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2015. 2. 4. 22:52
얼마 전 달성표 보상으로 슈님이 청바지에어 롤팀 유니폼을 입은 카게스가를 그려주셨었어요! 근데 그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롤팀인 카게스가를 써보고 싶었는데 장렬하게 망했습니다... 엉엉 후로게이 카게스가가 보고 싶어요.....안선생님.......
지금 롤 리그는 단일팀 풀리그제지만... 토너먼트 2팀제를 생각하며 썼습니다... 프로스트와 블레이즈가 보고 싶은 밤이네요.
***
세상에 지고 싶은 선수는 없다. 스가와라는 대기실로 나왔다. 메이크업을 마친 얼굴은 언제나 어색했다. 그는 거울을 보다가 츠키시마의 옆에 앉았다. 그의 원딜은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메이크업을 마친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다이치와 타나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매우 초조해 보였다. 우카이 코치의 얼굴 또한 별로 좋지 않았다. 타케다 감독은 그에게 니코틴 패치를 권했다. 앞 경기는 분명 형제팀 카라스노 B의 경기였다.
어떻게 되고 있어? 스가와라의 목소리에 츠키시마가 대답했다. 제왕님께서 크게 실수했어요, 덕분에 전멸해서 많이 불리해졌구요. 그의 그 빈정거리는 어투에 다이치가 주의를 주었다. 그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카라스노 블랙의 글로벌골드가 뒤쳐져 있었다. 아까 용 한타에서 완전히 말아먹었어. 코치가 방금 나온 그에게 상황설명을 했다. 스가와라는 손가락을 매만졌다. 손끝이 굳는 느낌이었다.
츠키시마가 말없이 그에게 핫팩을 건넸다. 역시 원딜이 챙기는 건 서포터 밖에 없네, 타나카가 웃으며 말했다. 츠키시마는 얼굴을 찌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게 그 나름의 ‘부끄러움’운 표시라는 걸 스가와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원거리딜러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 카게야마 선수 또 잘립니다! 하는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으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대기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스가와라는 코치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다행이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다. 스가와라는 핫팩으로 손을 데우면서 어젯밤 식당에서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열기가 손에 옮아와야 했으나 손이 점점 더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입김을 불었다. 긴장돼요? 츠키시마가 물어왔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이기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어제 카게야마가 했던 말이 그의 귓속에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핫팩을 꼭 쥐었다. 다시 한타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잡은 챔피언은 ‘애니’였다. 그는 그가 부디 실수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애니는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네코마를 깨기 위해서 카게야마가 연습한 히든카드였다.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어왔다.
***
어젯밤 카게야마는 새벽 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새벽이 다 가도록 큐를 돌렸다. 보다 못한 코치가 컨디션 관리를 이유로 컴퓨터 전원을 뽑아버리자, 카게야마는 숙소에 살금살금 들어왔다. 그는 이층침대의 윗칸에서 자고 있는 스가와라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연습을 좀 더 하고 싶은데 B 연습실이 잠겨서요, 혹시 선배의 컴퓨터를 쓸 수 있을까요? 그의 제안에 스가와라는 눈을 비비며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스가와라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세 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너 오늘 경기 있잖아, 하면서 스가와라는 식탁 의자에 고집을 부리며 앉았다. 식탁 위에 달린 무드등으로 본 카게야마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 승률 때문에 그래? 스가와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포터 포지션 선수 중에서 최강이라고 불리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소속된 세죠 프로스트와의 경기 이후 카게야마는 ‘폼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가 무언가에 잠식 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유니폼을 입을 때 마다 그 때의 경기가 오버랩 된다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혼자 게임을 할 때는 괜찮지만, 팀 경기로 들어갈 때 마다 손이 떨린다고 말해왔다. 데뷔한지 한 시즌 된 게이머 후배의 고민을 스가와라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저는 이기는 게임을 하고 싶어요.”
“선수라면 누구나 다 그렇잖아?”
“누구한테도 지고 싶지 않아요.”
카게야마는 어리광을 부리듯 말했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가득 피어있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얼굴에 내리 앉은 다크서클이 신경 쓰였다. 카게야마는 누구보다도 열의가 가득한 남자였다. 스가와라는 그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LOL은 팀 게임이었다. 한 사람만 잘해선 이길 수 없었다. 카라스노 블랙을 이루고 있는 엔노시타, 니시노야, 히나타, 카게야마가 모두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승리라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LOL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명확하다. 팀 게임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두 가지였다. 스가와라는 그가 좀 더 팀을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번 솔로랭크 1위를 차지했던 이 서포터는 경기가 어려워지면 팀 전체를 자신이 이끌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곤 했다. 스가와라는 문득 그의 손을 잡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손에 깬지 얼마 안 된 스가와라의 체온이 닿았다.
“선배?”
“네 긴장감은 내가 다 가져갈게.”
뭔가 부끄러운 말이었다. 스가와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부스 안에 들어갔을 때 긴장하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야. 그는 나름대로 카게야마를 위로하려 했다. 그의 큰 손을 스가와라의 손이 감쌌다. 카게야마의 손이 미지근해졌다. 솔랭 좀 더 돌리다 잘 거야? 스가와라가 물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자러 가요 하고 말하는 그의 뒷목이 조금 붉은 것도 같았다.
스가와라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뒤를 카게야마가 따라갔다. 카게야마가 먼저 침대에 들어갔고, 스가와라는 침대 이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카게야마의 서포팅이 굉장하다고 생각해. 신인인데도 오이카와한테 전혀 밀리지 않았고, 그는 조곤조곤히 이야기 했다. 카게야마가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는 미지수였다. 이층침대 아래의 그가 이불 속에서 뒤척이는 소리만 났을 뿐이었다.
***
스가와라는 핫팩을 꼭 쥐었다. 다행이도 팀은 잃었던 이득을 챙겨가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을 앞두고 있었다. 그들은 한타를 앞두고서 시야장악을 했다. 카게야마의 긴장된 얼굴이 화면 가득 비춰졌다. 그는 입술을 사정없이 깨물더니, 입고 있던 유니폼의 팔을 걷었다. 카게야마의 긴장감이 옮아왔는지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너무 긴장하지 마요, 츠키시마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온전히 마지막 경기에 향해 있었다. 이번 경기만 이기면 승점 1점은 가져갈 수 있으니 동반 16강 진출도 바라볼 수 있었다. 16강에서 같은 조였던 팀과는 만나지 않으니, 넓게 바라본다면 결승에서 맞붙을지도 모른다. 그는 카게야마와 같이 호흡하는 것처럼 심호흡을 했다.
용쪽 부쉬로 네코마의 챔피언들이 다가왔다. 카게야마는 용 쪽 섬부쉬에 숨어있었다. 들어가도 좋다는 콜이 난 듯, 그는 앞으로 점멸을 타서 이니시를 걸었다. 티버가 환상적으로 들어갔습니다, 네코마 3인 스턴! 여기에서 엔노시타가 들어갑니다, 리산드라 궁극기가 상대를 묶습니다, 그리고 히나타의 트리스타나가 프리딜을 하고 있죠, 잘 큰 트리스타나입니다! 해설진의 목소리가 가빠졌다. 곧 화면에 모든 적을 처치했다는 글자가 나타났다.
나이스! 대기실이 함성으로 물들었다. 카게야마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들은 미드를 뚫고 상대 억제기를 뚫었다. 다섯 명 전원이 생존 해 있었기 때문에 타워의 공격을 받아가면서 넥서스까지 파괴했다. 카라스노 B팀의 승전보를 외치는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스가와라는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그는 방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카게야마가 앉아있는 가장 끝자리로 서둘러 다가갔다.
“카게야마!”
카게야마가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스가와라는 팔을 내밀었다. 카게야마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팔을 뻗었다. 마주잡았던 손만큼 뜨거운 포옹이었다. 스가와라의 환한 웃음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이겼어! 하고 말하는 스가와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걸릴 듯 말 듯 한 것 같았다.
스가는 서포터만 챙기고 치사하구나, 부스 안에서 아사히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를 꼭 끌어안으면서 대견한 후배를 칭찬하는 건 선배의 몫이라고 크게 말했다. 카메라가 그들의 포옹 장면을 클로즈업 하는 듯 가까이 다가왔다. 스가와라는 다시 카게야마의 품에 포옥 안겼다. 카게야마 또한 그의 등에 어색하게 팔을 둘렀다.
스가와라 선배, 하고 카게야마가 그를 불렀다. 끌어안은 통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카게야마의 입술 사이로 으,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말할 게 있으면 해, 나 키보드 세팅해야 해. 스가와라는 그를 재촉했다. 카게야마는 오늘 긴장되지 않았습니다, 하고 한 마디를 겨우 내뱉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를 밀어냈다. 그는 눈을 마주치면서 당연하지! 하고 내뱉었다.
“그럼 이번엔 니가 내 긴장 가져 가!”
“네?”
“어젯밤에 내가 가져갔잖아.”
스가와라는 상쾌하게 말하면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카게야마는 잠시 멍해 있다가 가져가겠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청춘은 좋네, 하고 뒤에서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가 세팅해야지, 카게야마 어서 방 빼라, 그의 충고에 카게야마는 얼른 컴퓨터에서 제 키보드와 마우스를 빼서 넣었다. 그는 황급히 퇴장했다. 츠키시마는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스가와라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긴장하던 건 어때요?”
츠키시마가 하얀 키보드를 꺼내며 물었다. 그는 히나타가 앉았던 자리에 자신의 키보드와 마우스, 헤드셋을 늘어놓고 세팅했다. 스가와라는 츠키시마와 맞춘 키보드를 가방에서 꺼내 내려놓으며, 이젠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왕님이 ‘긴장’을 가져가서요? 그가 빈정대면서 묻자 스가와라는 그의 옆구리를 손날로 때렸다. ‘짓궂은 말투 금지!’ 라는 이유였다.
그는 키보드를 연결했다. 키보드에 무지개 색으로 빛이 들어왔다. 그는 하얀색 마우스를 연결하고 선을 정리했다. 스가와라는 손끝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오늘 좀 컨디션 좋은 게 나 하드 캐리 할 것 같아. 스가와라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원딜은 한숨을 내쉬었다. 카게야마가 긴장을 가져간 게 효과가 있었나, 스가와라는 핫팩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
츠키시마는 마우스의 감도를 조절하면서 핫팩 때문이겠죠, 하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그럴지도 모르겠네, 하고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모니터 밝기에 손을 댔다. 정말 긴장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네? 그들에게 밴픽을 설명하기 위해 부스 안으로 들어온 우카이 코치가 스가와라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이면서 카게야마 덕분에요, 하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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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2015. 2. 1. 22:11
스가른 전력에 참여 한 글입니다. 주제가 '노래' 였어요. 요즘 미유미유의 언더 더 씨를 인상 깊게 듣고 있어서, 살짝 써먹어 보고 싶었습니다. 조금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귀엽게 봐주세요 ㅇ.<)/
***
같이 살게 된 다음에서야 알게 되는 게 있다. 일상의 전부를 공유할 때야 언뜻언뜻 비치는 ‘사소함’의 형태를 하고 있다. 오이카와는 칫솔을 꺼냈다. 그는 중간부터 짜인 치약을 끝부터 밀어냈다. 그는 튜브를 손가락으로 쭉 짜냈다. 울퉁불퉁한 치약은 다 펴지지 않았다. 그는 예상보다 많이 짜인 치약을 입에 넣었다. 민트 맛이 입에 강하게 퍼졌다.
동거를 시작한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와 스가와라는 사소한 차이점들이 있었다. 오이카와는 치약을 끝에서부터 밀어 쓰는 걸 좋아했다. 괜히 치약을 낭비하지 않는 기분이 드는데다가, 치약이 뭉쳐있음으로 쉽게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가와라는 중간부터 짜냈다. 이는 매우 사소한 ‘차이’였다. 한 사람은 계속 치약을 평평하게 폈고, 다른 사람은 뭉쳐내는 아침 시간의 작은 일력다툼이었다.
휴지를 놓는 방향 또한 그랬다. 오이카와는 벽면에서 멀리, 스가와라는 벽면을 향해 꽂곤 했다. 딱히 지적해서 말할 건 아니었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이를 닦았다. 입 안 가득 하얀 거품이 들이 찼다. 그는 세면대에 거품을 뱉고 물을 틀었다. 토오루, 또 물 틀고 쓰지?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또 차이점을 찾아냈다.
