그는 작약과 같은 남자였다. 스가와라는 작약의 꽃말을 떠올렸다.
여러 겹의 꽃잎이 겹쳐 만들어낸 풍성한 꽃망울과 달리, 그 꽃이 품고 있는 말은 ‘수줍음’ 이었다. 스가와라는 가웨인과, 작약과의 공통점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웨인이란 남자는 그 단어와 닮지 않았다. 굳이 비슷한 부분을 찾아보자면 작약의 꽃심처럼, 그의 속내 또한 알기 어렵다는 것 정도일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잠시 멈추어 섰다. 그의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의 뒷굽에 망설임이 가득 고여, 미련을 담아 흘러내렸다.
신사에게 고민은 사치와도 같은 것이다. 스가와라는 곧장 걸었다. 이미 방문하기로 연락 한 이상, 그는 가웨인을 만나야만 했다. 그는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돌았다. 리드미컬한 구두굽 소리가 복도를 크게 울렸다. 그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당당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의 추천인이 알려 준 ‘예의’였다. 가웨인의 가르침은 시간이 흐를수록 토양이 퇴적되는 것처럼 몸 안에 스며 있었다.
똑, 똑. 그리고 시간을 담아 똑. 스가와라는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릴 때 까지 대기했다. 이 역시, 가웨인의 예법이었다. 들어와, 그의 옛 추천인이 말했고, 그는 문고리를 잡아 소리가 나지 않게 돌렸다. 그는 뒤를 돌고 있었다. 그의 방 안은 어두웠고, 달달한 꽃향기가 들어 있었다. 가웨인, 하고 부르니 그는 랜슬롯, 하고 화답해왔다. 몇 년째 이어져 오는 호칭이었지만 스가와라는 그것에 쉽게 익숙해 질 수 없었다.
“랜슬롯, 네 추천인은 어디다 남겨두고?”
“가웨인도 마찬가지인걸요.”
스가와라는 웃으며 말했다. 우수한 추천인을 둬서 기쁘겠어, 눈앞의 그는 빈정대며 말했다. 수려한 얼굴에 수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스가와라는 문을 닫고 두어 걸음 다가섰다. 그의 책상 위에는 진과 베르무트가 있었다. 익숙한 블랙 올리브에 스가와라는 마티니, 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언제나 추천인과의 마지막 날에 마티니를 마셨다는 가웨인의 소문을 떠올렸다.
쿠니미 군은 좋겠네요, 스가와라가 웃으며 말했다. 가웨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쿠니미가 의외로 술이 약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구닥다리를 싫어하니, 이 올드한 마티니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면서 웃었다. 토비오와는 뭘 할 생각이야? 가웨인이 물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추천한 아이가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라고 운을 땠다. 그리고 예법을 가르치겠죠, 라는 평범한 대답을 했다.
“토비오는 우수한 학생이니까 예법도 순식간에 배울 걸.”
“그런가요?”
“스물 네 시간을 소비하려면 뭔가 더, 가르쳐야 할 거야.”
“예를 들면?”
스가와라가 물었다. 가웨인은 음, 하고 고민했다. 그는 얼음에 들어 있던 진을 꺼냈다. 우리 원래 목적에 들어맞는 이야기를 할까? 그의 제안에 랜슬롯은 좋다고 대답했다. 그는 마티니를 마시러 오라는 원래의 전보를 그제야 떠올렸다. 스가와라는 자리에 앉았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가웨인의 집무실은 언제나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쇼파의 광택에 감탄하며 시선을 앞으로 두었다.
난, 토비오가 협동심 항목에서 떨어질 줄 알았어. 가웨인이 말했다. 스가와라는 자신도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쿠니미도 그쯤에서 떨어질 줄 알았지. 가웨인은 노래하듯 말했다. 그는 사랑의 힘이 대단하다면서 조소했다. 스가와라는 화병 안의 작약을 만지작거렸다. 여린 꽃잎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미적지근한 향이 났다. 피려면 이틀에서 삼일 정도 걸릴 거야. 그는 봉우리를 보며 말했다.
“가웨인 씨는 말야, 쿠니미의 이름은, 스물 네 시간이 지나도 아키라일 거라고 확신해.”
“카게야마 때문인가요?”
“퍼시빌은 토비오의 자리가 되겠지. 떨어질 이유가 없어.”
내가 가웨인인 이유는 토비오가 불완전했기 때문이지. 그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진 병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는 광택이 반짝거리는 잔 두 개를 쥐었다. 스가와라는 불과 오년 전, 갓 중학교를 졸업한 나이에 ‘킹스맨’이 될 뻔 했다는 카게야마의 말을 떠올렸다. 청소년기에 하곤 하는 허풍으로 취급 한 말이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나요? 그가 취조하듯 물자, 가웨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금 매우 기분이 안 좋아. 가웨인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추천인이 매우 우수하다면서투덜거렸다. 스가와라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쿠니미 아키라는 무기사용, 대인응대, 협동심 등, 모든 자질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남자였다. 무기력한 아이였는데, 사랑의 힘은 역시 대단해. 가웨인은 스가와라가 쉽게 알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그는 마티니 잔에 진을 담았다.
“어떻게 해 줄까?”
“이미 진을 따른 것 같지만, 보드카 마티니. 섞지 말고 저어서.”
“오, 이런.”
가웨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지닌 슬픔만큼이나 깊은 수심이 그의 한숨에 가득 담겨 있었다. 스가와라는 진은 취향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킹스맨이라면 싫은 것도 마셔야지. 가웨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베르무트를 부었다. 눈대중으로 섞는 것 같지만 의외로 정확하게 계량했을 게 분명했다. 오늘의 그는 매우 심기 불편한 고양이 같았다.
온 몸의 털이 바짝 선 모양이었다. 스가와라는 다리를 꼬았다. 젠틀맨, 하고 가웨인이 그를 불렀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그는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스승’이곤 했다. 엷게 켠 조명이 가웨인의 ‘작업’에 별빛처럼 흘러내렸다. 반짝이는 마티니 잔을 보면서 스가와라는 자신과 그의 스물 네 시간을 떠올렸다. 베르무트와 진이 잔 안에서 섞이는 듯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토비오에게 너무 많은 걸 가르쳐주진 말아줘.”
“그렇지만, 우리는 킹스맨이고, 토비오가 ‘퍼시빌’이 된다면,”
“동료이기 때문에 모든 걸 알려주어야 한다? 로맨틱 한 말이야.”
“로맨틱하다기보다는 의무적인 소리죠.”
“정답. 랜슬롯도 많이 컸는걸. 어엿한 킹스맨이 되었어.”
가웨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잔 안에 올리브를 띄웠다. 그는 소리 없이 걸을 줄 아는 남자였다. 그가 건넨 잔을 스가와라는 기꺼이 받았다. 유리잔과 유리잔이 키스하며, 경쾌한 울림을 만들어 냈다. 스가와라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윙크했다. 랜슬롯이 이렇게 성장하다니! 가웨인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랜슬롯은 마티니로 입술을 축이며 당신에게 배운 것이라고 대답했다.
눈과 눈이 마주쳤고, 웃음을 담은 눈은 호선을 그리며 감겼다.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며 서로를 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웨인은 한쪽 눈을 감아 윙크했다. ‘받은 것은 되돌려 준다.’ 또한 가웨인의 오랜 신조였다. 어떤 느낌이 들어? 그가 물었고, 랜슬롯은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같은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아찔했겠군, 가웨인은 탄식하듯 내뱉었다.
시계 초침이 째깍이는 소리를 냈다. 그의 방에는 큰 회중시계가 있었다. 1과 2사이에서 유달리 큰 소리를 내는, 어설프게 고장난 시계는 전(前)‘가웨인’이 남긴 유품이었다. 가웨인은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를 셈했다. 멀린과 아서가 우리에게 얼마를 줄지 감도 못 잡겠어, 그는 의외로 솔직하게 말했고, 스가와라는 삼십 분 정도는 남았을 거라 장담했다.
가웨인은 랜슬롯의 손에 들린 잔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스가와라는 그 노골적인 시선이 불편했다. 머릿속에 담긴 모든 생각마저 훑어보는 듯 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웨인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물 네 시간 동안 체념을 가르쳐야하는 건 슬픈 일이야. 그의 말에 스가와라는 카게야마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형식적’인 위로를 내뱉었다.
“랜슬롯, 이미 결과는 정해진 일이겠지.”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과 같은 일이지요 가웨인.”
“나는 그게 매우 불쾌해.”
재능덩어리들을 일반 사람이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몇 년을 고민했지만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 가웨인은 잔을 흔들며 말했다. 스가와라는 어쩔 수 없다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우수한 인재가 원탁에 들어오는 것보다 좋은 일이 없다는 회유로는 그의 불쾌함을 씻어 낼 수 없을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그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천재였고, 쿠니미 아키라는 의외로 감수성이 풍부했다.
“쿠니미는 개를 못 쏠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야 그 개 이름이 짝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가웨인은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그는 초조하게 얼굴을 쓸었다. 스가와라는 허락 없이 키스를 구하는 행동이 ‘예의’에 얼마나 어긋날지를 고민했다. 가끔 ‘랜슬롯’과 ‘가웨인’이라는 이름은 난데없는 곳에서 무게를 가지곤 했다. 스가와라는 가웨인의 본래 이름을 입속에 머금었다. 그는 하염없이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사랑이 섞인 체념은 어려운 법이라는 말을 꺼냈다. 스가와라는 쿠니미와 갤러해드와의 관계를 어렴풋이 유추 할 수 있었다.
