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있긴, 여기 있는 거지. 오이카와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카게야마는 매우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는 목소리에서는 절박함이 절절하게 묻어 있었다. 그는 뒷말에 ‘사진 찍어도 괜찮으니까,’ 라는 말을 덧붙였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을 내뱉었다. 어디서 선배의 애인의 인적사항을 알려고 하는지 그는 그것이 매우 괘씸했다. 이것은 카게야마 토비오가 얄미워서 알려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불안감의 표현이었다.
이름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하면서 카게야마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까만 머리카락과 제법 어울리는 까만 재킷이 눈에 들어왔다. 세이죠의 하얀 색과는 사뭇 다른 색이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연인이 카라스노를 지망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더 소개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쯤 카라스노에서 카게야마의 선배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는 그와 그가 만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었다.
“토오루, 여기서 뭐 해?”
뒤에서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게야마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팔에 자신의 팔을 엮었다. 얘가 니 이름 알려달라는데 알려주기 싫어서. 그는 지나치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카게야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던 얼굴에 희망과 환희가 가득 차 있었다. 저기, 저번에 연습시합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라고 카게야마는 꽤나 당돌한 말을 내뱉었다. 스가와라는 매우 곤란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를 ‘커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건방진 후배한테 애인의 개인정보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매우 집요한 사람이었고, 오이카와는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스가와라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 당겼다. 약간의 여흥은 끝이야! 이제 우리 연습하러 가야 해! 오이카와가 강경하게 말하자 카게야마는 세이죠는 월요일에 연습을 안 한다면서요, 라며 바락바락 응수했다. 나 제법 인기 있는 건가? 스가와라가 눈치 없게 내뱉었다. 오이카와는 응, 응, 우리 자기가 최고야, 라고 대충 말을 내뱉으며 그와 팔짱 낀 손에 힘을 주었다.
2. 쿠로스가오이 : 편의점 알바 스가와라 씨와 단골손님 두 명
쿠로오는 기분이 나빴다. 그는 자신의 앞에 서서 몇분 째 스가와라와 잡담을 하고 있는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던 남자였다. 쿠로오는 그의 손을 보았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말보로 멘솔이 들려 있었다. 그는 항상 그것을 사가는 것 같았다. 취향 참 더럽네, 그는 그가 들으라는 듯 그 말을 크게 내뱉었다.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뒤를 돌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꽤나 잘 생긴 인상이었지만 쿠로오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에요? 이케맨이 물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이 시간에 같은 걸 사가세요, 오이카와 씨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쿠로오는 스가와라의 말에서 이 껌딱지 같은 남자의 이름이 ‘오이카와’인 것을 알았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계산대에서 한 걸음 비켜섰다. 어서 계산하고 가세요, 라고 말하면서 웃는 얼굴에 주먹을 날려주고 싶은 걸 참으면서 쿠로오는 한숨을 내 쉬었다.
“골초면 그것도 기능을 잘 안한다면서요.”
“그쪽 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요.”
쿠로오는 팔을 접어 팔꿈치를 쫙 펼친 반대편 손으로 쳤다. ‘주먹감자’였다. 오이카와의 표정이 험상궂게 구겨졌다. 쿠로오는 자신이 들고 온 상품을 계산대 위에 올렸다. 오늘은 ‘딸기향’이네요. 스가와라가 눈치 없게 말했다. 자기는 그런 눈치 없는 것도 사랑스럽긴 한데 오늘은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았을 걸, 쿠로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생글생글 웃었다. 오이카와는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안면에 미소를 띄웠다.
“이야, 쓸 사람이 있으신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실까?”
“쓸 사람 여기 있잖아 여기.”
“누가 그렇게 둔대요?”
“쿠로오 씨가 샀으니까 당연히 쿠로오 씨가 쓰는 거 아닌가요?”
스가와라는 맥락을 못 읽고 말했다. 그의 천사 같은 웃음에 쿠로오는 맞장구를 쳐주었다.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골초는 성기능이 별로 좋질 않대, 알았지 스가와라 군? 쿠로오는 그렇게 강조했고, 오이카와는 쿠로오가 바람둥이일 거라는 말을 넌지시 전달했다. 아 진짜 일진 더럽네, 쿠로오는 오늘 로또 3만원에 당첨된 것은 이걸 위한 액땜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러 와서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쿠로오는 스가와라에게 말보로 레드를 달라고 했다.
“담배 취향 참 올드 하시네요.”
“멘솔은 애기들이나 피는 거 아닌가?”
그들은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말의 편린은 매우 날카롭게 벼려져서 서로를 찌르고 찔렀다. 스가와라는 그것을 어색하게 웃으며 보고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다이치에게 문자를 넣었다. 자기야, 나 편의점 알바 그만 둘까? 핸드폰을 쥐고 있었는지 다이치에게서 금방 답장이 왔다. 오늘도 ‘콘돔남’이랑 ‘멘솔남’이야? 스가와라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카운터 위에서 오가는 살벌한 하이힐질이 오갈 때 마다 스가와라의 두 엄지손가락이 스피드를 내었다.
이놈의 알바 그만 둬야지.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 쉬었다.
3. 히나스가카게 : 용 두 마리와 인간 하나
“나는 왜 카게야마가 필멸에서 불멸자가 되고 싶어하는 지 모르겠어.”
“니가 그런 말도 아냐.”
“일단은 용인걸.”