스가와라는 양치를 할 때 물을 받아서 쓰곤 했다. 오이카와는 물소리를 줄였다. 줄어든 물줄기에 거품이 조금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그는 세면대에 양치 거품이 가득 한 걸 보길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그는 입 안 가득 들어있는 거품을 뱉어내고, 물컵에 물을 받았다. 토오루, 하는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고 오이카와는 컵에 물, 하는 짧은 소리를 외쳤다.
참 생각해보면 사소한 습관이 이렇게 다른데도 동거하는 건 재미있었다. 오이카와는 쉐이빙폼을 얼굴에 치덕치덕 발랐다. 멀리서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오늘 반찬이 고등어 구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수동 면도기를 꺼냈다. 그는 동거인의 자동 면도기를 잘 세워놓고, 결대로 조금 자란 수염을 밀었다. 자동보다 수동이 폼 나는 데, 그는 스가와라의 노랫소리를 따라 부르며 면도했다.
스가와라에게는 작은 버릇이 있었다. 오이카와는 얼굴을 씻고 나왔다. 그는 흰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는 스가와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단정한 검은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누가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 출신 아니랄까봐, 주황색 포인트가 들어간 물건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언더 더 씨’를 노래했다. 고등어의 머리를 치는 살벌한 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왜 언더 더 씨야?”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바다 속은 행복했겠지, 라는 의미 모를 말을 내뱉었다. 두 마리 고등어의 머리가 싱크대 너머로 떨어졌다. 오이카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야후~ 하는 추임새를 넣는 그는 제법 신나 보였다.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가와라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고등어를 어슷썰기 하고 있었다.
어슷썰기 해? 그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그렇게 배웠다면서 고등어의 내장을 살살 발랐다. 우리 집은 반절로 갈라서 토막 냈는데. 오이카와는 다시 ‘반복’되는 언더 더 씨를 들으며 말했다. 스가와라는 노래를 멈추고선 그럼 ‘가운데 토막’을 두고 싸우게 되잖아‘ 라고 대답했다. 의외의 생활의 지혜였다. 오, 오이카와는 젓가락을 챙겨 갔다. 그는 다시 일절을 입에 머금었다. 그는 매우 행복 해 보였다.
스가와라의 엉덩이가 좌우로 움직였다. 오이카와는 떠온 물을 마시면서 그의 ‘고등어 손질’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이가 좋지? 스가와라가 물어왔다. 오이카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좋아~ 하고 리듬을 타며 말했다. 이 또한 ‘언더 더 씨’의 추임새였다. 이렇게 생선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오이카와가 웃으며 말했다. 스가와라는 어렸을 때부터 물든 버릇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버릇 귀여워.”
“너도 귀여운 버릇 있는데.”
스가와라는 고등어를 불 위에 올렸다. 자글자글한 기름에 고등어가 구워지는 소리를 냈다. 오이카와 거기 달력, 스가와라는 뒤를 돌며 손을 뻗었다. 그는 반절로 잘린 달력을 내밀었다. 그는 인쇄가 안 된 부분을 아래로 해서 덮었다. 그렇게 하면 잘 돼? 오이카와가 물었고, 스가와라는 손으로 브이를 해 보였다. 그는 이렇게 하면 촉촉하게 구워진다고 말했다. 엄마한테 배워왔어, 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목소리가 귀여웠다.
아무튼 너 귀여운 버릇 있다니까, 스가와라는 구이용 젓가락을 손에 든 채 말했다. 오이카와는 눈을 깜빡였다. 너 샤워할 때 ‘포뇨 노래’ 부르잖아. 뽀-뇨 뽀노 포뇨- 포뇨- 하면서. 스가와라는 그의 어조를 따라 노래 불렀다. 너 의외로 크게 불러. 하면서 스가와라는 웃었다. 들었어? 오이카와가 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 같았다. 부를 때는 당당하게 부르면서 들키니까 부끄러워 하는 걸까, 스가와라는 그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 지금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야.”
“포뇨카와 씨~”
“포노카와 씨는 지금 접시 물에 코 박고 싶어졌어. 바다로 돌아갈래”
"안 돼, 스가와라 씨가 물병에 담아왔는 걸."
"포뇨카와 씨 지금 매우 쪽팔려."
오이카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못 들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하고 소리치자, 스가와라는 그러려면 애초에 샤워 할 때 한 뼘 정도 문 열어놓는 버릇부터 고치라고 충고했다. 오이카와는 정말로 몰랐다는 듯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스가와라는 고등어구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프라이팬 뚜껑 역할을 하던 달력을 걷었다. 그는 고등어를 뒤집으면서 ‘언더 더 씨’가 아니라 ‘포뇨’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 뭐 정리할 때는 ‘배니 랜드의 CM'을 콧노래로 부르잖아. 스가와라는 프라이팬에 다시 달력 뚜껑을 얹으면서 말했다. 오이카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고등어 내장같아, 스가와라는 아까 손질한 고등어 잔해에 물을 뿌리면서 말했다. 그런 살벌한 비유 하는 거 그만 둬 줄래? 오이카와는 여전히 당황한 것 같았다. 쪽팔린 부분을 건드린 걸까, 스가와라는 네- 안 말할게요! 하고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다가 문득 생각했다. 동거라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서로의 사소한 버릇들을 차차 알아가면서 물들어 가는 게 아닐까. 그는 잠시 감상적인 생각을 하다가 붉어진 얼굴을 쓸었다. 포뇨 노래를 하면서 바디워시를 바르는 걸 들킨 게 부끄러웠다. 고등어 손질을 하면서 ‘언더 더 씨’를 부르는 것 보다 훨씬 더 부끄러운 느낌이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었다. 가스불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가 뒤를 돌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스가와라는 포~뇨 포뇨 포뇨 포뇨~ 하면서 노래를 불러왔다. 오이카와는 다시 얼굴을 가렸다. 베니 랜드의 CM송이 좋아? 라고 그의 연인은 능청스럽게 물어왔다. 오이카와는 동거를 시작 한 이래로 오늘이 가장 부끄럽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언더 더 씨’가 제일 좋아! 하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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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2015. 2. 1. 02:19
밋님이 예전에 주신 리퀘를 지금에서야 했습니다 ^////^ 저는...죄인이에요.
술에 취해서 오이카와한테 술주정하는 얼빠 스가와라를 리퀘로 받았습니다! 제가 가본 술자리가 한국(??)밖에(??)없어서 술자리 모습이 매우 한국적입니다... 제 부족한 식견이 문제입니다..^////^!!! 이왕 술자리를 한국적으로 쓸 겸 해서(??) 애긔들이 하는 말도 한국적으로 써보았읍니다... 흑흑 애들 한국고딩말투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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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 토오루는 카게야마 토비오와 간질거리는 사적인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 둘의 메신저 창에는 흔히 ‘오늘 아침 연습 몇 시에요?’나 ‘오늘 아침 반찬 뭐래니?’ ‘외박이신데 외박계 쓰셨어요?’ ‘너 오늘 방송점호 아닌데 좆됐다.’ 따위의 말이 오갈 뿐이었다. 같은 대학의 배구부였고, 학교 기숙사의 같은 방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질문’위주로 돌아가는 공간이었다. 대답은 거의 자음이거나 숫자거나, 그 두 개로 대답할 수 없는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쓰는 단답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간혹 가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질문’이 아닌 ‘통보’를 보내올 때가 있었다. 오늘 같은 경우였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서둘러 외박계를 써 냈다. 그는 급하게 옷을 걸쳤다. 위에 입은 점퍼가 어제 입고 나갔던 거라는 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그는 정신이 없었다. 카게야마가 보내 온 메시지 때문이었다. 그는 그 문장을 읽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후배가 재수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그 메시지를 떠올렸다. 한 문장이지만 진한 파괴력을 가진 문장이었다.
스가와라 선배 너 때문에 술쳐먹어요. 오후 9 : 10
어제 뭐 때문에 싸웠길래 사람이 이렇게 꽐라가 되는지 모르겟네; 오후 9 : 10
지금 언덕 밑 술집인데 오시는 게 좋을걸여ㅎㅎ 오후 9 : 15
오이카와는 달릴 수밖에 없었다. 카게야마의 말투는 평소보다 더 싸가지가 없었다. 그 또한 술을 좀 마신 것 같았다. 술은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는 거울이라더니, 그는 나중에 카게야마를 보면 인성이 더럽고 야박하다고 놀려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오이카와는 기숙사가 왜 본캠과 10분 거리에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달렸다. 그는 본캠 언덕 밑에 있는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에는 얼굴이 벌게진 꽐라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오이카와는 일단 카게야마를 옆 테이블에 눕혀 놓았다. 너는 외박계 안 썼으니까 벌점이다 새끼야, 하는 주절거림을 덤으로 얹어 준 다음, 그는 스가와라의 앞에 앉았다. 카게야마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는 오늘부터 카게야마의 집을 ‘언덕 밑 상점 구석 테이블 소파 위’로 정했다.
“코우시.”
그는 스가와라의 이름을 불렀다. 스가와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방실방실 웃었다. 너 어제 오빠랑 싸운 오이카와 아니야~아? 그의 목소리에 애교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가와라는 제 손으로 술병을 들어 잔에 따랐다. 그는 오이카와가 말릴 틈도 없이 술을 원-샷했다. 초록색 병이 여러 병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이카와 그거 아라? 알아? 스가와라가 애교있게 물었다.
뭘 알아? 오이카와가 웃으며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너 웃는 거 정말 재수 없어, 라고 말하다가 다시 술을 자신의 잔에 따라 한 번에 넘겼다. 너 이제 큰일나써, 이제 큰일나-써, 내가 자작 두 번 했써, 너 자작 하면 맞은 편 사람 재수 업는 거 알아? 스가와라는 꼬이는 혀로 계속 ‘맞은 편 사람이 재수 없다’는 미신을 떠들어댔다. 오이카와는 그의 술주정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너 어제 나랑 싸웠짜나 근데 왜 먼저 사과 안해.”
“내가 문자하고 라인하고 계속 전화 했잖아.”
“너 나한테 안찾아와짜나, 너 내 시간표 알자나.”
스가와라는 그게 억울해서 술을 마셨다는 말을 느릿느릿하게 내뱉었다. ‘너 진짜 나쁜 놈이야’, 라는 말은 이미 추임새처럼 말 중간중간에 끼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마셨어? 오이카와가 물었다. 두 사람이 싸운 일은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계속 미안하다고 내뱉었다. 스가와라는 뭐가 미안한데, 라는 말을 하다가 됐다면서 손을 흔들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손을 잡았다. 술을 더 못 마시게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스가와라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는 다시 자작을 하면서 ‘자작을 하는 사람 맞은 편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재수가 없어진다’는 논리를 내뱉었다. 그는 카게야마랑 주전경쟁 할 때 패널티일 걸? 하면서 소악마처럼 웃다가, 그런데 어쩌지 내가 카게야마 앞에서 술 존나 따라마셨는데, 하면서 시무룩한 표정을 보였다. 오이카와는 그가 매우 귀여웠다. 이 귀여운 생물이랑 싸웠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연락을 자주 안 한다는 이유로 싸웠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오이카와 또한 큰 소리를 냈었다. 스가와라 또한 제 논지를 펼쳤다. 그 의미 없는 소모전을 계속 하다가 스가와라는 한 동안 연락을 하지 말라면서 먼저 뒤를 돌았다. 자취방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쫓아갈까 하다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돌아섰었다. 오이카와는 그 때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이 정도로 마셔댈 줄 알았으면 말리는 거였다. 조금이나마 굳었다고 생각했던 마음에서 다시 사랑이 퐁퐁 솟아났다.
“그래두 너 진짜 잘생겼따."
스가와라가 손을 뻗었다. 그는 술에 젖은 손가락 끝으로 오이카와의 얼굴을 더듬었다. 오빠가 사실 너 얼굴 때매 사기는 거야, 알아? ‘스가와라의 끝없이 반복되는 술주정 레퍼토리’에 새로운 구절이 끼워졌다. 너 존나 잘 생겼어, 배구부 다 잘생겼따 하는데 그 중에 니가 최곤데 니가 내 남자친구야, 근데 이게 개이득인데 너 왜 나한테 연락 안했서, 나 그래서 자작하구 계속 마셨는데, 스가와라는 계속 주정을 멈추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그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었다. 오빠가 너 얼굴 잘생겨서 봐 주는 거야, 스가와라는 응? 하구 대답을 강요했다. 오이카와는 잘 생겨서 다행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의 연인은 그게 퍽 마음에 들었는지 발랄하게 웃었다. 그래 조아, 자작 한 번 취소해준다! 그는 호쾌하게 말했다. 술에 절여진 손이 흐물흐물하게 움직였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손이 술잔을 엎지 않도록 잡아서 얌전히 내려놓았다.