가웨인은 마티니를 마셨다. 반절 빈 잔을 그는 체리목으로 단단하게 짠 책상 위에 올려두었고, 마티니 잔의 둥근 바닥은 그가 전까지 보고 있던 편지 한 통을 덮었고, 줄어든 수면(水面)을 옐로우 라이트에서 뻗어 나오는 빛이 채웠다. 그는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의 몸에 딱 맞춘 감색 양복에 스가와라는 잠시 넋을 놓을 뻔 했다. 여러 장 꽃잎이 겹쳐 만들어내는 작약처럼 화려한 모습에 눈길을 주고 있으니, 가웨인은 눈을 맞추며 웃었다.
그 웃음은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무지개와 같았다. 스가와라는 그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감정에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등 뒤를 바라보고 걷기로 결심 했을 때부터 익혔던 나름의 생존전략이었다. 가웨인은 마티니 잔을 다시 쥐었다가, 내려놓았다. 칵테일의 표면이 한숨에 간간히 흔들렸다. 스가와라는 그 모든 장면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포장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포장지였다. 허나 가웨인의 날카로운 표정과는 사뭇 다른 포장임에는 틀림없었다.
“캉가루, 혹은 진 앤 잇.”
“진 앳 인?”
“랜슬롯, 질문을 하나 할게. 이 두 칵테일에 대해서 알고 있나?”
가웨인은 엄숙하게 물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스윗한 발음이라는 것만 알겠어요. 그가 당당하게 말한 대답에 가웨인은 살포시 웃었다. 모른다는 건 넌센스야. 알고 있을 텐데? 그의 말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교양이 부족한가요? 그가 이어 말한 말에 가웨인은 전혀, 하고 대답했다.
“랜슬롯이 들고 있는 칵테일의 옛 이름이지.”
“아?”
“가령, 가웨인 경의 ‘오이카와 씨’ 같은.”
스가와라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름은 이제 캉가루나 진앤잇 같은 이름이 될 거고, 쿠니미 아키라의 이름은 ‘마티니’ 같이 그대로 남아 있겠지. 가웨인은 천천히 말했다. 그는 잔을 비웠다. 그의 목울대가 움직일 때 마다, 그는 멜랑콜리한 감정을 위 너머로 삼켜내고 있었다.
이 기묘하고 불쾌한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가웨인이 한탄하듯 말했다. 스가와라는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먼 사람 같은 감각을 느끼며 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마티니 안에 들어있는 올리브를 입에서 굴렸다. 베르무트와 진이 가득 묻어 있었다. 나는, 하고 가웨인이 운을 뗐다. 스가와라는 그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말 대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스가와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체리목 책상 앞에 위태롭게 서 있는 작약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브로드 없는 옥스퍼드에서 제법 진중한 소리가 났다.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은 없다. 그는 그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인가요? 스가와라가 묻자 가웨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오늘은 짐승이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토비오 앞에서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더 가르칠 걸 생각 해 보라면서.”
“오, 랜슬롯. 내가 네 집 창문을 깨지 않도록 언행에 신경 써 주지 않겠니?”
“내게 좀 더 시선을 준다면 고려는 해 볼게요.”
보시다시피 손을 잡을 때 허락을 구하는 법도 모르기 때문에. 그는 그와 시선을 맞췄다. 같은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눈높이는 여전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넥타이를 쓰다듬었다. 그가 좋아하는 색이었다. 터키옥색 타이에는, 회색 스티치가 들어 가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넥타이죠? 스가와라가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에게는 기쁜 날로 보이고 싶었으니까, 그는 서툴게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그의 타이 매듭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단단하게 묶인 매듭에 마른 입술이 닿았다. 그 당돌한 짓을 가웨인은 멀뚱하게 보고 있다가, 랜슬롯의 회색 머리카락에 손을 얹어 쓰다듬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던데, 스가와라가 흘리듯 말한 말에 오이카와는 둘만 있는 자리에서 연인들은 흔히 짐승이 된다는 말을 꺼냈다. 그의 불안감 중의 한 매듭 정도는 풀리고 있는 것 같아, 그는 내심 뿌듯했다.
오이카와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스가와라는 이미 잊혀진, 그래서 이제는 둘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입에 머금었다. 토오루, 라는 이름은 마티니의 옛 이름인 ‘진 앤 잇’, 같은 멋스럽거나, ‘캉가루’와 같이 동글동글하게 뭉쳐 사랑스러운 느낌을 내기도 했다. 그의 말에 오이카와는 코우시, 라는 이름으로 화답 해 왔다. 그는 그의 목소리에서 ‘수줍음’이란 단어를 담은 소담스러운 작약 꽃봉오리를 떠올렸다. 개화의 순간은 이처럼 따듯할 게 분명했다.
“당신은 솔직하지 못한 게 흠이에요.”
“그래서 너랑 있으면 기분이 나빠.”
“날 추천하고, 선택한 당신이 할 말은 아니지.”
“그래서 널 싫어해.”
오이카와는 웃으면서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스가와라는 알고 있었다. 싫어한다면 벌써 이 방에서 내쫓겼을 게 분명했다. 그는 손을 뻗어 그의 넥타이와, 그 위의 목선을 쓸어내렸다. 가웨인은 경계하지 않았다. 다만 연인의 이름으로, 스가와라의 손길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의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쾌활하게 웃었다.
날 너무 좋아하는구나, 그는 안심한 듯 중얼거렸다. 스가와라는 심술부리지 않는다면 좋아한다는 단서조항을 내걸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어깨에 두 팔을 얹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피로한 사람이었고, 스가와라는 그를 백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남자였다. 그는 오이카와의 넥타이를 다시금 정리했다. 완벽한 모양을 갖춘 매듭에, 그는 다시 입을 맞추었다. 왈츠의 박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마티니 한 잔 더 마실래?”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진이 아닌 보드카로. 오픈되지 않은 버무스 보틀을 바라보며 10초정도 흔들어서. 그의 주문에 오이카와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마시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내 추천인에게 심술부리지 않는다면 진 베이스에 ‘흔들지 않는’ 마티니를 마시는 것도 고려 해 볼게요. 그는 한 단어 한 단어를 입안에서 충실히 발음했다.
너무 어려운 조건이야. 할 수 없어. 가웨인 씨는 못 해. ‘가웨인’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스가와라는 그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매너, 라고 내뱉는 오이카와의 입술에 그는 검지를 올렸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마티니 한 잔 주실래요? 스가와라가 눈을 내리깔며 물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여 그의 드러난 이마에 입술을 댔다. 마티니처럼 묵직하게 감겨오는 애정표현이었다.
가웨인은 그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그는 뒤를 돌아 다시 술잔을 잡았다. 스가와라는 테이블 위에서 빈 잔을 가져다가, 그의 체리목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가웨인은 다시 솜씨 좋게 진과 베르무트를 다뤘다. 스가와라는 그가 허락하지 않은 소파에 앉아 허리를 기대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스틱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문득, 가웨인이 입을 열었다.
조금 나아진 것 같아. 그의 목소리는 랜슬롯이 아니라 스가와라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담고 있었다. 마티니 때문일 거예요. 스가와라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마티니는 약으로도 썼다는 말 못 들어 봤어요? 그가 능글맞게 말한 내용에,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어느새 양 손에 마티니 두 잔을 들고 스가와라의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았다. 그의 터키옥색 넥타이에 들어있는 회색 스티치가 멋스러웠다.
“스물 네 시간 뒤에 집무실로 오면 되나요?”
“뒤로 하게 해 줄 거야? 코우시?”
오이카와는 ‘지워진 이름’을 내뱉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제스처에 그의 맞은편에 있는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입가에 가 있는 마티니 잔의 입구를 바라보다가, 스가와라는 어둑어둑한 조명이 그의 입술에 묻었다는 말을 내뱉었다. 오이카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다가 못 이긴 척 잔을 내려두고, 탁자 위에 한 무릎을 올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일단 이것부터 받아 놔요 토오루, 스가와라는 마티니 가득 묻은 입술로 그의 숨을 서툴게 탐했다. 허락을 구하지 않은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오이카와는 그의 숨결을 받아들였다. 마티니에 들어간 블랙 올리브 같은 키스였다.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가 멀리서 울리는 것 같아, 스가와라는 눈을 감았다. 오이카와의 큰 손이 그의 머리카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것은 마치 사랑을 움켜쥐려는 움직임 같아, 스가와라는 손을 뻗어 그의 귓불과, 등을 쓸었다.
정말 싫다. 입술과 입술이 떨어진 다음, 가웨인은 그렇게 말했다. 랜슬롯은 스물 네 시간 후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화가 다시 경쾌한 울림소리를 냈다. 오이카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상쾌한 바람이 열리지 않은 창 안으로 작약꽃 향기마냥 퍼져왔다.
[오이스가] 벚꽃 피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0) | 2015.03.09 |
---|---|
[하나쿠니] 홍차, 우유와 설탕을 가득 넣어서 (0) | 2015.03.07 |
[카게스가] 파문을 부른 돌은 수면 아래에 있으니, (0) | 2015.03.05 |
[하나쿠니] 잠자는 자취방의 공주님 (0) | 2015.03.04 |
[오이스가] 청어 간장 조림과 토마토 된장국에 어울리는 반찬에 대하여 (0) | 2015.03.01 |
:D | 2015. 3. 1. 22:27
스가른 전력, [눈물] 이라는 키워드로 쓴 글입니다ㅠㅠㅠ...요시나가 후미의 어제 뭐 먹었어? 를 보니까 요리하는 오이카와랑 받아 먹는 스가와라가 쓰고 싶어져서...:3c...
