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스가] 너 ; 반짝반짝 빛나는,

   시린님이랑 연성교환 하기로 했던 카게스가 동갑AU입니다. 뭔가 둘이 동갑이라면 스가와라는 카게야마를 따라가느라  힘들어 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가 약한 모습을 보여 줄 때 마다 점점 좋아하게 됐고, 카게야먀는 스가와라의 노력이 효율없다고 생각하다가, 그가 의외로 강하다는 걸 알면서부터 폴인럽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참 트위터 주소가 또 바꾸ㅣ었어요.... 52sugar22daze에서 52kawa322daze입니다... 더 이상 계정 옮길 일이 없었으면 싶네요! 



 





***


언덕이 요구하는 것은

발끝을 위로 하고 걸으라는 것과

숨가쁜 순간을 몇 번이고 넘기라는 것, 그리고

남기고 온 발자국을 돌아보지 말라는 것

―「말들이 요구하는 것」中




***


   별을 보는 걸 좋아했다. 반짝이기 때문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거리에서 조용히 호흡하기 때문이었다. 스가와라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삼월 하늘에 아직 겨울이 걷히지 않았는지 오리온자리의 허리띠가 보였다. 그는 시선을 위로 올리고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걸었다. 정돈되지 않았기에 발치에 돌이 밟혔다.

   스가와라는 시계를 확인했다. 버스 막차가 간당간당했다. 그는 아즈마네와 다이치의 얼굴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집에서 신세지는 것은 미안했다. 염치를 아는 남자였기에 그는 길을 걸었다. 비포장도로를 십 분 쯤 걷다가 시가지가 나오면 골목으로 들어가서 이-삼십분을 걸으면 도착하는 길이었다. 귀찮음을 감수하면 충분히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스가.”


   그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별의 목소리였다. 스가와라는 걸음을 멈춰 섰다. 카게야마였다.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상당한 거리를 뛰어 온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카게야마의 입술은 까마귀 부리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유니폼 위에 대충 걸친 교복이 웃겼다.

   삐졌어? 카게야마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글쎄, 하고 대답했다. 그의 얼굴이 단박에 어물거렸다. 사와무라나 아즈마네와 달리 그는 좀 놀리고 싶은 매력이 있었다. 스가와라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리온자리의 허리띠와 양 팔, 양 다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가깝고도 먼 별이었다. 이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까웠고, 하늘에 걸려있다는 점에서 멀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유니폼을 바라보았다. ‘4’번은 에이스 스파이커의 번호였다. 주전 세터가 가질 번호가 아니었다. 그는 3학년에 올라 온 카게야마가 유니폼을 받던 날을 떠올렸다. 스가와라는 그와 정확히 두 걸음 떨어져 있었다. 그 두 걸음은 오리온자리와 같았다. 감독과 시미즈에게 4번을 받겠다고 말했다며 수줍게 고하는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스가와라는 예뻐 할 수가 없었다.


   “토비오 난 네가 왜 4번을 받겠다고 한 지 모르겠어.”

   “또 그 이야기야?”

   “어. 너도 알다시피 나 되게 쪼잔하거든.”


   스가와라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천재랑 삼 년을 같은 포지션으로 있다 보면 느는 건 능청스러움이었다. 만나 본 적은 없었지만 스가와라는 키타가와 제 1중의 세터도 (놀랍게도 카게야마가 주전이 아니었다.) 능청스러웠을 거라고 확신 할 수 있었다. 스가와라의 말을 들은 카게야마는 얼굴을 찌푸렸다.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못생김으로 물드는 광경은 웃기기까지 했다. 

    차 끊겼지? 카게야마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네 나머지 연습 봐 주느라 늦었잖아, 하고 말하니 그는 미안하다고 곧바로 사과해왔다. ‘남자 친구랑 학교에 단 둘이 남았어.’라고 말하기에는 아쉬운 밤이었다. 스가와라는 모른 척 손을 뻗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손을 마주잡은 카게야마가 그의 옆으로 불쑥 다가왔다. 키 차이가 나는 게 어쩐지 분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언제나 스가와라 코우시의 앞에 있었다. 키도 배구도, 실력도 체격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별이었다.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도 먼 별. 스가와라는 별에 줄을 매달아 손을 잡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카게야마는 놀이동산에서 파는 헬륨풍선 같이 가벼워서 손을 놓으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잡은 손은 따듯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얼기설기 엮어, 손바닥 위쪽에 힘을 주었다. 이런 관계가 된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였다. 초삼월 밤은 추워서, 미미한 입김이 났다. 카게야마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둘은 같은 학년임에도 멀었다. 스가와라는 사와무라와 친했고, 카게야마는 아즈마네와 가까웠다. 연인이라는 카테고리는 의외로 얄팍할지도 모른다. 스가와라는 그게 불편했다. 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


   “왜 또 그런 표정이야.”


   카게야마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카게야마의 미간을 눌렀다. 얼굴 좀 풀고 말하란 충고에 그는 이번엔 입술을 내밀었다. 카게야마의 표정은 매우 다이나믹하게 변화하곤 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불안하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었다. 그는 괜히 깨금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서툴게 입을 맞추었다.