“오빠가, 너 잘생겨서 봐주는고야.”
“응 오빠 감사해요.”
“오빠가, 너 잘생겨서 바주는거라니까? 오이카와씨는 니 얼굴에 좀 더 감사하세여”
“응 내 얼굴이 이렇게 생긴 데 감사합니다.”
오이카와는 고개 숙여 감사했다. 스가와라는 환하게 웃으면서 너 진짜 잘생겼다, 라는 부분을 구간반복재생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술 취한 스가와라가 매우 귀엽다고 생각했다. 코우시 우리 집에 갈까? 그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외박계를 쓰고 나왔느냐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내가 쓰라 할 때는 안썼짜나, 하구 때 쓰는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그건 저번 달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했다.
그래두 내가 쓰라 할 때 쓰란 마리야, 스가와라는 술에 취해 힘이 빠진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퍽퍽 쳤다. 오이카와는 과장되게 아픈 척을 했다. 스가와라의 눈이 놀란 토끼마냥 땡그래졌다.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스가와라가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어떡해, 내 잘생긴 애인 어떡해 어떡해에,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는 집에 가자는 말을 내뱉었다. 스가와라는 자기 자취방으루 가서 호, 하자고 말했다. 그 ‘호오-’라는 어감이 귀여워서 그는 그의 입술에 당장 키스하고 싶었다. 하지만 화낼 게 분명했다.
스가와라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업히라고 등을 내밀었다. 너 가슴 아프잖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오이카와는 다친건 가슴이라 등은 괜찮다는 개똥철학을 내밀었다. 그의 그 말에 등에 무게가 업혀왔다. 오이카와는 그를 안정적으로 맸다. 토오루의 향이 나, 하면서 머리를 부벼오는 자신의 연인이 그는 매우 사랑스러웠다. 어제 언성을 높인 게 매우 미 할 정도로.
“그런데 있자나 토오루야.”
“응 뭐가 있어 코우시야?”
“카게야마가 저기서 자고있는데 괜차나?”
기숙사에 안 넣어줘도 괜차나? 스가와라가 여전히 혀 짧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이카와는 응, 하고 최대한 상큼하게 대답했다. 왜에? 오빠는 오이카와 씨가 왜 그러는지 하나두 모르게써, 스가와라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적당히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술 취한 스가와라가 납득할만한 대답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스가와라가 의외로 카게야마를 아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토비오는 지금부터 여기를 집이라고 생각 할 거래.”
“어?”
“토비오쨩의 집은 여기야.”
오이카와가 대충 말한 말에 스가와라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 잘생겨서 오빠가 용서해 주는 고야, 그는 소곤소곤 속삭였다. 오이카와는 그래 그래, 하고 타이르며 술 냄새 나는 연인을 업고 돌아갔다. 그들이 나가는 길을 가로등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가끔은 술을 진탕 먹고서 화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등에 얹힌 그의 무게를 새삼 확인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잘 생긴 애가 노래도 잘 하네, 라고 스가와라가 신나게 지른 소리가 골목길을 쩌렁쩌렁 울렸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고쳐 업으면서 술집에서 자고 있을 카게야마를 떠올렸다. 내일 아침에 보낼 라인 폭탄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쯤은 ‘차단’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 토오루 무슨 샌각해? 스가와라가 물었다. 우리 자기 생각 하고 있었지~ 오이카와는 능청스럽게 넘어갔다. 토오루 정말 죠아, 얼굴도 좋아, 얼굴도 잘생겼고, 하며 스가와라가 다시 술주정을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승리자의 웃음을 지으며 스가와라의 자취방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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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2015. 1. 28. 00:18
하나마키 센빠이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하나쿠니의 풋풋한 연애를 응원합니다! 사랑에 빠진 남고생들이 좋습니다! 평소에 절-대로 안 할 것 같은 행동을 잔뜩 하게 만드는 사랑이 좋습니다!! 사랑에 고민하는 남고생이 좋습니다!!!! 다이스키!!!!
하루 지난 것 같지만 제가 잠들기 전까지 오늘은 27일입니다! 그리고 벤쿠버 기준으로 하면 하나마키 센빠이의 생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저는 지금 한국입니다만 마음만은 벤쿠버입니다! 하나마키센빠이 생일 축하해요!(벤쿠버 풍으로)
***
‘거절 한 사람’과 돌아가는 길은 괴롭다. 하나마키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나마키의 옆에서 걸어가는 그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마키는 그의 고운 눈매를 쳐다봤다. 그의 마음을 전부 담은 말을 할 때도 그는 꼭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냉정, 침착.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후배의 모토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고백’에 까지 적용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입이 썼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차인 건 아니었다. 다만 유예기간이 너무 길 뿐이었다. 하나마키 타카히로의 짧은 인생에서 그가 만나왔던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빠른 시일 내에 대답 해 왔다. 그러나 그의 후배는 달랐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온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은 이 당돌한 후배는, ‘기다려 주세요.’ 라는 말만 남겨두고서 이 주일 째 그를 방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오이카와는 ‘99%’의 확률로 차였네! 라고 코멘트 했다. 오늘 아침에도 들은 소리였다. 그는 외국 영화의 OST를 주면서, 쿠니미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아이니까, 맛키한테 대답 할 에너지도 아까운 걸지도 몰라, 하며 태평한 소리를 해댔다. 하나마키는 그게 퍽 아쉬웠다. 그는 입술을 내밀었다.
아오바죠사이의 정규 연습 후에 레귤러들은 개별 연습을 한다. 하나마키는 그렇게 성실한 타입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요즘 서브라던지, 리시브를 오이카와가 퇴근 할 때 까지 하곤 했다. 쿠니미와 돌아가기 ‘애매했기’ 때문이다. 저번 가을 쯤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들의 집은 상당히 가까웠다.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처음 같이 하교할 때는 즐거웠다. 잠에 취해 자울자울 거리는 쿠니미의 팔짱을 끼는 일이 즐거웠고, 자전거 뒤 안장에 쿠니미를 태우는 일이 즐거웠다. 그와 요즘 본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았고, 음악 취향을 공유하거나 패션 잡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게 좋았다. 쿠니미의 미적 감각은 의외로 하나마키와 같은 궤도 안에 있었다.
좋아했고, 그래서 고백했다. 하나마키는 어색하게 걸었다. 그 고백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말 ‘연비조절을 위해 방치 한’ 거라면 슬플 것 같았다. 그는 이게 매우 ‘찌질하다’고 생각했다. 찌질하다기보다는 ‘까리’하거나 ‘간지’나는 남자가 되고 싶었는데,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그런 건 불가능 한 일이었다.
“춥네요.”
쿠니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하나마키는 그제야 그가 목도리를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제 목도리 끝을 잡고 망설였다. 목도리 할래? 그는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붉은 입술 사이로 입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대범한 손길로 목도리를 풀어 그의 목에 조심스럽게 둘렀다.
하나마키의 목도리는 갈색이었다. 분홍색 머리카락과 갈색이 잘 어울릴 거라는 쿠니미의 어드바이스 때문이었다. 쿠니미의 목은 가느다랬다. 하나마키는 오늘 향수를 뿌리기 잘 했다면서 목도리를 정리했다. 목도리 끄트머리를 뒤로 돌려 리본으로 묶었다. 따듯해? 그가 물었다. 쿠니미는 어색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 냄새가 나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고개를 돌렸다.
킨타이치는 오늘 급한 일이 있다고 먼저 돌아갔다. 택시를 탈 정도면 간절한 일이겠거니 싶었다.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하나마키는 오늘 받은 선물들이 든 쇼핑백을 고쳐 들었다. 쿠니미는 그의 손을 힐끔 쳐다보았다. 하나마키는 그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작은 한숨을 내 쉬다가 정면을 응시했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하나마키가 물었다. 참을성 없는 물음이었다. 쿠니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기 귀찮아, 라고 물어볼까 했지만 너무 찌질 한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그는 괜히 교복 소맷부리를 매만졌다. 분명 맨들맨들 해 졌을 것이다. 그는 땅과, 아스팔트를 차는 운동화코를 쳐다보았다. 그는 성급한 고백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다가, 쿠니미와 엮인 일에서는 평정심을 잃게 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조건 먼저 좋아한 사람이 잘못 한 일이었다. 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손에 들린 선물과 쿠니미의 ‘대답’을 교환하자는 말이 나온다면 그는 기꺼이 그 무거운 무게를 포기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애초에 그가 이렇게 고민하는 대상은 쿠니미 아키라뿐이었다. 그는 입 속에서 그의 둥굴둥굴한 이름을 굴렸다. 그 이름은 마치 ‘롤리타’를 갈망하던 험버트의 욕망 같은 느낌이 났다.
하나마키는 예전에 읽었던 책의 첫머리를 떠올렸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 리- 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서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 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책에 흥미가 없는 그도 기억할 정도로 욕정을 담아 낸 문장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이런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런 맹목적인 구애를 제 옆에서 정면만을 보고 있는 후배에게 내뱉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간다면. 그는 한숨을 내 쉬었다. 그의 한숨은 겨울을 타고 입김이 되었다. 고민 있어요? 쿠니미가 물었다. 너 때문에. 그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쿠니미는 이제야 알아챈 듯 아, 하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나마키는 그의 태평함이 얄미웠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쿠니미의 볼이 조금 붉은 것 같았다. 보풀 일은 목도리가 그의 뺨을 간질인 탓인 것 같아, 하나마키는 괜히 미안해졌다.
겨울바람은 그들 사이에 행갈이처럼 존재했다. 문단과 문단 사이가 영원히 떨어져 있는 것처럼, 둘은 영원히 한 걸음 사이에 위치할 것만 같았다. ‘차였다’는 생각은 하나마키를 감상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원래 이렇게 센티멘탈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단 걸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연습 후에 드는 기묘한 공복이 찾아왔다. 뭔가 입에 넣고 싶었다.
“나 여기 들렀다 갈게. 먼저 가.”
“저도.”
저도 빵집요. 쿠니미는 의외로 의욕적으로 대답해왔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의 인사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마감 시간에 있는 슈크림을 집었다. 그는 집에 케이크가 있을까 기대하면서 하품을 했다. 그거 좋아해요? 쿠니미가 물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카운터 앞에 있는 소금 캐러멜을 집었다. 쿠니미의 몫이었다.
쿠니미는 뭔가 우물쭈물 해 보였다. 하나마키는 오늘 그가 ‘답지 않게’ 나머지 연습을 했던 걸 기억했다. 그는 피곤하면 저럴 수도 있지 하고 고개를 설설 끄덕였다. 그는 케이크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걸음걸이에 쿠니미는 몇 걸음 물러섰다. 그는 하나마키와 같은 슈크림을 들었다. 그거 맛있어, 그가 건들거리며 말하자 쿠니미의 단정한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계산 해 주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마키는 여전히 조각 케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집에 과연 한 판이 완전한 케이크가 있을까, 그는 큰 케이크들을 부원들과 나눠 먹은 걸 조금 후회했다.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에 차가운 비닐이 닿았다. 이질적인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슈크림 두 팩을 들고 있는 쿠니미가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홍조가 올라 있었다.
“쿠니미?”
“그, 생일, 축하드려요.”
그는 어색하게 말했다. 하나마키가 슈크림 두 팩을 받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였다. 하나마키는 그 두 팩이 아까 쿠니미가 들었던 것과, 자신이 계산하려던 것임을 알았다. 퍽 귀여운 느낌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카락을 슥슥 쓸었다. 머리카락 결이 좋았다. 쿠니미의 볼은 여전히 붉어 있었다. 하나마키는 그의 얼굴이 목도리 때문에 붉어진 게 아니란 걸 알아챘다.
