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손 끝, 지문

트위터에서 리퀘를 받았습니다. 배구선수 오이카와와 물리치료사 스가와라의 이야기입니다.

뭔가 속편격의 이야기를 좀 더 쓰고 싶은 기분이 드네요:)! 

생각이 많은 스가와라와, 그의 앞에서 애교섞인 돌직구를 날려대는 오이카와가 좋습니다..







***

   스가와라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따듯한 물에 담겨 있던 오이카와의 발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물 몇 방울이 떨어졌다. 스가와라가 조심스럽게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서 모음들이 튀어나왔다. 오이카와 군, 많이 아파요? 스가와라가 묻자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술에서 쌜쭉하니 나온 혀를 보면서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 쉬었다. 그는 간혹 이렇게, 간단한 장난을 치곤했다. 스가와라는 그 장난에 항상 휘둘리곤 했다.


   그는 자신의 무릎 위에 놓인 보드라운 수건 위에, 오이카와의 발을 올렸다. 느낌 이상해, 라는 투정이 따라왔고, 스가와라는 그 말을 흘려들은 채로 수건의 양 귀퉁이를 접어 그의 발에서 물기를 닦았다. 그의 발톱은 단정하게 잘려 있었고, 발뒤꿈치 또한 깨끗했다. '오이카와 토오루' 다운 발이었다. 잘생겼지? 오이카와가 개구지게 물었다. 스가와라는 괜히 고개를 저으면서 그의 발등을 꼭꼭 눌렀다. 핏줄이 도드라져 있어 스가와라는 괜히 그 흔적을 쓰다듬었다. 


   이번에도 그는 가벼운 ‘염좌’였다. 스가와라는 그의 부상이 가볍게 자주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가 바위를 뚫듯, 아무리 경미한 증세라고 해도 자주 쌓인다면 독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스가와라는 물기를 닦아낸 그의 발을 잡아 서서히 올렸다 그의 무릎이 접혔고, 오이카와의 입 속에서 다시 단어가 되지 못한 언어들이 튀어나왔다. 아파? 그가 다시 물었고, 오이카와는 그의 갈색 머리카락을 매만질 뿐이었다. 


   “너 고등학교 때도 오른쪽은 압박되는 무릎보호대였나?”

   “기억하고 있었어?”


   이거 기쁜데, 오이카와는 웃으며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아오바죠사이와 했던 첫 연습시합을 회상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상쾌 군을 좋아하게 된 것 만큼 염좌는 오랜 기간 동안 오이카와 씨의 친구였던 거지, 그는 습관적인 염좌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스가와라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에 그의 발을 세게 눌렀다. 아파, 하고 솔직하게 대답해 오는 목소리에 은근한 발랄함이 묻어있어, 스가와라는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색이 다른 걸 쓰길래, 처음엔 멋인줄 알았었는데, 스가와라는 일부러 뒷말을 잇지 않았다. 지리하게 말꼬리가 늘어졌다. 그런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서, 상쾌 군이랑 좀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오이카와는 오히려 더 상쾌하게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그의 가벼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불만을 따로 표출 할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그의 발목에 손을 댔다. 날개가 꺾인 아기 새를 만지는 것처럼 보드러운 손길이었다.


   스가와라는 습관적으로 ‘이번엔 왜’ 라고 물으려 했다. 그렇지만 오이카와 또한 자신의 친우 같은 병명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종아리를 길게 쓰다듬었다. 그는 양 손에 오일을 가득 발랐다. 오이카와의 두 발은 여전히 스가와라의 허벅지 위에 있었다. 그는 그의 오른쪽 다리를 길게 쓰다듬었다. 미끄러워, 오이카와가 그 촉감에 대해 평가했고, 스가와라는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어 그의 종아리를 쓰다듬어 내렸다. 연인들 끼리의 맛사지는 섹슈얼리티한 분위기가 있던데, 하며 오이카와가 말을 걸었지만 스가와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내뱉는 한숨이 그의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스가와라는 그가 뛰고 온 경기를 회상했다. 상대팀에는 카게야마와 우시지마가 있었다. 그는 최근 카게야마의 팀으로 우시지마가 거액에 트레이드 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향간에서는 그것을 오이카와를 흔들기 위해서라고 평가했다. 미야기현의 3대 라이벌전이니 뭐니 하면서 크게 떠들어 댄 기사였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여하간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있어선 숙명의 라이벌 대전이었을 것이었다. 또한 스폰서 두 기업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 스폰서에게 있어서도 절대로 질 수 없는 시합이었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쉬는 게 좋았을 경기를 오이카와는 플레이오프 내내 소화했다. 물리치료사로써 보낸 소견서도 그 복잡한 관계 사이에서는 모두가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그의 자존심을 존중했다. 그렇지만 물리치료사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스가와라는 그것이 프로를 포기한 자신과, 그 길을 걷고 있는 오이카와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했다. 이 간극은 스가와라가 평생 그를 받아들이고 살아도 이해할 수 없는 범위였다. 그는 그의 종아리를 길게 쓰다듬다가, 그의 복숭아 뼈 근처를 매만졌다. 유혹? 이라고 오이카와의 입에서 방정맞은 소리가 튀어 나왔다. 스가와라는 물리치료실에서도 그런 말 하더니, 라는 말을 꺼냈다. 오이카와가 웃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의 발목을 정성스럽게 쓸었다.


