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쿠니] 봄, 봄.


   아직 벤쿠버 기준으로는 쿠니미의 생일입니다. 하나마키의 생일을 벤쿠버 기준으로 챙겼으니 쿠니미의 생일 또한 그래야 하는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늦장 부리다가 이제야 생일을 챙기네요. 가장 마지막으로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첫번째가 될 수 없다면 마지막이라도 가져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쿠니미야 생일 축하해 ^-^!!!!! 앞으로도 하나마키랑 예쁜 사랑 해줬으면 좋겠다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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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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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 알람이 울렸다. 얼마 전 카페에 갔을 때 올린 사진 때문이었다. 야 우리 이제 매점 못 가는데 지금 끝내면 어떡해. 텍스트임에도, 마츠카와는 매우 억울해 보였다. 그 밑에 이와이즈미가 담을 넘으면 된다는 가벼운 해결책을 매달아 놓았다. 하나마키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열린 창 안으로 봄바람이 살랑살랑 스며왔다.

   몇 분의 시간을 더 들이고 나서야, 하나마키는 일 년 전쯤에 했었던 기묘한 내기를 떠올렸다. 이번에 일학년에 내 후배가 들어오는데 말이야, 맛키랑 같은 윙스파이커인데, 굉장히 차가운 느낌이야. 라는 오이카와의 속삭임으로부터 시작 된 게임이었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에게 후배랑 친하냐 물었다. 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간극을 파고든 것은 하나마키였다. 

    너 걔랑 안 친하지? 라는 하나마키의 말에 오이카와는 그럼 안 친하니까 누가 먼저 친해지는지 내기 할래? 라는 작은 제안을 했다. . 하나마키는 커피포트에 정수기 물을 담았다. 학기 초는 언제나 지루함이 가득했고, 봄 햇살은 느리게 다가왔다. 이 시기의 남자 고등학생이란, 춘곤증 가득한 봄날을 탈피할 수 있다면 무슨 놀이든 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였다.

   거하게 하품을 하던 이와이즈미가 ‘미션 성공’ 기준을 정했던 게 기억났다. 쿠니미와 함께 역 앞의 카페에서 와플 한 판 위에 아이스크림 세 스쿱과, 딸기를 잔뜩 얹어주는 디저트를 먹는 것. 일 등부터 사 등까지 정하는 거야? 라고 말하던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하나마키는 느리게 하품했다. 이 계절만 되면 입학식을 마친 쿠니미와, 이 내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매 봄마다 몰아내는 졸음 같은 것이었다.


   하나마키는 하품을 했다. 창 밖에는 매화가 진하게 피어 있었다.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향기가 짙었다. 매화 너머에는 노란 산수유가 드문드문 보였다. 실로 봄이었다. 그는 밤 벚꽃만큼 야한 밤매화를 하염없이 보다 물을 끓였다. 늦은 귀가를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지루했다. 전기 포트가 작동되는 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았다. 그는 컵 하나를 꺼내서 핫초콜릿 가루를 네 스푼 넣었다. 머그잔 가득 타 마실 작정이었다.

 

  시작은 입학식 다음 날부터, 끝나는 기한 없음. 일 등에게는 매점 자유이용권 삼 회, 꼴등에게는 매점 셔틀 삼십 번. 후한 기준인 것 같으면서도 가혹한 내기였다. 하나마키는 소파에 앉았다. 붙어온 봄에 퍼져온 하품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봄이 온 탓이었고, 햇살이 느리기 때문이었다. 그는 볼을 긁적였다. 아직 물이 끓기 가지는 꽤나 남았는지, 플라스틱 주전자 끄트머리에 든 파란 불은 꺼지지 않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내기에서 이긴 건 오이카와였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쿠니미에게 다가가더니, 번호를 따고 라인을 교환했다. 익숙한 솜씨였다. 같은 중학교 선배라는 어드밴티지가 적용 된 것 같다며 마츠카와가 투덜거리던 것을 하나마키는 똑똑히 기억했다. 그 투덜거림에는 하나마키 자신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봄을 가르는 꽃샘추위 같은 이의제기에도 오이카와는 이긴 건 이긴 거라면서 혀를 삐쭉 내밀었었다.

