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2014. 12. 7. 16:12
카게야마는 초콜릿 포장지를 손 안에서 굴렸다. 싸구려 은박지 느낌이 났다. 그는 멍하니 차창 밖을 쳐다보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가 번져 가로등 불빛이 아스팔트 위에 길게 퍼졌다. 그는 입 안에서 초콜릿을 굴렸다. 입 한 쪽 면에서 녹던 초콜릿이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단 맛이 가득 퍼졌다. 그는 핸드폰을 액정을 보고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단맛이 날수록 얼굴이 화끈거려 그는 창문을 열었다. 기껏 정리해놓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창밖을 보다가 그의 발치에 놓인 우산 두 개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검은 색, 하나는 회색. 둘 다 무채색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지만 닮은 색은 아니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초콜릿 하나를 더 꺼냈다. 그는 포장지를 깠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입 속이 다시 달아졌다.
초콜릿을 먹을 때면, 카게야마는 부실에서 하던 보충수업을 떠올리곤 했다. 이미 고등학생과는 두어 걸음 정도 멀어져 있는 그였지만, 그는 그 상황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흐트러지기 마련이라지만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매번 초콜릿을 먹을 때 마다 자연스럽게 카게야마에게 녹아들고, 다시 재정립되어 굳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 때도 꼭 비가 오고 있었다.
낙제를 면하기 위해서 배구부 자체에서 보충수업을 돌리던 기간이 있었다. 넷이 한 곳에서 하면 너무 시끄러워진단 이유로, 각자 다른 곳을 배정받았다. 카게야마의 선생님은 스가와라였다. 카게야마와 그의 집은 정 반대편이었기 때문에, 그 둘은 배구부 연습이 끝나면 부실로 올라갔다. 옷을 갈아입으며 잡담하던 소리가 빗물에 씻기듯 사라지면, 스가와라는 공책을 꺼냈다. 오늘도 시작해볼까, 카게야마? 라고 묻는 그 목소리는 우유가 들어간 초콜릿처럼 달콤했고, 카게야마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는 수학이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것 또한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수학 공부를 하면 스가와라의 손가락이 여실히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가와라의 손가락은 꼭 그처럼 햐앴다. 스가와라가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샤프로 식을 써내려 갈 때면, 그의 엄지손가락이 톡, 톡 움직였다. 배구를 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단정하게 정리한 손톱이 움직이면, 그의 가는 손목이 흔들렸다. 그 동작을 몇 번인가 반복하다 보면 식 한 줄이 완성되었고, 그 때 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게 먼 세계를 설명했다.
수학은 졸음을 동반하는 과목이었다. 그러나 스가와라와 하는 보충수업 시간에서 그것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졸음보다는 설렘, 설렘이 번진 홍조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가 요술을 부린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가까이서 그의 수업을 들었다. 작은 반상 위에서 하얀 손가락을 움직이며 한참을 설명한 후에, 그는 작은 초콜릿을 까서 카게야마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 달달함과 함께 찾아오는것은 ‘지루한 거, 듣느라, 고생 했어’ 라고 말하는 목소리였다.
버스가 급정거를 했다. 카게야마는 차창에 비친 자기 얼굴이 꽤나 얼빠진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버스 안을 매운 라디오에서는 사람이 ‘회상’을 할 때 짓는 표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지금 상황과 라디오의 대본이 일치하는 것이 퍽 재미있는 우연이라고 생각하며 창문을 보며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는 초콜릿을 입 안에서 녹였다. 초콜릿을 녹이는 과정을 설명하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스가와라의 목소리 -지금의 자신보다 어린-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말하는 것 처럼 초콜릿과 미적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말했다.
그 날 스가와라가 먹여준 초콜릿은 조잡한 은박지에 쌓인 것이었다. 쿠킹 호일? 이라고 카게야마가 말하자 스가와라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 미적분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가져왔다 말하면서 웃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카게야마는 별 생각이 없었다. 못생긴 초콜릿을 입 안에서 굴리면서 스가와라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스가와라의 동그란 눈동자와 특이한 모양의 눈썹, 눈물점, 콧날, 분홍색 입술에 차례대로 시선을 두었다. 머무는 시선 끝이 부담스러웠는지 스가와라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이거, 내가 만든 거야. 스가와라는 당당히 말했다. 카게야마는 정말입니까, 하고 딱딱하게 대답했다. 맛있으니까 하나 더 달란 말에 스가와라는 미적분을 완벽하게 이해하면, 이라는 사족을 덧붙였다. 카게야마가 은박지를 손에 쥐고 뚱한 표정을 짓자, 그는 카게야마의 머리카락과, 귓등을 쓰다듬었다. 그는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샤프를 쥐었다. 검은 샤프였다. 그러고 보니, 검은색은 카게야마를 닮았네. 그는 그런 맥락에서 벗어난 몇 마디를 하다가 설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서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게 적분 상수의 개념을 물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는 미분과 적분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을 더했다. F(x)를 미분하는 것은 초콜릿을 녹이는 것. 다시 그것을 모양 틀에 넣어 굳히는 것은 f'(x)를 적분하는 것. 이 과정에서 생기는 사랑이 적분상수 C. 스가와라는 ‘필살기’라도 되는 양, 그 말을 마치고 카게야마를 보며 웃어보였다.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활짝, 꽃이 피는 것처럼.
