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 2015. 2. 4. 14:12
***
스가와라는 제 방문 앞을 막고 서 있는 시동을 보았다. 아이는 옻칠이 된 자개장을 들고 있었다. 큰 나뭇가지에 한 마리의 새가 앉아있는 모습이 장식된 함이었다. 나에게 주려고 온 것이냐, 그가 물었고 시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시동은 그에게 받아주시옵소서, 하고 작은 목소리로 고하였다. 왕께서 보내신 물건입니다, 받지 않으신다면 큰일이 납니다, 소년의 목소리가 여실히 떨리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물건을 받아들였다. 벌써 며칠 째 반복되고 있는 풍경이었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볼모로 온 것 치고는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아프다는 기린은 두문분출 하고 계시어서 안부를 전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안부를 전하려 가까이 가는 것도 무리였다. 그는 간간히 그의 침소에 놀러오는 야하바와, 선물을 전하기 위해 오는 시동을 빼고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스가와라는 창 너머로 보이는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오바죠사이의 하늘 또한 카라스노와 같은 빛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스가와라는 방 안으로 들어가 함을 열었다. 산호로 장식된 아름다운 비녀가 안에 있었다. 여염집 아씨들이 쓸 만한 물건이었다. 긴 머리를 자르신 게 못내 아쉬워 보냅니다. 그는 그 깔끔한 필체가 누구의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복잡한 머리카락을 쓸었다. 아오바죠사이의 서西궁은 하나의 감옥이자 새장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를 가두고 싶은 것이었다. 이 흔한 욕망에 스가와라는 어찌 대응할지 알 수 없었다. 점점 어두운 물길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긴 머리를 가지던 시절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이 유폐된 곳에서 서책하나 허락되지 않는 지금이 괴로웠다. 그는 책상에 어지러이 놓여 있는 자수틀과 오색실들을 바라보았다. 아오바죠사이, 왕의 색인 푸른색조차 실에 감겨 있었다.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난동을 부린 주제에 볼모 취급은 여인을 다루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럴 것이라고 짐작하곤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과거를 생각했다.
계십니까,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야하바의 목소리였다. 들어오십시오, 스가와라가 정중히 권하자 미닫이문을 여는 소리와, 비단으로 만든 가리개와 진주를 엮어 만든 발이 걷히는 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는 언젠가 야하바가 건넸던 말을 떠올렸다. 아오바죠사이에서는 신부를 맞이할 때, 그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이중 발을 만들어 가둡니다. 귀신조차 들어오지 못하게요. 별 의도 없이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왕의 심복이었고, 손과 발이었다. 스가와라는 그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
“내일부터 전에 나오라는 왕의 명이십니다.”
“제가 아오바죠사이의 관료들을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겁이라도 줄 생각이신지요, 스가와라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는 부채를 강하게 쥐었다. 야하바는 별 일 아닐 거라며 웃었다. 그는 스가와라가 갖춘 단정한 의복을 보더니 시종을 불렀다. 일단 목욕부터 하시지요, 그의 간질거리는 웃음이 스가와라는 불편했다. 그는 얼굴을 가린 시종들에게 떠밀려 방 안에 딸린 목욕통으로 향했다. 장미 향유를 물에 타거라, 야하바는 그의 왕이 말씀하신 대로 지시하였다.
스가와라는 제 몸에 화려한 꽃향이 들이차는 모습이 싫었다. 그는 볼모였고, 그의 어깨에는 한 나라가 짊어져 있었다. 한 나라의 재상을 계집아이 취급하여 자존심을 꺾으려는 의도가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시종들의 손을 거절하였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이러시면 저희가 죽습니다. 어린 목소리들이 그에게 간청하였고, 본디 모질지 못한 성정인 그는 그 손길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갖은 장신구, 보석이 들어있는 자개함, 얼마 전에 보낸, 열리지 않는 새장에 든 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호의好意가 치가 떨리게 싫었다. 그가 아는 그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무엇이 그를 병들게 만들었는지 스가와라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나무로 만든 욕탕에서 일어났다. 하얀 옷이 물에 젖어 그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발을 옮겼고, 시동들이 그의 몸을 닦았다. 스가와라는 평소에 입던 하얀 옷을 걸치게 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방으로 나서자 야하바는 웃으며 그를 맞이하였다. 그는 긴 노리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스가와라의 허리춤에 그것을 장식하여 주었다. 재상께서 왕의 허락을 받으셨다는 증표입니다, 앞으로는 서재든 서관이든, 허락되지 않았던 곳들도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야하바의 말에 스가와라는 단단하게 매듭지어진 노리개를 쓰다듬었다. 꽃향이 달달합니다, 야하바가 농담을 하듯 건넨 말에 스가와라는 그렇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정원이라도 가보시겠습니까? 스가와라 님께서 들어가지 못했던 동관에 있는 곳입니다.”
