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야하쿄] 초콜릿 에클레어와 그 위 아몬드의 사정 1.

1.

As we danced in the night, remember




***

   2학년은 3학년이 되고, 아무것도 모르던 1학년은 2학년이 되었다. 후배가 들어왔다는 소식은 건너건너 들었다. 와타리와 같은 반이기 때문이었다. 봄고에서 또 시라토리자와에게 졌다는 것도 전해 들었다. 와타리가 심하게 우울해 하는데서 알 수 있었다. 쿄타니는 몇 가지 형식적인 안부를 전했다. 와타리는 그에게 ‘너도 이제 이학년이구나’ 하는 알 수 없는 감탄사를 남겼다.

   삼학년들 갔어? 라는 물음에 와타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요즘 짠 식단과 근육 트레이닝 방식이 괜찮은 것 같은지 물어볼 뿐이었다. 쿄타니는 단백질로만 가득 찬 식단을 보면서 그가 좋은 리베로가 되려고 함을 알 수 있었다. 와타리는 쿄타니가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하바의 안부를 전했다.


   “점프서브는 아직 무리지만, 스파이커 다루는 법을 연구하고 있어.” 

   “그래?”

   “응. 걘 좋은 세터가 될 거야. 아직은 오이카와 선배의 시대지만.”


   와타리는 삼학년이 은퇴하고 난 다음의 소식을 짧게 전했다. 쿄타니도 길게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야하바와 배구부의 소식을 간접적으로 접할 때 마다 구월의 기억이 번져왔다. 눈에 띄는 열기도,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는 추위가 없는데도 가을은 기억 속에 진하게 남아 있었다.

   와타리는 봄고까지 남아있던 삼학년들이 은퇴하면서 오이카와가 좀 더 스파이커를 잘 다루게 됐단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 입학한 신입생들에 대한 이야길 꺼냈다. 그는 영리한 스파이커 하나와 키가 큰 미들블로커가 들어왔다고 전하면서, 아오바죠사이는 이번에야말로 시라토리자와에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선언했다.

   그는 진지했다. 쿄타니는 와타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개인적인 라이벌이 팀 전체의 라이벌로 진화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그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이카와를 볼 수록 야하바의 모자람을 깨닫게 됐다. 이미 그는 완성형 세터였다. 어느정도 배구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오이카와와 야하바의 실력차이를 인정할 것이었다.

   약한데도 왜 배구를 할까, 왜 정세터 자리를 노리면서 포기하지 않는걸까. 쿄타니는 이 두 개를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단순하고 발화점이 낮은 성격이었지만, 물어볼 상대가 잘못 됐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와타리는 오이카와를 보고 리베로로 전향하길 희망했다. 쿄타니는 그렇게 몰인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 한 번 배구부에 얼굴 비춰. 미조구치랑 야하바가 걱정해.” 

   “내놓은 자식인데.”

   “성경에서도 탕아는 환영했어.”

   “나 교회 안다녀.” 

  “뭐 그렇다는 거야.”


   네가 온 다면 팀에 확실히 도움이 될 거니까, 모두가 환영할 거고. 와타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순박한 얼굴에 웃음이 드리워지는 모습에서, 쿄타니는 야하바를 떠올렸다. 그는 와타리보다는 화려하게 웃었다. 멀끔하게 생긴 얼굴은 어째 오래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잊히지가 않았다. 그의 친절함이 녹지 않는 설탕처럼 남았기 때문이었다. 쉬는시간의 끝이 알리는 종이 울렸다. ‘소녀의 기도’였다.

   다음 교시는 문학이었지만 쿄타니는 집중 할 수 없었다. 속절없이 흘러가던 시간은 종종 목적을 두고 달려갈 때가 있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펜이 돌아갔다. 쿄타니는 딛고 있는 바닥이 회전하는 상상을 했다. 무중력 상태처럼 책상과 의자가 모두 들려, 학교 전체가 회전하는 공상의 끝은 야하바의 얼굴이었다. 그의 은색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번져오고 있었다.