***
오이카와 토오루는 우울했다. 그랬기 때문에 청어간장조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청어는 겨울 생선이었고, 이 날씨에 퍽 어울리는 맛이었다. 그는 냉장고에서 그 푸른 생선을 꺼냈다. 겨울 청어는 살이 도톰하게 올라 있었다. 동그란 눈에는 슬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나무도마 위에 그 생선을 얌전히 놓았다.
생선을 자를 때에는 언제나 눈을 가리고 싶어진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보이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그 투명한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안타깝지만 오이카와 씨는 널 먹을 거란다, 그는 일부러 흥얼거렸다. 생선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머리를 빼고 간장에 조릴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청어의 맛은 머리에 몰려 있는 법이었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청어를 도마 위에 올리는 그 사이에 정이 든 건지, 오이카와는 청어의 눈을 마주볼 수 없었다. 아까 방 안 한 구석에서 울던 자신과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도마 위에 누운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날 먹지 마, 라고 애처롭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다가왔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그는 능숙한 요리사였다. 그는 차조기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몸통을 사선으로 처리했다. 생선의 몸통을 사선으로 자르는 것은 의외로 현명한 일이었다. 어디가 ‘몸’이고 어디가 ‘꼬리’인지 모르기 때문에, 젓가락이 고루 가게 만든다. 분명한 부위는 눈뿐이다. 오이카와는 울고 있는 청어의 내장을 손질했다.
요리를 하면 복잡한 마음이 정리 되는 법이었다. 배구를 그만 두던 날, 그는 청어를 졸였었다. 정종과 미림, 설탕과 진간장, 물을 같은 비율로 넣고 섞으며 울었고, 그 간장에는 오래 된 염좌가 오롯이 들어 있었다. 그는 청어처럼 졸여졌다. 오이카와는 찬장에서 간장을 꺼냈다. 조림은 가장 눈물과 닮은 맛이었다. 오늘 경기에서는 이와이즈미와 카게야마가 활약했다. 둘은 같은 팀이었고, 오이카와는 그게 퍽 슬펐다.
파트너를 오랜 라이벌에게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가 코트를 떠난 건 오래 전 일이었고, 그는 이제 부엌의 식기구를 지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와서 아쉬운 건 아니었지만 가끔씩 그의 마음은 청어처럼 팔딱이고, 쉽게 가라앉을 때가 있었다. 그는 조림간장을 만들면서 민어나 우럭을 졸일까 생각했다. 애써 괜찮은 척 하려는 나름의 발악이었다.
그는 실파를 한 손에 잡고 도마에 눌렀다. 완전히 순서가 잘못 된 요리법이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경기 하나 때문에 마음이 울렁거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청어 냄새 가득 나는 도마에 칼질을 했다. 배구 코트와 배구화가 마찰하는 소리와는 퍽 다른 소리가 규칙적으로 났다.
목에 갈치 뼈가 걸린 기분이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동거인의 직업을 떠올렸다. 배구 코트에 제법 가까이 있는 일이었다. 이래저래 보통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오이카와는 청양고추와 통생강을 꺼냈다. 그는 생강을 얇게 저몄다. 생강의 알싸함이 손끝에 묻을 때 마다, 그는 우울해졌다.
음식에 묻은 사연 때문에 우울한 건지, 아니면 원래 우울한 기분을 청어가 만드는 건지 오이카와는 영 알 수 없었다. 대파와 청양고추가 내는 향에 코가 찡해졌다. 눈물이 났다. 그는 오늘 조기조림에 내놓을 반찬들을 떠올렸다. 간장조림에는 야채와 매실 장아찌도 들어간다. 일품요리인듯, 일품요리 같지 않은 애매함이 묻어 있었다. 오이카와는 코를 킁킁거렸다.
손을 얼굴 가까이 대니 매운 내가 돋아왔다. 그가 내는 도마 소리처럼, 카게야마가 올린 토스를 치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이 돋아왔다. 부상만 아니었어도 부엌이 아니라 그 곳에 있을 수 있었을까. 애매한 생각들이 그에게 떠올랐다, 다시 사라졌다. 마치 국물의 대류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볼로 눈물이 떨어졌기에, 그는 토마토 된장국을 하기로 결심했다.
토마토 된장국과 청어 간장조림. 맛이 센 반찬들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아 줄 음식이 필요했다. 그는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조금 있다가 장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냉장고를 열었다. 요리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내심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그는 코를 킁킁거렸다. 그는 손을 한 번 씻고 냄비를 불에 올렸다. 그는 간장 소스를 넣은 다음 청어와 재료들을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청어 간장 조림은 강한 불에 세게 졸여야 한다. 간장냄새와 고추 향이 그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는 코를 훌쩍거리면서 알토란을 꺼냈다. 돼지고기를 렌지에 해동시키고, 오이카와는 쌀을 세 컵 퍼 씻었다. 쌀뜨물은 토란을 삶을 냄비에 부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그는 눈을 깜빡였다. 스가와라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눈물이 더 번져왔다.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날이 있었다. 그는 쌀을 마지막으로 씻어 밥통에 올려두었다. 약하게 기침이 났다. 눈물이 목에 걸린 탓이었다. 스가와라는 흰 쌀밥 같은 남자였다. 재미있는 구석은 없는데다가, 쾌청한 날 보다 우울해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그게 자신과 같은 이유일까, 오이카와는 토란을 끓는물에 넣으면서 생각했다. 토란이 냄비의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는 오늘 받은 문자를 떠올렸다. 혼자 밥 먹어, 라는 스가와라의 메시지였다. 그게 오이카와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오이카와는 냉장고에서 토마토를 꺼내왔다. 혼자 먹는데도 둘이 먹는 것처럼 반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습관이란 무서운 일이고, 그 습관에 비롯되는 감정들은 대부분 우울한 것이었다. 배구를 그만두기로 결심 한 다음 날 그는 다섯 시에 일어났었고, 애인과 헤어지고 난 다음 날에는 이인 분의 식사를 만들곤 했다.
그 비틀어진 사건들을 그는 간장에 진하게 조렸다. 그는 냄비 뚜껑을 열고 끓고 있는 조림간장을 청어 위로 부었다. 눈물 같은 맛이 우러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혼자 식탁에 앉는 일을 싫어했다. 사랑의 반대말은 외로움이었고,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홀로 밥을 먹는 일이었다. 빈 식탁은 모래알을 씹은 것처럼 버석거리기 마련이었다. 그는 괜히 입을 움직였다. 그는 토란이 든 냄비 불을 서둘러 껐다.
그는 토란을 깠고, 쌀뜨물에 익혔다. 그는 돼지고기 안심을 볶았고, 된장국 육수를 우렸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 이미 그의 서브에는 깊은 군살이 붙어 있을 것이었다. 외로웠고, 그 과정은 여러 울음을 동반한 길이었다. 배가 고팠다. 그는 불이 꺼진 식탁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 쉬었다. 숨은 짙게 내렸고, 그는 청어 밑 가스레인지를 껐다.
그는 청어 간장 조림을 그릇에 담았다. 홍고추를 어슷썰기 해서 갈색으로 졸여진 청어 위에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독한 우울함이 그 위에 있었다. 그는 토란을 안심과 함께 볶아냈고, 된장국에 토마토를 넣었다. 스가와라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오늘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이카와는 이인분의 식사를 만들었다.
밥통이 소리를 냈다. 뜸이 들려면 삼분 정도가 남았다.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스가와라가 들어와야 하는 시간이었다. 외로운 날 혼자 먹는 밥맛은 최악이었다. 아무도 그를 괴롭히지 않았고,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서운하게 대하지 않았지만, 그의 기분은 탄 간장만큼 암담했다. 우연이 겹쳐서 최악이 되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기분이 울렁거렸다. 밥통이 뜸을 들였다고 경쾌한 소리를 냈다. 장하네, 하고 그는 밥통을 칭찬했다. 그는 플라스틱 주걱으로 밥을 잘 저었다. 밥 김이 손에 닿아 뜨거웠다. 그 따듯함에 괜히 더 울컥했다. 그는 식탁 앞에 앉았다. 오이카와는 김나는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채소가 조금 부족한 것 같았다.
눈앞에 네가 있다면 당장 양배추를 자를 텐데.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조금 떴다. 둘이 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혼자 하는 식사가 어색했다. 그는 입맛을 다셨다. 잘 먹겠습니다, 뒤에 돌아오는 웃음은 없었다. 원래는 스가와라가 하는 말이었다. 그 다음에는 ‘맛있게 먹어주세요’ 라는 말이 따라와야만 마땅했다.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 셔벗을 먹을까. 그는 쌀알을 씹으며 생각했다. 그는 청어에 손을 댔다. 간장 맛이 진하게 스며서 맛있었다. 토란도 나쁘지 않았고, 토마토 된장국도 평소보다 더 잘된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깊게 울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사춘기 소녀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세게 문질렀는지 눈가가 당겼다.
그는 일부러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세게 냈다. 외로움을 쫓기 위한 방법이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옆집에서 넘어오는 소리일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오늘 늦게 들어온다. 그는 어두침침한 무드등 아래에서 토란을 집었다. 얇게 썬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니 식감이 제법 좋았다. 코끝이 다시 아려왔다. 따듯함을 위 속으로 집어넣을수록 속이 뒤틀렸다.