   배구는 중력을 거스르는 스포츠다. 공을 끊임없이 띄우며 그것을 상대편 코트에 중력을 실어 넣는다. 그 과정에서 발목이 얼마나 혹사할지는 눈에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코트에 섰던 때를 반추했다. 너무 오래 지난 일이라 훑어가는 것도 어려운 기억이었다. 지금도 경기장을 가득 채운 에어파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고등학교 때와는 사뭇 다른 감각이었다. 그는 그렇게 선수로서의 자신이 멀었던가, 를 고민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무릎 아래 근육과, 그 아래를 집요하게 힘을 주어 문질렀다. 아파? 그가 물었고,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집에 코우시가 있어서 다행이야.”

   “뜬금없어.”

   “말하고 싶었는걸!”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스가와라는 그의 머리에 작게 꿀밤을 먹이고 싶은 것을 참고 그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언제 봐도 잘 뻗은 다리였다. 그러나 그 다리에는 점프 서브를 뛰고, 공을 띄울 때 마다 쌓였던 피로가 지문처럼 남아있었다. 그는 그의 코트에 선 나날들을 쓰다듬었다. 이제는 습관이 된 염좌마저도 다시 생각해 보면 오이카와 토오루가 코트에 오래 남았다는 증거였다. 스가와라는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뛰면 뛸 수록 부상의 흔적을 남기는 다리. 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심해 같은 분위기였다. 수조 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가라앉은 공기를 띄우고자 오이카와는 코코넛 향이 좋다는 말을 꺼냈다. 스가와라는 원래는 크림빵 향이 나는 걸 사려고 했다는 농담을 건넸다. 웃기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그는 곧잘 웃음을 터트렸다. 스가와라는 그의 발목을 가볍게 잡았다. 토오루, 발끝에 힘 줘봐, 하고 말하니 그는 발끝을 곧게 뻗었다. 발레 동작 같은 느낌으로 다리가 뻗었고, 스가와라는 속으로 다섯을 셌다.


   그의 ‘다섯’이 끝나자 오이카와는 다리를 내렸다. 제법 익숙해진 모양새였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손에 오일을 다시 담아 그의 발에 발랐다. 다리 저리지 않아? 라는 상냥한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다. 오이카와가 마사지를 하는 자신에 리듬에 익숙해 진 것처럼. 그는 그의 발을 힘주어 눌렀다. 그의 발에도 배구화의 흔적이 지문 같이 남았을까, 스가와라는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경기 봤어?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 하고 오이카와가 다시 질문했다. 스가와라는 그의 어리숙한 질문을 부정하고 ‘우시와카’라고 대답했다. 그는 금세 삐져서 오리 부리 같은 입술을 내밀었다. 거짓말인거 알지? 하고 장난임을 확인 시켜 주자, 오이카와는 그제야 애매하게 웃었다. 그는 오늘 졌다는 말을 따로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 꼬리에는 지리한 한숨이 달라붙어 있었다. 스가와라는 말없이 그의 다리를 쓸었다.


   “가끔 배구를 볼 때 뭔가 물밀듯이 밀려올 때가 있어.” 

   “오이카와 씨에게 감동해서?”

   “아니. 그냥.”

   “오이카와 씨가 싫은 건 아니지?”