   쿄타니는 배구를 잘 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재능을 믿고 코트 위에서 날뛰는 난폭한 자신을 보좌해줄 수 있는 사람. 그 다음에 좋아하는 것은 제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세터 정도였다. 그의 원칙대로라면 그는 오이카와를 생각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시라토리자와전에서 보여줬던 세밀한 플레이에 대해 고민하면서 배구부에 나갈 것인지를 재야만 했다.

   하지만 그 보단, 야하바가 생각났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쿄타니는 2학년이 되고 나서 한 번도 배구부에 나가지 않았다. 신입생들의 얼굴도 몰랐다. 배구부 져지를 입은 적도 없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교복을 억지로 입고 교실 안에 ‘놓여’ 있었다. 그는 선반에 맞지 않는 장식품처럼 행동했다. 그가 배구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와타리가 말을 걸 때와, 그의 목소리에서 야하바의 소식을 듣고 난 다음 뿐이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한다. 초콜릿 에클레어 같은 성격은 여전할 것이다. 1학년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할 거고, 1학년 안에서 세터가 있다면 그가 자신을 불쌍하게 보지 않도록 힘낼 것이었다. 신입생들과 선배 사이의 가교 역할도 나름대로 잘 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와타리는 감독이 차기 주장감으로 야하바를 생각하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하바의 목소리가 빈 노트 위로 번져왔다. 같이 다닐 때의 이야기였다. 신입생 때는 곧잘 붙어 다녔다. 먹을 걸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쿄타니의 말에, 야하바는 그게 뭐냐고 타박하면서도 밀어내진 않았다. 그게 그 나름의 친절함이었다. 쿄타니는 제가 한 말이 억지스럽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야하바가 초콜릿 에클레어라면 쿄타니는 규동이나 팝핑캔디 같은 사람이었다. 요컨대, 그와 매우 다른 카테고리에 속해있다는 뜻이었다. 비슷한 점은 없었다. 쿄타니는 견과류를 좋아했고, 야하바는 견과류를 싫어했다. 단 걸 곧잘 먹는 야하바와는 달리 쿄타니는 그런 걸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하나는 세터였고, 하나는 윙스파이커였다. 그들은 그 정도의 거리감 안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볼트와 너트는 그 모습이 다르기에 서로를 조일 수 있다. 쿄타니와 야하바는 다르기에 더 같이 다녔다. 모르는 세계를 체험한다는 건 고등학교 1학년에게 있어서 재미있는 일이었다. 고된 배구부 연습을 마치고 그들은 항상 편의점에 들렀다. 야하바는 달고 단 푸딩을 고르고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 에클레어를 구경했다. 쿄타니는 옥수수로 만든 간식과 작은 봉지 과자를 고르는 편이었다.

   가끔은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도 있었다. 물론 야하바는 초콜릿이 가득 박힌 아이스크림이었고, 쿄타니는 팝핑캔디가 들어 있는 콘을 골랐다. 가을이지만 더웠다. 가로등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보면서 그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야하바가 말하고 쿄타니가 들어주는 식이었다. 야하바의 이야기는 듣기 나쁘지 않았다. 그는 청자가 싫어할법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의 시작점은 언제나 달랐다. ‘가을이지만 좀 덥다’가 될 때가 있었고, ‘오늘은 좀 춥네’ 가 될 때가 있었다. 문학선생님이 내주는 과제의 악독함에 대해 말하거나, 삼학년 선배들이 스포츠추천으로 대학에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물꼬를 틀 때도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야하바는 그래도 시라토리를 이긴다면 갈 수 있다고 말했고, 쿄타니는 그래도 무리라고 대답했다.