은은한 조명의 가로등 아래에서, 하나마키는 슈크림 두 팩을 소중하게 쥐고 있었다. 그는 문득 쿠니미에게 물었다. 너 나 안 좋아 하잖아. 그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그의 이중 부정문에 하나마키는 입술을 내밀었다. 그는 뭔가 지적하려고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공중에 녹지 못했다. 쿠니미가 대답, 지금 해도 괜찮습니까? 하고 물어 온 탓이었다.
이 주일 정도 지난 늦은 대답이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생일을 그렇게 암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쿠니미는 그가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거절 할 거라고 생각 하세요? 그는 얼떨떨하게 물었다. 얼척 없는 소리였다. 이 주나 미뤄놓은 점에서 이미 끝난 거 아니였어?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좋아해요.”
목소리가 뻗어왔다. 하나마키는 의외의 대답에 들고 있던 슈크림을 떨어트렸다. 쿠니미는 삼 초가 지나기 전에 슈크림 봉지를 집어 들었다. 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그가 다시 물었다. 그렇게 생각 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쿠니미는 앞서 걸으며 말했다. 하나마키는 그의 뒤를 쫓았다. 쿠니미는 부끄러운 듯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불이 꺼진 신호등 앞에서야 쿠니미는 목을 가다듬었다. 하나마키는 그의 뒷모습이 움츠러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멀리 신호등 너머를 바라보면서, 가장 특별 한 날에 대답하면, 하나마키 선배랑 나중에 헤어져도 자길 기억하지 않겠느냐는 당돌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그 말을 하고 뛸 준비를 했다. 하나마키는 손을 뻗어 쿠니미의 목도리를 잡아챘다.
“그런 말은, 사람 얼굴을 보면서 하란 말야!”
“절대 싫어요.”
쿠니미는 목도리를 쥐고 말했다. 내가 좋아? 하나마키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둥그런 뒤통수가 위- 아래로 흔들렸다. 너무 좋아서 잊히고 싶지 않을 만큼요.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듯 했다. 그의 손에 들린 슈크림 두 봉지가 위태로웠다. 하나마키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상상도 못한 일이라 얼떨떨했다. 하지만 방황하는 후배를 잡아 채는 일은 선배의 몫이었다.
그는 쿠니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쿠니미가 선배, 하고 그를 불렀다. 하나마키는 춥다면서, 따위의 말을 내뱉으면서 그의 머리카락에 제 코를 부볐다. 1일 치고는 허술한 대처였다. 이주일 간의 유예를 준 주제에 끝맺음이 형편없는 것이었다. 우리 집이 오늘 비었으면 완벽했는데, 하나마키가 아쉽다는 듯 말했고 쿠니미는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아무튼, 생일 축하드려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나마키의 품에 들고 있던 슈크림을 다시 던졌다. 그 던져진 슈크림 두 봉지가 나름대로의 고백 같아서 하나마키는 웃음을 터트렸다. 쿠니미는 그 웃음도 듣기 싫다는 듯 전력질주 해 하나마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의욕 없는 거 치고 되게 의욕 냈잖아, 그는 슈크림 두 봉지를 품에 안고서 중얼거렸다. 저 에너지 절약주의자가 2주 동안 고민한 결과가 달게만 느껴졌다.
집에 가면 전화부터 해야지. 하나마키는 실실 웃었다. 잊을 수 없는 생일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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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력 주제가 의외로 어려워서 헤맸습니다^0T...스가른 전력에 참여했습니다. '두 사람'이라는 주제였어요. 보통 두 사람이 하는 놀이를 생각하다가 실뜨기를 빌려왔습니다만 일본에서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얘내가 왜 한국인이 아닌지 1도 모르겠는 밤입니다.
***
실뜨기를 한 적이 있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의 일이었다. 초등학교 육학년이 된 누나가 배워 온 것이었다. 그녀는 실의 양 끝을 야무지게 묶었다. 열세 살 소녀의 한 품이던 실은 네 살배기 소년에게는 너무 컸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린 동생의 팔을 야물딱지게 벌려가며 실을 떴다. 왼쪽으로 한 번 밀어 중지에 걸치고, 오른쪽으로 한 번 밀어 중지에 걸친 그 모양. 그 규칙적인 모양을 뚫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네 살의 오이카와의 손가락은 깨끼 단풍잎 같았다. 통통하고 보들보들한 손가락은 실을 걸기엔 역부족이었다. 네 살과 열세 살의 실뜨기는 항상 ‘젓가락’에 가기 전에 끝나곤 했다. 오이카와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붉은 실이 어린 누나의 손끝에서 움직이던 광경과, 그걸 어떻게든 ‘모양’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던 자신을.
비록 기억은 냉장고와 같아서, 확실히 ‘저장되어’ 있지만 ‘찾을 수 없는’게 생기곤 했다. 오이카와는 그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끝났는지, 언제부터 하지 않았는지, ‘젓가락’이후에 ‘함정’은 어떻게 피해 가는지를 생각 해 낼 수 없었다. 카레를 만들 때 항상 냉장고 깊은 곳에 숨어있는 돼지고기를 몇 분에 걸쳐서 찾아내야 하는 것처럼, 그 위에 세월이 쌓여 ‘실뜨기’의 구체적인 디테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계란 두 알을 들었다.
확실한건 그 놀이를 하려면 ‘두 사람’이 필요했다.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이. 오이카와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그는 집에 베이컨 뭉치가 있는 걸 생각 해 냈다. 그는 급히 아침 식사 메뉴를 수정했다. 오므라이스보다는 샌드위치가 나을 것 같았다. 그는 이미 꺼낸 계란 두 알을 조리대 위에 올려두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기가 뻗어 나왔고, 그는 여러 냉동식품 사이를 헤집기 시작했다.
먹다 남은 탕수육을 담아놓은 통과, 아직 열지 않은 냉동만두 봉지 사이를 헤집자 미끈거리는 포장이 잡혔다. 오이카와는 락앤락 통을 한 손으로 누르고 베이컨을 꺼냈다. 저번에 한 번 먹고서 남은 것을 당근 모양 핀으로 찝어 보관하고 있었다. 냉장고 정리를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베이컨 두 덩이를 꺼냈다.
해동시켜야 하는데 귀찮았다.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곧 그가 깰 것도 같았다. 그는 언 베이컨을 먹을 만큼만 그릇에 덜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게 곧 녹을 것이었다. 그는 가스레인지를 켰다. 약불에 맞춰놓고 프라이팬을 달궜다. 그는 기름이 들어 있는 찬장을 열었다. 저번에 봤던 올리브유가 사라지고 카놀라유가 놓여 있었다. 오이카와는 하품을 했다.
아침 특유의 노곤노곤한 졸음이 몰려왔다. 햇살이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눈부시게 들어올 때 마다 그는 하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짜내졌다. 그는 늘어지는 기분을 기지개로 폈다. 근육이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전자레인지가 울었다. 오이카와는 급하게 전자레인지에서 베이컨을 꺼냈다. 그의 구식 전자레인지는 해동 된 물건을 뱉기 전까지는 계속 소릴 지를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단잠을 방해하기 싫었다.
그는 팬에 기름을 약하게 둘렀다. 베이컨을 구울 때 카놀라유를 넣는지 넣지 않는지 잊었기 때문이다. 별 탈 없지 싶어서 오이카와는 프라이팬에 베이컨 네 장을 넣었다. 두 장은 곤히 자고 있는 친구의 몫이었고, 남은 두 장은 자신의 것이었다. 두 사람 분의 몪이었다. 그는 계란도 두 장을 넣을까 생각하다가 그만 두었다. 아침부터 배불리 먹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기지개를 폈다. 수분이 증발하면서 비 내리는 풍경을 닮은 소리를 불러왔다.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베이컨을 뒤집었다. 네 장이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이 꼭 ‘실뜨기’의 ‘젓가락’ 모양을 연상시켰다. 그는 그걸 마지막으로 했던 때를 생각했다. 의외로 ‘네 살’이 아니라, ‘열 여덟’살이었다.
쿠니미가 부실에 실 하나를 가져왔다. 그는 실의 양 끝을 묶어서 양 손에 걸쳤다. 그걸 왼쪽으로 한 번 훑으면서 중지에 걸고, 오른쪽으로 한 번 훑으면서 반대편 중지에 걸었다. 그는 짠, 하는 의욕 없는 목소리와 함께 그걸 킨타이치에게 내밀었다. 킨타이치가 실패하자 다음은 야하바였다. 오이카와는 지면 소금 캬라멜이야, 라는 그의 목소리가 점점 생기 있어 지는 걸 오이카와는 퍽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쿠니미의 독재를 막을 뻔 했던 것은 오이카와였다. 그는 엑스자로 교체 된 곳을 양 손으로 잡고 평행선 안으로 넣었다. 쿠니미는 작게 감탄하면서 다음 번 실을 떠갔다. 두세 번 반복하자 ‘젓가락’이 나왔다. 오이카와는 그걸 풀 수 없었다. 이다음엔 모르겠어, 라고 말하자 쿠니미는 오이카와의 손에 얇은 실을 걸쳤다. 그는 새끼손가락에 줄을 걸고 양 손을 교차했다. 그 다음 ‘함정’과 ‘거미줄’도 그는 쉽게 풀어냈다.
그 이후에는 계속 실 패턴은 반복되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이게 퍽 연애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패턴을 모르게 계속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계속 했던 걸 반복하게 된다는 게. 그는 포실포실하게 익은 베이컨을 그릇에 뺐다. 그는 빵부터 구웠어야 했다며 자책했다. 그는 계란을 조리대 끝으로 밀어 놓고, 식빵을 꺼냈다. 어제 집에 들어올 때 사왔던 것이었다. 그는 베이컨 기름에 빵 두 장을 넣었다. 그의 누나가 알려준 비법이었다.
그게 연애라면 스가와라와 자신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는 걸까. 오이카와는 손끝으로 빵을 뒤집었다. 그의 오랜 버릇이었다. 그는 스가와라가 이 광경을 본다면 뭐라고 할지를 생각했다. ‘세터가!’ 라고 말하기 보다는 ‘토-오-루’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첫 음절의 어조는 수평으로, 그 다음 음은 반음 내려갔다가, 마지막에서는 살짝 올라간 느낌일 것이다. 오이카와는 빵 두 장을 그릇 하나에 빼냈다. 베이컨이 들어 있는 그릇이었다. 설거지 감을 줄이면 줄일수록 좋은 법이었다.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게 된다는 건 그들의 연애가 안정기에 들어갔다는 증거 같았다. 오이카와는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그는 나머지 식빵 두 장을 더 구웠다. 베이컨 기름이 들어가 식빵은 거의 ‘갈색’이었다. 모양은 이상해도 맛은 괜찮겠지, 그는 접시 두 개를 꺼내 빵 두 장을 올렸다. 그 위에는 베이컨을 겹쳐 올렸다. 윤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하얀 계란 두 알을 깼다. 두 알이 자꾸만 붙으려고 했다. 두 사람 분의 식사였지만 계란은 어째 한 사람 것 같았다. 노른자 두 개가 눈 안에 들어왔다. 멀리서 토오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젓가락으로 붙은 계란의 중앙을 가르려다가 침실로 들어갔다. 약한 불이니 괜찮지 싶었다.
스가와라는 이불에 쌓인 채 지고 있었다. 암막커튼의 열린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그의 하얀 피부를 해사하게 만들고 있었다. 왜 갔어, 그가 물었고 오이카와는 일인용 침대는 너무 작다는 불평을 내뱉었다. 둘이 집 합쳤을 때 바꾸자니까, 라는 말은 스가와라의 버릇같은 말이었다. 오이카와는 정신을 차리라는 말을 던졌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 할 거 있잖아.”
뭘 맞겨 놓았다는 듯 스가와라는 그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의 손가락이 입술 끝에서 톡, 톡 움직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입술와 입술을 맞대어 쪽, 하는 소리를 냈다. 스가와라는 앙 다물린 입술을 벌려 그의 ‘키스 소리’를 먹는 시늉을 했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오이카와는 얼른 주방으로 달라 들었다. 스가와라네 집은 부엌과 침실 사이의 거리가 은근 멀었다. 그는 집을 볼 때 주방과 침실의 거리를 반드시 체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 익은 계란을 반절로 갈랐다. 하나가 다시 둘이 되었다. 연애는 하나같은 둘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 실뜨기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원으로 연결된 실 하나를 주고받으며 패턴을 반복해간다. 오이카와는 생활에서 이런 발견을 했다는 게 은근히 즐거웠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는 뒤집개로 계란을 들었다. 그는 베이컨 위에 프라이를 올렸다. 그는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베이컨을 반절로 접어 계란을 덮었다. 그 위에는 머스터드소스와 약간의 딸기잼이 들어간다. 우리 신랑한테만 해 주는 거니까 토오루 너도 소중한 사람한테만 해줘! 라고 외치던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빵 뚜껑을 닫으면서 피식 웃었다.