야하바가 물었다. 야하바 님을 대동하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뜻이십니까? 스가와라가 묻자 야하바는 고개를 저었다. 피곤하실 테니 먼저 들어가시지요, 그의 다정한 말에 야하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궁인들에게 징표를 보여주신다면 어디든 길을 안내 해 주실 겁니다, 하더니 몸을 숙여 인사하고는 멀어졌다. 스가와라는 철벽같던 발을 걷어 방 밖으로 나갔다. 이곳에 볼모로 잡혀온 지 삼 주가 지났다. 그는 서재에 가고 싶었다.
그는 어두운 색으로 퍼져가는 하늘 아래를 걸었다. 홀로 다니는 것은 불안했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꽃의 관’이라고 불리는 서궁의 작은 정원 이외의 다른 곳을 탐방한다는 것이 좋았다. 그는 전과 전 사이를 무사히 통과하였다. 아오바죠사이의 창병들은 왕의 노리개를 찬 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히 공손한 인사를 보내었다. 그동안의 행동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밤이 차구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로처럼 엮인 동궁의 정원이었다. 스가와라는 흐드러지게 핀 나무수국 한 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았다. 왕의 의복을 갖춘 오이카와가 그 자리에 있었다. 왕을 뵙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었다. 오이카와는 그 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보았다. 수국 새로 바람이 불었다. 늑대가 제 무리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였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라.”
그의 명령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자색 눈동자는 여전하였다. 당당하고 귀품 있으며, 아름다웠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몸에 새겨진 우아함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이제야 만나는구나, 하고 속삭였다. 번민하는 밤에 너를 풀어주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을 흘려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왕의 속을 알 수 없었다. 실로 오래간만의 재회였지만 그들의 신분과 상황은 그 때와 전혀 같지 않았다.
보고 싶었다, 오이카와가 말하였다. 스가와라는 보낸 서신을 읽지 못하셨습니까, 하고 대꾸했다. 오이카와는 읽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네 덕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내 기린이 앓아누운 것 같구나. 그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말을 내뱉었다. 여전히 꽃을 스치는 바람 같은 남자였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숙였다. 미천한 소생이 왕의 시간을 뺏을 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제 갈길을 가겠습니다. 그의 당돌한 말에 오이카와가 웃었다.
“이 곳으로 가면 내 침소가 있다. 노리개를 해주었더니 내 곁에 제 발로 오는구나.”
“지리를 몰랐을 뿐입니다.”
“네가 찾는 서고라면 남궁에 있음직하구나.”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 이곳으로 온 게 너의 진심은 아니었느냐? 오이카와가 농을 치듯 물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때 약조한 일의 기한이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바람에 그가 맨 왕의 장신구가 흔들렸다. 네 언약을 정말로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오이카와는 자신의 손에 잡히지 않은 새에게 속삭였다. 폐하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믿어주십시오, 그는 허황된 약조를 내뱉었다.
하늘에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날이 추우니 부디 옥체 보존 하소서. 스가와라는 몸을 굽혀 인사했다. 그 모습이 오이카와의 심장을 세게 누르는 듯 했다. 왕은 그의 단정한 모습을 바라보다 뒤를 돌았다. 그의 움직임에 옷자락이 흔들렸다. 동궁의 중앙 전, 우측 방에 널 보고 싶어 하는 자가 있더구나, 말동무나 해주며 잠이나 재워 주거라. 왕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스가와라는 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신기루와도 같은 광경이었다.
너무나도 멀어졌다. 스가와라는 국경지대에 있던 작은 서원을 기억하고 있었다. 왕과 한 나라의 재상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장신구들을 보낸 저의는 ‘기억 해 달라’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보고 받아들이기에 스가와라의 어깨는 무거웠다. 그는 정원을 빠져 나갔다. 낯이 익은 남자가 보였다. 아오바죠사이의 ‘가을’이자 호위대장인 이와이즈미와, 야하바를 호위해 왔었던 킨타이치였다. 그는 그 둘에게 예를 갖추었다.