   두서없고 맥락 없는 말이 제법 다급하게 튀어나왔다. 스가와라는 놀라 그의 발목을 세게 눌렀다. 아파, 하고 입술을 우물쭈물 하는 오이카와의 표정을 보면서 그는 왜? 하고 되물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머리카락에서 시선을 돌려, 텔레비전의 모서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대야에 손을 넣어 손에 물을 묻혔다. 그는 엄지를 중지로 튕겨 오이카와에게 물을 뿌렸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큰 두 손이 그의 얼굴을 한 번에 가렸다. 그는 붉어진 손마디를 응시했다. 오랜 기간 배구공을 잡은 손이었다.


   “하지만 코우시 그런 말 할 때는 뭔가 멀리 가버릴 것 같단 말야.”

   “너 에쿠니 가오리를 너무 많이 읽었어.”

   “코우시도 쉬는 날에 목욕하고 나서 창문 닦아?”

   “그런 사람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오이카와는 네에, 하고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그의 뭉친 종아리를 푸는데 집중했다. 그는 그가 그런 말을 왜 내뱉었을까, 를 고민했다. 그 대화 이후에 오이카와는 자신이 뭔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그의 다리근육을 매만졌다. 상쾌 군은 말이에요, 오이카와 씨의 다리를 만질 때 마다 엄청 ‘에쿠니 가오리 소설의 여자’같은 표정을 짓곤 해요. 그가 느리게 말했다. 스가와라는 그 이유에 대해서 잠시 고민했다. 의외로 그 답은 어렵지 않았다.


   오이카와의 다리근육에는 나이테마냥 코트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스가와라는 그것을 매만질 때 마다 그가 뛰어왔던 코트의 흔적을 간접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오이카와가 느끼는 ‘상실감을 느끼는 여자’의 이미지가 그가 ‘떠나온 곳’을 추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성된 것임을 유추했다. 오이카와가 다리를 살랑살랑 움직였다. 스가와라는 왼손으로 그의 종아리를 때렸다. 찰싹, 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진짜 너무해, 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앞으로 연습 조심해서 해. 한동안 경기 없지?”

   “내 경기 일정도 체크 해 주는 거야?”

   “당연하지.”


   스가와라는 짧게 웃었다. 오이카와는 그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칭찬했다. 그는 가끔씩 당연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칭찬할 때가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다리에 묻은 오일을 따듯한 물을 묻힌 타올로 닦아내면서 별 말씀을, 하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그의 손길을 얌전히 받고 있었다. 이따 찜질 조금 하자, 라는 제안에 그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한동안 ‘띄어쓰기’가 위치했다. 그 어중간한 공백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오이카와였다. 그런데 코우시 군, 하며 울리는 목소리가 달았다.


   “‘당연하지’의 다음 말도 해 줘야지.”

   “다음 말?”

   “그래야 오이카와 씨가 말을 들을 거 아니야.”


   스가와라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이카와는 그와 눈을 마주하다가 눈을 감고 웃었다. 그의 눈가에 고양이 수염과 같은 자국이 났다. 스가와라는 일부러 허밍 음을 내뱉었다. 오이카와는 그게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 요즘 아이인 히나타의 표현처럼 말하자면 ‘단호박을 먹은 듯 한’ 어투였다. 스가와라는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오이카와는 그 목소리에 눈을 슬쩍 떴다가 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무릎과 발을 얌전히 닦아내다가, 그가 지루해질 때 쯤 그의 말에 마침표를 찍었다.


   좋아하니까, 라는 말을 내뱉자 오이카와는 소년처럼 웃었다. 몇 년을 뛰어 넘어, 고등학교 때의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스가와라는 문득 코트가 그리워졌다. 그는 오이카와의 맞은 편 다리에 손을 댔다. 그의 다리를 매만질 때 마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지문은 회장을 가득 채운 고등학교 시절의 에어파스 냄새와, 손끝에 붙는 것 같았던 배구공의 촉감을 기억해 낼 것이었다. 그는 두고 온 코트의 추억이 안타깝진 않았다. 다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가정과 동경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오이카와의 다리를 세심하게 주물렀다. 그는 그가 중력을 거스르는 모든 동작을 사랑했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왜 물리치료사가 됐는지 말 했던가? 스가와라가 문득 질문했다. 오이카와는 눈을 깜빡였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스가와라는 궁금함을 담고 집요하게 따라오는 그의 눈길에 자신의 시선을 맞추었다. 그건 말이야, 스가와라는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말을 입에 머금었다. 오이카와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스가와라는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