스가와라가 씻는 소리가 들렸다. 세면대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두 개의 접시를 대리석 식탁 위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는 유리컵 두 개를 찬장에서 꺼냈다.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다. 그는 어제 사놓은 오렌지주스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쓸데없이’ 써버린 그릇 하나를 얼른 설거지했다.
방문 너머, 너머로 들리는 물소리가 서서히 잠잠해지고, 스가와라의 발소리가 들었다. 오이카와는 왼쪽, 스가와라는 오른쪽이다. 이미 예전에 정해 둔 자리배치였다. ‘일’이 왼쪽, ‘이’가 오른쪽에 있으니까, 라는 단순한 이유였던 것도 같았다. 그는 익숙한 이 아침이 즐거웠다. 익숙하다는 것은 여러 번 반복했다는 이야기였다. 새로운 패턴이 없긴 했지만 그와 끊임없이 실을 주고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 베이컨 있었어? 스가와라가 물었다. 오이카와는 냉동만두와 락앤락 더미 사이에서 발견했다고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얼굴에 남은 물기를 손으로 훔쳐내면서 전혀 몰랐네, 하면서 웃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유리컵에 오렌지주스를 따라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라고 속삭이자 스가와라는 그가 꼭 그 말을 할 것 같았다면서 웃었다.
실뜨기는 두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놀이였다. ‘거미줄’이나 ‘젓가락’같은 새로운 패턴들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익숙한 풍경들이 계속 반복되곤 했다. 오이카와는 그와 끊임없이 실을 주고받는 이 일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 웃어? 그가 물었고 오이카와는 네가 너무 예뻐서, 라고 대답했다. 이 또한 익숙한지 스가와라는 그의 입술과 입술을 맞물렸다 땠다. 쪽, 하는 소리가 나왔고 오이카와는 입을 벌려 냠, 하고 ‘쪽’을 먹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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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2015. 1. 23. 01:29
비조님이 키워드를 주셨습니다. 제목의 파이시트, 총, 너라는 세 개의 키워드였어요.
머뭇거리지만 결국 사랑인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쿠니미가 본 영화는 『아멜리에』입니다. 좋은 영화에요:)
***
예전에,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녹이 슨 색의 프랑스 영화였다. 전체적으로 필터를 한 겹 씌운 듯한 풍경이었다. 쿠니미는 그 영화의 여자주인공을 떠올렸다. 그녀의 이름이 영화의 이름이었던가, 그는 파이를 만들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뒀던 반죽을 꺼냈다. 한 시간 정도였지만 놀라울 정도로 차가워졌다. 그는 긴 손가락으로 파이 틀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반죽을 톡톡 건드렸다.
자두파이였던가, 애플파이였던가. 쿠니미는 영화 속 그녀의 버릇을 생각했다. 슬프고 우울할 때면 파이를 만드는 습관이었다. 그는 그걸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반죽을 감싸고 있던 랩을 뜯었다. 랩 위에 남아있는 반죽은 하나도 없었다. 쿠니미는 그게 아쉽다는 듯 랩을 쓸었다. 아직 차가움은 남아 있었다. 그는 손끝을 혀로 핥았다.
왜 오늘 갑자기 그 영화가 생각났을까. 쿠니미는 파이 틀을 꺼내며 생각했다. 갑자기 파이가 먹고 싶었기 때문에? 늦은 일요일 아침에 방영하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에펠탑을 소개해서? 쿠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냉랭한 파이 틀에 반죽을 깔았다. 그의 손자국이 반죽에 엉성하게 남았다. 서툰 흔적이었다.
“좋아해”
쿠니미는 얼마 전 들었던 목소리를 재생했다. 대충 흉내 낸 어조가 멀지 않은 과거를 불러왔다. 그는 씨앗을 발라낸 자두에 설탕을 넣었다. 그는 볼에 들어있는 자두를 집었다. 무르지 않아 과육의 끝부분에 들어 있는 단맛을 위해 그는 설탕을 두 큰 술 정도 더 넣었다. 그는 계피가루를 꺼냈다. 가루가 날려 기침이 났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기침을 뱉어냈다. 밤 새 몇 번이나 뱉었던 것이었다.
좋아해, 쿠니미는 그 울림을 다시 말했다. 그는 괜히 반죽을 찔렀다. 잘 보이지 않지만 반죽에는 지문이 묻어났을 것이다. 그가 쿠니미에게 남긴 지문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의 분홍색 머리카락을 생각한다. 그의 머리카락이 노을에 날렸고, 노을을 먹은 분홍색 머리카락은 꼭 자두 필링처럼 반짝였다. 그는 체리 통조림을 열었다.
영화 속 그녀는 파이를 만들면서 울었다. 지나간 사랑에 후회하면서, 쿠니미는 영화의 끝을 떠올렸다. 자신은 그 상황에서 그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 그는 필링을 잘 섞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속이 복잡했다. 한 번 냉장고에 휴지시키기 전에 손에 가득 엉켜오던 반죽처럼. 그는 괜히 파이 틀을 눌렀다.
그는 냉정하게 생각하고자 했다. 그는 이게 질 나쁜 장난이 아닐까 고민했다. 그러나 쿠니미는 그와 동시에 자신이 형편없이 흔들려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저도 선배가 좋아요’라는 직설적인 말로 이게 ‘장난인 것’처럼 표현했어야 했다. 쿠니미는 생지에 자두를 올렸다. 설익어 단단한 자두 과육이 부드러운 파이 속살을 덮었다.
영화에서는, 자두파이-혹은 체리파이- 반죽을 만들고 있는 여자주인공의 집으로 남자가 찾아온다. 사랑하던 그 남자고, 여자가 계속 헤어지는 상상을 했던 남자였다. 쿠니미는 괜히 영화의 결말을 되감듯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결국 도착하는 지점은 노을이 가득 든 버스 창가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분홍색 머리카락이었다. 그는 처음에 쿠니미, 하고 불렀다. 마치 롤리타를 부르는 것처럼.
그리고 아키라, 라고 불렀다. 아키라, 라는 이름에 꿀을 바르는 것처럼 달게. 쿠니미는 그 상상만으로도 입이 달았다. 그는 체리 통조림을 잘 저었다. 그가 작은 숟가락을 움직일 때 마다 체리들은 드럼통에 들어간 세탁물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세상의 위와 아래가 어디인지 모르는 것처럼. 꼭, 그렇게.
쿠니미는 자두 필링을 넣은 파이 반죽에 조심스럽게 체리 통조림을 넣었다. 그는 그게 구워지는 상상을 했다. 하나마키 선배, 그는 그의 이름을 작게 부른다. 여전히 그의 집 초인종은 울리고 있지 않다. 그는 통조림 국물을 조금씩 따라냈다. 숟가락에 눌린 체리가 뭉개지는 느낌이 났다.
“좋아해.”
쿠니미는 다시 중얼거린다. 너가 너라서 좋아. 라는 투박한 말이 곧바로 따라왔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파이에 총을 담는 상상을 한다. 그대로 그걸 하나마키에게 가가고 싶었다. 겉면만 구운 파이에 들어가 있는 그 죽음의 무게는 매우 무거울 것이었고, 쿠니미는 그의 느긋한 얼굴을 쏘는 공상을 했다.
하나마키는 그를 강하게 쥐고 흔들었다. 로맨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처럼 다가와 다정한 말을 속삭였고, 때론 장르를 바꾸어 퉁명스럽게 다가왔다. 쿠니미는 그 갭에 녹아드는 게 힘들었다. 자두 필링과 체리 통조림이 섞이지 않은 파이처럼. 그는 자신을 냉정에서 점점 열정으로 밀어가는 하나마키가 싫었다. 좋아해, 라는 투박한 고백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는 어색하게 파이 반죽을 올렸다. 격자로 엮어 모양을 냈다. 어느 조각이 ‘위’인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모앙은 꼭 그의 마음을 닮았다. 좋은지 싫은지 알 수가 없었다. 쿠니미는 생지로 가려진 파이 안에 총을 꺼내드는 상상을 한다. 그는 공상의 총을 하나마키에게 겨누고, 겨누고, 또 겨눴다가,
쏘지 못하고 내려놓는다. 상상에서조차 하나마키는 그를 흔들고 있었다. 꽃이 피면 봄이 온다. 겨울은 꽃이 핌에 강제적으로 봄의 뒤편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쿠니미는 자신의 세계가 온통 봄꽃으로 물드는 환상을 본다. 그 광경을 선물 한 것은 좋아해, 라고 말하던 하나마키의 얼굴과, 그의 양 볼에 올라선 떨림이었다.
좋아해, 라고 발음 한 다음 하나마키는 그의 눈을 가렸다. 지금 나 굉장히 꼴사나우니까 보지 말아줄래, 라는 다정한 부탁과 함께. 쿠니미는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나마키의 것과 다르게 부드러운 구석이 있는 손이었다. 양 손목에서 뛰는 맥이 눈으로 이동했는지, 눈과, 눈에서 삼킨 눈물이 타고흘러내려가는 식도가 속이 타오르는 듯 했다.
쿠니미는 파이 생지를 정돈했다. 여전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없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기에 이런 일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운함은 이성과 별개로 찾아오는 친구였다. 크쿠니미는 자신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 안에 그 감정이 파이 속을 가득 채운 자두마냥 자리함을 알고 있었다.
좋아해요, 하고 쿠니미는 대답해본다. 간질간질한 느낌이지만 그에게 닿을 것이 아니었다. 그의 겨울은 강제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자신의 선 자리에서부터 넝쿨이 타고 올라와, 그 지난 자리마다 꽃을 피우는 것을 상상했다. 그에게 총을 배달하는 것 보다 훨씬 건실적인 상상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하나마키의 양 볼에 들었을 게 분명했던 사랑이 어느새 그의 볼 위에도 올라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았다. 파이의 겉껍질이 담고 있는 붉고, 아찔하게 달달한 필링 같은 맥이 그의 목에서 뛰었다. 하나마키, 하고 쿠니미는 속삭였다. 예상보다 더 단 울림이었다. 타카히로, 하고 그는 그의 이름을 입에 머금었다. 쿠니미의 혀가 네 번의 여행을 했다. 코 끝이 찡해졌다. 그는 체리 통조림을 입 안에 가득 담았다고 생각했다. 냉정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파이처럼 갈무리했다. 아직 익지 않은 사랑을, 여물지 않는 사랑을.
쿠니미 밖에 없는 부엌, 그 세계에는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예열한 오븐을 열었다. 상온에서 천천히 온도를 올려, 타인까지 변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된 친구였다. 그 또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쿠니미는 조심스럽게 파이 틀을 밀어 넣었다. 파이가 익을 때 노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상식이었는지 오븐 안에도 주황색 물이 들었다.
“좋아해.”
그는 다시 속삭였다. 문 밖에는 아직 아무도 없고, 그를 부르는 노크소리는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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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2015. 1. 20. 23:13
오늘 낮에 올렸던 스타훌게... 그대의 본진에 광자포를 01 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반대쪽 이야기? 같은 느낌이에요. 처음 '니본진에 광자포'를 쓸 때에는 속편을 쓸 생각이 하나도 없었는데, 3이랑 4도 ...써보고 싶구 그러네요.
스타를 안 하시거나 모르시는 분들께도 어렵지 않게 다가갔으면 좋겠지만....잘 안 될 것두 같아서 애매한 기분입니다^0T...
***
스타일이란 지문과도 같다. 한 번 정립되면 그 사람의 특색으로 남는다. 그 분야에서 ‘최고’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그 스타일을 깨부수는 것이 필승전략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일본 프로게이머 중에서 가장 상대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선수였다.
카게야마 토비오와 그가 ‘인간상성’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카게야마는 천부적인 센스와 컨트롤을 가지고 있지만 유연성이 부족했다. 빌드를 상대에 맞춰가는 부분이 서툴렀다. 또한 한 경기 한 경기를 너무 ‘이기려고’ 했다. 오이카와는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팀게임이었다면 다른 상대가 다른 유닛으로 카게야마를 보좌하며 이길 수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스타는 개인전이었다.
