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2014. 12. 18. 22:12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는 지루할 수록 더욱 더 잘 들려, 스가와라는 아사히가 농담식으로 말하던 목소리를 기억했다. 그는 한 볼을 책상에 붙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옆자리 사람의 책 페이지가 흔들렸다. 그는 몇 번이고 자신의 귀를 간질이는 초침 소리를 따라 입으로 째, 깍, 째, 깍, 하고 속삭이다가 눈을 들어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스가와라 군, 공부하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는 거예요, 하면서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괜히 앉아있는 그의 배를 간질였다.
아까 내가 놀자고 했을 때는 눈 하나도 깜짝 안 했으면서, 오이카와는 제법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의 눈은 스가와라가 아니라 문제집을 향해 있을 뿐이었다. 연애를 하면서 안 사실이었지만, 오이카와 토오루는 꽤나 공부를 잘 했다. 그것도 문과계열-역사나 윤리 따위의- 과목을 잘 한다고 했다. 스가와라는 제 눈 앞에 있는 문제집을 보았다. 나 방정식 싫어, 그가 투덜거리듯 말하자 오이카와가 웃으면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몇 분 전 상황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스가와라는 자리를 잡고 일어났다. 그는 문제에 줄을 그으며 읽은 다음, 연습장에 식을 받아적었다. 그렇지만 그의 샤프 끝에는 지루함만이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그는 샤프 꽁무늬를 두어 번 눌렀다. 딸칵거리는 소리는 근무 태만인 초침과 꽤나 어울렸다. 그는 흑연을 단단히 붙잡는 지루함을 떨쳐내려 연습장에 선을 여러 번 그었다. 그는 지금, 자신과 토오루의 상황은 교차하는 삼각함수 그래프와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교차하는 그레프, 그는 그것을 예쁘게 그렸다가, 아랫변에 비내리는 모양을 그어냈다. 오이카와가 문제집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는 다시 책상에 뺨을 붙이고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그가 입은 검은 티셔츠와, 그 위를 덮은 청남방은 꽤나 산뜻한 느낌이었다. 스가와라는 손을 뻗어 그의 배에 손을 댔다. 얇은 남방과 티셔츠 아래로 간질거림이 전달됐는지, 오이카와가 살짝 몸을 뒤틀었다.
"상쾌 군, 집중 해야지."
"공부 하기 싫은걸."
"그럼 아까 놀아줬어야지."
"그 때는 공부가 재밌었는걸."
청개구리 같아. 오이카와는 그의 코를 검지와 엄지로 살짝 집어 가볍게 흔들고 놓았다. 스가와라는 일부러 킁, 소리가 나개 숨을 들이켰다.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뱉어냈다. 밖이 추웠기 때문에 따듯하게 틀어놓은 히터에 잠이 몰려왔다. 오이카와, 하고 이름을 부르자 그는 토오루, 하고 호칭을 정정했다. 토오루, 하고 부르자 그제야 왜-에 하고 대답해 오는 그는 꽤나 귀여웠다. 스가와라는 몸을 일으켜 오이카와의 문제집을 바라보았다. 역사 문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혁명시기 어려워,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정작 연도를 외우는 게 싫어, 스가와라의 불평에 편승하여 오이카와는 기지개를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혁명에서 중요한 건 흐름이지 년도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연습장을 꺼내 긴 선을 그었다. 그는 차례대로 프랑스 혁명의 흐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보통 남자애 보다 깔끔한 글씨들을 보다가 스가와라는 오이카와 씨는 글씨도 잘 생겼네요, 하면서 칭찬을 내뱉었고, 그는 스가와라 씨도 x자가 스가와라 씨를 꼭 닮아 귀엽네요, 하며 화답했다.
시험기간의 공부란 밀린 설거지를 한 번에 처리하는 것 만큼 귀찮은 법이었다. 스가와라는 간혹 자신에게 돌아오곤 했던 설거지 당번을 할 때의 감각이, 범위 내의 모든 문제를 다시 한 번 풀어보는 일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눈을 들어 초침을 확인했고, 오이카와가 내는 허밍음이 초침과 섞여 나름 어울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아까 오이카와가 집중하지 못했을 때, 그 때 놀았어야 했던 거라고 투덜거리면서 몸을 뒤로 뉘였다. 그의 몸은 깔끔하게 개어진 이불 위로 넘어갔다. 오이카와의 향이 났다.
