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2015. 4. 2. 00:00
시린님이랑 연성교환 하기로 했던 카게스가 동갑AU입니다. 뭔가 둘이 동갑이라면 스가와라는 카게야마를 따라가느라 힘들어 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가 약한 모습을 보여 줄 때 마다 점점 좋아하게 됐고, 카게야먀는 스가와라의 노력이 효율없다고 생각하다가, 그가 의외로 강하다는 걸 알면서부터 폴인럽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참 트위터 주소가 또 바꾸ㅣ었어요.... 52sugar22daze에서 52kawa322daze입니다... 더 이상 계정 옮길 일이 없었으면 싶네요!
***
언덕이 요구하는 것은
발끝을 위로 하고 걸으라는 것과
숨가쁜 순간을 몇 번이고 넘기라는 것, 그리고
남기고 온 발자국을 돌아보지 말라는 것
―「말들이 요구하는 것」中
***
별을 보는 걸 좋아했다. 반짝이기 때문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거리에서 조용히 호흡하기 때문이었다. 스가와라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삼월 하늘에 아직 겨울이 걷히지 않았는지 오리온자리의 허리띠가 보였다. 그는 시선을 위로 올리고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걸었다. 정돈되지 않았기에 발치에 돌이 밟혔다.
스가와라는 시계를 확인했다. 버스 막차가 간당간당했다. 그는 아즈마네와 다이치의 얼굴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집에서 신세지는 것은 미안했다. 염치를 아는 남자였기에 그는 길을 걸었다. 비포장도로를 십 분 쯤 걷다가 시가지가 나오면 골목으로 들어가서 이-삼십분을 걸으면 도착하는 길이었다. 귀찮음을 감수하면 충분히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스가.”
그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별의 목소리였다. 스가와라는 걸음을 멈춰 섰다. 카게야마였다.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상당한 거리를 뛰어 온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카게야마의 입술은 까마귀 부리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유니폼 위에 대충 걸친 교복이 웃겼다.
삐졌어? 카게야마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글쎄, 하고 대답했다. 그의 얼굴이 단박에 어물거렸다. 사와무라나 아즈마네와 달리 그는 좀 놀리고 싶은 매력이 있었다. 스가와라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리온자리의 허리띠와 양 팔, 양 다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가깝고도 먼 별이었다. 이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까웠고, 하늘에 걸려있다는 점에서 멀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유니폼을 바라보았다. ‘4’번은 에이스 스파이커의 번호였다. 주전 세터가 가질 번호가 아니었다. 그는 3학년에 올라 온 카게야마가 유니폼을 받던 날을 떠올렸다. 스가와라는 그와 정확히 두 걸음 떨어져 있었다. 그 두 걸음은 오리온자리와 같았다. 감독과 시미즈에게 4번을 받겠다고 말했다며 수줍게 고하는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스가와라는 예뻐 할 수가 없었다.
“토비오 난 네가 왜 4번을 받겠다고 한 지 모르겠어.”
“또 그 이야기야?”
“어. 너도 알다시피 나 되게 쪼잔하거든.”
스가와라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천재랑 삼 년을 같은 포지션으로 있다 보면 느는 건 능청스러움이었다. 만나 본 적은 없었지만 스가와라는 키타가와 제 1중의 세터도 (놀랍게도 카게야마가 주전이 아니었다.) 능청스러웠을 거라고 확신 할 수 있었다. 스가와라의 말을 들은 카게야마는 얼굴을 찌푸렸다.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못생김으로 물드는 광경은 웃기기까지 했다.