오이카와는 이 부분을 파고드는데 능숙했다. 카게야마가 맞춰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제했다. 그는 카게야마가 짜 온 빌드를 카운터쳤고, 그의 모든 경기를 낱낱이 분석했다. 일본에서 가장 스타를 잘 하는 선수가 누구냐, 라는 질문에 ‘일등’으로 자기 이름이 나오는 일이 없다면, 일본에서 가장 잘 하는 프로토스가 누구냐라는 질문에는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이 단번에 불려 나와야 한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키타가와 제1 팀이 해체되고 나서, 카게야마가 카라스노로 이적하자마자 그에게 변화가 일었다. 맞춰가는 것도 어느 정도 따라올 수 있게 되었고, 부담감 없이 경기하는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그는 여유 있어 보였다. 어느 정도 고정 팬 층이 있는 팀에 가서 케어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 변화는 매우 급작스러웠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키타가와 제1의 소년가장이었다. 여기서 고정된 스타일을 단박에 바꾸는 것은 그가 아무리 천재라도 사람인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이카와가 그 변화의 시발점을 알게 된 것은 매우 우연한 일이었다. 그는 ‘홈 스토리 컵’ 예선전에 참가했다. 카게야마와 우시지마는 이미 초대권을 받아 독일행이 확정 난 상태였다. 분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대가 ‘fresh’ 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단 걸 알았다. 이거 누구야? 오이카와는 대진표를 보면서 물었다. 이와이즈미는 팀 카라스노의 스가와라 코우시라고 대답했다. 잘 해? 그가 물었다. 쿠니미의 폭풍함을 군단숙주로 방어하던 하나마키가 잘 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VOD 본 적 있어? 오이카와가 다시 물었다.
마츠카와는 ‘무난하게 한다’고 대답했다. 하나마키 또한 그 말에 긍정했다. 이와이즈미도 나쁘지 않다고만 대답했고, 킨타이치는 방어선을 잘 구축한다고 대답했다. 쿠니미는 가끔 너무 잘 막아서 짜증난다는 말을 내뱉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냥 ‘그저 그런 프로토스 유저’ 구나? 오이카와는 자신이 독일에 가겠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만용이었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의외로 건실한 프로토스였다. 암흑성소를 사용한 찌르기가 날카로웠고, 꾸준한 정찰을 통해 오이카와의 빌드에 맞춰가는 센스가 돋보였다. 오이카와는 그의 소속팀과 스타일이 카게야마 토비오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걸 알았다. 흥미가 동했다. ‘올해의 프로토스’는 마땅히 오이카와 토오루의 것이어야 했다. 그는 카게야마의 스타일이 점점 완벽해져가는 이유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화가 났다.
결국 독일, 홈스토리 컵 행 티켓을 따낸 것은 오이카와였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프로토스에게 한 경기를 밀릴 뻔 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같은 지구일텐데 어째 조지명식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의아했었다. 그는 마무리를 추적자의 ‘/춤’으로 장식했다. 추적자들의 춤을 보자마자 GG가 올라왔다. 오이카와는 다음번에도 그의 속을 긁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둘의 다음 만남은 비행기 안에서였다. 일본에서 드림핵에 참가하는 선수는 총 여섯 명이었다. 팀 아오바죠사이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였고, 네코마의 쿠로오, 후쿠로다니의 아카아시, 카라스노의 카게야마와 스가와라였다. 협회 직원이 안내 해 주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좌석을 한꺼번에 발권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창가 자리를 양보했고,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옆자리에 앉았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짧게 목례 한 다음 스가와라와 빌드 이야기를 했다. 이와, 여기서 너만 테란이야.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속삭였다. 이와이즈미는 미리 준비한 안대를 끼면서 조용히 하라고 종용했다. 오이카와는 마치 스파이가 된 것처럼 그들의 빌드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행했다. 좁은 좌석에서 간간히 그와 팔꿈치가 맞닿았다. 스가와라가 움직일 때 마다 그의 아이디마냥 상쾌한 향이 났다.
섬유유연제도, 향수도 아니었다. 그냥 그런 상쾌함이었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흥미가 동했다. 카게야마는 전진 우주관문과 공허를 조합하는 빌드를 이야기했다. 스가와라는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하라는 조언을 했다. 선수보다는 코치가 어울리는 타입인가? 그는 눈을 감으며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이카와 선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에게 물었다. 우리 동갑인데 반말하면 대답할게요, 오이카와는 웃으며 눈을 살짝 떴다. 전진 우주관문이랑 공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스가와라는 바로 존댓말을 그만뒀다. 그 갭과 비행기의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새삼스럽게 좋았다. 오이카와는 고민하는 척 하다 ‘차라리 초반 전략이면 예언자가 좋은 것 같다’ 라는 평범한 결론을 내려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만남은 드림핵 결승에서였다. 오이카와는 오전조였다. 그는 쿠로오 테츠로를 셧다운 시켜 시간이 남았다. 군단숙주를 이용한 노련한 수비는 볼만 했지만 살모사 따위의 조합을 하지 않은 게 아쉬웠었다. 오이카와는 남는 시간동안 스가와라 코우시의 VOD를 봤다. 그가 올라올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스타일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카게야마 토비오가 어떤 느낌일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건실한 느낌의 프로토스였다. 그러나 나름의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암흑성소’를 사용하는 느낌을 떠올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옆에서 아이패드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는 트위치 중계를 켜 오후조 경기를 시청했다. 그러던 와중 오이카와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야 카게야마 졌는데, 이와이즈미가 말했고, 오이카와는 뭔가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가끔씩 뜬금없는 곳으로 그 몸을 옮기곤 했다.
영상 보길 잘 했네. 오이카와는 단지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알 수 없이 설렜다. 결승에서 한 번에 눌러버리려고 했었는데 상쾌 군이라니 너무 아쉽네, 오이카와는 건성으로 중얼거렸다. 무대 위로 올라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오이카와는 무대 뒤에서 스가와라를 살펴보았다. 저 성실해 보이는 인상 뒤에 숨겨진 모습을 알고 싶었다. 또 만났네, 오이카와가 말을 걸었다. 스가와라는 아직도 승리에 취해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법 귀여운 표정이라 오이카와는 그걸 부셔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블리자드가 준비한 특별 공연 때문에 무대 아래로 갔을 때, 오이카와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이번에도 암흑성소 갈 거야? 라는 말에 그는 놀란 것 같았다. 그는 곧이어 왜? 라고 물어왔다. 오이카와는 그가 올라올 줄 알고 DVD를 보고 준비했다며 웃었다. 내가? 스가와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 의아해하는 표정마저 귀여워보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뭔가 ‘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완전히 읽히고 시작하는 거네.
-암흑성소 안 가져가면 내가 좋은 거고, 가져가도 내가 좋은 거고.
-너 치사하다. 그래서 내가 가져갈 것 같아?
-머리 좋은 타입이니까 아마 내가 ‘안 가져갈 것 같아’ 하면 안가져가겠지.
-대박 치사해.
-난 우시와카가 안 나오는 경기에서는 모두 1등 하기로 결심했거든.
그는 일부러 비틀어 말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스가와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미간을 좁힌 그 모습이 정말로 ‘무민’을 닮아 있었다. 왜 팬들이 너 무민이라고 하는 줄 알겠다. 오이카와는 그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스태프가 와서 둘에게 이동해 달라며 부탁해왔다. 오이카와는 이긴 다음에, 그의 얼굴을 보고 웃으면서 말하기로 결심했다. 스가와라는 매우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 살얼음이 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오이카와는 그 표정을 더 보고 싶었다. 도S 같은 생각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그는 일부러 ‘날빌’을 선택했다. 초반 전략으로 세 번쯤 당하고, 마지막을 운영싸움으로 끌고 가서 부셔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면 좀 더 멘탈이 깨지겠지? 라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다. 오이카와는 광자포러쉬와 암흑기사를 적절히 배합했다. 올인인 척 하면서도 올인이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멀티를 엇박자로 가져갔다.
4세트, 마지막 세트의 운영 싸움에서 스가와라는 GG를 입력했다. 그와 동시에 하얀 테이프가 날리면서 오이카와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는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으러 부스에서 나갔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 행동했다. 화려하게 날리는 테이프 아래에서 그는 예쁘게 웃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만을 위한 플래쉬가 터졌다. 그 반짝이는 순간에서 오이카와는 뒤를 돌았다. 상쾌 군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단순한 사실이었지만 이는 파랑처럼 다가왔다. 상금 1억보다 그의 표정이 더 마음에 깊게 남았다. 그 이후에 오이카와는 샴페인을 터트리고 트로피에 진하게 키스했지만 스가와라가 잊히지 않았다. 그는 모든 걸 체념한 듯한 표정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걸 보기 싫었다. 그랬기에 그는 ‘날빌’을 더욱 더 갈고 닦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이와이즈미는 너 게시판에서 ‘인성’ 나쁘대, 라며 말을 걸어왔다. 인성포에 인성기사, 네 성격 짐작 된다던데? 그가 이어 말했고, 오이카와는 그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런 느낌으로 사랑고백을 하는 건 어떨까. 그의 마음을 이토록 두근거리게 만드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는 그 표정을 더 보고 싶었다. 비뚤어진 사랑이었다.
그래서 오이카와 토오루는 스가와라 코우시만 보면 날빌을 시도했다. 운영싸움으로 넘어가도 마지막에는 꼭 일꾼을 끌고 갔다. 그는 그의 앞마당에, 본진에, 어디 비빌 구석이 있으면 꼭 광자포를 지었다. 꽃받침처럼 아름다운 광자포가 여러 개 모이자 사람들은 오이카와를 ‘꽃밭토스’라고 불렀고, 스가와라와의 맞대결을 ‘꽃밭록’이라고 불렀다. 오이카와는 그와 관계성을 쌓아가는 게 그저 좋을 뿐이었다.
***
너 이번에 스가와라한테 또 날빌 쓸 거야? 하나마키가 쿠니미의 유닛을 살모사로 납치하며 물었다. 글쎄, 오이카와는 웃었다. 일단 꽃밭은 만들어 줄 거야. 아니면 하트모양으로 짓는 것도 괜찮은데 상쾌 군이 요즘 너무 심시티를 빡빡하게 하더라. 오이카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츠카와는 그가 성격이 나쁜 걸 다시 확인했다면서 혀를 찼다. 그는 그 말을 들으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앞에만 서면 그를 흔들어버리고 싶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를 성장시킨 데에 대한 1%의 복수심과, 그 흔들리는 표정을 보는 쾌감 80%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는 유투브를 열었다. 프로모션 영상이 자동재생되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는 이번에야말로 이겨보고 싶어요. 진짜 초반 전략 다 막아버리고, 이 지긋지긋한 상대전적을 청산하고 싶네요, 라고 인터뷰했다. 인터뷰마저 단정한 사람이었다. 오이카와는 흔들릴 스가와라의 표정을 생각하고 웃었다.
“이상하게 너 걔랑 경기 잡히면 많이 웃더라.”
마츠카와가 말했다. 오이카와는 기분 탓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각종 게임 게시판에서는 오이카와가 이번에도 ‘사랑고백’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예언자가 자신의 일꾼을 죄다 죽이는 게 아니라면 사랑고백을 할 거라고 떠들어댔다. 이와이즈미가 사랑을 이야기 하는 오이카와에게 ‘시끄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자가 발로 차이는 걸 느끼면서, 경기장에서 스가와라를 만날 순간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어서 스가와라에게 광자포를 지어주고 싶었다.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도 같았다.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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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2015. 1. 20. 16:19
제법 거창하게 1번이라는 번호가 붙어 있지만, 아마 오이카와 사이드로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훌게AU가 땡겨서 썼는데 뭐가 뭔지 1두 모르겠네요.. 여러분이 스2를 보시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스2봐주세요... 진12에어 응원해주세요.. 유니폼이 이쁩니다....
뭔가 오늘 안에 2를 들고 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피지컬에는 한계가 있다. 스가와라는 마우스를 움직이며 생각했다. 그의 유닛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세 번째로 가져간 멀티 지역에 광자포를 건설했다. 그는 자신의 맵 위에 있는 관문들을 바라보았다. 관문으로 뽑을 수 있는 유닛들이 차례차례 나오고 있었다. 그는 손을 빠르게 만들었다. 바로 맞은 편 컴퓨터에서는 카게야마가 마우스를 움직이는 소리가 난폭하게 들려왔다.