항상 멋있게 있으니까, 오늘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오이카와, 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그는 엉망인 얼굴로 뒤를 돌았다. 눈앞에 스가와라가 서 있었다. 그는 양 손에 쇼핑백을 잔뜩 들고 있었다. 버스, 아슬아슬하게 탔지롱, 하면서 그는 상쾌하게 웃어 보였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입 안에 들어 있던 토란을 어색하게 씹어 삼켰다.
“내 밥 있어?”
스가와라는 ‘울었어?’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선택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 빨간 것 좀 봐, 스가와라는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의 볼에 차가운 두 손을 댔다. 셔벗처럼 달콤한 손길이었다. 나 아까까지 되게 우울했어, 하고 오이카와는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와, 청어네. 스가와라는 방어였으면 서운 할 뻔 했다면서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오이카와는 서둘러 그의 앞에 젓가락과 밥그릇을 놓았다. 스가와라는 제 쪽에 있는 밥통에서 밥을 꺼내 적당히 퍼서 담았다. 고요하던 부엌이 순식간에 지저귐으로 물들었다. 그는 오늘 버스를 놓칠 것 같아서 먼저 먹으라고 했다는 이야기부터, 시간표가 꼬이는 바람에 빨리 오는 버스를 탔다는 말까지의 여정을 내뱉었다.
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울함이 점점 가시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먹구름에서 파란 하늘을 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비가 내리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급격한 변화였다. 그는 스가와라의 홍조 띈 얼굴과, 그가 앉은 맞은 편 식탁을 바라보았다. 왜? 스가와라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카게야마랑 이와이즈미 잘 하더라.”
“응.”
“그거 봤어?”
스가와라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청어에 슬픈 게 가득 묻어 있더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토란을 입에 넣었다. 있잖아, 식탁에 야채 부족하잖아,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가와라는 그가 양배추를 써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 없어서 이 칙칙한 걸 채소도 없이 그냥 먹고 있던 거야? 그가 물었고,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말하기 미묘한 사실이 있는 법이었다.
오이카와는 양배추와 양상추로 간단하게 만든 샐러드를 앞에 놓았다. 오늘 뭐가 널 우울하게 했니? 스가와라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 카게야마의 경기가 잘 풀렸고, 오늘 밥을 혼자 먹는 것도 싫었고, 하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토마토 된장국을 마시면서 그의 말을 천천히 들었다.
“이해 안 가지?”
“아니 이해 가는데.”
살다보면 갑자기 울고 싶을 때가 생기거든. 나도 배구 코트 가까이에서 처음 봤을 때 그랬어. 스가와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그의 표정 이면에 있는 ‘닮은 감정’을 생각했다. 짭쪼름 한 눈물 맛이었다. 스가와라는 청어 간장 조림 같은 맛이었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오이카와는 그럴 때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먹는 사람이 ‘둘’이라는 것만으로도, 오이카와는 행복했다. 쉽게 찾아온 우울함은 약간의 비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이래서 밥이 좋아, 그가 문득 말한 말에 스가와라는 나도 그래, 하고 대답했다. 밥도 잘 안 먹으면서 그런 말 하는 거야 슈가? 오이카와가 다시 질문했고, 스가와라는 글쎄, 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오이카와는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상쾌하고 상큼한 맛이 혀끝에 돋았다. 그는 그 아삭아삭함을 입 안 가득 굴렸다. 이거 금방 했는데 맛있네? 스가와라가 물었다. 너랑 같이 있어서 그래, 오이카와는 능숙하게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한참이나 가만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익숙하기 때문에 말까지 식사와 함께 넘겨버리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이 풍경을 퍽 좋아했다.
“아.”
스가와라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뭐 잊은 거 있어?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반쯤 남은 자신의 공기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 대박 큰 거 잊어버렸어. 그는 토란을 괜히 반으로 가르며 말했다. 밥 다 먹고 하면 되는 거지, 오이카와는 경쾌하게 대답했다. 아까의 눈물은 이미 소화시킨 뒤였다. 아냐, 지금 할 거야. 스가와라는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이카와는 남긴 밥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려고 했다.
“잘 먹겠습니다.”
스가와라는 그 말 이후 합장을 했다. 그는 능청스럽게 젓가락을 들었다. 오이카와는 괜히 토마토 된장국을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너 말 안 해? 스가와라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대답해야 할 차례였다. 우울함은 이미 그의 뱃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밥이 덮은 것이었다. 그는 평소보다 발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까졌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랑은 미소장국보다 짙었고, 다시마와 멸치가 들어간 육수나, 국수장국보다 진했다. 그는 자신의 슈가에게 웃어보였다.
“맛있게 먹어 주세요.”
[카게스가] 파문을 부른 돌은 수면 아래에 있으니, (0) | 2015.03.05 |
---|---|
[하나쿠니] 잠자는 자취방의 공주님 (0) | 2015.03.04 |
[오이스가] Europa (0) | 2015.02.25 |
[오이스가] 오랑제뜨 (0) | 2015.02.14 |
[카게스가] 나는 이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0) | 2015.02.08 |
:D | 2015. 2. 25. 22:57
스가른 전력에 참여했던 글입니다.
원래 일인칭이라면 '그'라고 지칭하지 않고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렇게 하면 너무 글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이번엔 '그'라는 호칭으로 타협 해 보았습니다. 위성과 행성의 관계는 참 로맨틱한 것 같아요.
01.
유로파는 목성의 4대 위성 중 하나로서, 1610년 갈릴레이가 발견했다.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깝기 때문에, 67만 1050km 떨어져 있다. 표면을 덮은 얼음 때문에 지표 온도가 낮에도 -130도를 웃돌며, 이 때문에 유로파는 하얀 색으로 보인다.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어 산맥과 깊은 계곡, 화산이 터진 자국은 보이지 않고, 다른 위성에서 볼 수 있는 운석구덩이 또한 보이지 않는다. 얼음은 100km 두께로 유로파를 둘러 싸고 있다. 표먼을 덮은 얼음 아래로 물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유로파'는 에우로페라고도 읽으며, 이는 목성의 영어 이름인 주피터. 즉 제우스와의 관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유로파는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위성이다.
02.
스가와라 코우시를 왜 좋아하게 됐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다만 그를 볼 때면 울컥하고 치받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는 카게야마 토비오와 그의 관계에서 비롯한, 열등감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나, 나는 이 감정을 오롯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그는 얼어붙은 유리컵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 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꼭 울 것 같았다. 익히 있는 일이었다. 그는 내 목소리를 경쾌하게 부르지 않았다. 그가 부르는 내 이름은 다 녹은 아이스크림 국물의 끈적함을 닮았고, 길고 긴 여름의 더위를 닮았다. 평소 상쾌한 얼굴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차라리 그가 얼어붙은 것처럼 날 대했다면, 나는 내 이 짝사랑을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가와라는 애매하게 웃었다. 그는 하얀 손가락으로 라떼가 든 머그컵 입구를 쓸었다. 저기, 있잖아, 하고 그의 목소리는 망설임을 가득 담아냈다. 나는 괜히 빨대를 돌려 유리잔에서 소리를 냈다. 맑은 소리에 그가 놀란 듯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오이카와 씨는 말야, 상쾌 군의 망설임을 들어 줄 정도로 한가 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입꼬리를 당겨 웃는 일은 내게는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가와라의 앞에서 표정을 만들 때 마다 가슴 한 가운데서 열기가 치받쳤다. 스가와라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카게야마가, 하고 입을 열었다. 나는 그가 부르는 귀여운 후배의 이름만으로 그가 품고 있는 서사를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두 번째' 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지?"
"뭐, 그 녀석 대놓고 무심하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과장 된 표현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배우들은 일부러 몸짓을 크게 하여 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는 들은 적이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사람은 그 상황에 처해야만이 다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입술을 오물거렸다. 전혀 상쾌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얼어 붙은 스가와라에게서 냉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라는 말은 가혹하지? 스가와라가 물었다. 나는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그는 오이카와는 이런 거 모르잖아, 라는 말로 응수 해 왔다. 고개를 들어 본 그의 얼굴은 '이런 마음도 모르면서 그런 말 하지 마'라는 문장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애석 한 일이었다. 여자애들에게 인기 있으니까 사랑하는 데 실패는 안 했을 거 아냐, 라면서 나름의 이유를 드는 그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은 이처럼 타인을 이해 할 줄 모른다.
대부분 실패 한 적 없으니까 이렇게 네 연애 상담도 해 주는 거잖아? 나는 발랄하게 말했다. 재수 없어, 라고 말하면서 그는 웃었다. 스가와라를 볼 때면 먼지 우주가 생각났다. 햇살 안에 들어 반짝반짝하고, 성운의 모습을 만드는 것은 결국 '먼지'일 뿐이다. 스포트라이트가 사라지면 결국 바닥에 깔릴 뿐인 하찮은 우주인 것이다. 사랑을 하는 그는 먼지 우주 속의 유로파였다.
나는 다시 스가와라를 사랑하게 된 경위를 생각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자신을 슬프게 한 사건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해서 듣기 좋았지만, 카게야마와 그 간의 서사는 내가 알아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 때도 이 카페의 이 자리였다. 배경음악으로는 우타타 히카루의 'fly to the moon'이 흐르고, 눈을 들면 고흐의 '아몬드 나무' 그림이 보였다. '파랑'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처음 스가와라와 같은 자리에 앉은 건 충동적인 일이었다. 그는 멀리서 보기에도 얼음이 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앞자리에 누가 앉는 지도 모르고 고갤 숙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민트초코맛 음료가 있었고, 나는 눈처럼 흰 휘핑크림이 가득 올려진 라떼를 들고 있었다. 내가 휘핑크림을 반절 정도 퍼먹을 때야, 스가와라는 고개를 들었다. 짓무른 그에게 나는 티슈를 건넸다.