차 끊겼지? 카게야마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네 나머지 연습 봐 주느라 늦었잖아, 하고 말하니 그는 미안하다고 곧바로 사과해왔다. ‘남자 친구랑 학교에 단 둘이 남았어.’라고 말하기에는 아쉬운 밤이었다. 스가와라는 모른 척 손을 뻗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손을 마주잡은 카게야마가 그의 옆으로 불쑥 다가왔다. 키 차이가 나는 게 어쩐지 분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언제나 스가와라 코우시의 앞에 있었다. 키도 배구도, 실력도 체격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별이었다.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도 먼 별. 스가와라는 별에 줄을 매달아 손을 잡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카게야마는 놀이동산에서 파는 헬륨풍선 같이 가벼워서 손을 놓으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잡은 손은 따듯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얼기설기 엮어, 손바닥 위쪽에 힘을 주었다. 이런 관계가 된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였다. 초삼월 밤은 추워서, 미미한 입김이 났다. 카게야마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둘은 같은 학년임에도 멀었다. 스가와라는 사와무라와 친했고, 카게야마는 아즈마네와 가까웠다. 연인이라는 카테고리는 의외로 얄팍할지도 모른다. 스가와라는 그게 불편했다. 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
“왜 또 그런 표정이야.”
카게야마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카게야마의 미간을 눌렀다. 얼굴 좀 풀고 말하란 충고에 그는 이번엔 입술을 내밀었다. 카게야마의 표정은 매우 다이나믹하게 변화하곤 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불안하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었다. 그는 괜히 깨금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서툴게 입을 맞추었다.
짧은 입맞춤이 닿은 후, 카게야마의 볼에 홍조가 돋았다. 스가와라는 모든 게 완벽한 제 동기가 자신에 의해 당황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는 괜히 콧노래를 불렀다. 반칙이야, 라고 외치는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제법 다급했다. 그렇지만 둘의 관계를 공정하게 심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스가와라는 괜히 그의 팔을 이끌었다. 갈 길이 멀다는 이유에서였다.
동갑이기 때문에 좋아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초조했다. 그와 걸어가는, 말 없는 하굣길에서 스가와라는 후배인 카게야마를 상상했다. 차라리 조금 더 차이가 났다면 초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숨이 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언덕길을 쫓아가느라 상처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두 살, 아니면 한 살 정도라도 앞걸음에 있었더라면 그에게 순수하게 사랑만 해주지 않았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 발 앞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차냈다.
주전경쟁에서 조금 더 자유로웠을 수도 있다. 배구를 좀 더 즐겁게 했을 수도 있겠고, 대학도 배구로 진학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스가와라는 그와 자신의 나이차이가 나서 가질 수 있는 이득을 계산했다. 카게야마는 말 없는 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그는 입을 오물거렸다. 스가와라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눌렀다. 후배였다면 카게야마가 망설이는 구석을 더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좀 아쉬웠다.
“무슨 생각 해.”
“네 생각.”
“내가 옆에 있는데?”
카게야마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럴 때가 있는 거라면서 손을 끌었다. 오리온자리는 여전히 그들의 머리 위에서 반짝였다. 먼 것도 같고 가까운 것도 같은 별자리였다. 스가와라는 하품을 했다. 졸려? 그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꼬리에 작은 눈물이 맺힐 만큼 잠이 왔다. 카게야마는 버스 타고 가지 그랬냐는 말을 하려다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실수 한 걸 아는 모양이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가 연하일 경우 생기는 이득을 계산하다가 곧 그만 두었다. 그는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를 다시 보았다. 저렇게 평행선상에 있는 게 좋을 때도 있었다. 그는 괜히 카게야마의 한쪽 팔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그의 딱딱한 얼굴에 홍조가 들었다. 공을 올리는 손이었다.
“더 이상 배구 안 할 거야?”
카게야마가 물었다. 대학 진학 후의 일을 묻는 모양이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구로 진학하는 건 이미 무리였다. 그는 대학을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카게야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알기 쉬웠다. 스가와라는 그가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다.
스가, 하고 다시 카게야마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어딘가 애절했고 먹먹했다. 재능 없는 사람에게 ‘같이 하면 즐겁다’는 이유로 배구를 강요하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뒤틀린 감정을 별님은 모를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입술을 내밀었다. 왜 그를 좋아하게 됐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서 사랑은 언제나 퐁퐁, 솟아났다. 그는 그 처음을 찾으려다 이내 그만 두었다. 카게야마의 입술이 스가와라의 입술에 닿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까 준 것을 되돌려 주려고 한 것 같았다. 불안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스가와라는 그의 모습을 보고 연하는 절대로 안 되겠네, 정도를 생각하다가 웃었다. 역시 자신들은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이 어울린다고 확신하며, 스가와라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배구 말고, 네 옆자리는 안 그만 둬.”
