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반복의 기원

   오늘 전력 주제가 의외로 어려워서 헤맸습니다^0T...스가른 전력에 참여했습니다. '두 사람'이라는 주제였어요. 보통 두 사람이 하는 놀이를 생각하다가 실뜨기를 빌려왔습니다만 일본에서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얘내가 왜 한국인이 아닌지 1도 모르겠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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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뜨기를 한 적이 있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의 일이었다. 초등학교 육학년이 된 누나가 배워 온 것이었다. 그녀는 실의 양 끝을 야무지게 묶었다. 열세 살 소녀의 한 품이던 실은 네 살배기 소년에게는 너무 컸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린 동생의 팔을 야물딱지게 벌려가며 실을 떴다. 왼쪽으로 한 번 밀어 중지에 걸치고, 오른쪽으로 한 번 밀어 중지에 걸친 그 모양. 그 규칙적인 모양을 뚫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네 살의 오이카와의 손가락은 깨끼 단풍잎 같았다. 통통하고 보들보들한 손가락은 실을 걸기엔 역부족이었다. 네 살과 열세 살의 실뜨기는 항상 ‘젓가락’에 가기 전에 끝나곤 했다. 오이카와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붉은 실이 어린 누나의 손끝에서 움직이던 광경과, 그걸 어떻게든 ‘모양’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던 자신을.


    비록 기억은 냉장고와 같아서, 확실히 ‘저장되어’ 있지만 ‘찾을 수 없는’게 생기곤 했다. 오이카와는 그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끝났는지, 언제부터 하지 않았는지, ‘젓가락’이후에 ‘함정’은 어떻게 피해 가는지를 생각 해 낼 수 없었다. 카레를 만들 때 항상 냉장고 깊은 곳에 숨어있는 돼지고기를 몇 분에 걸쳐서 찾아내야 하는 것처럼, 그 위에 세월이 쌓여 ‘실뜨기’의 구체적인 디테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계란 두 알을 들었다.


   확실한건 그 놀이를 하려면 ‘두 사람’이 필요했다.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이. 오이카와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그는 집에 베이컨 뭉치가 있는 걸 생각 해 냈다. 그는 급히 아침 식사 메뉴를 수정했다. 오므라이스보다는 샌드위치가 나을 것 같았다. 그는 이미 꺼낸 계란 두 알을 조리대 위에 올려두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기가 뻗어 나왔고, 그는 여러 냉동식품 사이를 헤집기 시작했다.


   먹다 남은 탕수육을 담아놓은 통과, 아직 열지 않은 냉동만두 봉지 사이를 헤집자 미끈거리는 포장이 잡혔다. 오이카와는 락앤락 통을 한 손으로 누르고 베이컨을 꺼냈다. 저번에 한 번 먹고서 남은 것을 당근 모양 핀으로 찝어 보관하고 있었다. 냉장고 정리를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베이컨 두 덩이를 꺼냈다.


   해동시켜야 하는데 귀찮았다.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곧 그가 깰 것도 같았다. 그는 언 베이컨을 먹을 만큼만 그릇에 덜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게 곧 녹을 것이었다. 그는 가스레인지를 켰다. 약불에 맞춰놓고 프라이팬을 달궜다. 그는 기름이 들어 있는 찬장을 열었다. 저번에 봤던 올리브유가 사라지고 카놀라유가 놓여 있었다. 오이카와는 하품을 했다.


   아침 특유의 노곤노곤한 졸음이 몰려왔다. 햇살이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눈부시게 들어올 때 마다 그는 하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짜내졌다. 그는 늘어지는 기분을 기지개로 폈다. 근육이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전자레인지가 울었다. 오이카와는 급하게 전자레인지에서 베이컨을 꺼냈다. 그의 구식 전자레인지는 해동 된 물건을 뱉기 전까지는 계속 소릴 지를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단잠을 방해하기 싫었다.


