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새장 안의 작은 새 4.

 

 

 

 

 

 

***

 

삼일 밤낮을 마차를 달려온 것이 무색하게도 그의 왕은 어전에 자리하지 아니하였다. 쿠니미는 그의 아래로 내려묶은 머리카락에 달린 잎사귀 장식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왕을 찾으러 발걸음 하였다. 그는 붉은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던 정원으로 향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키만큼이나 좁은 보폭 때문에 그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가벼이 흔들렸다.

 

오이카와는 정원에 있었다. 그는 청색 실로 수놓아진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왕이시여, 하고 쿠니미가 부르자 그는 뒤를 돌았다. 그의 팔에는 매를 부릴 때 쓰는 가죽 보호대가 있었다. 쿠니미는 나무수국들이 가득 심어진 정원 한 가운데를 걸어갔다. 때마침 상공에서 배회하던 매가 그의 왕에게로 다가갔다. 잘 관리된 깃을 가진 매였다.

 

새로운 취미가 생기셨습니까?”

새를 길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얀 새 대신입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오이카와는 쿠니미를 보며 웃었다. 그의 웃음은 겨울철의 나무수국 만큼이나 바래 있었다. 어딘가 아련한 듯한 그 미소에 기린은 그저 입술을 새초롬하게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귀찮은 걸음을 하였구나, 오이카와는 매의 깃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걸 아시는 분이 지금 여기 계십니까? 쿠니미는 괜한 투정을 부렸다. 오이카와는 매를 다시 하늘로 날려 보냈다.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그 장식을 한 건 오랜만이구나. 왕이 말하였다. 쿠니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선을 땅으로 내렸다. 뭐라고 탓하려는 게 아니었다. 너는 어린애이지 않느냐. 어린 아이는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게 세상의 순리지. 아무도 네 꽃장식을 보고 오만방자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전으로 들라 말했다. 그의 왕은 앞장서 걸었다. 기린은 그의 너른 등을 보면서 그의 발길을 따라 갔다.

 

새는 아름답더냐? 어전으로 들기 전, 시종들 앞에서 오이카와가 물었다. 쿠니미는 그것이 매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탐하실 만 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대답에 그의 왕은 호쾌하게 웃었다.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그는 궐 안에 새장을 만들어야겠다 말하였다. 그 소유욕 가득한 말씨에 쿠니미는 다만 얼굴을 굳힐 뿐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쿠니미는 어전으로 들었다. 그의 자리는 왕의 옆이었다. 왕실 호위대장 이와이즈미가 쿠니미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쿠니미는 이와이즈미가 전 아래로 내려가서는 것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왕좌에 앉자, 왕좌에서 전으로 내려가는 그 계단 중간에 하나마키와 마츠카와가 자리했다. 이와이즈미는 그 둘 보다 윗부분에서 단단히 서 있었다. 전 안을 가득 채운 신하들의 모습을 보며 오이카와는 흡족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꾸며내는 것도 왕의 일이었다. 마음이 어쩐들, 그것을 가린 가면만 완벽하면 쿠니미는 불만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왕이 이런 일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의 과거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얀 새에게 집착하는 것 또한 그것의 연장일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모두를 내려다보며 자리했다. 궐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햇살이 그의 앞길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손아귀에 움켜 쥘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쿠니미는 그에게 무릎을 꿇기 전 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모든 곳의 정점에 설 수 있도록 하겠으며, 세상의 온 구석에 당신의 이름이 퍼지도록 지지하겠습니다. 그는 왕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직은, 괜찮았다. 그는 자신의 왕이 부디 한낱 바람에 흔들리지 않길 바랐다.

 

오이카와는 아오바죠사이의 왕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쿠니미와 눈을 마주쳐왔다. 이 아침 조례에서 자신의 차례가 돌아 온 것이었다. 최고 존엄하신 나의 왕이시여, 말씀 올리겠나이다. 쿠니미는 간절하게 말하였다. 오이카와는 고갯짓으로 그가 말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쿠니미는 입술을 열었다. 그는 카라스노와 있었던 간이 회담의 일을 간략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마치 자식을 보는 것처럼 자애롭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오바죠사이의 왕, 오이카와 토오루는 사람을 부리는 데 망설임이 없는 남자였다. 그는 적제적소에 자신의 사람을 보낼 줄 알았다. 장군 하나마키는 그의 군대와 함께 국경지대에, 장군 마츠카와 또한 그 가까이에 진을 친다. 쿠니미는 그의 결정이 제법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아오바죠사이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카라스노의 난민들에게는 이만한 처사가 없을 것이다.

 

카라스노는 자신의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였다. 아오바죠사이가 무력으로 국경을 수호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쿠니미는 귀를 쫑긋거렸다. 그의 침소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긴장하였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한 발걸음 소리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쿠니미의 왕이었다. 그는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나마키 공에게만 허락한 공간에 내가 들어와 싫으냐?”

궐 안에서 당신께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 있었습니까?”