“스가.”
“대학 너랑 같이 갈 수도 있다는 뜻이야.”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낙제점에 대해 말했다. 카게야마는 어차피 배구로 갈 거니까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언제 들어도 얄미운 소리였다. 스가와라는 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꼬집어 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그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날의 하늘이 너무나도 깨끗해서 별이 잘 보였다. 카게야마와 함께 걷는 밤하늘 아래가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별이 예쁘네, 스가와라는 그들이 같이 걸어온 길을 보며 말했다. 너무나도 소중해서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의 시선을 따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같은 학교라서 좋았고, 같은 학년이라서 좋아. 그의 목소리에 따라오는 사랑에, 카게야마는 그를 꼭 끌어안았다. 불안감은 포옹에 어느 정도 사라졌다.
“내가 지금 제일 원하는 말 해줘.”
“우리집에서 라면 먹고 가라.”
스가와라는 카게야마가 ‘입력 된 대답’을 하자 선심을 쓰는 듯 그래, 하고 경쾌하게 대답했다.그럼 여기로 가면 안 되잖아, 라고 말하며 카게야마는 포장이 되지 않은 산길이 아니라, 인도로 스가와라의 손을 이끌었다. 굳게 잡힌 손과 손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스가와라는 제 손바닥이 별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카게야마는 언제 봐도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게, 좋았다. 카게야마는 유니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4는 2가 두개니까, 세터 두 명의 번호라는 나름의 뜻에 스가와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 역시 너희 집에서 라면 못 먹고 가겠어. 그의 말에 카게야마는 한 번 말한 이상 못 무른다면서 스가와라는 제 품에 가두었다. 따듯한 온기가 닿는 느낌은 나쁘지 않아서, 스가와라는 그저 별이 예쁘네 하고 딴청 밖에 부리지 못했다.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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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2015. 3. 29. 22:31
저희 집 앞 정류장, 횡단보도의 신호가 꼭 저렇게 바뀌던데, 왜 저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되게 시적이라고 생각합니다:3c 너무 좋아서 불안 해 하는 오이카와가 좋아요! 슈가도 슈가 나름대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비슷한 소재로 다뤄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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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정류장 앞 횡단보도는 이상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중앙선을 기준으로 왼쪽 신호등이 먼저 켜진다. 어물어물하게 십오 초쯤이 지나면 맞은편 신호등도 초록불이 된다. 이 때 먼저 켜진 왼쪽 신호는 여전히 초록불이다. 언뜻 보면 양 쪽 신호가 한꺼번에 켜지고, 한꺼번에 빨간불이 되며, 좌회전 신호가 켜지는 신호등 같기도 했다.
결국 먼저 깜빡이는 건 좌측 신호였다. 파란 불빛이 깜빡, 깜빡이며 빨간 불이 켜지기 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속삭였고, 우측 신호는 여전히 쨍한 초록색을 머금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 광경을 꽤나 좋아했다. 또 가물가물하게 십오 초가 지나면 두 신호는 동시에 깜빡인다. 늦게 흔들리는 것은 우측 신호등이었지만 언뜻 보면 둘 다 동시에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오이카와는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었다 서고, 또 제각각의 목적지로 떠나는 광경만큼 이 풍경을 좋아했다. 그는 좁은 별에서, 조금씩 의자를 뒤로 물려가며 계속 석양을 바라봤다는 어린왕자를 떠올렸다. 어린왕자는 몹시 슬플 때 석양을 바라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어린왕자』의 ‘나’는 작은 소년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마흔 네 번이나 석양을 본 날, 너는 몹시 슬펐니?