    그는 팬에 기름을 약하게 둘렀다. 베이컨을 구울 때 카놀라유를 넣는지 넣지 않는지 잊었기 때문이다. 별 탈 없지 싶어서 오이카와는 프라이팬에 베이컨 네 장을 넣었다. 두 장은 곤히 자고 있는 친구의 몫이었고, 남은 두 장은 자신의 것이었다. 두 사람 분의 몪이었다. 그는 계란도 두 장을 넣을까 생각하다가 그만 두었다. 아침부터 배불리 먹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기지개를 폈다. 수분이 증발하면서 비 내리는 풍경을 닮은 소리를 불러왔다.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베이컨을 뒤집었다. 네 장이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이 꼭 ‘실뜨기’의 ‘젓가락’ 모양을 연상시켰다. 그는 그걸 마지막으로 했던 때를 생각했다. 의외로 ‘네 살’이 아니라, ‘열 여덟’살이었다.


   쿠니미가 부실에 실 하나를 가져왔다. 그는 실의 양 끝을 묶어서 양 손에 걸쳤다. 그걸 왼쪽으로 한 번 훑으면서 중지에 걸고, 오른쪽으로 한 번 훑으면서 반대편 중지에 걸었다. 그는 짠, 하는 의욕 없는 목소리와 함께 그걸 킨타이치에게 내밀었다. 킨타이치가 실패하자 다음은 야하바였다. 오이카와는 지면 소금 캬라멜이야, 라는 그의 목소리가 점점 생기 있어 지는 걸 오이카와는 퍽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쿠니미의 독재를 막을 뻔 했던 것은 오이카와였다. 그는 엑스자로 교체 된 곳을 양 손으로 잡고 평행선 안으로 넣었다. 쿠니미는 작게 감탄하면서 다음 번 실을 떠갔다. 두세 번 반복하자 ‘젓가락’이 나왔다. 오이카와는 그걸 풀 수 없었다. 이다음엔 모르겠어, 라고 말하자 쿠니미는 오이카와의 손에 얇은 실을 걸쳤다. 그는 새끼손가락에 줄을 걸고 양 손을 교차했다. 그 다음 ‘함정’과 ‘거미줄’도 그는 쉽게 풀어냈다.


   그 이후에는 계속 실 패턴은 반복되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이게 퍽 연애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패턴을 모르게 계속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계속 했던 걸 반복하게 된다는 게. 그는 포실포실하게 익은 베이컨을 그릇에 뺐다. 그는 빵부터 구웠어야 했다며 자책했다. 그는 계란을 조리대 끝으로 밀어 놓고, 식빵을 꺼냈다. 어제 집에 들어올 때 사왔던 것이었다. 그는 베이컨 기름에 빵 두 장을 넣었다. 그의 누나가 알려준 비법이었다.


    그게 연애라면 스가와라와 자신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는 걸까. 오이카와는 손끝으로 빵을 뒤집었다. 그의 오랜 버릇이었다. 그는 스가와라가 이 광경을 본다면 뭐라고 할지를 생각했다. ‘세터가!’ 라고 말하기 보다는 ‘토-오-루’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첫 음절의 어조는 수평으로, 그 다음 음은 반음 내려갔다가, 마지막에서는 살짝 올라간 느낌일 것이다. 오이카와는 빵 두 장을 그릇 하나에 빼냈다. 베이컨이 들어 있는 그릇이었다. 설거지 감을 줄이면 줄일수록 좋은 법이었다.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게 된다는 건 그들의 연애가 안정기에 들어갔다는 증거 같았다. 오이카와는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그는 나머지 식빵 두 장을 더 구웠다. 베이컨 기름이 들어가 식빵은 거의 ‘갈색’이었다. 모양은 이상해도 맛은 괜찮겠지, 그는 접시 두 개를 꺼내 빵 두 장을 올렸다. 그 위에는 베이컨을 겹쳐 올렸다. 윤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하얀 계란 두 알을 깼다. 두 알이 자꾸만 붙으려고 했다. 두 사람 분의 식사였지만 계란은 어째 한 사람 것 같았다. 노른자 두 개가 눈 안에 들어왔다. 멀리서 토오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젓가락으로 붙은 계란의 중앙을 가르려다가 침실로 들어갔다. 약한 불이니 괜찮지 싶었다.