   시작점은 이렇게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역 앞 에클레어 전문 카페에 다다를 때쯤이면 이야기는 언제나 ‘미래의 아오바죠사이’로 향하곤 했다. 그는 와타리가 대단한 리베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쿄타니도 이 의견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와타리의 성장은 어마무시했다. 그는 보는 눈이 좋은 편이었다. 신체 또한 유연했다. 연습량도 아끼지 않았다.

   야하바는 와타리가 등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자신이 셋업을 넣는 2년 후의 아오바죠사이에 대해서 말했다. 야하바의 상상에서 점수를 넣어 경기를 결정짓는 건 언제나 쿄타니였다. 1학년에는 스파이커 자원이 딸린다면서 투덜거리는 야하바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 있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쿄타니는 이게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폭신폭신하게 친절한 사람이 초콜릿 같은 속을 보여준다는 게. 그리고 그게 자신이라는 게. 그는 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야하바의 공상에는 괜히 토를 달았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고, 약간의 여름이 그의 볼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빼줘.”


   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면 야하바는 왜? 하고 물어왔다. 그는 자신이 그리는 큰 그림에는 쿄타니가 들어간다고 계속 말했다. 그리고는 뭐가 불안한건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선배들은 봄고가 끝나면 다 없어지고 2학년 선배들은 좀 괜찮은 편이니까 계속 연습에 나오라고 졸랐다. 그의 목소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쿄타니는 그럴 때 마다 못하는 세터가 올리는 공을 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야하바는 애매하게 웃어 넘겼다. 그는 2년 후의 아오바죠사이에서는 잘하는 세터가 1번을 달고 남아 있을 거라고 선언했다. 그러면 자신이 올리는 셋업을 쿄타니가 불만 없이 칠 수 있을 거라는 야하바의 말은 초콜릿처럼 달콤했다.

   입 안에 진하게 남는 말이었다. 쿄타니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야하바는 그런 말을 잘도 했다. 그는 자신의 후배로는 잘하는 세터 말고 좋은 미들 블로커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쿄타니 정도의 스파이커가 있으니까 약점은 중앙이라고 판단한 듯 했다. 그 또한 나쁘지 않은 말이었다.

   그 때의 가을바람은 2학년 봄에 가득 달라붙어 있었다. 쿄타니는 와타리가 이야기하던 1학년 후배들을 떠올렸다. 선배들이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쿄타니는 연습에 나가지 않았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시대가 개막했다는 것은, 일 년 동안 야하바 시게루가 태양빛에 가려진 별처럼 박혀 있다는 소리였다. 그건 쿄타니가 그린 미래의 아오바죠사이의 풍경이 아니었다.

    신입생 중에 레귤러 번호를 받은 건 단 두 명이라고 했다. 겨울 연습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둘은 어떤 난폭한 토스라도 네트 너머로 넘길 수 있는 녀석들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믿기 어려운 소리였다. 쿄타니가 반문하자 와타리는, 그들이 예전에 호흡을 맞췄던 세터가 ‘코트 위의 제왕’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쿄타니는 윙스파이커 포지션으로 코트 위에 서 있는 신입생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차피 배구부에 돌아간다면 그의 자리는 마땅히 쿄타니가 가져올 것이었다. 연습을 오래 쉬긴 했지만 1학년 보다는 자신이 쓸 만한 전력일 게 분명했다. 오이카와의 판단은 몰라도 감독의 판단은 그럴 게 분명했다.

   신경 쓰이는 건 미들블로커였다. ‘킨타이치’라는 이름은 만화 같았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쿄타니 나름의 농담에, 와타리는 꽤나 성실하고 키가 크다고 대답했다. 그는 야하바가 요즘 일학년을 챙겨주는 데 재미가 들렸다고 덧붙여 말했다. 쿄타니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와타리에게서 문자가 쉴 틈 없이 왔다. 어지간히 문학 시간이 졸린 모양이었다. 넌 평소에는 안 그러는 데 문자 할 때는 시끄럽다. 쿄타니의 말에 와타리는 그저 웃는 이모티콘 여러 개를 보낼 뿐이었다.