이 질문에 어린왕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오이카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반대편 정류장 너머로 넓게 퍼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건널목에서는 신호등이 깜빡였다. 반짝, 반짝 거리면서 점멸을 뜻하는 좌측 신호등과 대조되게, 우측 신호등은 가만히 서 있다. 곧 빨간불이 되려는 좌측을 모르는 탓이었다.
완벽한 평행에서 서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노을과 같은 색의, 빛바랜 중앙선을 기준으로 좌측과 우측 신호가 깜빡이는 걸 바라보았다. 왼쪽이 빨간색이 됐는데도, 오른쪽은 미련을 남기고 반짝였다. 반짝, 반짝, 그리고 반짝, 반짝. 그는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았다. 그는 그것이 퍽 사랑이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멋없는 은유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연인을 떠올렸다. 그는 가끔씩 그 사랑을 생각하면 노을처럼 아련해지곤 했다. 그의 웃음은 상쾌하게 부서지는 아침 햇살을 닮았고, 성격은 온유한 밤하늘을 닮았다. 져가는 해와 퍼져가는 노을은 스가와라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도, 오이카와는 간혹 그를 노을에 비유하며 우울해지곤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을 전화로 시작하고, 끝을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로 장식했다. 간간히 먹은 것이나,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즐거워했다. 아오바죠사이와 카라스노는 의외로 먼 곳에 있었지만 마음이 멀다고는 한 번도 생각 해 본적이 없었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들킨다면 혼이 날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해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엇갈리며 켜지는 신호등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먼저 ‘좌측 신호’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깜빡이는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하면 어쩌지. 오이카와는 불안함에 손을 까딱였다. 미련이 남은 우측 신호도 결국엔 붉은 불을 담는다. 그는 스가와라가 끝을 말하는 광경을 생각하고 소름끼쳐했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파랑’이여야만 했다.
종점이 ‘농수산 시장’인 버스 여러 대가 그를 지나쳤다. 스가와라가 했던 비유가 그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말야, 사랑이 종점에는 없다고 생각해. 오이카와는 그 말에 짧게 몸을 떨었다. 나는 버스, 너를 태우고 지나가고, 너는 언젠간 내리게 되어 있는 거지. 정류장에서 환승할 다른 버스를 기다리던, 거기서 곧장 집으로 가던, 올라 탄 버스에 주구장창 있을 수는 없는 거야. 그치?
오이카와는 ‘그치’를 발음하며 눈웃음치던 스가와라를 떠올렸다. 지금 당장 보고 싶었다. 그는 핸드폰의 메신저를 켰다. 스가와라는 귀여운 스티커와 함께, 조금 남았다는 말을 남겨놓았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 쉬었다. 너무나도 좋아하게 되면 이런 점이 불편했다. 항상 끝을 가정하고 불안해 하다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다. 오이카와는 스쳐 지나갔던 버스들을 떠올렸다. 그네들은 언제나 오이카와의 끝이 더럽다고 말하곤 했다.
사랑에 찌질 한 건 당연 한 거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노을은 정류장 너머 하늘에 짙게 깔리고 있었다. 어느새 너무 좋아져 버려서 불안했고, 불안함 때문에 슬펐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봄의 한가운데였지만 아직 저녁은 추워서, 그는 아오바죠사이의 져지 재킷을 여몄다. 이번에는 헤어지기 싫었다. 둘 다 켜져 있는 초록불로 평행을 유지하고 싶었다. 언제나 버스에 타고 순환노선을 빙글빙글 돌고만 싶었다.
이런 불안감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더 좋아하면 지는 거라던 연애 격언을 떠올리면서 오이카와는 푸스스 웃었다. 그에게 할 말을 여럿 고민했다. 나 이제 다음 정류장이야, 하고 스가와라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이카와는 어서 오라고 재촉했다. 그 재촉 끝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반대편 정류장에서 멈춘 버스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내리는지 초록 버스는 잠시 동안 머물렀다.
