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Europa


 스가른 전력에 참여했던 글입니다.

 원래 일인칭이라면 '그'라고 지칭하지 않고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렇게 하면 너무 글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이번엔 '그'라는 호칭으로 타협 해 보았습니다. 위성과 행성의 관계는 참 로맨틱한 것 같아요.










01.


   유로파는 목성의 4대 위성 중 하나로서, 1610년 갈릴레이가 발견했다.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깝기 때문에, 67만 1050km 떨어져 있다. 표면을 덮은 얼음 때문에 지표 온도가 낮에도 -130도를 웃돌며, 이 때문에 유로파는 하얀 색으로 보인다.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어 산맥과 깊은 계곡, 화산이 터진 자국은 보이지 않고, 다른 위성에서 볼 수 있는 운석구덩이 또한 보이지 않는다. 얼음은 100km 두께로 유로파를 둘러 싸고 있다. 표먼을 덮은 얼음 아래로 물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유로파'는 에우로페라고도 읽으며, 이는 목성의 영어 이름인 주피터. 즉 제우스와의 관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유로파는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위성이다.







02.



   스가와라 코우시를 왜 좋아하게 됐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다만 그를 볼 때면 울컥하고 치받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는 카게야마 토비오와 그의 관계에서 비롯한, 열등감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나, 나는 이 감정을 오롯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스가와라를 바라보았다. 그는 얼어붙은 유리컵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 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꼭 울 것 같았다. 익히 있는 일이었다. 그는 내 목소리를 경쾌하게 부르지 않았다. 그가 부르는 내 이름은 다 녹은 아이스크림 국물의 끈적함을 닮았고, 길고 긴 여름의 더위를 닮았다. 평소 상쾌한 얼굴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차라리 그가 얼어붙은 것처럼 날 대했다면, 나는 내 이 짝사랑을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가와라는 애매하게 웃었다. 그는 하얀 손가락으로 라떼가 든 머그컵 입구를 쓸었다. 저기, 있잖아, 하고 그의 목소리는 망설임을 가득 담아냈다. 나는 괜히 빨대를 돌려 유리잔에서 소리를 냈다. 맑은 소리에 그가 놀란 듯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오이카와 씨는 말야, 상쾌 군의 망설임을 들어 줄 정도로 한가 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입꼬리를 당겨 웃는 일은 내게는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가와라의 앞에서 표정을 만들 때 마다 가슴 한 가운데서 열기가 치받쳤다. 스가와라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카게야마가, 하고 입을 열었다. 나는 그가 부르는 귀여운 후배의 이름만으로 그가 품고 있는 서사를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두 번째' 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지?"

   "뭐, 그 녀석 대놓고 무심하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과장 된 표현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배우들은 일부러 몸짓을 크게 하여 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는 들은 적이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사람은 그 상황에 처해야만이 다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입술을 오물거렸다. 전혀 상쾌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얼어 붙은 스가와라에게서 냉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라는 말은 가혹하지? 스가와라가 물었다. 나는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그는 오이카와는 이런 거 모르잖아, 라는 말로 응수 해 왔다. 고개를 들어 본 그의 얼굴은 '이런 마음도 모르면서 그런 말 하지 마'라는 문장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애석 한 일이었다. 여자애들에게 인기 있으니까 사랑하는 데 실패는 안 했을 거 아냐, 라면서 나름의 이유를 드는 그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은 이처럼 타인을 이해 할 줄 모른다.


   대부분 실패 한 적 없으니까 이렇게 네 연애 상담도 해 주는 거잖아? 나는 발랄하게 말했다. 재수 없어, 라고 말하면서 그는 웃었다. 스가와라를 볼 때면 먼지 우주가 생각났다. 햇살 안에 들어 반짝반짝하고, 성운의 모습을 만드는 것은 결국 '먼지'일 뿐이다. 스포트라이트가 사라지면 결국 바닥에 깔릴 뿐인 하찮은 우주인 것이다. 사랑을 하는 그는 먼지 우주 속의 유로파였다.


   나는 다시 스가와라를 사랑하게 된 경위를 생각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자신을 슬프게 한 사건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해서 듣기 좋았지만, 카게야마와 그 간의 서사는 내가 알아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 때도 이 카페의 이 자리였다. 배경음악으로는 우타타 히카루의 'fly to the moon'이 흐르고, 눈을 들면 고흐의 '아몬드 나무' 그림이 보였다. '파랑'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처음 스가와라와 같은 자리에 앉은 건 충동적인 일이었다. 그는 멀리서 보기에도 얼음이 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앞자리에 누가 앉는 지도 모르고 고갤 숙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민트초코맛 음료가 있었고, 나는 눈처럼 흰 휘핑크림이 가득 올려진 라떼를 들고 있었다. 내가 휘핑크림을 반절 정도 퍼먹을 때야, 스가와라는 고개를 들었다. 짓무른 그에게 나는 티슈를 건넸다.


   나도 그 맘 잘 알아, 였나. 아니면 나도 알아. 였나. 나는 그 때 스가와라에게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 한 건 그는 배구 이야기 아니야, 라고 대답했었다. 그는 자신을 유로파에 빗대었다. 에우로페의 이름을 한 그 위성. 하늘과 별은 생긴 이래로 언제나 소년의 로망이었음으로, 나는 그 위성이 담고 있는 서사를 잘 아고 있었다.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위성, 67만 1050km라는 한 번에 헤아리기 어려운 거리 밖에서 목성을 바라보며 제 거리를 걷는 '별'이었다. 목성에게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아주지 않으며, 단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위성이었다. 지독한 짝사랑의 별이었다.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 그 단어가 품고 있는 깊이는 다 녹은 민트초코프라페가 가지고 있는 텁텁함보다도 쓴 맛이었다.