   ‘킨타이치’라는 미지의 미들블로커에 대해 생각하면서 쿄타니는 야햐바의 미래상을 떠올렸다. 지금의 마츠카와처럼, 중앙 센터라인을 강하게 받쳐줄 미들블로커가 들어온다면 편해 질 거라는 말이었다. 야하바의 소원대로 인원이 충원되고 있었다. 지금 쿄타니의 자리에 있는 윙스파이커도, 지금 윙스파이커인 이와이즈미와 하나마키가 졸업한다면 레귤러 한 자리를 꿰찰 게 분명했다. 쿄타니는 슬슬 배구부로 돌아가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

   약간의 의무감이었다. 쿄타니는 배구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야하바의 미래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건 싫지 않았다. 야하바가 간간히 와타리를 통해서 연락을 취해오는 것은 아직 미래의 아오바죠사이를 그리는 그림에 여전히 쿄타니가 있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슬슬 연습에 나가야 겠어. 쿄타니는 와타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는지 의외로 답장이 금방 왔다. 오늘부터 갈 거냐는 물음에 쿄타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와타리는 오늘 연습시합이 있다고 말하면서, 참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면서 웃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창 밖 너머에서 늦게 지는 벚꽃이 일렁였다. 쿄타니의 손에서 미미한 진동이 잡혔다. 와타리였다.


   [ 오이카와 씨가 조금 아파서 오늘 주전 세터는 야하바야 ]

   [ 연습경기에서 주전 하는 게 처음이라서 좀 긴장하고 있을 걸? ]


   그 문자는 의외로 깊게 남았다. 쿄타니는 정말이냐 물었다. 와타리는 오늘이 ‘카라스노 고등학교’와 연습시합이 있는 날이지만, 불행하게도 오이카와가 병원에 가기로 한 날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는 가벼운 염좌라고 말하면서, 그의 다리가 심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걱정을 했다. 그는 지금의 아오바죠사이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쿄타니는 그가 빨리 졸업했으면 싶다고 문자를 쓰다가, 괜히 핸드폰을 엎어 두었다.

  와타리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카라스노의 세터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쿄타니에게는 별로 쓸데없는 정보였다. 그의 미래에서 세터는 야하바면 충분했다. 그는 꿈결 같은 그림을 다시 상상하다가 책상 위에 엎어졌다. 봄이 창문을 불법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입 안에서 초콜릿의 달달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


    봄이었다. 배구부 건물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바뀐 건 라커룸을 사용하는 사람뿐이었다. 와타리는 쿄타니의 사물함 위치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3학년들이 졸업하고 나서 라커 위치를 대대적으로 바꿨기 때문이었다. 와타리가 사용하던 걸 이름을 까먹어 버린 윙스파이커가 쓰고, 야하바가 쓰던 걸 ‘킨타이치’가 쓴다고 했다. 새로 개편한 배구부의 레귤러 20명 중 1학년은 두 명 뿐이었다. 그래서 쿄타니의 사물함은 옮기지 않아도 됐지만, 그래도 2학년이기 때문에 위치를 바꿨다는 나름의 역사가 있었다. 이걸 주장한 건 야하바라고 했다.