버스가 신호를 받아 사라지는 그 순간에 오이카와는 저 너머에 있는 스가와라를 발견했다. 잘 모르는 곳에 내려서 두리번거리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그는, 큰 소리로 코-우-시- 하고 소리를 냈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신호등 앞으로 다가갔다. 오이카와는 정류장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하고 싶은 수백 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었다. 그는 그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의 앞을 버스 몇 대가 스쳐지나갔기에 스가와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그 짧은 순간이 영화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말에서 파생되는 여러 사랑을 떠올리다가 신호등 앞에 섰다. 아직 빨강인 신호, 동시에 바뀌는 하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둔 신호등 사이에 서서 그들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해야 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색해서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건널목 너머에 연인이 있다는 게 괜히 부끄러웠다.
스가와라는 왜- 하고 소리쳤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스가와라 또한 입술을 쭉 내밀었다가, 다시 그 끝을 당겨 웃고, 다시 땅을 보다가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좌측 신호가 먼저 켜졌다. 오이카와는 제 심장소리를 세었다. 콩, 콩 거리는 맥이 열다섯 번쯤 뛰었을 때 우측 신호가 초록이 되었다.
―여기 신호 이상하게 바뀐다, 그치?
스가와라가 말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꼭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수백 가지 밀어들과, 수천 가지 두근거림이 빠르게 휘발되기 시작되어 가장 전하기 부끄러운 한 마디만 남았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손을 바라보았다. 하얗고 가지런한 손이었다. 나 배고파, 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먼저 걸었다. 스가와라는 그와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머릿속이 이래저래 복잡했다. 하지만 꼭 말해야만 했다. 오이카와는 모든 불안감을 그 단어에 꾹꾹 눌러 담았다. 멀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다가 그는 입술을 먹었다. 스가와라는 여즉 아까 그 신호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오이카와, 듣고 있어? 하고 그가 물었을 때, 오이카와는 그게 사랑을 담은 은유 같지 않느냐 말할 뻔 했다. 지금 그가 품고 있는 불안감을 들키긴 싫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타이밍을 못 잡겠어. 오이카와의 말에 스가와라는 걸음을 멈추었다. 들어줄 게, 그는 상쾌하게 말했다. 밤 바람이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사랑해.”
오이카와는 모든 좋은 말이 휘발되고 나서 남은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새삼스럽게, 헤어지자는 말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 쉬었다. 오이카와는 그 말은 절대 제가 말할 리가 없다면서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여기 니 사는 덴데 괜찮누? 스가와라가 물었고 오이카와는 좋아하니까 잡는 거라면서 투덜거렸다. 그것도 몰라? 바부, 오이카와의 목소리 끝에 스가와라의 청량한 웃음이 걸렸다.
아직은 두 신호등 다 초록색을 먹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올라 탄 버스가 순환버스이길 바랐다. 그는 굳이 깜빡임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찾아 올 종점과 다가올 빨간 불은 길을 건너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었음으로. 오이카와는 그의 손을 세게 잡았다. 새삼스럽게 부끄럽다는 스가와라의 말과, 그 끝에 걸린 웃음이 그의 손바닥을 괜히 간질였다.
―이번 벚꽃 4월 4일 경에 핀대.