나도 그 맘 잘 알아, 였나. 아니면 나도 알아. 였나. 나는 그 때 스가와라에게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 한 건 그는 배구 이야기 아니야, 라고 대답했었다. 그는 자신을 유로파에 빗대었다. 에우로페의 이름을 한 그 위성. 하늘과 별은 생긴 이래로 언제나 소년의 로망이었음으로, 나는 그 위성이 담고 있는 서사를 잘 아고 있었다.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위성, 67만 1050km라는 한 번에 헤아리기 어려운 거리 밖에서 목성을 바라보며 제 거리를 걷는 '별'이었다. 목성에게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아주지 않으며, 단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위성이었다. 지독한 짝사랑의 별이었다.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 그 단어가 품고 있는 깊이는 다 녹은 민트초코프라페가 가지고 있는 텁텁함보다도 쓴 맛이었다.
목성에게 다가가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하고 그가 물었다. 시적인 말이었다. 스가와라의 목소리는 형편 없이 갈라져 있어서, 나는 그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 다음에야 대답 할 수 있었다. '우주의 질서'가 무너져서? 하고 대답하는 나에게 그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끄덕이는 머리카락은 가볍게 나풀거렸고, 나는 얼떨결에 나도 짝사랑을 하고 있어서 알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거짓말이 시작이었다. 그 거짓말이 내 사랑의 '핵'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먼지와 가스들이 뭉쳐져서 별이 되는 것처럼, 오이카와 토오루는 스가와라 코우시의 두 번째 위성이 되었다. 나는 그의 유로파였고, 스가와라는 토비오의 유로파였다. 우리의 목성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이 나와 스가와라의 목성이 가지는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내 우주의 시작은 스가와라였다.
별 거 아닌 울음 때문에 나는 지금도 이 자리에 나와 있다. 스가와라는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지루하지? 내 짝사랑, 하는 목소리에는 얼음이 서려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어, 손을 뻗었다. 내가 뻗는 손길은 얼음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는 그것이 위로라도 되는 양 가볍게 잡았다. 소행성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내 그림자, 내 뒷면, 혹은 내 내핵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기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그는 얼음이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하얬고, 예뻤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타입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타입을 좋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날 좋아 해 주는 사람을 좋아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 보다 주는 걸 받는 게 좋았다. 좋아 할 여유도 없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우주의 첫 대폭발처럼 다가왔다. 먼지와 가스만 차 있던 어둠뿐인 공간에 별이 뜨는 것처럼, 그는 나를 위성으로 만들었다.
나는 위성이었다. 오이카와 미안해, 하고 그가 다시 사과했다. 토비오의 이름을 부를 때 보다 짙은 목소리였다. '슬픔' 같은 약한 모습은 너 한테만 보여주고 싶어, 스가와라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린 친구잖아, 라는 말이 녹아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일부러 입을 가리고 하품했다. 오이카와 씨는 착한 사람이라서 네 지루한 사랑 이야기는 얼마든지 들어 줄 거거든? 내 허풍 가득 한 말에 스가와라는 다시 웃었다.
유로파의 표면은 얼음으로 덮여 있다. 100km 두께의 얼음 아래에는 물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물의 다른 이름은 분명 슬픔일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붙여도 하등 모순이 없을 것이었다. 나중에 토비오랑 잘 되면 맛있는 거나 사 줘.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내 웃는 모습은 내가 봐도 홀릴 만큼 잘 생겼으나, 다른 쪽을 보고 공전하는 그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걸, 오이카와 토오루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독한 일이었으나 익숙한 일이었다. 이미 우리 둘, 그리고 토비오를 낀 이 관계에서는 '우주의 법칙'만큼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스가와라는 두 번째였고, 나는 두 번째의 두 번째였다. 우리는 서로를 사이에 두고 공전하고 있다. 우리는 유로파였음으로, 우리는 3.5512일을 지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갈 것이었다. 별은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다. 그야말고 충실하고 충직한 사랑이었다.
오이카와, 너는 잘 되고 있어? 스가와라가 물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나름의 의사 표현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하고 대답하니, 스가와라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 소설가가 된다. 헛점 하나 없는 거짓말, 알리바이를 지어내는 추리 소설가였고, 둘도 없는 로맨스를 만들어내는 로맨스 작가였다. 스가와라는 나와 달리,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 곧은 눈에 나는 다시 소행성과 충돌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왜 스가와라 코우시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나는 다시 의문을 제시한다. 내가 왜 걔를 좋아하게 됐을까, 라는 형태로 그 말은 입 밖으로 나갔다. 대명사를 사용한 서툰 연막에 스가와라는 운명이 아닐까, 하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우주는 우연에 가까운 필연에 의해서 만들어 진 거라는 과학자의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쾌 군은 똑똑하네, 라고 칭찬하는 말에 그는 얼굴을 붉혔다.
뭐, 두 번째들 끼리 힘내자구, 하면서 서툴게 하는 말에 스가와라는 그래, 하면서 손을 내밀어왔다. 그 하이파이브를 할 때 마다, 나는 얼음층을 쌓았다. 두껍고, 두터운 것이었다. 나는 오늘도 스가와라와 사랑하는 꿈 속에서 산다. 내민 손에 나는 손을 얹었다.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손이, 아래로 추락해 떨어졌다. 창 밖에서 햇빛이 쏟아져 내려, 아무 것도 아닌 먼지를 '우주'로 바꿔놓고 있었다. 예쁘다, 하고 스가와라는 먼지우주처럼 웃었다.
위성은 자신의 축과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 궤도를 끝없이 돌 뿐이었다. 내 끝나지 않는 공전은 스가와라 코우시를 축으로 한 노래였고, 사랑이었고, 꿈이었다. 나는 꿈속에서 살고 싶었다. 더 가까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음으로.
03.
유로파는 목성의 4대 위성 중 하나로서, 1610년 갈릴레이가 발견했다.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깝기 때문에, 67만 1050km 떨어져 있다. 표면을 덮은 얼음 때문에 지표 온도가 낮에도 -130도를 웃돌며, 이 때문에 유로파는 하얀 색으로 보인다.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어 산맥과 깊은 계곡, 화산이 터진 자국은 보이지 않고, 다른 위성에서 볼 수 있는 운석구덩이 또한 보이지 않는다. 얼음은 100km 두께로 유로파를 둘러싸고 있다. 표면을 덮은 얼음 아래로 물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유로파'는 에우로페라고도 읽으며, 이는 목성의 영어 이름인 주피터. 즉 제우스와의 관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유로파는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위성이다.
[하나쿠니] 잠자는 자취방의 공주님 (0) | 2015.03.04 |
---|---|
[오이스가] 청어 간장 조림과 토마토 된장국에 어울리는 반찬에 대하여 (0) | 2015.03.01 |
[오이스가] 오랑제뜨 (0) | 2015.02.14 |
[카게스가] 나는 이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0) | 2015.02.08 |
[오이스가] '좋아'의 다른 이름은 '혁명'이 아닐까? (0) | 2015.02.08 |
:D | 2015. 2. 14. 16:35
오랑제뜨를 받았었다. 이와이즈미의 것이었다. 때는 1월 14일이었고, 그는 부활동이 시작하기 전에 부원들에게 하나씩 나눠 줬었다. 이와이즈미는 클래스메이트가 준 거라고 말하면서, 오랑제뜨 여러 개가 들어있는 투명한 포장지를 흔들었다. 창문에서 흘러들어온 햇빛에, 오렌지에 졸여진 설탕입자들이 반짝였다. 쿠니미는 제 손에 들린, 그 손이 많이 가는 디저트를 들고 고민하는 듯 했다. 그는 부실에서 유일하게 오이카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안 먹어? 오렌지 싫어해?”
이와이즈미가 쿠니미를 보며 말했다. 쿠니미는 찝찝하다는 표정을 하고, 초콜릿 발린 부분을 입에 넣었다. 이와이즈미는 아빠라도 된 양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무심함에 감탄했다. 오이카와는 오늘 날짜가 매우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자신 없는 날짜였다. 쿠니미는 아직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누나가 있다고 했던가, 아니면 소금 캬라멜 같은 디저트를 좋아해서 그런가. 오이이카와는 만약 쿠니미가 오랑제뜨를 만드는데 드는 노력을 알고 있다면, 먹는 게 꺼려질 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와가 좀 더 세심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이카와가 장난기를 섞어서 말하자 쿠니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끄덕임에 흔들렸다. 이와이즈미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오이카와에게 다가오는 그 느린 풍경 뒤로, 하나마키가 오랑제뜨를 하나 더 집으려는 걸 막는 쿠니미가 보였다. 오이카와는 제 몫의 디저트를 얼른 입에 넣었다. 오렌지에 씁쓸함이 묻어 있는 게, 오렌지필부터 직접 만든 것 같았다.
오랑제뜨는 오렌지필에 초콜릿을 묻혀 굳힌 디저트이다. 초콜릿 샵이나 쿠킹클래스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본 메뉴이지만, 완성도 있는 제품을 만드는 건 의외로 까다롭다. 특히 주재료인 오렌지필은 직접 제작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다소 비싸더라도 구입할 것을 추천하는 편이다. 이 디저트는 초콜릿이 입에서 너무 빨리 녹아 허전할 때 생각나는 디저트이다.