   목성에게 다가가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하고 그가 물었다. 시적인 말이었다. 스가와라의 목소리는 형편 없이 갈라져 있어서, 나는 그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 다음에야 대답 할 수 있었다. '우주의 질서'가 무너져서? 하고 대답하는 나에게 그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끄덕이는 머리카락은 가볍게 나풀거렸고, 나는 얼떨결에 나도 짝사랑을 하고 있어서 알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거짓말이 시작이었다. 그 거짓말이 내 사랑의 '핵'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먼지와 가스들이 뭉쳐져서 별이 되는 것처럼, 오이카와 토오루는 스가와라 코우시의 두 번째 위성이 되었다. 나는 그의 유로파였고, 스가와라는 토비오의 유로파였다. 우리의 목성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이 나와 스가와라의 목성이 가지는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내 우주의 시작은 스가와라였다.


   별 거 아닌 울음 때문에 나는 지금도 이 자리에 나와 있다. 스가와라는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지루하지? 내 짝사랑, 하는 목소리에는 얼음이 서려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어, 손을 뻗었다. 내가 뻗는 손길은 얼음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는 그것이 위로라도 되는 양 가볍게 잡았다. 소행성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내 그림자, 내 뒷면, 혹은 내 내핵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기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그는 얼음이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하얬고, 예뻤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타입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타입을 좋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날 좋아 해 주는 사람을 좋아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 보다 주는 걸 받는 게 좋았다. 좋아 할 여유도 없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우주의 첫 대폭발처럼 다가왔다. 먼지와 가스만 차 있던 어둠뿐인 공간에 별이 뜨는 것처럼, 그는 나를 위성으로 만들었다.


   나는 위성이었다. 오이카와 미안해, 하고 그가 다시 사과했다. 토비오의 이름을 부를 때 보다 짙은 목소리였다. '슬픔' 같은 약한 모습은 너 한테만 보여주고 싶어, 스가와라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린 친구잖아, 라는 말이 녹아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일부러 입을 가리고 하품했다. 오이카와 씨는 착한 사람이라서 네 지루한 사랑 이야기는 얼마든지 들어 줄 거거든? 내 허풍 가득 한 말에 스가와라는 다시 웃었다.


   유로파의 표면은 얼음으로 덮여 있다. 100km 두께의 얼음 아래에는 물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물의 다른 이름은 분명 슬픔일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붙여도 하등 모순이 없을 것이었다. 나중에 토비오랑 잘 되면 맛있는 거나 사 줘.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내 웃는 모습은 내가 봐도 홀릴 만큼 잘 생겼으나, 다른 쪽을 보고 공전하는 그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걸, 오이카와 토오루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독한 일이었으나 익숙한 일이었다. 이미 우리 둘, 그리고 토비오를 낀 이 관계에서는 '우주의 법칙'만큼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스가와라는 두 번째였고, 나는 두 번째의 두 번째였다. 우리는 서로를 사이에 두고 공전하고 있다. 우리는 유로파였음으로, 우리는 3.5512일을 지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갈 것이었다. 별은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다. 그야말고 충실하고 충직한 사랑이었다.


   오이카와, 너는 잘 되고 있어? 스가와라가 물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나름의 의사 표현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하고 대답하니, 스가와라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 소설가가 된다. 헛점 하나 없는 거짓말, 알리바이를 지어내는 추리 소설가였고, 둘도 없는 로맨스를 만들어내는 로맨스 작가였다. 스가와라는 나와 달리,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 곧은 눈에 나는 다시 소행성과 충돌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왜 스가와라 코우시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나는 다시 의문을 제시한다. 내가 왜 걔를 좋아하게 됐을까, 라는 형태로 그 말은 입 밖으로 나갔다. 대명사를 사용한 서툰 연막에 스가와라는 운명이 아닐까, 하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우주는 우연에 가까운 필연에 의해서 만들어 진 거라는 과학자의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쾌 군은 똑똑하네, 라고 칭찬하는 말에 그는 얼굴을 붉혔다.


   뭐, 두 번째들 끼리 힘내자구, 하면서 서툴게 하는 말에 스가와라는 그래, 하면서 손을 내밀어왔다. 그 하이파이브를 할 때 마다, 나는 얼음층을 쌓았다. 두껍고, 두터운 것이었다. 나는 오늘도 스가와라와 사랑하는 꿈 속에서 산다. 내민 손에 나는 손을 얹었다.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손이, 아래로 추락해 떨어졌다. 창 밖에서 햇빛이 쏟아져 내려, 아무 것도 아닌 먼지를 '우주'로 바꿔놓고 있었다. 예쁘다, 하고 스가와라는 먼지우주처럼 웃었다.


   위성은 자신의 축과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 궤도를 끝없이 돌 뿐이었다. 내 끝나지 않는 공전은 스가와라 코우시를 축으로 한 노래였고, 사랑이었고, 꿈이었다. 나는 꿈속에서 살고 싶었다. 더 가까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음으로.






03.



   유로파는 목성의 4대 위성 중 하나로서, 1610년 갈릴레이가 발견했다.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깝기 때문에, 67만 1050km 떨어져 있다. 표면을 덮은 얼음 때문에 지표 온도가 낮에도 -130도를 웃돌며, 이 때문에 유로파는 하얀 색으로 보인다.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어 산맥과 깊은 계곡, 화산이 터진 자국은 보이지 않고, 다른 위성에서 볼 수 있는 운석구덩이 또한 보이지 않는다. 얼음은 100km 두께로 유로파를 둘러싸고 있다. 표면을 덮은 얼음 아래로 물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유로파'는 에우로페라고도 읽으며, 이는 목성의 영어 이름인 주피터. 즉 제우스와의 관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유로파는 목성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