오이카와는 괜히 말을 돌리면서 입술을 내밀었다. 나 그 날 시간 괜찮아. 스가와라의 말에 오이카와는 이번엔 자기가 가겠다면서 허둥댔다. 스가와라는 언젠가 동물원에서 벚꽃 야간개장이 하면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오이카와는 환하게 피는 꽃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들은 초록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길가 정류장에 버스가 다가왔다. 아무도 내리지 않은 버스는 정류장을 지나쳐 속도를 내, 다음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스가가 너무 좋아.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알고 있어. 대답은 오이카와가 품고 있는 무거움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볍고 상쾌하며, 뿌듯하게 다가왔다. 아직은, 이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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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2015. 3. 28. 21:23
아오바죠사이전력에 참여하려고 했던 글입니다 '거짓말'이라는 주제였어요. ^0T..전력 30분을 노렸으나 장렬히 실패! 쿠니미와 하나마키가 담배를 피우는 이미지는 콩밥님의 리퀘에서 왔습니다...☆★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지만 AS를 해드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
그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었다. 그는 오늘 왜 이 곳에 왔는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했다.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그건 아직도 살아있는 단체 대화창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면 도쿄에서 자취한다는 말을 내뱉으려고? 이는 이미 이 년 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나마키는 고등학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벅벅 긁었다. 마음이 심란했다. 담배만 뻑뻑 피워대는 것은 불안함의 상징이었다. 그는 뒤를 돌았다. 고기 집의 전면 유리창 너머로, 삼년 전 아오바죠사이의 레귤러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오이카와의 옆자리에 앉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하나마키가 가장 보고 싶어하던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하나마키는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오늘따라 담배가 썼다. 니코틴이 가득 폐를 침식하고 있었다. 눈이 뻑뻑했고, 그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자신이 왜 ‘1학년 레귤러였던 킨타이치 군과 쿠니미 군의 대학 진학 축하연’에 자리했는질 생각했다. 그는 땅을 보며 숨을 내뱉었다. 헤어진 연인의 맛이 났다.
하나마키는 지금 사귀고 있는 그녀를 생각했다. 검은 머리카락에 키가 크고, 슬렌더한 체형의 그녀는 냉랭하면서도 따듯한 구석이 있었다. 하나마키는 그녀가 누구의 ‘카피캣’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하나마키의 그녀를 보자마자 기분이 나쁘다고 솔직하게 진술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쿠니미에게서 졸업하지 못하고 있었다. 쿠니미 아키라는 하나마키 타카히로의 X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마키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왜 나왔어, 그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담배 피우려구요. 쿠니미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쿠니미는 하나도 자라지 않았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한 뼘정도 자란 하나마키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하나마키는 그를 위해 한 걸음을 비켜 주었다.
“선배는 안 변했네요.”
“뭐가.”
“하나도 안 변했어요.”
쿠니미는 심드렁하게 말하면서 그에게 담배를 달라 말했다. 고등학생이 까져서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은제 담뱃갑을 내밀었다. 럭키 스트라이크? 쿠니미는 능숙하게 브랜드를 맞췄다. 그 담배가 조금 올드한 느낌을 준다는 것을 하나마키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쿠니미의 입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그에게 ‘말보로 레드’라고 대답했다.
센 거 피우네요, 라는 쿠니미의 말에 그는 니가 애기라서 모르는 거야, 라고 투덜거렸다. 쿠니미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담배 한 까치를 잡았다. 그는 하나마키의 입술로 손을 뻗었다. 불이 잘 붙지 않았고, 담배 두 개가 모두 꺼졌다. 시비 거니? 하나마키의 말에 쿠니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쿠니미와 단 둘이 있는 것도, 이미 과거를 알고 있는 저 안에 들어가는 것도 싫었다. 하나마키는 가방을 마츠카와에게 맡기고 나가버릴까 고민했다. 그는 맛이 나지 않는 담배를 땅바닥에 던져 껐다. 그는 으슬으슬한 두 팔을 제 손으로 쓸었다. 쿠니미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쿠니미의 두 눈동자가 무서웠다. 무슨 말을 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대학 어디로 갔어?”
“하나마키 선배랑 같은 곳이요.”
“나 따라 온 거야? 나 너 질렸는데.”
“멋대로 생각하세요.”
쿠니미는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자신의 졸업식을 떠올렸다. 쿠니미는 그 때도 꼭 저런 눈을 하고 있었다. 다가온 이별에도 그는 울지 않았고, 심드렁하게 그것뿐이냐 물었을 뿐이었다. 하나마키는 그가 울길 바랬다.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 자신을 잡아주길 원했었다. 너무나도 냉랭한 그와 함께 하기에, 하나마키는 확정적이고 정확하며, 실증적인 사랑을 원했다. 그의 사랑은 유물론을 기반으로 움직였다.