오이카와는 설탕을 계량했다. 흩어질 가루눈처럼 모여 있던 설탕을 볼에 붓고, 미리 체에 걸러둔 시럽을 부었다. 설탕이 눈물처럼 녹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작은 결정 하나 남지 않도록 녹이려했다. 그의 가벼운 손길에 설탕은 쉽게 풀어졌다. 오이카와는 이제 좀 이 과정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처음 소금으로 오렌지를 씻은 날로부터 정확히 사일 째 되는 날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집은 조용했다. 그의 오렌지필을 보며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던 엄마도, 뭔가 먹을 만한 게 있지 않을까 싶어 기웃거리던 타케루도 없었다. 오이카와는 시럽을 불에 올렸다. 약한 불에 올린 시럽은 이제 사랑처럼, 착실하게 온도를 올릴 것이었다. 그는 괜히 시럽을 저었다. 액체가 찰랑이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함 가운데서 아까 타케루가 그에게 조잘대던 말이 형체를 가지고 다가왔다.
여자 친구도 없으면서 정성이다 토오루. 오이카와는 그 정직한 말이 오렌지의 흰 부분 같다고 생각했다. 꽤나 많은 양의 설탕을 바르고 졸여내도 쓴 맛을 담아내는 그 ‘흰색’처럼, 타케루는 오이카와의 약한 부분을 단번에 찌르고 들어갔다. 쓴 맛이 혀에 올라타는 과정 같았다. 누가 우리 누나 아들래미 아니랄까봐, 오이카와는 괜히 툴툴거렸다.
그는 따로 빼둔 오렌지를 바라보았다. 고작 부엌에 달린 백열등 빛을 흡수했을 뿐인데, 별처럼 반짝였다. 공을 들여 커팅한 보석 같았다. 오이카와는 오렌지필 하나를 집었다. 시럽으로 여러 번 코팅했기 때문에 모양이 가장 못난 것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제법 볼만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입에 넣었다. 다행이도 쓴 맛은 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다 끓지 않은 시럽을 보며 이 디저트가 손이 매우 많이 가는 음식임을 재차 실감했다.
‘그 날’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다시 번져왔다. 이와이즈미가 단순한 ‘클래스메이트’에게 받아 온 오랑제트의 맛이 오이카와의 오렌지필에 번져오는 것 같았다. 서툴지만 신경 쓴 맛이었고, 끝 맛이 썼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완성품도 그녀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괜히 시럽을 저었다. 냄비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켰다. 그는 그에게 사랑의 달달함만 맛보여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괜히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다.
그 날 연습시간에 하나마키는 쿠니미에게 ‘왜 먹는 걸 막았냐’라고 물었다. 그의 어린 투정에 쿠니미는 우리가 모두 남자 고등학생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그게 굉장히 멋들어진 답변임을 알고 있었다. 보통 남고생라면 이 디저트의 이름도, 안에 들어있을 노력도 알아챌 수 없었다. 오랑제뜨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오렌지를 설탕에 여섯 날 동안 조린다는 사실을 어느 고등학생이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겠는가. 쿠니미는 그걸 나눠먹는 생각을 하는 것도 실례라고 단언했다. 맞는 말이었다.
오이카와는 끓어오르기 시작한 시럽을 얼른 들어, 오렌지필이 가득한 볼에 부었다. 부엌의 백열등에서 반짝임을 빼앗은 듯, 스테인리스 볼 안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오랑제뜨를 바라보며 그 사람을 생각했다. 부엌 식탁 위에 달린 백열등마냥 강하게 내리쬐는 배구코트의 조명 아래에서 산뜻하게 빛나던 그를. 스가와라, 오이카와는 그의 이름을 어색하고 서툴게 발음했다.
오랑제뜨를 만드는 기간은 일주일 정도다. 시럽을 만들어 달콤함을 오렌지 안에 가두는 과정은 육일에 걸쳐 진행되고, 오렌지를 식힘망에서 말리는데 또 하루가 든다. 하나님이 세상을 육일에 걸쳐 생성하시고 하루를 쉬셨다는데, 오랑제뜨를 만드는 데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 보다 ‘하루’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을 온전히 담금질 하는 데는 그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법이었다.
오이카와는 시럽이 오렌지 안에 얌전히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는 나무 숟가락으로 오렌지들을 저었다. ‘오렌지를 졸이는 밤’이 하루하루 늘어갈 수록,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얼마나 무심한 남자인지 새삼 깨달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소금으로 오렌지 표면을 벅벅 문지르던 첫 날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라는 말을 꼭꼭 씹어 발음하는 스가와라를 상상하는 게 즐거웠다. 그 목소리에는 오이카와만을 향한 미소가 따라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둘째 날 또한 ‘맑음’이었다. 상쾌한 그에게 오렌지의 상큼함을 선물한다는 게 의외로 센스 있지 않은가, 하는 자아도취도 따라왔다. 그가 제 눈앞에서 토끼마냥 입술을 오물거리는 걸 보는 게 꽤나 즐거울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어제는 ‘구름 많음’과 ‘흐림’이었다. 그는 자신과 스가와라의 심리적 거리에 대해서 고민했다. 시럽에 절여지는 오렌지를 마주하는 시간이 심란했다. 이와이즈미의 클래스메이트도 아마 이런 기분이 들었겠지 싶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오랑제뜨를 부실에서 나눠먹는 카라스노를 생각했다. 어제까지 좋았던 기분은 날개가 꺾여 단번에 추락했다.
솔직히 말해서 쿠니미 같은 사람이 카라스노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온전히 스가와라만을 생각하며 졸인 일주일을 타인에게 빼앗기는 게 기분 나빴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오랑제뜨를 주는 일을 없는 걸로 하는 것도 싫었다. 그는 설탕시럽을 마시는 오렌지필을 살펴보았다. 오렌지가 품고 있는 칸마다 그의 감정이 설탕물처럼 달라붙고 있었다. 꾸덕거리며 반짝이는 감정의 편린.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랑제트에 들어가는 오렌지에 설탕을 입히는 데는, 1kg가 넘는 양이 필요하다. 매 회 250g의 설탕을 따로 먹으며 굳어간 오렌지필이 가끔 과하게 쓴 맛을 내는 것은, 만드는 시간이 길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것을 졸이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감정은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후회, 혹은 걱정. 그 부정적인 감정을 먹으면서 오렌지는 제 몸을 불려간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렌지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며칠 후면 초콜릿을 입고 예쁜 무늬의 폴리백에 들어갈, 오이카와의 감정 조각들이었다. 오이카와는 식탁 위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발렌타인데이가 머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의 숫자를 세었다. 발렌타인데이 전날에 주자, 그는 다시 한 번 날짜를 결심했다. 기념일에 맞춰 주고 싶진 않았다. 그에게 초콜릿을 줄 다른 여자애들과 같은 취급을 받기 싫었다. 오이카와는 특별하길 원했다. 그가 스가와라의 세계에 간섭할 수 있길 원했다.
일주일, 그 칠 일 동안 오이카와는 설탕에 졸여지는 오렌지였다. 질투와 애정, 순수한 마음과 후회 등이 그의 몸에 더덕더덕 붙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감정들은 결국 사랑이라는 초콜릿으로 갈무리되어 스가와라의 앞에 전달 될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없었다. 마냥 스가와라가 보고 싶었다. 그의 감정이 향하는 곳은 오로지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스가와라는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그가 아무리 사려깊고 세심하다 해도, 예쁘게 포장된 오랑제뜨 앞에서 그는 분명 일반적인 남자 고등학생처럼 행동할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과 디저트를 공유하고, 나눠먹을게 분명했다. 어떤 감정이 녹아있을지 하나도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초콜릿 입힌 오렌지를 주는 행위가 사랑을 기반으로 한 행동이라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미흡한 마음 한 톨, 그 한 조각이라도 주고 싶었다. 오이카와는 고민했다. 그는 괜히 오렌지가 든 스테인레스 볼을 흔들었다. 그의 손길을 타고 고민이 볼 안에 들어갔다. 오렌지는 여전히 반짝이며, 달콤한 향을 냈다. 사흘 내내 담긴 감정들이 볼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오랑제뜨 안에는 고민마저 녹아 있었다. 사랑에서 파생 된 긍정과 부정 모두 오렌지 칸 안에 숨어 있었다.
오렌지에 달달함을 묻히는 과정 내내 감정은 파랑처럼 요동쳤다. 그렇지만 그것은 ‘애정’이라는 대단원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오이카와는 괜히 볼을 끌어안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냈다. 상쾌 군, 하고 그는 다시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마음에서 다시 사랑이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부디 ‘스가와라의 아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랐다. 그는 자신의 오랑제뜨가 ‘오이카와 토오루가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준’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오고 있었다.
오랑제뜨는 오렌지필에 초콜릿을 묻힌 디저트이다. 초콜릿 가게나 쿠킹 클래스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본 메뉴이지만 완성도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의외로 까다로운 일이다. 특히, 주재료인 오렌지필은 직접 제작하기, 까다로우므로……, 다소 비싸더라도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오랑제뜨의 주재료인 오렌지 필을 만들 때는 번민하는 여섯 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디저트는 외사랑이 입에서 너무 빨리 녹아 허전할 때 생각, 나곤 한다.
[오이스가] 청어 간장 조림과 토마토 된장국에 어울리는 반찬에 대하여 (0) | 2015.03.01 |
---|---|
[오이스가] Europa (0) | 2015.02.25 |
[카게스가] 나는 이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0) | 2015.02.08 |
[오이스가] '좋아'의 다른 이름은 '혁명'이 아닐까? (0) | 2015.02.08 |
[카게스가] 아버지를 찾습니다, (0) | 2015.02.05 |
:D | 2015. 2. 8. 18:48
예전에 썼던 템페스트와 피아노 맨 과 설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스가와라 씨는 분명 귀엽고 직설적일 거라구 생각합니다. 교류회 뽕을 맞아서 그른가 금방금방 써지네요... 아 교류회 또 가구 싶다.....