   하지만 라커룸에서 야하바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쿄타니의 사물함은 라커 구석에 있었다. 와타리의 바로 옆이었고, 야하바와는 등지는 자리였다. 하나마키와 마츠카와가 라커 안으로 들어왔다. 쿄타니는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했다. 넌 진짜 변한게 하나 없다는 목소리들이 울렸다. 그들에게는 존경심도, 애정도 없었기에 쿄타니는 그들에게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색하게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여러 명이 들어왔다가 환복을 하고 가 버렸다. 그 흐름에서 야하바는 여전히 없었다. 쿄타니는 밑으로 내려갔다. 미조구치와 마주쳐 그는 고개를 숙였다. 연습에 다시 나오는 거니? 하고 묻는, 답지 않게 상냥한 목소리에 쿄타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딜 가냐고 물어보는 코치의 말에 그는 유니폼을 가지러 간다고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는 철제 계단을 내려갔다. 힘이 빠진 발걸음에서 턱턱 소리가 났다.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여러 목소리들이 가까이 닿았다가 밀려와 사라졌다. 얼굴을 전혀 모르겠는 걸 보니 신입생들인 모양이었다. 개중에 ‘킨타이치’가 섞여 있을까 쿄탸니는 그들 무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뭉쳐있던 신입생들은 그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도망갔다. 쿄타니는 이 상황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느릿하게 걸었다. 연습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체육관 밖으로 뻗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야하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쿄타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하바는, 심하게 긴장한 모양이었다. 쿄타니는 저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를 떠올렸다. 팀을 반으로 갈라 하는 연습게임에서 간혹, 그는 오이카와를 대신하거나 지금은 졸업한 3학년 세터를 대신해서 들어가곤 했다. 그 때마다 그는 심하게 긴장했고 자신의 셋업을 올리지 못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마다 화장실에 박혀있을 때도 있었다.

    중학교 때도 주전이었을 텐데 왜 그러냐는 타박에 야하바는 언제나 애매하게 웃었다. 쿄타니의 놀림이 심해질 때면 진심으로 분한 얼굴을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유하게 넘어가려고 했다. 쿄타니는 그의 짜증 가득한 얼굴을 떠올렸다. 짜증을 내기 시작했던 건 언제 부터인지 그는 쉽게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다만 연습을 드문드문 나가기 시작하던 9월 이후일 거라고 추측 할 수는 있었다.

    쿄타니는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체육관에 붙어있는 화장실 보다는 거기가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기억 해 냈기 때문이었다. 발걸음 소리가 저벅저벅 들렸다.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지나갔다. 쿄타니는 오늘 연습시합 상대가 ‘카라스노’ 였다는 걸 다시 기억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쿄타니가 오늘 연습에 나간다고 해도 그가 코트 안에 설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었다.

    두 사람이 자갈을 저미면서 다가오는 발걸음이 들려왔다. 쿄타니는 천천히 다가갔다.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야하바는 웃어주는 대신 얼굴을 찌푸리는 걸 선택했다. 기억 속과는 매우 다른 반응이었다. 옆에 있던 모르는 얼굴이 눈을 깜빡였다. 그는 야하바에게 ‘누구냐고’ 묻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순박한 눈매가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쿄타니는 괜히 침을 뱉어 바닥에 비볐다.


   “안녕.”


   먼저 입을 연 건 쿄타니였다. 안녕, 하고 야하바가 대답했다. ‘안녕’이라는 같은 글자에 들어있는 감정은 사뭇 달랐다. 같이 있지 않던 나날들이 둘 사이에 쌓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옆에 있던 키 큰 멀대에게 말을 걸었다. 인사해 킨타이치, 이쪽은 2학년의 쿄타니. 배구부 ‘빈 라커’의 주인공이야. 라고 소개하는 야하바의 목소리는 묘하게 냉랭했다.

   봄에서 겨울이 충분히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이 닿은 것만 같았다. 자정에 가까운 구월 밤 느낌도 나곤 했다. 노을 같은 기분이 퍼져나갔다. 킨타이치는 구십도로 몸을 굽히면서, 1학년 미들블로커 킨타이치 유타로입니다! 라는 문구를 외쳤다. 입학이 결정 된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수도 없이 말했을 자기소개였다.


   “어.”

   “좀 더 상냥하게 받아줘. 후배잖아.”


   야하바가 말했다. 쿄타니는 그게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괜히 뒷목을 쓸었다. 킨타이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가 밟는 자갈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야하바는 한숨을 깊게 쉬더니, 연습에 다시 나오는 거냐 물었다. 쿄타니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그는 킨타이치를 바라보았다.