그걸 위해서 이걸 만들어 오셨습니까, 카게야마가 그렇게 물었고,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쾌한 웃음을 보며 카게야마는 그에게 아무런 흑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지독하게 단 친절이었다. 그러나 그를 향해 굳어버린 마음을 다시 미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감정도 미분적분이 되나요, 카게야마가 물었다. 시적인 말이라고 사족을 덧붙인 스가와라는 대답 없이 그의 입 속에 초콜릿을 넣었다. 수제 초콜릿은 분명 단 맛인데도 끝 맛이 썼다. 카게야마가 초콜릿을 다 먹어 갈 때 쯤, 스가와라는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했다.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제법 무거운 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카게야마는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몇 번 쯤, 스가와라가 먼저 고등학교를 떠나고 나서, 한참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을 때. 그 때 마음이 미분되려 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싸구려 은박지가 붙은 초콜릿만 먹어도, 다시 그 마음은 적분이 되며 +C를 남겼다. C는 ‘씨발’이라는 발음을 가진 욕이 되기도 했고, 조금 시니컬한 발음의 ‘사랑’이 되기도 했다. 녹은 초콜릿은 굳기 위해 존재했고, 풍화된 사랑은 C를 더해가며 몸집을 불려갔다.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있어서 사랑의 단맛은 짝사랑의 단맛이었다. 쿠킹 호일을 닮은 은박지로 포장 된 초콜릿들이 그의 주머니 속을 항상 굴러다니는 것은 기억의 편린 속에 위치한 스가와라를 항상 붙들어 매고 싶기 때문이었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싸구려 은박지의 감촉 밑에서 딱딱한 초콜릿이 잡혔다. 그는 포장지를 까서 입에 넣었다. 초콜릿이 입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초조해졌다. 그는 당분에 긴장을 완화시키는 성분이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열린 창문 틈새로 빗물이 들어왔다. 카게야마는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아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고등학교 삼학년, 스가와라 코우시가 수학 문제를 푸는 환상이 그의 눈꺼풀 위에 자리했다. 입에 초콜릿을 넣어 주던 그의 하얀 손가락, 샤프를 움직이던 그의 엄지. 단정하게 다듬은 손톱들과 정갈한 목소리가 카게야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단정한 기억들은 곧이어 ‘좋아해요’ 라고 말하던 고등학교 일학년, 비오는 날의 카게야마 토비오로 완성된다. 어수룩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어떻게 대답했던가.
그것은 아마도 ‘미안해.’였다. 그의 목소리는 다분한 죄책감을 담고 있었다. 그의 ‘미안해’를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그 ‘해’라는 음절 뒤에 찍힌 온점은 스가와라와 카게야마 사이의 사랑을 기저로 한 관계의 종말을 의미했다. 흔히 온점 뒤에는 띄어쓰기라는 우주가 있고, 그 뒤로 새로운 사랑의 문장이 오기 마련이었건만 카게야마가 관계의 종식 후 홀로 쓰고 있는 애정의 문장은 여전히 스가와라 코우시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고장 난 라디오가 따로 없었다.
그는 비오는 날에 초콜릿을 먹는 버릇이 있다. 부실 밖에서 내리던 빗소리의 부슬거림과, 스가와라의 색이 엷은 머리카락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 닮음 속에서 다시금 새로운 적분상수가 탄생하며 사랑의 몸집을 불렸다. 함수 앞에 ‘무한’을 달아준 것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습이었다. 카게야마는 이것이 모두 스가와라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한창 홀로 마음앓이 하던 때 초콜릿을 준 죄. 결국 은박지 달린 초콜릿을 먹을 때 마다 그가 생각나고, 그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령처럼 달라붙어 카게야마를 괴롭히고 있었다.
정류장에 잠시 정차했던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비가 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감은 눈을 느리게 떴다. 그의 눈꺼풀이 지리한 추억을 잘라냈다. 버스는 곧 종점에 도착 할 것이다. 반드시 내려야만 하는 곳이 있는 버스에서 그는 홀로 헤맸다. 그의 주머니에서 은박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끊임없이 과거를 속삭이는 그 소리의 끝에는 스가와라가 있다. 무리수 가득한 그 고백의 남은 여파에서, 우산도 쓰지 않고 달려가던 스가와라가 그의 정수리에서 흩날리던 검은 교복 상의가 진하게 남아 있었다.
혀끝에서 하나의 초콜릿이 녹아내릴 때 마다 쓴 맛이 함께 그의 곁에 자리했다. 버스는 영원히 달리지 않을 것이고 그는 언젠가 이 홀로 써가는 추억에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은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우산 두 자루를 손에 쥐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배구를 하기 위해서 단정하게 정리된 손톱에서 그는 하얀 손과 다시금 스가와라 코우시를 생각 해 내고야 말았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등에 기댄 의자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은색 초콜릿 포장지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부시럭거리는 소리는 카게야마의 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 몇 년 정도를 꼬박 앓은 고질병이었다. 그는 버스에서 내리면 은박지로 포장 된 초콜릿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에게 의무와도 같은 행동이었다. 혹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카게야마는 차창 너머를 쳐다보았다. 빗물 그림자 속에는 교복을 입고 달려가던 스가와라가 있다. 그는 그 단정한 손가락과 목선을, 미적분과 초콜릿을 회상하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지독하게 익숙한 일이었다.
버스가 서서히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창문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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