***
스가와라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그의 유려한 손가락이 하얀 건반 위를 배회하다가 음을 만들어 냈다. 그는 쇼팽의 혁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번 콩쿠르의 연습곡이었던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저번 주의 오이카와가 말하던 콩쿠르 내용을 기억하고자 했다. 그는 모든 곡에 이름-혹은 별칭-이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호들은 클래식을 더 어렵게 만들곤 했다. 음악실 창 너머로 햇빛이 들어왔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같던 스가와라의 점심시간을 오이카와는 매우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 모습이 퍽 좋았다.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 된 날과 같은 설렘이 돋아왔다. 잔잔한 마음에 ‘혁명’의 씨앗이 돋은 것도 같았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아쉬웠다. 그의 귀는 오이카와의 음악소리만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햇빛이 그의 갈색 머리카락에 내리 앉았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봄철 햇살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상냥하면서도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그가 예술 반의 하얀색 교복을 입고 있을 때면,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이카와가 가장 멋있어 보일 때는 피아노 앞에 있을 때였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양 손을 마주잡았다. 그가 음을 만들어 낼 때 마다 손이 떨려 견딜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오이카와는 미간을 좁히고서,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그의 혁명에 별칭을 붙인다면 아마 '지독한 불만을 담아'라는 이름일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그랜드피아노 너머로 보이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는 집중해, 라고 말하는 연주자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귀 너머로 흘리며 그가 나간다던 대회를 검색했다. 이미 보도자료가 돌았는지 ‘두 사람’의 이름이 메인에 떴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오이카와 토오루, 콩쿠르의 왕좌는 누구에게? 스가와라는 소리 내어 기사를 읽었다.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그의 혁명은 짜증을 더해갔다. 오이카와, 그렇게 하면 혁명이라기보다는 ‘때 쓰기’ 같잖아. 그의 신경질적인 타건을 보면서 스가와라가 첨언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말하지 마, 오이카와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그는 흰색 교복 상의가 불편했는지, 교복을 벗어 던졌다. 웬일인지 항상 갖춰 입고 있던 크림색 니트가 없었다. 스가와라는 그가 팔을 걷어붙이는 게 퍽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연미복 차림의 오이카와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맸다. 여기 여자애들도 없는데, 스가와라가 농을 걸자, 오이카와는 네가 있으니 괜찮다는 의미 불명의 말을 내뱉었다.
다시금 그의 혁명이 시작됐다. 스가와라는 그 일괄적인 음의 흐름을 들었다. 여전히 난폭하고 정제되지 않은 맛이 있었다. 그는 언젠가 들었던 우시와카의 ‘쇼팽 연습곡 op. 10-12 in c minor’을 떠올렸다. 난폭한 오이카와의 혁명과 다르게 고요한 맛이 있었다. 그 극도로 정제된 고요함 속에 흘러나오는 음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는 오이카와가 그 곡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가와라는 의자를 피아노 옆에 끌었다. 그는 오이카와가 건반을 누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앞에 두었다. 스가와라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은 점심시간이었다. 그는 5교시가 무슨 과목인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의 고민을 깨트린 것은 오이카와였다. 아 진짜 짜증나, 오이카와의 다물린 입 너머로 말이 새어 나왔다. 그는 그 난폭함을 좀 더 다스리다가 손바닥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세게 쳤다.
미처 음이 되지 못한 소리들이 한데 뭉쳐 올라갔다. 스가와라는 슬며시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이카와는 피아노 건반 위에 두 팔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단 한 번, 굉장한 소리가 나더니 눌린 건반은 아무런 음을 내뱉지 않았다. 머리 쓰다듬어 줘, 오이카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예술 하는 애들은 다 이렇게 제멋대로야?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다.
이와이즈미 군은 안 그러던 것 같은데, 스가와라가 말하자 오이카와는 걔도 목 안 풀리면 성질 장난 아니라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자기 보온병에 누가 손대는 것도 싫어해, 하나마키는 누가 자기 바이올린 건드리는 거 싫어하고, 마츠카와는 첼로 때문에 면허 따는 걸 벼르고 있고, 그리고 쿠니미는 손에 항상 장갑을 끼고 다니고, 그리고, 킨타이치는 … 하며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친구들의 나쁜 버릇을 이야기 했다. 스가와라는 그의 머리카락을 꼬집었다.
“누가 친구 험담하랬어?”
“물어본 건 너잖아!”
오이카와는 신경질을 내며 다시 피아노를 마주앉았다. 우시와카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게 여실히 보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등을 세게 친 다음에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처음 그를 신경 쓰게 된 날 보다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오이카와는 부쩍 스가와라에게 이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콩쿠르를 주기로 일주일 전후가 가장 심하니까 피해 다녀, 라는 이와이즈미의 말을 떠올렸다.
이기고 싶다- 오이카와는 일등이 왜 하나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혁명의 초입을 연주했다. 음이 끊임없이 질주했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니면 매력이 없어-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니 스타일대로 하는 게 어때?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듯, 오이카와는 음을 단정하게 쓰려고 했다. 우시와카의 ‘혁명’과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이래서 신경 쓰는 거구나. 스가와라는 머쓱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오이카와는 반복되는 주제부에서 다시 음을 세고 화려하게 가져갔다. 그 강한 음 위에서 놀아날 수 있다면 이번에야말로 트로피를 차지 할 수 있다는 말을 그의 손가락이 하고 있었다. 손끝에서 음이 뽑아지는 것부터가 신기 한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진짜 싫다- 하고 내뱉으면서도 음을 예쁘게 만들어 내려고 했다.
우시와카의 혁명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스가와라는 왜 그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이기지 못하면 그게 끝인가, 그는 인문계인 자신이 알 수 없는 범위에 오이카와가 있는 것 같아 못내 서운했다. 스가와라는 괜히 검은 가쿠란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뭔가 더 좋게 위로 하거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었지만 그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혁명’의 마지막 음을 연주하고, 그의 가느다란 두 손이 건반 위에서 나가자 스가와라는 박수를 쳤다. 못한 연주에는 박수 안 쳐도 괜찮아 상쾌 군, 오이카와는 의기소침해서 중얼거렸다. 스가와라는 듣기 좋았다고 말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둘만 있는 음악실에서 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다시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한 번 정도 더 연주하고 갈 수 있겠지? 그가 물었고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동수업이지만.”
“상쾌 군 이동수업이야? 근데 왜 안 가? 맞다, 오늘 수요일이지.”
오이카와가 놀랐다는 식으로 말했다. 스가와라는 어서 치기나 하라면서 그의 팔목을 잡아 건반 위에 올려주었다. 오이카와의 음이 다시금 시작됐고, 그는 가만히 그걸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안 가? 그가 다시 물었다. 스가와라는 음, 하고 잠시 고민하는 척을 했다. 그는 시계를 확인 했다. 수업에 조금 지각할 것도 같았다. 그는 우카이 선생님이 오늘 기분이 좋길 바라면서입을 열었다.
“너 피아노 치는 거 좋아서.”
“방금 좀 느끼했어.”
오이카와는 바로 대답하면서 음을 만들어갔다. 스가와라는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라서 어쩔 수 없는 거라면서 다리를 쭉 폈다. 오이카와는 그게 뭐냐면서 타박했다. 혁명의 강한 음이 두 사람의 목소리에 누그러지는 것도 같았다. ‘소녀의 기도’ 소리를 따온 수업 종이 울렸지만 음악은 끝나지 않았다. 끝낼 법도 하지만 그는 건반을 누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점이 오이카와 토오루 같아서, 스가와라는 좋았다.
너 늦겠다, 오이카와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스가와라를 일으켰다. 스가와라는 그의 하얀 교복 마이를 건네면서 별로? 하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잘 들었다면서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느긋한 걸음에 초조해졌는지, 오이카와는 발을 동동 굴렀다. 니 오늘 수요일이니께 수학이자너, 그의 말투에 스가와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만 그는 천천히 걸었다. 오이카와와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일종의 ‘일탈’이었다.
“오늘 어땠어?”
헤어지기 전 복도에서 오이카와가 물었다. 5교시가 이미 시작 되었는지, 복도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연주회장 3층에서 듣는 ‘볼레로’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박자도, 음도 들리지 않지만 곧 몸을 키워내는 음악소리처럼, 두근거림에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는 글쎄, 라고 머뭇거리면서 고백을 입에서 굴렸다.
“정말 좋아.”
“니는 항상 그렇게 말하더라.”
“하지만 좋았어.”
스가와라는 활짝 웃었다. 니 해바라기 닮았다. 오이카와는 괜히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좋은 걸 좋다고 하지 어떻게 하냐? 니 내 클래식 잘 모르는 거 알잖아. 스가와라는 투덜거리면서 그의 옆구리에 툭툭 잽을 날렸다. 오이카와는 옆으로 움찔대면서 그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니 연주 정말 좋아. 스가와라는 장난기 가득한 풍경에 진심을 던져 넣었다. 오이카와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다고만 하지 말아줄래?”
“좋은 걸 어떡해.”
“아 몰라!”