 

최고 존엄하신 나의 왕이시여. 쿠니미는 고개를 숙였다. 너의 침소니 편히 있거라, 오이카와는 웃으며 말했다. 쿠니미는 관을 쓰지 않은 그는 오랜만에 본다 생각했다. 그는 괜히 비단 너머의 구슬장식들을 건드렸다. 대나무 밭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아이 손장난 같구나, 그의 왕이 나직하게 말했다. 아직 어린아이니까요, 기린 또한 속삭이듯 대답하였다.

 

쿠니미야, 오늘은 내가 재워주려고 왔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도 왕의 일이 아니겠느냐. 오이카와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이와이즈미 공이 혼내시지 않으십니까? 쿠니미는 가만히 대답하였다. 그의 왕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기린은 괜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자색 눈동자가 깊었다. 국경문제 때문에 심란하십니까, 어린 기린의 말에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을 나는 새 하나 통과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내 아이가 앓아눕지 않을까 걱정이구나. 그는 손을 뻗어 쿠니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상사병이 깊으십니까?”

어린아이의 눈은 거짓을 보지 못한다더니. 들켰느냐?”

 

오이카와는 한쪽 눈을 감으며 물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그 안이 곪아 있다는 것을 쿠니미는 알 수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모셔왔던 분이었다. 그는 쿠니미의 머리카락을 찬찬히 쓸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기린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카라스노의 하얀 새. 오이카와는 그를 소유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제 왕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이 아오바죠사이의 기린이 되기 그 몇 년의 공백. 그 사이에 일어났던 일임을 추측 할 뿐이었다. 아련해 보이십니다, 그는 담담히 말하였다. 오이카와는 티가 났느냐며 웃었다. 그의 가벼운 어조 너머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었다. 빛이 밝을수록 어둠이 강해지는 법. 쿠니미는 자신의 왕이 털어놓을 진심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쿠니미야, 어디 아픈 곳은 없느냐?”

 

많은 것이 담긴 말이었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피곤하지 않았느냐, 혹 인간으로 살던 카라스노의 기린과 같은 식사를 하여 어디 탈이 난 것은 아니냐. 아니면 카라스노에서 있던 시간 동안 네가 불편했던 일은 없었느냐, 오이카와가 덧붙인 지독한 말 속에서 쿠니미는 자신의 왕의 바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카라스노 라는 나라 자체를, 혹은 그곳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는 그 하얀 재상을 옭아매고 싶은 것이다.

 

볼모를 원하십니까, 작은 목소리로 쿠니미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말을 흐리며 웃었다. 그의 웃음 속, 눈동자는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그가 이미 결심했다면 이루어 주는 것은 신하 된 자의 몫이었다. 쿠니미는 아오바죠사이의 관제官制를 떠올렸다. 봄에 위치한 기린과 여름, 가을, 겨울에 위치한 신하들. 그것은 온 계절 위에 있는 왕을 떠받들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였다.

 

기린은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오이카와의 얼굴에 실망이 드리워졌다. 그 짙은 그림자를 바라보다 쿠니미는 살포시 웃었다. 그는 그의 왕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한 번 볼모로 잡아도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기린의 직언에 오이카와는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새장에 들어있는 그를 보고 싶다. 그는 제법 단호하게 말했다. 쿠니미는 평소 욕심 부리지 않던 자신의 왕을 떠올렸다. 그가 유일하게 탐하는 것은 그 새 한 마리 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왕이 원하신다면.”

그래도 괜찮겠느냐.”

저는 왕의 신하입니다.”

 

왕께 받은 은혜가 많습니다. 갚아야 할 것이지요. 그는 천천히 내뱉었다. 왕께서 동장군을 국경으로 보내신 것도 이 때문이 아닙니까? 쿠니미가 당돌하게 물은 말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민하구나, 왕의 칭찬을 기린은 웃음으로 받아냈다. 카라스노에 파발이 가면 동장군께서는 국경을 넘어가겠지요? 당신의 명령이니까요. 오이카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웃었다. 자신의 기린은 매우 영특한 자였다.

 

밀지의 내용까지 알줄은 몰랐구나. 오이카와는 쿠니미의 볼을 쓰다듬었다. 쿠니미는 그의 손길을 가만히 받고 있었다. 왕의 심란한 마음이 이 일로 다스려진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실도하신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기린은 당돌하게 말하였다. 오이카와는 그의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다 손을 때었다. 내일부터 전에 큰 동백이 한아름 달린 관을 쓰고 와도 윤허하겠다. 오이카와는 나름대로 농이 섞인 호사를 내렸다.

 

앞으로 아플 예정이라 당장 못 쓴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군요. 쿠니미는 제법 얄밉게 조잘거렸다. 오이카와는 그 목소리조차 사랑스럽다는 듯 웃었다. 널 재워주려 왔는데 내가 복을 받았구나, 왕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눈을 깜빡였다. 저와 왕은 공생共生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기린의 말에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는 왕의 넓은 소맷부리에 새겨진 아오바죠사이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다만 왕께서 왕이심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고 있다.”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으시기를.”