왕께서 제게 동궁 중앙 전, 우측 방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스가와라가 담담히 말하자 그들은 머뭇거리다 그를 안내해주었다. 스가와라는 머뭇거리면서도 아오바죠사이의 가장 깊은 곳에 데려다주는 그를 보며 두터운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왕에게는 그를 진심으로 믿는 수족이 필요하다. 그는 오이카와가 왕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스가와라는 자신의 약속이 그저 한낮 아지랑이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때는 감사했습니다."
헤어지기 전, 스가와라는 몸을 숙이며 이와이즈미에게 인사했다. 이와이즈미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라고 잘라 말했다. 서슬퍼런 날붙이 같은 말이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호수 같기도 하였다. 그의 단단한 눈이 스가와라와 마주해왔다. 스가와라는 그의 미간을 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하고 이와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킨타이치는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나는 내 왕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겁니다."
이와이즈미는 그 말을 남기고 뒤를 돌았다. 킨타이치는 그에게 목례하고 이와이즈미를 따라 걸었다. 스가와라는 그 둘의 모습을 아련히 바라보았다. 많은 것을 담은 말이었다. 그는 이와이즈미와 말을 섞은 것이 '그 날' 이후로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이즈미의 모든 행동은 왕을 위한 것이었다. 실로 아오바죠사이 왕의 검이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왕을 떠올렸다. 돌아가고 싶었다. 갈 길이 멀었다.
***
동궁의 우측 방에는 기린이 있었다. 그의 얼굴빛은 창백했으며, 긴 검은 머리카락을 풀어 넘기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왜 오이카와 자신을 이곳으로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머뭇거리며 있자 쿠니미는 그를 손짓하여 불렀다. 목소리가 작게 나오는 바람에 공을 무례하게 부른 걸 사과드립니다, 어린 기린은 소곤대며 말하였다. 스가와라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쿠니미는 등을 켰다. 스가와라는 반대편 등에 불을 붙였다. 쿠니미는 옆에서 작은 종이를 하나 꺼내더니, 붓으로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목소리가 불편한 것이 티가 나는 듯하여 스가와라는 마음이 미어지는 듯 했다. 쿠니미는 그에게 종이를 건넸다. ‘모두 제 탓입니다. 카게야마가 먹는 걸 보고 작은 교자를 입에 넣었다가 탈이 났습니다. 제가 부덕한 일이라 말하였는데 왕께서는 듣지 않으셨습니다.’ 스가와라는 그것을 눈으로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님은 기린인 줄 모르고 인간과 섞여서 자랐지요. 그 탓인지 다른 기린님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미리 설명을 해 드렸어야 하는 부분인데, 저희의 불찰입니다.”
쿠니미는 그의 말을 듣고서 종이에 다시 글을 적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엉망인 글체를 떠올렸다. 아오바죠사이의 국풍은 ‘우아함’인지, 그의 행동에서 기품이 서려 있는 듯 했다. 쿠니미가 다시 그에게 종이를 건넸다. ‘제가 쾌유한다면 돌아가실 수 있으실 겝니다. 불안해 하실까봐 이곳까지 부르게 되었습니다.’ 작은 기린의 배려에 스가와라는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괜찮다고 말하였다.
기린은 다시 붓을 들었다. 왕께 도서관이라도 이용하실 수 있게 졸랐습니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친절에 스가와라는 짧게 웃었다. 그는 쿠니미의 손을 잡았다. 하해와 같은 은혜십니다, 그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스가와라에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달라 말하였다. 그 어리광 묻은 모습에 스가와라는 나무로 조각한 빗을 들었다.
쿠니미는 어딘가 생각하는 듯 했다. 그는 뒤를 돈 채로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머리카락을 곱게 땋아 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붓이 다시 움직였다. 시간이 늦었으니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종과 함께 돌아가십시오, 동궁은 미로같은 구조라 쉽게 나가실 수 없으실 겝니다. 스가와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녕하시길.”