아직도 나 좋아해? 하나마키가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술은 아래로 휘어 있었다. 무표정과 슬픈 표정 사이를 간당간당 오가는 그 모습에 하나마키는 마음이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담배 한 가치를 피우려다가 그에게 문득 질문했다. 우리 잘래, 하고. 쿠니미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네, 그래요, 하고 대답 했을 뿐이었다.
***
쿠니미는 모텔에 ‘투숙’ 해야 한다고 우겼다. 하나마키는 그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 한 번, 그냥 그저 그런 변덕으로 끝낼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숙박’이라니, 하나마키는 그가 웃기다고 생각했다. 샤워를 할 때조차 그 ‘투숙’이란 말의 무게는 하나마키의 그림자에 진득히 붙어 있었다. 그와 입을 맞출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텔에 비치된 싸구려 콘돔을 이용한 관계가 끝나고서, 둘은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쿠니미는 핸드폰을 놓고 왔다고 고백했고, 하나마키는 그가 잠들면 도망칠 생각이었다. 같은 자리에 누웠지만 하고 있는 생각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둘은 등을 맞대고 돌아누웠다. 쿠니미는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고, 하나마키는 그저 협탁과, 벽면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움직일 때 마다 그는 초조해졌다. 아무 말도 없이 있을 사이는 아니었다. 쿠니미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다시 이어 놓기에는 애매한 사이였다. 사랑은 매듭을 짓는다 하여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마키는 그가 여태까지 만나온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모두 말랐고, 검은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앞머리가 없는 것이 태반이었으며, 무심한 타입이 대부분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을 돌보면서 하나마키는 쿠니미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밤을 빌어, 그 사실을 쿨하게 인정했다. 물론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의 침샘은 이미 거짓말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에는 거짓이 첨가되어 있었다. 하나마키는 쿠니미를 잊지 못했고, 하나마키의 세계는 헤어질 때와 비교해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허나 그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헤어지자 말한 것도 하나마키였다. 그는 자신이 왜 이별을 고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초침이 딸칵거리며 그의 회상을 도왔다. 등 너머에 있는 쿠니미가 천천히 움직이는지, 이불이 침대 시트에 스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생각하면 할수록 유치함에 머리가 복잡해져, 하나마키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아무렇게나 벗어둔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하나마키 씨.”
쿠니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마키는 그 때처럼 뒤돌지 않았다. 그는 불을 붙였다. 자요? 쿠니미는 알면서 물어왔다. 그는 자, 라고 대답했다. 그럼 난 자는 사람한테 이야기 하는 거네요, 그쵸? 쿠니미는 다시 한 번 질문했다. 그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있는 것도 같았다. 하나마키는 담배연기를 거하게 뱉어냈다. 약간의 침묵 후, 쿠니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왜 아직도 우리가 헤어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나마키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자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마키는 그가 내뱉는 말이 잠결에 내뱉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꿈의 세계는 현실과 반대기 때문에, 이 맹랑한 녀석은 반대로 된 잠꼬대를 내뱉는 것이었다. 하나마키는 담담하게 담배를 빨았다. 연기가 폐로 들어올 때 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는 눈을 자잘하게 깜빡였다.
“나 지금 자취해요.”
선배가 열쇠를 반납 안 한 그 방에서. 쿠니미는 천천히 말했다. 그 침묵에 섞인 작은 목소리가 하나마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왜,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질문 할 수 없었다. 남의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은 하나마키의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담담하게 담배를 빨아 낼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물기에 잠식되어 갔다. 심해에 섞이는 공기방울 같은 모습이었다.