   짧은 입맞춤이 닿은 후, 카게야마의 볼에 홍조가 돋았다. 스가와라는 모든 게 완벽한 제 동기가 자신에 의해 당황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는 괜히 콧노래를 불렀다. 반칙이야, 라고 외치는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제법 다급했다. 그렇지만 둘의 관계를 공정하게 심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스가와라는 괜히 그의 팔을 이끌었다. 갈 길이 멀다는 이유에서였다.

   동갑이기 때문에 좋아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초조했다. 그와 걸어가는, 말 없는 하굣길에서 스가와라는 후배인 카게야마를 상상했다. 차라리 조금 더 차이가 났다면 초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숨이 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언덕길을 쫓아가느라 상처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두 살, 아니면 한 살 정도라도 앞걸음에 있었더라면 그에게 순수하게 사랑만 해주지 않았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 발 앞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차냈다.

   주전경쟁에서 조금 더 자유로웠을 수도 있다. 배구를 좀 더 즐겁게 했을 수도 있겠고, 대학도 배구로 진학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스가와라는 그와 자신의 나이차이가 나서 가질 수 있는 이득을 계산했다. 카게야마는 말 없는 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그는 입을 오물거렸다. 스가와라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눌렀다. 후배였다면 카게야마가 망설이는 구석을 더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좀 아쉬웠다.


   “무슨 생각 해.”

   “네 생각.”

   “내가 옆에 있는데?”


   카게야마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럴 때가 있는 거라면서 손을 끌었다. 오리온자리는 여전히 그들의 머리 위에서 반짝였다. 먼 것도 같고 가까운 것도 같은 별자리였다. 스가와라는 하품을 했다. 졸려? 그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꼬리에 작은 눈물이 맺힐 만큼 잠이 왔다. 카게야마는 버스 타고 가지 그랬냐는 말을 하려다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실수 한 걸 아는 모양이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가 연하일 경우 생기는 이득을 계산하다가 곧 그만 두었다. 그는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를 다시 보았다. 저렇게 평행선상에 있는 게 좋을 때도 있었다. 그는 괜히 카게야마의 한쪽 팔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그의 딱딱한 얼굴에 홍조가 들었다. 공을 올리는 손이었다.


   “더 이상 배구 안 할 거야?”


   카게야마가 물었다. 대학 진학 후의 일을 묻는 모양이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구로 진학하는 건 이미 무리였다. 그는 대학을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알기 쉬웠다. 스가와라는 그가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다.

    스가, 하고 다시 카게야마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어딘가 애절했고 먹먹했다. 재능 없는 사람에게 ‘같이 하면 즐겁다’는 이유로 배구를 강요하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뒤틀린 감정을 별님은 모를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입술을 내밀었다. 왜 그를 좋아하게 됐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서 사랑은 언제나 퐁퐁, 솟아났다. 그는 그 처음을 찾으려다 이내 그만 두었다. 카게야마의 입술이 스가와라의 입술에 닿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까 준 것을 되돌려 주려고 한 것 같았다. 불안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스가와라는 그의 모습을 보고 연하는 절대로 안 되겠네, 정도를 생각하다가 웃었다. 역시 자신들은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이 어울린다고 확신하며, 스가와라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배구 말고, 네 옆자리는 안 그만 둬.”

   “스가.”

   “대학 너랑 같이 갈 수도 있다는 뜻이야.”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낙제점에 대해 말했다. 카게야마는 어차피 배구로 갈 거니까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언제 들어도 얄미운 소리였다. 스가와라는 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꼬집어 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그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날의 하늘이 너무나도 깨끗해서 별이 잘 보였다. 카게야마와 함께 걷는 밤하늘 아래가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별이 예쁘네, 스가와라는 그들이 같이 걸어온 길을 보며 말했다. 너무나도 소중해서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의 시선을 따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같은 학교라서 좋았고, 같은 학년이라서 좋아. 그의 목소리에 따라오는 사랑에, 카게야마는 그를 꼭 끌어안았다. 불안감은 포옹에 어느 정도 사라졌다.


   “내가 지금 제일 원하는 말 해줘.”

   “우리집에서 라면 먹고 가라.”


   스가와라는 카게야마가 ‘입력 된 대답’을 하자 선심을 쓰는 듯 그래, 하고 경쾌하게 대답했다.그럼 여기로 가면 안 되잖아, 라고 말하며 카게야마는 포장이 되지 않은 산길이 아니라, 인도로 스가와라의 손을 이끌었다. 굳게 잡힌 손과 손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스가와라는 제 손바닥이 별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카게야마는 언제 봐도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게, 좋았다. 카게야마는 유니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4는 2가 두개니까, 세터 두 명의 번호라는 나름의 뜻에 스가와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 역시 너희 집에서 라면 못 먹고 가겠어. 그의 말에 카게야마는 한 번 말한 이상 못 무른다면서 스가와라는 제 품에 가두었다. 따듯한 온기가 닿는 느낌은 나쁘지 않아서, 스가와라는 그저 별이 예쁘네 하고 딴청 밖에 부리지 못했다.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