쿠니미가 소리 내어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정갈하게 들린 것 같아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이내 들려오는 잔기침소리에 그는 의심을 거두고 방 안에서 나갔다. 쿠니미는 혼자만 남은 공간에서 그가 땋아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는 자개함에서 작은 리본을 꺼내 머리카락을 묶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상에 있는 것 치고는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미리 말해둔 시동은 스가와라를 데리고 가장 먼 길로 나갈 것이었다. 쿠니미는 천천히 걸었다. 그는 동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별채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 소리를 멀리서 들었는지, 혹은 올 것이라 예견한 것인지 정인情人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문을 가벼이 열었다. 미리 시종을 물려 놓았는지 방 안에는 하나마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픈 척은 잘 하셨습니까.”
하나마키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쿠니미는 그의 무릎에 다가가 앉았다. 그는 하나마키의 너른 몸에 자신의 등을 기대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하나마키는 기린의 머리에 묶인 끈을 풀었다. 그는 다시 빗을 들어 그의 흑단과 같은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 카라스노의 여인처럼 수수하게 묶어 내린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마키가 속삭였다. 쿠니미는 괜히 발을 구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다시 말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느냐.”
하나마키가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쿠니미는 그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그는 한숨을 내 쉬었다. 이제 연극도 지긋지긋합니다. 다음 생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면 광대가 되어도 좋겠어요. 쿠니미의 말에 하나마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가와라가 서西궁에서 벗어난 이상, 기린은 동東궁에 유폐 된 신세가 될 게 분명했다. 동冬장군인 내가 그 쪽으로 많이 놀러가마, 하나마키는 달짝지근하게 말하였다.
이 보다 더 지겨운 일이 더 있습니다. 쿠니미는 머리카락을 쓸어오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말하였다. 하나마키는 무엇이, 하고 물었다. 그는 어린 기린이 말을 고르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쿠니미는 입을 열었다. 나의 왕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는 게 화가 나고, 그가 명확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지겹습니다. 쿠니미의 불경한 말에 하나마키는 그의 입술을 두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왕께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마키 공이야 말로 내가 나라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쿠니미는 입술을 내밀었다. 그는 진심으로 불만인 것 같았다. 뭐가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새를 새장에 잠시 가뒀다가 풀어주면 만족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마키는 그의 머리카락을 땋아 내리며 말을 걸었다. 쿠니미는 일렁이는 촛불을 바라보다가, 숨을 불어 촛불을 꺼냈다. 순식간에 방 안에 어둠이 몰려왔다. 하나마키는 그를 뒤에서 끌어 안았다.
“나는 내가 왕을 이용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기린이 왕을 이용하다니 세상 참 말셉니다.”
“전혀 아니었습니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오히려 왕이 날 이용하고 있던 겝니다.”
이 비정상적이고 뒤틀린 관계에 기반을 두어서요. 쿠니미는 눈을 감았다. 하나마키는 그가 알아 챈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왕은 나라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의 그 맹목적인 신뢰의 말에 쿠니미는 그렇겠지요, 하고 대답했다. 멀리서 동궁을 돌아 황후전으로 가는 스가와라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발소리가 울리는 것마저 우리 왕은 좋으시겠지요, 가시가 돋힌 기린의 말에 하나마키는 그저 짧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밤이 깊었다. 밤은 마치 장막처럼 모든 진실을 가리고 있었다. 밤의 끝은 언제나 새벽이며, 새벽은 곧 해를 불러 올 것이었다. 쿠니미는 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둠이 언제나 혼돈을 가려왔다지만, 이것은 어떻게 풀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카게야마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쿠니미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 과거에 어떻게든 닿고 싶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움직여야 했다.
사사로운 감정은 나라에 독이 되는 법이었다. 오이카와님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나마키는 신하 된 자로써 이야기했다. 쿠니미는 괜히 그의 등에 기대었다. 머리카락을 만져 오는 손이 오늘따라 애달팠다. 그에게 겨울자리를 준 것도 이 탓인가, 쿠니미는 내일 어둠이 내리는 데로 오이카와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의 왕에게서 들을 말이 많았다.
[오이스가] 새장 안의 작은 새 7. (0) | 2015.02.20 |
---|---|
[오이스가] 새장 안의 작은 새 6. (0) | 2015.02.17 |
[오이스가] 새장 안의 작은 새 4. (0) | 2015.02.02 |
[오이스가] 새장 안의 작은 새 3. (0) | 2015.02.01 |
[오이스가] 새장 안의 작은 새 2. (0) | 2015.01.29 |
Rec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