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2015. 1. 17. 22:04
하이큐 글전력 60분에 참가한 글입니다. [목도리]라는 소재에요. 배구파님께서 제게 풀어주셨던 카게스가썰을 조금 빌려왔습니다. 사랑에 면역이 없는 카게야마가 너무 귀엽다구 생각합니다... 카게스가 연애해!
***
카게야마는 목도리를 둘렀다. 목이 조여 답답했다. 그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는 목도리의 양쪽 끝을 뒤로 넘겼다. 그는 괜히 그 두 쪽 끝을 들어 묶었다. 그는 뒤로 돌았다. 엉망으로 엉켜버린 목도리가 보였다. 그는 손을 뻗어 목도리를 흐트러트렸다. 단정하게 모양을 잡는 건 무리였다. 애초에 그런 모양을 배우지 않고 묶는 것은 무리였다. 카게야마는 괜히 목도리를 풀었다. 목에 느슨하게 감긴 목도리의 색은 꼭 하얀색이었다.
거울 앞에서 일인극을 벌이는 기분이었다. 관객은 거울 안의 자신, 배우는 그 사람의 말을 신 경 쓰게 되는 카게야먀 군. 각본을 짠 총감독은 토비오 군의 심장 따위였다. 그는 그게 삼류 연극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족끼리 우연히 봤던 일인극을 떠올렸다. 무대 위에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배우만을 밝히고 있었다. 무대 위 배우는 혼자만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방을 나섰다. 그는 목도리 끄트머리를 당겼다. 목이 다시 답답해졌다. 그는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집 밖은 추웠다. 텔레비전에서 항상 ‘최저기온을 경신’했다고 하는 게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후, 하고 숨을 불어내니 입김이 되어 날아갔다. 그는 목도리의 입에 닿는 부분을 때냈다. 침이 묻은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머리카락을 긁었다. 코트에 넣은 손가락 끝이 어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겨울이 싫었다. 손이 얼어붙는 계절이었고, 뼈가 쉽게 부러지는 계절이었다. 미끄러지기도 쉽고, 부상 위험이 올라가기 때문에 배구를 하기에는 별로 좋은 날이 아니었다. 그는 주머니 안에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목도리 끝과 머리카락 사이를 삐져나온 귀가 얼얼했다. 카게야마는 손가락을 데워야한다는 강박에 빠져있었다. 그는 손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코트에 들어가서 바로 배구공을 만지려면 이런 워밍업이 필요한 법이었다.
학교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숨은 하얗게 바랬다. 하얀 숨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 보면서 그는 하품을 했다. 등굣길은 지루하기만 했지만 자전거를 탈 수는 없었다. 잘못해서, 미끄러져서, 부상이 생긴다면, 카게야마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는 괜히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먼 정류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일인극’에서도 사랑 때문에 부상당한 남자가 나왔다.
일인극 주인공은 운동을 하다 부상을 받은 남자였다. 모든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다가 한 순간에 추락한 남자였다. 카게야마는 그 극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극에서 내내 말하던 대사 하나는 ‘완벽하게’ 외울 수 있었다. ‘사랑을 주세요.’ 그는 그 대사가 묘하게 입에 감돈다고 생각했다. 이는 아까 목도리를 묶어낼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는 심장 근처가 간질간질 거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젠가 영어 지문으로 읽었던 ‘심상사상충’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그게 인간에게도 걸리는지 고민했다. 만약 그 병이면, 배구는 계속 할 수 있는가. 카게야마는 진지했다.
바람은 자꾸 볼을 스쳤다. 카게야마는 ‘긴 목도리를 하면 춥지 않아!’ 라고 외치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카게야마는 오늘 그에게 할 첫마디로 ‘거짓말이었어요.’와 ‘선배는 거짓말쟁이네요.’를 두고 고민했다. 묘한 어감의 단어였지만 별 상관없을 것도 같았다. 그는 귀가 아팠다. 그는 조금 미적지근한 온도의 손으로 귀를 잡았다. 차가운 귀가 손끝의 온도를 뺏어갔다. 그는 불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입술이 목도리의 까끌한 표면에 스쳤다. 카게야마는 정류장 근처를 걸었다. 버스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
“스가 선배,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딱딱하네.”
버스정류장을 지나치는 카게야마에게 스가와라가 말을 걸었다. 그는 카게야마 쪽으로 경쾌하게 움직였다. 카게야마는 종종 그의 발끝에 스프링이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할 때가 있었다. 그는 마치 폴카 리듬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카게야마, 목도리 하니까 덜 춥지? 스가와라가 물었다. 카게야마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준비했던 ‘거짓말이었어요.’라는 말과 ‘선배는 거짓말쟁이네요.’라는 말 두 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카게야마는 어색하게 목도리를 내렸다.
난 오늘 목도리 두고 와버렸어, 스가와라가 말을 걸었다. 그의 목을 항상 감싸던 물색 목도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을 볼 때 항상 총총거리던 목도리가 없는 부근이 허전했다. 카게야마는 춥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스가와라는 조금, 이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그는 웃을 때 이를 보이며 웃는 버릇이 있었다. 그 상쾌한 미소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카게야마는 이 ‘볼이 붉어지는 느낌’과 ‘심장의 두근거림’이 영어 지문 속 ‘심장사상충’과 관련이 있는지 고민했다.
“무슨 생각 해?”