   오이카와는 사진을 내밀었다. 확실히 쿠니미와 같이 찍은 사진에, 딸기가 잔뜩 올려진 와플이었다. 아이스크림 세 스쿱이 모자람 없이 있었으며, 하얀 휘핑크림은 덤이었다. 이와이즈미와 마츠카와는 사진을 뚫고 넘실거리는 단맛에 질색했다. 둘은 메뉴를 바꾸길 주장했지만 그 안건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쿠니미가 단 걸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나마키는 자신의 순위를 회상했다. 꼴등이었다. 쿠니미는 전형적인 내향성 인간이었고, 편하지 않은 사람과는 따로 만나기 싫어했다. 하나마키가 몇 번 약속을 잡으려고 해도 그는 바쁘다는 말로 피하기 일쑤였다. 연습에 나갈 때 마다 데이트를 조르는 한량 같은 꼴이 되었다. 이와이즈미 또한 여러 번 차였다. 오이카와는 그를 놀리면서, ‘선배’라는 이점도 살리지 못한다면서 웃었었다.

   그는 자신에게 깊게 다가오는 과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 다음에 성공 한 건 마츠카와였다. 그는 브이를 내밀어 보면서, 다음에 손목 아대를 같이 사러 가기로 했다는 말을 내뱉었다. 데이트 약속인가요? 하고 얄밉게 중얼거리는 오이카와의 목소리 너머로 하나마키는 불안했었다. 촉박한 쉬는 시간에 매점으로 달려야할지도 모른다는 압박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그게 봄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봄, 봄 때문이었다.

   그 계절에 오이카와와 마츠카와는 꽤나 쿠니미와 같이 다녔다. 이와이즈미는 초조해 했고, 하나마키는 셋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볼 때 마다 기분이 나빴다. 봄 날씨는 갑자기 나빠지지도 않았지만, 그는 꽃샘추위 같이 살았다. 매화 향기마냥 짙은 질투였고, 꽃망울을 하얗게 틔우는 이팝나무 밑에 떨어진 꽃잎들처럼 진득한 감정이었다. 그는 이 느낌의 근원을 알지 못했다.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오이카와는 삼월의 둘째 날에, 마츠카와는 삼월의 열두 번째 날쯤 성공했다. 점점 이십이 일로 달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 마다, 이와이즈미와 하나마키는 초조했다. 하나마키는 적어도 그보다는 먼저 쿠니미와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튀긴 두부나 좋아하는 정갈한 입맛의 이와이즈미보다는 자신이 좀 더 재미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퐁퐁 솟아났다. 봄이 어디서부터 찾아오는지 모르는 것처럼 근원 모를 말이었다.

   어느새 내기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나마키는 연습 때 마다 쿠니미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그의 발끝에 붙어있는 그림자까지 질투할 정도로 눈에 담았다. 살짝 삼백안 끼가 있는 하나마키의 눈동자에 쿠니미가 담길 때 마다, 쿠니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했다. 봄 햇살 아래의 고양이처럼 입꼬리는 살랑살랑 올라가 있는데, 눈은 꽃샘추위처럼 날카로웠다. 그러므로 그는 봄이었고, 꽃은 봄에 피기 마련이었다.


   결국 쿠니미와 세 번째 데이트를 한 것은 이와이즈미였다. 삼월 이십 이일. 평일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답지 않게 ‘브이’를 그리면서 데이트를 나갔다. 이와이즈미가 옷을 갈아입는 것은 꽤나 빨랐기에, 하나마키는 라커룸에 쿠니미와 둘 만 남았었다. 너 우리 내기 하는 거 알고 있지? 그가 물었고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 씨에게 들었어요. 하는 목소리는 무심했다.

   내가 왜 꼴등인데! 하나마키가 물었고 쿠니미는 그래야만 하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하나마키는 쿠니미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쿠니미는 넥타이를 서툴게 맸다. 천천히 매듭을 짓는 손길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 하나마키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쿠니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목이 시큰거리다면서 다가가던 자신은 꽤나 껄렁껄렁 했을 것이다. 하나마키는 과거의 과오를 후회했다.

   그리고 그와 그가 마주 본 순간, 쿠니미는 서툴게 숨을 들이켰다. 호흡하는 법을 잊은 듯 했다. 내가 그렇게 싫어, 였던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 좋아, 였던가. 하나마키는 일 년 전 자신이 내뱉은 말을 정확히 기억 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일 년 전, 고등학교 3학년의 하나마키 타카히로는 쿠니미 아키라에게 있어서 ‘가장 늦게 만나 봐야 할 선배’였고, 쿠니미의 어깨가 단단히 굳었다는 사실만 기억 할 뿐이었다.