계속 거기로 돌아가서요, 선배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하나마키 씨를 더 이상 타카히로로 부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계속 거기로 가게 되는 바람에, 그냥 거기에서 살기로 했어요. 참, 가구배치는 그대로에요. 다만 옆방에는 마츠카와 선배가 없지요. 쿠니미는 천천히 이야기 했다. 하나마키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뒤를 돌았다. 쿠니미의 등이 보였다. 여전히 마르고 가는 등줄기는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손을 뻗었다. 그는 그의 얼굴을 쓸었다. 손가락이 물에 젖었다. 선배는 잠버릇이 나쁘네요. 쿠니미는 그렇게 말하면서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그의 옆머리카락이 눈을 가렸기 때문에, 하나마키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모든 말이 거짓말이기를 하나마키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더 달라진 게 있는가 생각해봐도, 내 방은 선배가 쓰던 그대로예요. 나는 선배랑 같은 사이즈의 운동복을 입고, 옷장도 비슷한 곳에 놓았으니까. 쿠니미의 목소리 끝에 기침이 얽혀왔다.
“선배가 없어요.”
그게, 가장 큰 문제인데, 가장 큰 문제가 아닌 것도 같아요. 쿠니미는 잠에 취했다는 변명을 끝에 곁들였다. 그 말이 없으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듯, 그는 호들갑을 떨었다. 하나마키는 두 번째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에서 불이 붙는 소리가 났다. 쿠니미는 몸을 일으켰다. 모텔 창문에서 들어오는 건물 밖의 가로등 불빛이 그의 눈물에 반짝임을 더했다.
하나마키는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헤어질 때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고, 볼로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담배 피울래? 하고 물었다. 쿠니미는 그의 손에서 담배를 뺏어 들었다. 그는 그것이 종교라도 되는 양 입을 오물거렸다. 섹스 할 때 키스는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있다는 변명은 명백한 거짓말이었지만 쿠니미는 알지 못할 것이었다.
“나 미련있는데, 한 번만 키스 해 주면 안 될까요?”
쿠니미가 물었다. 정중한 물음이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하나마키가 쿠니미에게 취하는 모든 행동은 미련의 다른 이름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거짓말로 포장했다. 포장은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 쿠니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느리게, 또 느린 템포로 흔들리는 머리카락에 하나마키는 자신이 왜 그와 헤어졌는지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 입술로 종말을 고하는 것을 듣기 싫었다. 실로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었으나 그것은 그의 정의였다.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 하나마키는 또 다시 상처 받기 전에 상처입혔다. 더 이상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에 있음에도, 쿠니미의 사랑은 굳건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담배를 빨았다. 그의 혀가 담배 끄트머리를 톡, 톡 건드렸다. 마치 그것이 키스라도 된다는 듯, 사랑의 증표라도 된다는 양, 진득하게 쿠니미는 담배 필터를 천천히 마셨다.
사랑받지 못해도 마음은 커져간다. 그늘진 음지에서 꽃이 자라는 것처럼. 하나마키는 등을 돌렸다. 쿠니미는 그의 등에 손바닥을 댔다. 차가운 손이 그의 뜨거운 등에 닿았다. 미안해요, 라는 사과에 하나마키는 나, 지금 자고 있어, 하고 대답했다. 웃기는 거짓말이었으나 쿠니미는 그것을 믿어주었다. 울음과 불안이 가득 찬 밤이 꽃처럼 피어났다. 하나마키는 문득 자신의 이름과 쿠니미의 이름에 꽃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쿠니미는 그 날 담배 한 대를 느리게 다 태웠다. 그래야만 했고, 그래야만 했다.
하나마키는 다음 날 아침, 쿠니미의 빈 리에 버려져 있는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은제 담뱃갑에 넣었다. 작고 검은 담배꽁초에서는 쿠니미의 향이 났다. 하나마키는 자신의 담배 이름과 같은 노래를 떠올렸다. 마룬 파이브의 ‘럭키 스트라이크’의 끝은 행복한 사랑이었던 것도 같다. 하나마키는 그 경쾌한 비트 사이에, 자신의 사랑이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저 한숨을 내 쉴 뿐이었다.
그늘 진 음지에서 피어난 꽃은 다른 꽃들보다 수명이 짧다고 한다. 햇빛을 충분히 보지 못 한 꽃은 줄기가 물렁하며, 잎이 빨리 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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