살벌하게도 한다. 아사히가 중얼거렸다. 스가와라는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카게야마의 환상불사조가 그의 암흑성소를 본 것 같았다. 그는 카게야마의 두 번째 멀티 쪽으로 암흑기사를 보냈다. 이미 저질러진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찌르기가 성공한다면 그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스가와라는 심호흡을 했다.
그 둘의 컴퓨터 주변을 팀원들이 둘러쌌다. 카게야마의 모니터를 보던 다이치는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가와라의 암흑기사가 카게야마의 일꾼을 때리기 시작했다. 카게야마는 일꾼을 노련하게 움직였다. 결국 회심의 찌르기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암흑기사는 뻘쭘하게 서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타이밍이 엉망이잖아, 스가. 다이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애매하게 웃으면서 추적자의 점멸 업그레이드를 기다렸다. 찌르기가 실패한 이상 방어를 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는 암흑기사를 움직여 카게야마의 본진을 정찰했다. 이미 병력이 상당히 모여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의 별명인 ‘제왕’답게 진군하고 있었다. 그의 본진에 모여 있는 집정관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있었고, 거신 또한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스가와라는 암흑기사를 모았다. 그가 보지 못 한다면, 그래서 저 거신을 자를 수 있다면. 스가와라는 급박하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하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스가와라의 병력은 카게야마의 병력에 ‘싸먹혔다’. 조금 더 여유 있게 해 보는 건 어떨까? 아사히가 그에게 말했다. 거신의 레이저에 넥서스가 날아가려는 순간 스가와라는 GG를 입력했다. 그의 모니터에는 ‘패배’가, 카게야마의 모니터에는 ‘승리’가 떴다. 좋은 연습 게임 감사합니다, 하며 카게야마가 고개를 숙였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저었다.
“나 어떡하니. 프로리그 엔트리에 겨우 나갔는데.”
스가와라가 한탄하듯 말했다. 그는 연습실 한 구석의 화이트보드를 쳐다보았다. 아오바죠사이와의 프로리그 대진표가 적혀 있었다. 1경기 - 비프로스트 맵, 카게야마(P) vs 하나마키(Z), 2경기 - 만발의 정원 맵, 스가와라(P) vs 오이카와(P), 3경기 미로 – 히나타(Z) vs 이와이즈미(T) 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대진에서, 스가와라는 허리 경기를 맡고 있었다. 내가 저기서 지면 기세 꺾이겠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약한 소리가 입에서 삐져나왔다.
복수 하는 거예요! 저번 ‘드림핵 1억 빵!’ 니시노야가 스가와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스가와라는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 이기고 싶어, 스가와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면서 말했다. 카게야마는 한 번 더 가겠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는 프로토스 – 저그전을 준비해야 할 입장이었고, 스가와라는 카게야마를 보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한번 만 더, 라고 중얼거렸다.
절대로 오이카와에게는 지고 싶지 않았다.
***
스가와라의 별명은 ‘긁지 않은 당첨복권’이었다. 어떻게 보면 찬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별명은 확실하게 부정적인 어조를 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무난한 선수였다. 일단 긁기만 하면 대박이 확실한데 그 계기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는 ‘최고의 프로토스’에 언제나 두 걸음 정도 모자랐다. 같은 팀의 카게야마 토비오와, 라이벌 팀의 오이카와 토오루가 국-내외를 전전하며 모든 경기를 쓸고 다닐 때 그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의 팬들은 언제나 스가와라는 터지기만 하면 된다, 라며 그를 위로했지만 게이머로서 그 말을 마주하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당첨'처럼 보이는 '꽝'이 아닌지 언제나 걱정했다. 방음부스 너머에서 하나, 둘, 셋, 스가와라 파이팅, 을 외쳐주는 팬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의 플레이는 오이카와처럼 압도적이지도, 카게야마처럼 재기발랄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물 흐르듯 무난했다. 공격보다는 방어를 잘 한다는 평가는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특출나진 않았다.
그런 그가 저번 년도 ‘드림핵’에서는 결승 무대까지 올라갔다. 저번 드림핵은 상금은 1억이었다. 그것도 1등에게 몰아주는 1억. 무대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그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프로토스였다. 그의 플레이는 잘 짜인 협주곡과 같았다. 허점이 없는 압도적인 컨트롤, 엇박자로 가져가는 타이밍, 적절한 시기에 부릴 줄 아는 배짱과 버려진 유닛도 다시 쓰는 발상의 전환. 오이카와는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로써 가져야 할 모든 걸 가진 남자였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준결승전에서 카게야마 토비오를 꺾었다. 4 : 3이라는 풀스코어로. 천재 프로토스를 꺾은 만큼 기세가 올라 있었다. 자신 있냐고 물어보는 리포터의 질문에 ‘당연하다’고 대답 할 만큼, 오이카와 토오루를 상대로 1억을 타가겠다는 배짱을 부릴 만큼 당당했다. 오이카와는 그런 스가와라의 대답을 듣고서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살살 부탁드린다.’고 대답했다. 미리 준비 된 대답 같아서, 스가와라는 그를 꼭 이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드림핵 '1억빵'이 시작되기 전에 블리자드가 준비한 작은 공연이 있었다. 결승 무대에 올라갈 선수 두 명이 관람해 주면 좋겠습니다, 라는 스태프의 코멘트에 둘은 옆자리에 앉았다. 비행기에서도 둘은 옆자리에 앉았었다. 정확히는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옆자리였고,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옆자리였지만. 둘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오이카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상큼 군 이번에도 암흑 성소 가져 갈 거야? 그의 물음에 스가와라는 전혀, 라고 대답했다. 그는 경기 전 심리전을 거는 타입인가 싶었다. 왜?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저의를 알고 싶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말에, 쉬는 시간에 DVD를 다 찾아 봤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상대가 상쾌 군보다 랭킹이 높으면 암흑성소 가져가길래, 그는 오전조 경기였기 때문에 한가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 완전히 읽히고 시작하는 거네.
-암흑성소 안 가져가면 내가 좋은 거고, 가져가도 내가 좋은 거고.
-너 치사하다. 그래서 내가 가져갈 것 같아?
-머리 좋은 타입이니까 아마 내가 ‘안 가져갈 것 같아’ 하면 안가져가겠지.
-대박 치사해.
-난 우시와카가 안 나오는 경기에서는 모두 1등 하기로 결심했거든.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전혀 스가와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이 경기를 가져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번 해 말 있을 그랜드파이널에서 우시와카를 꺾고 1등이 될 거라는 말을 내뱉었다. 당당한 선언이었지만 결승전을 앞두고 할만한 말은 아니었다. 두 분 이동해 주실게요, 통역이 스탭의 말을 전달했다. 오이카와가 먼저 일어났다. 그가 입은 유니폼이 조명이 들어 있었다. 흰 유니폼은 깊은 청색처럼 보였다. 스가와라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를 눌러 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이기겠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멘탈을 천천히 털어갔다. 오이카와는 첫 세트를 지독한 광자포러쉬로 시작했다. 막으려고 했지만 쉽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광자포는 치밀하게 계산 된 각도로 들어왔다. 카게야마의 러쉬보다 막기 어려웠다. 정밀한 컨트롤에 힘입어 첫 경기는 십 분도 안 돼서 끝났다. 스가와라는 어이가 없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힘들게 올라온 드림핵 결승을 이렇게 날릴 순 없었다.
두 번째 경기에서 오이카와는 보란듯이 암흑성소를 가져갔다. 스가와라는 초반부터 일꾼 피해를 보고 시작해서 쉽게 이길 수 없었다. 세 번째 경기에서 또 그는 광자포 러쉬를 시전했다. 그 무지막지한 ‘초반 날림 빌드’에 스가와라는 화가 났다. 평정심을 잃은 네 번째 세트에서 오이카와는 200대 200싸움을 준비했다. 스가와라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운영이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초반 '날림 빌드'를 너무 신경 쓴 탓이었다. 모선과 함께 등장한 폭풍함의 위용에 스가와라의 병력은 맥을 못 추리고 쓰러져 갔다.
드림핵 결승은 오이카와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오이카와는 GG 전, 본진러쉬 때 일꾼을 데려왔다. 그는 스가와라의 기지 근처에 광자포로 하트를 그렸다. 딱히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도 지는 경기가 가장 기분이 나빴다. 스가와라가 엔터를 치고 gg를 누르는 순간, 그 순간 폭죽이 터지면서 종이테이프들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하얗고 반짝이는 테이프들이 낙하하는 무대의 중심. 그 곳에는 트로피를 끌어안은 오이카와 토오루가 있었다. 스가와라는 헤드셋을 벗지 못했다. 손이 떨렸다.
승리자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는 2등이었다. 카메라가 스가와라의 침울한 표정을 잡았다. 방음유리 너머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대 밖에서는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을 것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 드림핵 우승을 차지합니다! 스가와라는 손목에 눈물을 담았다. 헤드셋 너머로 가려진 소리는 남의 우승을 축하하고 있었다. 결승 무대에 같이 선 상대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남자를.
종이테이프가 흩날리는 그 무대의 순간, 스가와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먹어 반짝이는 트로피에 키스하는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유니폼에 그림자가 들어서 검은 색으로 보였고, 그는 투명한 트로피에 입술자국을 남겼다. 오이카와는 익숙한 것처럼 트로피를 들었다. 대회 관계자가 그에게 샴페인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샴페인을 신나게 흔들더니 샴페인을 따 그 거품을 이리저리 뿌렸다.
그 환희의 순간을 스가와라는 지켜보고만 있었다. 경기 내용에 화가 났고 자신의 떨어지는 피지컬이 분했다. 종이테이프 가득한 순간을 가려주던 헤드셋, 헤드셋을 잡았을 때 나는 플라스틱 소리. 오이카와 토오루의 머리카락 위로 내리는 종이테이프들. 그 우승의 순간은 타인의 것이기에 너무나도 길었다.
***
그 날 이후 스가와라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출전하는 경기는 모두 참가하려 했다. 참가신청을 내고 같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싸돌아다녔으며, 조지명식에서는 당당하게 도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유연하고 노련하게 빠져나갔다. 심지어 만날 때 마다 한 번씩 꼭, 광자포러쉬를 했다. 열 받는 일이었다. 차라리 추적자로 '/춤'을 입력하는게 나아 보일 정도였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목표였다. 그는 그 종이테이프가 비처럼 내리는 현장에서 오이카와의 웃는 낯짝을 떠올렸다. 한 대 쳐주고 싶었고, 패배의 쓴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게임 채널에서 나온 프로모션 영상에서는 오이카와와 자신의 경기를 ‘1억록의 재림’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다시 채팅창에 gg를 입력했다. 내가 두 번째 경기인데 우리 팀 기세 꺾일 것 같아. 어쩌지? 에결까지 가기 싫은데. 그는 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그의 옆자리인 다이치가 히나타의 저글링러쉬를 유연하게 막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게임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아, 이기고 싶다. 스가와라는 한탄하듯 내뱉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뒷덜미라도 잡고 싶었다. 그의 오만한 얼굴에 찬 물을 끼얹어주고 싶었다. 기분전환을 할 겸 들어간 유투브에서는 프로모션 영상이 자동재생 되고 있었다. 상쾌 군이요? 저번 드림핵에서처럼 짓밟아주고 싶어요,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오이카와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최소한 얼굴이라도 찌푸렸으면 좋겠다. 스가와라가 말하자 건너편의 카게야마가 그러실 수 있다면서 응원의 말을 내뱉었다. 별다른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스가와라 군의 기지 근처에 ‘꽃밭’을 만들어 드릴 건가요?
리포터가 물었다. '꽃밭'이란 광자포로 하트를 그리는 행위를 뜻했다. 오이카와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다가, 사랑이니까요, 라며 상큼하게 대답했다. 그의 그 톡톡 튀는 말투에 스가와라는 캔을 거칠게 구겼다.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사랑. 스가와라는 구겨진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카게야마, 라고 부르니 방을 파 놨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꼭 암흑성소도 광자포러쉬도 막아 줄 거야. 그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헤드셋에 반복재생 된 듯 윙윙 울리던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의 우승입니다’ 라는 목소리처럼, ‘사랑이니까요’ 하는 목소리가 헤드셋에 걸려 그의 귓가에서 천천히 재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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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2015. 1. 19. 23:48
슈렝님이 분명 이 비슷한 내용으로 리퀘를 해 주셨던 것 같은데 디테일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별찍어 놓은 게 사라졌나봐요.. 앞으로 트위터에서 무분별한 별닌자는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렝님 사랑합니다... 저는 렝님의 노예.....(렝님 : 반품해주세요)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자면 저는 오이카와에게 제 최애팀 유니폼을 입히는 걸 매우 좋아합니다... 화려한 빨강이랑 오이카와랑 나름 잘 어울리지 않나요?