 

쿠니미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었다. 오이카와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마키 공은 너를 재울 때 무슨 말을 해 주느냐? 왕은 동장군의 이름을 부르자 얼굴을 붉히는 이 기린이 제법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쿠니미는 잠시 말을 고르다,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말해 주십니다. 하고 대답했다. 너희의 사랑은 일상에 기원 해 있구나. 오이카와는 제법 얄미운 어조로 말하더니 뒤를 돌았다.

 

오늘 밤도 강녕하시기를, 쿠니미가 말하였고 오이카와는 그 말을 받은 채 방 밖으로 나갔다. 그는 문을 가만히 닫았다. 왕께서 군과 시종을 다시 배치시키는 지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발걸음 소리를 듣다가 기린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기린에게 오랫동안 깨어 있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는 오이카와가 만들어 낸 얕은 수 밑에 들어있는 깊은 감정을, 카라스노가 몰라주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

 

전쟁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스가와라는 아오바죠사이 동장군의 군대가 자신의 국경을 침범했다는 보고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장군 아즈마네가 국경으로 향했고, 그의 수족인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그 뒤를 따랐다.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아오바죠사이의 사신이 도착하였습니다, 시종장 야치의 목소리가 울렸고, 궐내의 시선이 모두 그녀와 그녀가 데려온 사신으로 향했다.

 

야하바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사신은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아오바죠사이의 푸른 문양을 한 교지를 건넸다. 그것은 바로 스가와라의 손을 통하여 카라스노의 왕에게 전달되었다. 다이치의 목소리가 그 내용을 읽었다. 당국에서 돌아온 이후로 아오바죠사이의 기린이 앓아누웠으니, 이는 선전포고가 아닐 수 없다. 그 딱딱한 문구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카게야마가 주먹으로 수수하게 세공된 테이블을 내리쳤다. 야하바의 뒤에 있던 무장이 야하바의 앞을 가리며 섰다. 괜찮다 킨타이치, 그의 목소리에 무장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스가와라는 그를 바라보았다. 전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쪽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카게야마가 날이 선 채로 소리쳤다.

 

재상 하나를 보내십시오.”

 

야하바는 웃는 낯으로 말하였다. 카라스노의 진심을 알 때 까지 저희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스가와라는 그가 말한 재상이 자신을 뜻함을 알 수 있었다. 기린은 한 나라의 상징, 볼모로 잡을 수 없다.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야하바의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꽤나 분한 것처럼 보였다. 잠시 회의를 거쳐도 괜찮겠습니까, 스가와라는 떨리는 목소리를 붙잡고 물었다.

 

잠시 자리를 피해드리겠습니다, 야하바는 노련하게 대처했다. 야치가 그와 그의 무장들을 안내했다. 그녀는 아마 가장 먼 별궁 안 정자로 그들을 데려 갈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흘리는 피가 많습니다. 스가와라의 말에 다이치가 한숨을 내 쉬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카게야마는 그들의 함정일 거라는 논지를 펼치고 있었다.

 

아오바죠사이의 동장군을 아십니까, 스가와라가 물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군의 피해가 막강할 것입니다. 아오바죠사이는 왕의 창을 보냈습니다. 우카이가 말을 꺼냈다. 다이치는 대답이 없었다. 전쟁을 지속하면 승산이 있습니까? 왕이 물었다. 아무도 알고 있는 답을 꺼내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타케다의 머뭇거리는 입술을 응시했다. 신하 된 자로서 왕께 무리라는 말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무리입니다.”

스가와라 공.”

지금의 우리로써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카게야마가 물었다. 그는 스가와라의 손목을 잡았다. 재상께서는 지금 그 곳으로 가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가끔씩 기린이라기보다는 인간 같을 때가 있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숙였다. 피해가 클 일을 작은 희생으로 막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궐 안이 한숨으로 물들었다.

 

스가와라는 직접 가겠다는 말을 다시 한 번 피력했다. 잠시, 생각 할 시간을 주게. 그의 왕은 한탄하며 말했다. 지금 가장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와무라일 것이다. 왕으로 추대된 지 삼 년. 그 전에 있었던 전란을 회복하기에도 카라스노는 급급한 일이었다. 아오바죠사이로 넘어가는 난민들을 사살하는 결정을 내린 것도 그 탓이었다. 나라가 있다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었기 때문이다.

 

장기말을 움직이는 데에는 별다른 고민이 필요 없다. 그렇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법이었다. 스가와라는 재촉하지 않고 그의 왕의 결정을 기다렸다. 굶주린 까마귀. 몰락한 왕조. 그것을 재건하기 시작한 카라스노의 상황에서 그가 내려야 하는 말은 단 하나였다. 왕이시여, 카게야마가 다시 왕의 대답을 청하였다. ‘안 된다라는 말을 내뱉으라는 애절한 간언이었다.

 

사와무라의 입새에서 한숨이 나왔다. 무거운 숨이었고, 결정이었다. 더 의논해 봤자 결국 답은 하나입니다. 스가와라가 그를 재촉했다. 그의 말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카이와 타케다 또한 이 일이 가장 최선임을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되풀어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개인 사와무라 다이치가 아니라, 카라스노의 왕으로써 말씀 해 주십시오. 스가와라의 단호한 말에 그가 세운 왕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