   키 큰 미들블로커였다. 순하게 생기기도 했다. 야하바의 미래에 그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야하바는 쿄타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단단한 눈동자에 자신이 가득 담기는 모습을 보면서, 쿄타니는 괜히 삐뚤게 대답했다.


   “아니, 그냥 들른건데.”

   “나와.”

   “명령이야? 고작 오늘 주전이라고... 너 뭐라도 됐냐?”

   “나오라고.”


   야하바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킨타이치는 싸움을 말리려는 듯 어중간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성질이 났다. 나와라, 봄고에는 너랑 나랑 같은 코트에 설 수도 있잖아. 같이 오렌지 코트에 설 수도 있을거고. 야하바는 쿄타니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을 꺼냈다.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야하바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잘 재는 남자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팔짱을 끼고 있는 야하바의 어깨에 손을 올린 일학년이 어째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대 쳐버리면 속이 풀릴 것도 같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 대신 쿄타니는 제가 긁을 수 있는 걸 긁기로 결심했다. 무른 사람일 수록 상처받기 쉬운 법이었다.


   “니가? 봄고에?”


   잘나신 오이카와 선배는 어쩌시고? 쿄타니의 물음에 야하바는 대답하지 못했다. 밀가루 같이 하얀 얼굴에 붉은 기가 돌았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말해도 야하바의 미래에서 자신이 소거 되지 않으리라는 절대적인 생각. 그의 셋업을 잘 살릴 수 있는 스파이커는 자신 뿐이었다. 일학년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쿄타니는 둘 사이의 단절된 기간을 기억하지 않았고, 야하바는 그를 기다린 기간을 셈하고 있었다. 이것이 둘의 세계에 커다란 격절을 불러왔지만, 그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몸을 파르르 떨던 야하바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라 쿄타니는 그걸 몇 번이고 되물어야 했다. 그러자 그가 크게 소리쳤다.

 

   “오늘은, 내가 세터야!”

   “그래, 잘 해라.”


   그가 외친 말에 쿄타니는 뭐라고 대답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작은 응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들을 지나치고자 했다. 오늘 얼굴을 보고 싶었던 사람의 얼굴을 봤으니 퇴장하자는 심정이었다. 주인공이 무대에 너무 올라 있는 것도 지루함을 유발시키는 요소였다. 야하바는 뭔가 더 말하고 싶다는 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쿄타니는 그와 자신의 '사이'가 크레바스처럼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많이 만나지 않았으니까. 오랫동안 보지 않았으니까. 격변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쿄타니는 그들을 지나쳤다. 등에 시선이 꽂히는 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분명 야하바일 것이다. 쿄타니는 자신이 잡아줬으면 좋겠으면서도, 잡아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모순적인 감정들을 밟고 걸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서투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해도 괜찮습니까?”


   킨타이치가 야하바에게 말을 걸었다. 좋아, 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역 앞에 에클레어 가게에 대해서 말을 걸었다. 그는 거기에 혼자가기 쪽팔리다는 말을 꺼내왔다.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야하바는 오늘 연습이 끝난 다음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연습경기가 있는 날은 일찍 끝나니까, 라는 말이 구원이라도 되는 양 ‘킨타이치’는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기분이 나빴다. 쿄타니는 연습을 좀 더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는 단단하게 봉합되어 있었다. 그가 가를만한 것이 아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곧 즐길 수 없으면 회피하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들을 지나쳐갔다. 애매한 이질감이 있었지만 쿄타니는 그것을 무시하기로 했다.


   “연습 나와.”


   멀어져가는 쿄타니의 뒷모습에 야하바가 말을 걸었다.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아 쿄타니는 뒤를 돌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그의 뒤에서 둘의 속삭임이 들렸다. 여전히 디저트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목소리들에 짜증이 났다. 그는 뒤를 돌았다. 둘은, 정말로 친해 보였다. 아직 봄이었고, 킨타이치는 신입생이었다. 친해질 이유도, 기간도 없었다.

   억울함이 몰려왔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