오이카와는 복도를 달렸다. 예술동으로 향하는 긴 복도에 발소리가 세게 울렸다. 스가와라는 언뜻 본 오이카와 토오루의 붉어진 귓바퀴를 생각하다가 볼을 긁었다. 다시 스가와라 코우시의 세계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처럼 느리게 돌아갔다. 그는 햇살을 통과하는 먼지우주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좀 귀여운 것도 같았다. 볼레로 같은 마음이 점점 제 몸집을 키워갔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보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좋은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붉어진 얼굴만큼, 뛰어가던 뒷모습만큼, 서툰 혁명만큼 오이카와가 좋았다. 스가와라는 괜히 볼을 긁으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사히가 보낸 문자가 들어 있었다. 니 책 옮겨 놨어, 스가와라는 땡큐,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 늦기 전에 들어가야만 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가 달려간 반대쪽으로 달렸다. 햇살은 느리고 따듯한 박자로 움직였다.
[오이스가] 오랑제뜨 (0) | 2015.02.14 |
---|---|
[카게스가] 나는 이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0) | 2015.02.08 |
[카게스가] 아버지를 찾습니다, (0) | 2015.02.05 |
[카게스가] 부스 바깥, 너 (0) | 2015.02.04 |
[오이스가] 포뇨는 바다 밑에 산다. (0) | 2015.02.01 |
:D | 2015. 2. 1. 22:11
스가른 전력에 참여 한 글입니다. 주제가 '노래' 였어요. 요즘 미유미유의 언더 더 씨를 인상 깊게 듣고 있어서, 살짝 써먹어 보고 싶었습니다. 조금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귀엽게 봐주세요 ㅇ.<)/
***
같이 살게 된 다음에서야 알게 되는 게 있다. 일상의 전부를 공유할 때야 언뜻언뜻 비치는 ‘사소함’의 형태를 하고 있다. 오이카와는 칫솔을 꺼냈다. 그는 중간부터 짜인 치약을 끝부터 밀어냈다. 그는 튜브를 손가락으로 쭉 짜냈다. 울퉁불퉁한 치약은 다 펴지지 않았다. 그는 예상보다 많이 짜인 치약을 입에 넣었다. 민트 맛이 입에 강하게 퍼졌다.
동거를 시작한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와 스가와라는 사소한 차이점들이 있었다. 오이카와는 치약을 끝에서부터 밀어 쓰는 걸 좋아했다. 괜히 치약을 낭비하지 않는 기분이 드는데다가, 치약이 뭉쳐있음으로 쉽게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가와라는 중간부터 짜냈다. 이는 매우 사소한 ‘차이’였다. 한 사람은 계속 치약을 평평하게 폈고, 다른 사람은 뭉쳐내는 아침 시간의 작은 일력다툼이었다.
휴지를 놓는 방향 또한 그랬다. 오이카와는 벽면에서 멀리, 스가와라는 벽면을 향해 꽂곤 했다. 딱히 지적해서 말할 건 아니었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이를 닦았다. 입 안 가득 하얀 거품이 들이 찼다. 그는 세면대에 거품을 뱉고 물을 틀었다. 토오루, 또 물 틀고 쓰지?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또 차이점을 찾아냈다.
스가와라는 양치를 할 때 물을 받아서 쓰곤 했다. 오이카와는 물소리를 줄였다. 줄어든 물줄기에 거품이 조금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그는 세면대에 양치 거품이 가득 한 걸 보길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그는 입 안 가득 들어있는 거품을 뱉어내고, 물컵에 물을 받았다. 토오루, 하는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고 오이카와는 컵에 물, 하는 짧은 소리를 외쳤다.
참 생각해보면 사소한 습관이 이렇게 다른데도 동거하는 건 재미있었다. 오이카와는 쉐이빙폼을 얼굴에 치덕치덕 발랐다. 멀리서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오늘 반찬이 고등어 구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수동 면도기를 꺼냈다. 그는 동거인의 자동 면도기를 잘 세워놓고, 결대로 조금 자란 수염을 밀었다. 자동보다 수동이 폼 나는 데, 그는 스가와라의 노랫소리를 따라 부르며 면도했다.
스가와라에게는 작은 버릇이 있었다. 오이카와는 얼굴을 씻고 나왔다. 그는 흰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는 스가와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단정한 검은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누가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 출신 아니랄까봐, 주황색 포인트가 들어간 물건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언더 더 씨’를 노래했다. 고등어의 머리를 치는 살벌한 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왜 언더 더 씨야?”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바다 속은 행복했겠지, 라는 의미 모를 말을 내뱉었다. 두 마리 고등어의 머리가 싱크대 너머로 떨어졌다. 오이카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야후~ 하는 추임새를 넣는 그는 제법 신나 보였다.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가와라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고등어를 어슷썰기 하고 있었다.
어슷썰기 해? 그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렇게 배웠다면서 고등어의 내장을 살살 발랐다. 우리 집은 반절로 갈라서 토막 냈는데. 오이카와는 다시 ‘반복’되는 언더 더 씨를 들으며 말했다. 스가와라는 노래를 멈추고선 그럼 ‘가운데 토막’을 두고 싸우게 되잖아‘ 라고 대답했다. 의외의 생활의 지혜였다. 오, 오이카와는 젓가락을 챙겨 갔다. 그는 다시 일절을 입에 머금었다. 그는 매우 행복 해 보였다.
스가와라의 엉덩이가 좌우로 움직였다. 오이카와는 떠온 물을 마시면서 그의 ‘고등어 손질’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이가 좋지? 스가와라가 물어왔다. 오이카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좋아~ 하고 리듬을 타며 말했다. 이 또한 ‘언더 더 씨’의 추임새였다. 이렇게 생선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오이카와가 웃으며 말했다. 스가와라는 어렸을 때부터 물든 버릇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버릇 귀여워.”
“너도 귀여운 버릇 있는데.”
스가와라는 고등어를 불 위에 올렸다. 자글자글한 기름에 고등어가 구워지는 소리를 냈다. 오이카와 거기 달력, 스가와라는 뒤를 돌며 손을 뻗었다. 그는 반절로 잘린 달력을 내밀었다. 그는 인쇄가 안 된 부분을 아래로 해서 덮었다. 그렇게 하면 잘 돼? 오이카와가 물었고, 스가와라는 손으로 브이를 해 보였다. 그는 이렇게 하면 촉촉하게 구워진다고 말했다. 엄마한테 배워왔어, 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목소리가 귀여웠다.
아무튼 너 귀여운 버릇 있다니까, 스가와라는 구이용 젓가락을 손에 든 채 말했다. 오이카와는 눈을 깜빡였다. 너 샤워할 때 ‘포뇨 노래’ 부르잖아. 뽀-뇨 뽀노 포뇨- 포뇨- 하면서. 스가와라는 그의 어조를 따라 노래 불렀다. 너 의외로 크게 불러. 하면서 스가와라는 웃었다. 들었어? 오이카와가 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 같았다. 부를 때는 당당하게 부르면서 들키니까 부끄러워 하는 걸까, 스가와라는 그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 지금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야.”
“포뇨카와 씨~”
“포노카와 씨는 지금 접시 물에 코 박고 싶어졌어. 바다로 돌아갈래”
"안 돼, 스가와라 씨가 물병에 담아왔는 걸."
"포뇨카와 씨 지금 매우 쪽팔려."
오이카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못 들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하고 소리치자, 스가와라는 그러려면 애초에 샤워 할 때 한 뼘 정도 문 열어놓는 버릇부터 고치라고 충고했다. 오이카와는 정말로 몰랐다는 듯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스가와라는 고등어구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프라이팬 뚜껑 역할을 하던 달력을 걷었다. 그는 고등어를 뒤집으면서 ‘언더 더 씨’가 아니라 ‘포뇨’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 뭐 정리할 때는 ‘배니 랜드의 CM'을 콧노래로 부르잖아. 스가와라는 프라이팬에 다시 달력 뚜껑을 얹으면서 말했다. 오이카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고등어 내장같아, 스가와라는 아까 손질한 고등어 잔해에 물을 뿌리면서 말했다. 그런 살벌한 비유 하는 거 그만 둬 줄래? 오이카와는 여전히 당황한 것 같았다. 쪽팔린 부분을 건드린 걸까, 스가와라는 네- 안 말할게요! 하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다가 문득 생각했다. 동거라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서로의 사소한 버릇들을 차차 알아가면서 물들어 가는 게 아닐까. 그는 잠시 감상적인 생각을 하다가 붉어진 얼굴을 쓸었다. 포뇨 노래를 하면서 바디워시를 바르는 걸 들킨 게 부끄러웠다. 고등어 손질을 하면서 ‘언더 더 씨’를 부르는 것 보다 훨씬 더 부끄러운 느낌이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었다. 가스불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가 뒤를 돌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스가와라는 포~뇨 포뇨 포뇨 포뇨~ 하면서 노래를 불러왔다. 오이카와는 다시 얼굴을 가렸다. 베니 랜드의 CM송이 좋아? 라고 그의 연인은 능청스럽게 물어왔다. 오이카와는 동거를 시작 한 이래로 오늘이 가장 부끄럽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언더 더 씨’가 제일 좋아! 하고 소리쳤다.
[카게스가] 아버지를 찾습니다, (0) | 2015.02.05 |
---|---|
[카게스가] 부스 바깥, 너 (0) | 2015.02.04 |
[오이스가] 스가와라 선배 너 때문에 술쳐먹어요. 오후 9 : 10 (0) | 2015.02.01 |
[하나쿠니] DO S (0) | 2015.01.31 |
[하나쿠니] 고민, 고민, 고민- 고민. (0) | 2015.01.28 |
Rec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