스가와라가 물었다. 그는 카게야마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카게야마는 그의 둥그런 정수리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스가와라의 앞에 서면 생각이 많아졌다. ‘상념’들은 대기 중에 부유하면서 카게야마의 발끝을 잡아채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어제 저녁에 닭튀김이 반찬으로 나왔었는데, 오늘 아침에도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오밀조밀하게 움직였다. 바람이 불 때 마다 스가와라는 인상을 썼다. 카게야마는 우물쭈물 했다. 그는 일단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다시 바람이 크게 불었다. 스가와라의 귀는 이미 빨갰고, 그의 볼 또한 서서히 붉어지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반찬 투정 하느라 급하게 나왔더니 이러네, 그는 체념하듯 말했다. 카게야마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스가와라는 몇 걸음 앞에 멈추어서 뒤를 돌았다. 카게야마? 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그는 체할 것만 같았다. 카게야마는 얼른 제 목도리를 풀었다. 저, 저는 추위 별로 타지 않습니다. 라고 단언하는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후배의 목도리를 뺏는 나쁜 선배는 되기 싫네요.”
“목도리, 하세요.”
카게야마는 강경하게 나갔다. 그는 스가와라의 곁으로 성큼 다가가서 그의 목에 목도리를 둘렀다. 긴 목도리가 그의 목에 과하게 감겼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하고 묻는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학교까지 얼마 안 남았고, 라는 변명에 스가와라는 십 분이나 남았어! 라고 대답했다. 그는 목도리를 다시 풀었다. 긴 끈 하나를 둔 실랑이가 이어졌다. 목도리가 늘어나겠다는 카게야마의 말에 스가와라는 목도리를 주려던 걸 멈추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게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둘의 귀는 똑같은 빨강이었다. 스가와라는 목도리 한 끝을 카게야마의 목에 두르고, 한 번 감았다. 선배가 하세요, 라고 말하는 카게야마의 목소리 끝에, 목도리의 반대편을 제 목에 두르고 있는 스가와라가 비쳤다. 그는 카게야마 쪽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그가 360도를 회전하자, 목도리는 얼추 모양을 갖춰 두 사람 목에 감겨있었다. 웃기는 모양이지만, 하면서 스가와라는 웃었다. 카게야마는 갑자기 좁혀진 거리가 어색했다.
다시 심장사상충이 기능을 하기 시작했는지, 그의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카게야마는 주머니에 손을 꼭 넣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아, 넓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가운 겨울이 스가와라의 소매에 묻어 있었는지, 미적지근하던 주머니 안은 빠르게 겨울로 물들었다. 갑자기 심박수가 뛰는 게 수상했다. 카게야마의 머릿속에 연극 주인공의 독백이 스쳐지나갔다. 나에게는 언제나 ‘두근거리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건 언제나 갑자기 찾아왔죠, 이미 사랑에 빠져 있는데, ‘한 번 더’ 빠지는 그런 느낌. 카게야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역시 한 사람 목도리를 두 사람이 쓰니까 얼굴에 오는 바람은 못 막는구나. 카게야마 얼굴 되게 빨개.”
“아닙니다! 이건 바람 때문이 아니에요.”
"역시 내가 키가 오 센치정도 컸어야 안정적으로 둘이 매는 건데.”
스가와라는 둘의 키 차이만큼 늘어진 목도리를 건드리며 말했다. 카게야마는 바람 때문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그는 그게 ‘변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손바닥을 간질이며, 선배에게 거짓말 하는 건 못 쓴다고 대답했다. 카게야마보다 작은 그의 손가락들은, 어느새 손깍지를 시도 해왔다. 손 틈 사이사이에서 땀이 새나오는 것 같았다. 다시 그의 가슴께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위험하다’는 경보가 울리는 것 같았고, ‘그건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던 배우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스가와라의 발걸음은 느긋했고, 카게야마의 발걸음은 초초했다. 그는 어서 부실로 가고 싶었다. 목울대에서 자꾸 침이 넘어가는 움직임조차, 이어진 목도리를 타고 스가와라에게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아까 목도리에 입술이 닿았던 부분도 신경 쓰였다. 카게야마는 부디 그 부분이 자신의 입술에 닿아 있기를 바랐다. 스가와라는 그런 카게야마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손이 따듯하다며 말을 걸어왔다. 심장사상충이 도진 것 마냥 가슴이 간질거렸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였다.
카게야마가 걸음을 멈추었다. 스가와라는 몇 걸음 가다 목이 걸렸는지 뒤를 돌았다. 스가와라는 다시 카게야마의 이름을 불렀다. 손가락 사이 마디의 물갈퀴 같은 부분에 엮여있던 손가락이 풀려, 중지와 검지 정도만 얽혀있을 뿐이었다. 카게야마는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심박수가 사정없이 올라갔다. 카게야마? 스가와라가 재촉하듯 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카게야마는 목도리에 손을 댔다. 그의 손가락이 하얀 목도리를 풀었고, 그는 그걸 스가와라의 목에 빠르게 엮었다.
저, 심장사상충에 걸린 것 같습니다! 카게야마는 크게 소리쳤다. 스가와라는 벙찐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뒤를 돌아 달려갔다. 어쩐지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목도리를 벗었는데도 불구하고 목이 조이는 것 같았다. 기나긴 목줄이 스가와라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와 걸었던 등굣길을 역주행했다. 정류장을 지나고, 집 앞에 다시 도착해서야, 카게야마는 지금 자신이 터무니없는 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목도리가 풀린 목이 따끔거렸다. 카게야마는 집 앞에 쭈그려 앉았다. 얼굴이 붉어졌다. 카게야마는 목도리가 가리지 않는 얼굴이기 때문에 달아올랐다고 생각하려 했다. 그는 스가와라와 마주잡았던 손으로 제 얼굴을 쓸었다. 일인극의 배우가 ‘사랑을 주세요,’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그는 스가와라에게 목도리 빌려준 값을 청구하고 싶었다. 사랑을 주세요, 그는 작게 속삭였다. 목에 목줄이 채여있는 것처럼,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명백한 착각이었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게 ‘심장사상충’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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