오이카와 씨는 애인이 집에 왔는데, 라고 말했을 뿐인데, 오이카와는 매우 참고 있으니 조용히 해 주세요~ 라고 화답 해 왔다. 뭘 참느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을 물어보자, 그는 웃는 얼굴로 두 손을 들었다. 그는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폈다. 보통은 한 손가락이잖아, 하고 스가와라가 그의 오른손가락 갯수에 테클을 걸자, 그는 오이카와 씨의 토오루 군은 매우 대단하다면서 웃었다. 스가와라가 조금 기대하면서 예쁘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다시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독하네."
"아까의 상쾌 군도 그랬다구요~"
오이카와 씨는 정말 상쾌군이 쌀쌀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여자아이들 말투를 흉내내며 간드러지게 말했다. 스가와라는 그의 어투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진짜 공부 할 거야, 라는 말을 하고 스가와라는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다시 샤프를 들었다. 심심함을 가득 담은 낙서들이 흰 연습장 위에 난잡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는 종이를 넘겨 다시 수식을 적었다. 초침 소리가 다시 요란하게 들렸다. 그는 시계가 너무 시끄럽지 않느냐 물었다. 오이카와는 네가 집중을 못 하는 거지, 라고 얄미운 소리를 내뱉었다.
스가와라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오늘 오이카와 토오루가 입은 스타일은 같이 '데이트 가요'라는 은근한 권유였다. 적어도, 스가와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오이카와는 문제집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샤프를 손 안에서 돌리다가 어쩔 수 없이 문제집을 바라보았다. 그는 난폭하게 식을 적어내려갔다. 몇 번쯤 풀었던 문제라 다시 풀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의욕의 문제였다.
가만 보면 오이카와는 슬로우 스타터였다. 그는 처음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완벽한 집중력을 자랑했다. 반면 스가와라는 그 반대였다. 그는 처음부터 집중할 수 있었지만, 간간히 맥이 끊기면서 놀고 싶어했다. 스가와라는 두 사람의 공부 주기가 비슷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젤 풀었다. 작은 좌식 책상에 둘이 앉은 꼴이라, 둘의 팔꿈치가 간간히 스치기를 반복했다. 시계 침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몇 문제를 더 풀어냈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로 조금씩 다가오는 오이카와의 손을 때렸다. 너 손 힘 너무 세, 하면서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내뱉는 연인에게, 스가와라는 작게 혀를 내밀었다. 나한테 뽀뽀해달라고 하는 거지? 하면서 묻는 그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오이카와가 이제 '놀고 싶어 하다'는 걸 깨달았다. 상쾌 군, 시계 초침 소리 너무 거슬리지 않아? 오이카와는 그의 허벅지에 다시 손을 올리며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가 쓰고 있는 도수 없는 안경에 손가락을 댔다.
"글쎄,"
그는 완벽하게 되갚아줬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의 얼굴에서 안경을 벗겨냈다. 상쾌 군, 하면서 자신의 애칭을 말하는 목소리에는 '무심함'보다는 '애원' 혹은 '기원'이 담겨 있었기에,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라고 거절의 의사를 가득 담은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네에, 라고 말하면서 다시 문제집을 바라보았다. 배구에서 랠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습을 떠올리며 스가와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놀고 싶지?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눈을 감으며 글쎄, 하고 대답했다.
작은 반상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스가와라는 순식간에 자신의 몸에 실리는 중력을 느끼면서, 작게 웃었다. 마른 입술에 숨이 붙어왔다. 스가와라 선생님, 저는 이번 시간에 생물을 공부하려고 해요, 오이카와가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오늘은 남성의 생식기에 대해서 공부하나요? 라고 잔망스럽게 되물었다. 시계 초침 소리는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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