   스가와라는 이불에 쌓인 채 지고 있었다. 암막커튼의 열린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그의 하얀 피부를 해사하게 만들고 있었다. 왜 갔어, 그가 물었고 오이카와는 일인용 침대는 너무 작다는 불평을 내뱉었다. 둘이 집 합쳤을 때 바꾸자니까, 라는 말은 스가와라의 버릇같은 말이었다. 오이카와는 정신을 차리라는 말을 던졌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 할 거 있잖아.”


    뭘 맞겨 놓았다는 듯 스가와라는 그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의 손가락이 입술 끝에서 톡, 톡 움직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입술와 입술을 맞대어 쪽, 하는 소리를 냈다. 스가와라는 앙 다물린 입술을 벌려 그의 ‘키스 소리’를 먹는 시늉을 했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오이카와는 얼른 주방으로 달라 들었다. 스가와라네 집은 부엌과 침실 사이의 거리가 은근 멀었다. 그는 집을 볼 때 주방과 침실의 거리를 반드시 체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 익은 계란을 반절로 갈랐다. 하나가 다시 둘이 되었다. 연애는 하나같은 둘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 실뜨기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원으로 연결된 실 하나를 주고받으며 패턴을 반복해간다. 오이카와는 생활에서 이런 발견을 했다는 게 은근히 즐거웠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는 뒤집개로 계란을 들었다. 그는 베이컨 위에 프라이를 올렸다. 그는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베이컨을 반절로 접어 계란을 덮었다. 그 위에는 머스터드소스와 약간의 딸기잼이 들어간다. 우리 신랑한테만 해 주는 거니까 토오루 너도 소중한 사람한테만 해줘! 라고 외치던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빵 뚜껑을 닫으면서 피식 웃었다.


    스가와라가 씻는 소리가 들렸다. 세면대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두 개의 접시를 대리석 식탁 위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는 유리컵 두 개를 찬장에서 꺼냈다.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다. 그는 어제 사놓은 오렌지주스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쓸데없이’ 써버린 그릇 하나를 얼른 설거지했다.


   방문 너머, 너머로 들리는 물소리가 서서히 잠잠해지고, 스가와라의 발소리가 들었다. 오이카와는 왼쪽, 스가와라는 오른쪽이다. 이미 예전에 정해 둔 자리배치였다. ‘일’이 왼쪽, ‘이’가 오른쪽에 있으니까, 라는 단순한 이유였던 것도 같았다. 그는 익숙한 이 아침이 즐거웠다. 익숙하다는 것은 여러 번 반복했다는 이야기였다. 새로운 패턴이 없긴 했지만 그와 끊임없이 실을 주고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 베이컨 있었어? 스가와라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냉동만두와 락앤락 더미 사이에서 발견했다고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얼굴에 남은 물기를 손으로 훔쳐내면서 전혀 몰랐네, 하면서 웃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유리컵에 오렌지주스를 따라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라고 속삭이자 스가와라는 그가 꼭 그 말을 할 것 같았다면서 웃었다.


   실뜨기는 두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놀이였다. ‘거미줄’이나 ‘젓가락’같은 새로운 패턴들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익숙한 풍경들이 계속 반복되곤 했다. 오이카와는 그와 끊임없이 실을 주고받는 이 일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 웃어? 그가 물었고 오이카와는 네가 너무 예뻐서, 라고 대답했다. 이 또한 익숙한지 스가와라는 그의 입술과 입술을 맞물렸다 땠다. 쪽, 하는 소리가 나왔고 오이카와는 입을 벌려 냠, 하고 ‘쪽’을 먹는 시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