***
스가와라는 전공을 선택할 때 신중하다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스승의 날도 아니었고, 뭔가 기념할만한 날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느긋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는 핸드폰을 열었다. 작년 까지만 해도 그에게 1월은 ‘새해의 시작’이라는 의미 말고는 아무런 달도 아니었다. 그저 열 두 개의 달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는 핸드폰 화면을 두 번 넘겨 라인을 열었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이카와가 보내온 것이었다. 그는 뒷머리를 쓸었다. 한국 배구는 지금이 ‘시즌’이었다. 새해 첫 해부터 리그를 할 건 뭐람. 그는 붉은 유니폼을 입고 두 손으로 브이를 그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는 야속한 웃음을 엄지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장을 봤다. 항상 한 팩을 사던 고기는 반 팩, 양배추도 사분의 일 토막을 구입했다. 먹는 입이 줄었으니 장보는 양도, 만드는 양도 줄었다. 그는 그 ‘반절’ 분이 매우 아쉽다고 느꼈다. 스가와라는 자신에게 전공을 신중하게 정하라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는 스포츠의학과를 갔어야 했나, 고민했다. 그는 팩에 들어있는 파인애플을 집어 들었다.
파인애플을 바구니에 담으면서 스가와라는 옆으로 이동했다. 우유빵이 한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빵을 집었다가 곧 내려놓았다. 이걸 한국으로 보낼 순 없잖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며칠 전 오이카와가 우유빵이 먹고싶다고 땡깡을 부린 걸 기억했다. 국제전화를 걸어 놓고 하는 소리가 고작 그 정도라서 짜증을 냈던 기억은 1+1 행사상품처럼 묶여 따라왔다.
그렇지만 그는 우유빵도 바구니에 담았다. 꽃빵에 부추잡채를 넣어서 먹는 것처럼 마파두부라도 올려 먹지 싶었다. 스가와라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어제 암호 같은 한국어를 들어가며 경기를 챙겨 본 탓이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숫자를 겨우 읽어가며 찾아 본 경기들은 다 앞부분이 잘린 것들이었다. 그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풀 영상’을 겨우 볼 수 있었다. 풀영상을 찾기 위해서 허비한 두 시간이 아까웠다.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혼자 일본에 남아서 편한 점은 메뉴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더 이상 영양소를 균형 맞춰 먹지 않아도 괜찮았고, 타바스코 소스를 양껏 뿌려도 지적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 스가와라는 이 편리한 식생활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오이카와가 보고 싶었다. 될 때 마다 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내는데도 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나오는 경기는 빠짐없이 챙겨보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배가 고팠다.’
외로움과 함께 찾아오는 기묘한 허기. 스가와라는 어제 새벽을 회상했다. 기어코 풀 영상을 찾아보던 때의 일이었다. 영상은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LIG 손해보험 선수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라는 목소리와 함께 오이카와의 모습이 보였다.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입니다. 세터진이 약한 손해보험을 뒷받침 해주는 좋은 세터죠, 라는 목소리와 함께 클로즈업 되는 그의 얼굴은 익숙했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몇 달 안 본 사이에 뭔가 변한 것도 같았다. 한국에서 머리를 새로 했다더니 예전과 느낌이 달라진 기분이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그는 통역 없이 어눌하게 한국어를 발음했다. 예전 유니폼과 다른 붉은 색의 유니폼 또한 어색했다. 그가 들어간 LIG 그레이터스의 유니폼은 민소매였다. 몸에 잘 달라붙는 유니폼 아래에 그는 검은 서포터를 받쳐 신었다. 그 모습이 여자애들이 칠부 레깅스를 신을 때의 모습과 닮았다. 잘 빠진 다리라인을 보면서 농담이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스가와라와 오이카와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지는 것이 연인인데, 롱디는 너무 힘겨운 일이었다. 스가와라는 김요한과 에드가에게 정확하게 토스를 올리던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그는 속공과 백어택 등을 잘 조합하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모습과 별반 차이 없는 것 같았다. 한국 적응 문제 때문에 바로 활약하기는 어렵겠다던 일본의 언론도 어느새 오이카와의 활약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전공이 스포츠의학이었다면 한국에 전용 의료진으로 따라갈 수 있었을깔 고민했다.
적어도 한국어 전공이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고, 그럼 통역으로 따라갈 수 있었겠지. 스가와라는 카레가루를 집어 들었다. 홍합탕을 끓일까 했지만 귀찮은 일이었다. 먹어 줄 사람도 없는데 손이 가는 음식을 하는 건 사치였다. 스가와라는 코를 킁킁거렸다. 혼자 장을 볼 때 무심코 양을 줄이거나 즉석에서 메뉴를 바꿀 때 그는 외로워지곤 했다. 오이카와가 한국으로 간지 오래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한 유일한 감정이었다.
평소보다 가벼워진 짐에 장바구니가 홀쭉했다. 스가와라는 그걸 한 손에 들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미미하게 울렸다. 그는 어서 전화를 꺼냈다. 오이카와, 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다급한 목소리에 오이카와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지직거리는 것도 같았다. 너 돈 잘 벌어? 국제전화 막 하지 말란 말야. 스가와라의 잔소리에 오이카와는 자기 거한테 전화를 거는데도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슬프다고 대꾸해왔다.
나 전공 선택을 한국어나 스포츠의학으로 할 걸 그랬나봐. 스가와라가 한탄하듯 내뱉었다. 오이카와는 내가 보고 싶어? 하고 물어왔다. 눈치가 빠른 애인은 이래서 귀찮다. 스가와라는 괜히 ‘아니’ 라고 대답했다. 어제 경기 봤어? 그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인터넷으로 찾아 봤다는 말을 건넸다. 어제 토스 좋더라. 점프 서브도 잘 넣고, 그는 힘없이 말을 이었다. 오이카와는 잔잔히 웃다가 다음 경기가 언제인지 아느냐 물었다.
“너희 올스타전 한다며.”
“잘 아네.”
“번역기 돌렸어.”
애인 소식을 번역기 돌려서 알아야 한다니 너무 슬픈 일이야. 슬픈 게 한이 없어. 스가와라는 골목길을 돌았다. 손에 든 장바구니는 여전히 가벼웠고 그의 빈자리를 실감하게 하고 있었다. 장바구니 들어 줄 사람도 없고, 스가와라는 한탄했고 오이카와는 나도 장바구니 들어주고 싶은데, 하고 대답했다. 멀리서 까마귀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경기에서 뭐가 인상적이였냐면, 김요한 선수 잘 생겼더라. 문신 멋있어. 까마귀 날개 같아. 스가와라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늘어지기 시작한 노을이 그의 그림자를 늘렸다.
그것뿐이야? 오이카와가 물었다. 스가와라는 세터 칭찬도, 잘 생긴 김 선수 칭찬도 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대꾸했다. 가장 중요한 말을 안 했잖아. 오이카와는 따지듯 말했다. 토오루? 스가와라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거 말고, 오이카와는 오늘 따라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골목 너머에서 오이카와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도 같았다. 음, 그리고 아, 어제 발로 디그한 거 멋있었어. 그는 잊고 있던 칭찬을 내뱉었다. 그것도 아니야, 오이카와는 샘이 난 듯 말했다.
스가와라는 그가 원하는 말이 ‘보고 싶다’는 말인 걸 눈치 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데, 멀리 있으면 얼마나 보고 싶은지 그는 아마 한 톨도 모를 것이었다. 한국에 적응 하느라 힘들텐데 보고 싶은 마음까지 가져달라는 건 투정 같았다. 스가와라는 보고 싶어, 하고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오늘 장을 봤는데, 네 몫을 하나도 안 샀어. 근데 그게 당연한 건데 허전했어. 그는 읍소하듯 중얼거렸다.
얼마만큼 보고 싶어? 그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골목에 통화음이 울리는지 계속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하늘만큼- 땅만큼. 스가와라는 웃을 기운도 없다면서 말을 내뱉었다. 혀끝에서 툭툭 던지는 말이 그렇게 기쁜지 오이카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너 지금 가게 들렀다가 골목길이야? 오이카와가 물었다. 너랑 얼마 전 까지 같이 걸었던 길이네요, 스가와라는 완전히 진 것 같았다.
얼굴을 보지 않으니까 솔직하게 내뱉을 수 있는 것도 같았다. 혹은 만난 지 오래 됐기 때문에 솔직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 됐든 스가와라는 그를 놀릴 기운도 없었다. 내가 네 앞에 나타나는 마법을 걸게, 오이카와가 속삭였다. 여느 때와 같은 목소리였다. 스가와라는 그가 마법처럼 눈앞에 나타난다면 장바구닐 던지고 백덤블링이라도 할 수 있겠다면서 투덜거렸다. 줬다 뺏는 사람과 희망을 주면서 설레게 하는 사람이 가장 질이 나쁜 사람 이야. 스가와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게 뭐야, 오이카와는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라고 말했다. 스가와라는 장바구니를 흔들었다. 십, 구, 팔, 칠 하며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숫자를 셌다. 스가와라는 육, 오, 사, 삼 하면서 그의 목소리를 이었다. 너 진짜 없으면 죽어, 라는 말에 오이카와는 백덤블링 할 준비나 하라며 코웃음 쳤다. 얼토당토않은 말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의 장난기를 받아들여 스가와라는 이, 일, 영, 하고 나머지 수를 내뱉었다.
스가와라는 골목길을 돌았다. 짜잔, 하고 오이카와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났다. 그는 현 소속팀의 검은색 져지를 입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놀라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야, 너 핸드폰 망가지면 전화 못한단 말야. 오이카와가 급박하게 소리쳤다. 진짜 토오루? 스가와라는 얼떨떨하게 물었다. 마치 귀신을 보는 듯 했다.
오이카와는 몸을 숙여서 핸드폰을 주웠다. 그는 능숙하게 스가와라의 장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진짜 1인분씩만 샀네. 그는 소녀처럼 발랄하게 웃었다. 스가와라는 핸드폰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볼을 잡아 당겼다. 아파, 나, 진짜야, 올스타전에서 나 안 뽑혀서, 그 틈에 잠시 귀국했어, 한국이랑, 일본이랑 별로,
시간도, 안 걸리고 그러니까 놓아주지 않을래? 오이카와의 말이 점점 템포를 빠르게 했다.
스가와라는 손을 내렸다. 마법 같아, 라며 속삭이는 말에 오이카와는 손으로 브이를 그려보았다. 스가와라는 그걸 꼭 잡았다. 보고 싶었어, 오늘 진짜 내 전공부터 후회 할 만큼.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말이 예쁜 듯 그를 꼭 끌어안았다. 골목길 안에 내리는 노을이 그들의 그림자를 하나로 묶어두었다. 오이카와에게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오늘 저녁 뭐야? 그는 일상인 듯 물었다. 스가와라는 장을 다시 봐야겠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럴 필요 없어, 나 자주 올 건데. 오이카와는 웃으며 말했다. 올스타전 없으면 오지도 못 하는 주제에, 스가와라는 그의 정강이를 찼다. 오이카와가 주저앉으려 할 때 그는 오이카와의 멱살을 잡았다. 그가 장바구니를 놓쳐 안에 들어있던 감자와 당근이 골목길을 질주했다. 스가와라는 급하게 그의 입술에 자신의 숨을 더했다. 숨과 숨이 부싯돌처럼 부딪히는 소리가 질척하게 골목 안을 울렸다.
보고 싶었어, 스가와라는 그의 목 너머로 그 말을 넘겼다. 오이카와는 능숙하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익숙하게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어왔다. 그 따듯한 온기에 스가와라는 눈을 감았다. 마법 같은 노을이 그들 사이로 내리며 긴긴 밤을 불러오고 있었다. 골목 안에 떨어진 야채들의 그림자가 점점 늘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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