히나타는 웃으면서 공중에서 짧게 돌았다. 그의 허리 아래에 있는 주황색 날개가 파닥거렸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내 쉬었다. 히나타는 그렇게 하면 안 그래도 짧은 인간의 생이 더 짧아진다면서 충고를 건넸다. 내가 만난 인간 중에서 넌 제일 성격이 더럽고, 한숨을 많이 쉬고, 걱정을 많이 하고, 웃는 걸 모르는 사람이야. 히나타는 제법 심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카게야마는 항상 듣곤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가와라는 네가 큰 사람이 될 거래. 근데 난 잘 모르겠어. 히나타가 대답했다. 용은 몰라. 카게야마가 제법 쌀쌀맞게 대답하자 히나타는 웃으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 아기용의 꼬리를 잡아당겼다. 히나타의 입에서 작은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카게야마는 눈이 짙게 굳은 자리를 운동화로 턱턱 쳤다. 얼음이 얇게 부서졌다. 히나타가 녹여줄까, 하고 물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네가 용인 걸 확인 할 때 마다 기분이 나빠. 그는 답지 않게 솔직하게 말했다.
히나타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비볐다. 그것은 불꽃으로 이루어진게 분명한지 불꽃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카게야마는 그것에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는 스가와라 씨는 어디 있어? 하고 물었다. 히나타는 조금만 더 가면 된다면서 작은 날개를 파닥거렸다. 그가 작게 날개짓 할 때 마다 훈풍이 불었다. 저기, 보인다. 히나타가 손을 흔들었다. 카게야마는 안개 너머에 있을 스가와라를 보지 못했다.
용과 인간의 차이는 아득한 법이었다. 용은 인간의 신체능력보다 몇 십배는 뛰어난 능력을가지고 있었고, 맘대로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도 있었다. 긴 세월동안 지식을 축적할 수 있고, 금은보화 또한 남부럽지 않게 지닐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들이 가진 것들이 별 거 없다고 생각했다. 단 한가지 부러운 것이 있다면 그들이 거의 영겁에 가까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불멸’의 삶을 살아갔다.
스가와라- 하고 히나타가 이름을 불렀다. 카게야마가 너무 느려요- 히나타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스가와라도 이쪽으로 걸어온대, 히나타는 즐거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게야마는 몇 걸음 뒤에 스가와라를 발견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스가와라가 웃으면서 이제야 인사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용이 아니니까요. 카게야마는 입술을 제 입 안으로 숨겼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에서 엷은 얼음결정들이 얼어 그의 머리카락 끝에 작은 고드름들을 달았다.
히나타는 그 고드름들을 능숙하게 녹이면서 카게야마가 감기에 걸리겠다고 충고했다. 스가와라는 히나타가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게 꽤나 기쁜 듯 미소 지었다. 카게야마는 그들의 농담 따먹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용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자신의 인생 너머의 세계를 보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니, 스가와라가 다정하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카게야마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히나타가 상쾌하게 웃으며 너는 역시 내가 만나본 것 중에 가장 이상한 인간이야, 라고 말했다.
카게야마는 그의 말 속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체감하였다.
3. 오이스가 : 장거리 연애하는 오이카와 씨와 스가와라 씨.
한국은 어때, 괜찮아? 스가와라가 물었다. 그는 전화기를 제 어깨와 볼에 끼우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터는 소리가 들렸다. 나름 괜찮아, 말도 이제는 조금은 알고 우리팀 세터가 약했었는데 그것도 좀 괜찮아 진 것 같고. 내 능력 알잖아, 오이카와는 오랜만에 쓰는 일본어가 반가운지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스가와라는 목 안으로 웃었다.
웃을 거면, 조금 더 확실하게, 내가 듣고 안심할 수 있게. 오이카와는 그의 웃음 끝자락을 잡고 말했다. 스가와라는 그가 여전히 그인 것 같아서 안심했다. 스가와라는 스포츠 뉴스를 틀었다. 포토란에서는 해맑게 웃고 있는 오이카와가 보였다. 네코마 고교의 색과 비슷한 붉은 유니폼을 입고서 검지손가락을 편 모습이었다. ‘일점’ 이라고 하던가. ‘잇-폰’이 아닌 발음을 할 오이카와를 생각하며 스가와라는 그게 문득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근황을 물었다. 그는 평소와 비슷하다고 대답했다. 배구 팀을 취재하러 가는데 네가 없어서 좀 아쉽다가도, 나중에 내가 한국 특파를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네가 선물해준 고양이가 지금 무릎에 올라와 있기도 하고, 또 음, 스가와라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흘러가는 자신의 일상을 조금 ‘특별하다는 느낌’을 더해 그에게 내뱉었다. 오이카와는 추임새를 넣으며 그의 평범함을 듣고 있었다.
수화기는 전파를 전달해주는 도구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분해된 목소리들은 그에게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닿았다. 스가와라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흘러내린 카디건을 올렸다. 어깨에 닿는 그 감촉이 묘하게 생경했다. 오이카와는 나는, 하고 말하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그의 감수성이라면 분명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같이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스가와라는 그런 상상을 하며 그의 목소리 한 톨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의 일상은 빠진 부분 없이 서로에게 채워졌다. 스가와라는 귀에 마개를 채우고 싶었다. 그의 목소리 하나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보고 싶다, 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들에게는 이제 일상적인 단어일 텐데도 그의 목소리가 덮어졌다는 이유로 그것은 매우 특별해지는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나도, 라고 대답했다. 오이카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시즌이 끝나려면 멀었고, 스가와라의 휴가 또한 먼 일이었다. 그는 살결을 맞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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