   하나마키는 그의 단정한 입술을 기억했다. 틴트나 립스틱으로 한껏 치장한 여자아이의 입술과는 다르게 담백한 느낌이었다. 하나마키는 그의 숨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그의 입술이 담고 있을 말은 궁금했다. 봄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마음을 알고 있니, 바람보다 쉽게 흐른 마음을 알고 있니, 하나마키는 말을 골랐고, 그 말을 내뱉는 일은 없었다. 쿠니미의 얇은 입술이 먼저 열렸기 때문이었다.

   삼일 후에, 만나주실 수 있으신가요? 쿠니미는 담담하게 말했고, 하나마키는 설렘을 담아 좋다고 대답했다. 그 날은 주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여백이 존재했다. 침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띄어쓰기였다. 하나마키는 이제 삼십 번 정도 매점 심부름을 해야 한다는 엄살을 내뱉었다. 쿠니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선배들이랑 갔던 역 앞 카페 말고 다른 곳으로 가자 제안했다. 그는 내기를 끝내 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쿠니미와 와플을 먹고 온 다음의 이와이즈미는 단 것에 흥미가 생겼다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하나마키는 그 집 와플이 그렇게 맛있냐고 말하면서, 그에게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슈크림 가게를 알려주었다. 튀김 두부라든지, 파드득 나물 된장무침 같은 정갈한 취향인 녀석이 크림을 좋아하게 된 게 꽤나 기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지금은 아주 잘 알고 있는 번호였다. 쿠니미는 그에게 슈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하나마키가 추천한 가게의 상호를 말하는 그는 꽃의 개화보다도 마법 같았다. 벚꽃나무 가지에 가득 핀 벚꽃마냥 소담스러웠다. 하나마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기묘한 우연에 신기함을 가득 담아내는 것처럼, 그는 핫초코에 물을 가득 부었다.

   결국 삼월 이십이 일에서 세 걸음쯤 후에, 하나마키는 그와 슈크림을 먹으러 갔다. 쿠니미는 그를 가장 늦게 부른 게 미안하다면서 손목 아대를 건넸다. 윙스파이커에게는 손목이 중요하잖아요, 하면서 서툴게 내리던 시선 끝, 그 눈길이 걸려 있는 눈동자가 귀여웠다. 쿠니미는 포크로 슈크림을 꾹꾹 눌렀다. 번호는 누가 알려 줬어? 하나마키는 시큰거리는 손목에 찬 팔찌를 벗으면서 물었었다. 쿠니미는 오이카와 씨요, 하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짜여진 각본 같았다. 그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딱딱한 반지 케이스가 멋없게 들어 있었다. 하나마키는 잘 녹은 핫초코를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커플링을 멋있게 주는 방법은 학교에서 알려 주지 않는다.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생일선물은 원래 충동적인 맛을 섞어 주는 거라지만 묘하게 부끄러웠다. 그는 봄 같이 뛰는 심장 박동을 달달한 차로 달랬다.

   그러고 보니, 그 날도 3월 25일이었다. 쿠니미의 생일. 하나마키는 눈을 깜빡였다.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벌 키를 사용하는 게 제법 익숙한 모습이 그가 지금 가장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문은 매우 천천히 열렸고, 쿠니미는 양 손에 선물이 든 쇼핑백을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저기 있잖아, 하고 하나마키가 운을 땠다. 그의 졸린듯한 두 눈이 하나마키를 가득 담았다.

   해명을 요구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에서야 알아챈 대답을 어떻게든 말로 엮어 말해야 했지만 하나마키는 말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조어가 불가능 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쿠니미는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다가왔다. 50cm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선배? 하고 부르는 달콤한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그저


   “사랑해”


   라고 말할 뿐이었다. 더할 것도 없고, 덜어 낼 것도 없는 말이었다. 그는 쇼핑백 끈에 시달리느라 붉어진 쿠니미의 손을 잡았다. 좀 더 로맨틱 하게 말해주세요. 쿠니미의 요청에 하나마키는 말없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반지를 꺼내, 그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충분히 로맨틱 하니? 그가 물었고 쿠니미는 잘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반짝거리는 사랑이 걸려 있는 네 번째 손가락으로부터 올라갔다 내려가는, 그 손가락의 완만한 곡선이 그의 입술을 덮었다. 하나마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쿠니미는 눈을 감았다. 고등학생이면서 까졌어, 라는 투정에 쿠니미는 목 끝으로 웃어보였다. 고양이의 고릉고릉 거리는 소리와 닮은 웃음에 하나마키는 웃으면서, 그의 입술에 숨을 겹쳤다. 그 때 라커룸에서 뺏지 못한 것을, 그는 몇 년에 걸쳐서 받아 낼 예정이었다.


   생일의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매화가 피는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